소농(小農)-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p211
녹색평론사
농업의 근대화 조건? 광대한 토지와 우수한 노동수단 확보? 이농인구…
풍요로운 농지를 만드는 것은 한 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영구농업? 좁은 농지를 공들여 경작하고 표토(表土)를 지켜온 농업, 이것이 예기치 않게 환경보전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소농의 가장 근본적인 의의?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핏줄을 이어가고자 하는 바람(가문의 영속 보장)
농학? 화폐증식을 시도하는 업, 농업의 자본주의적 전개에 기여할 학문(기술학)
농학의 관점 속에는 살아있는 인간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소농이 열심히 지켜내려온 ‘뿌리박은 삶’은 바로 그들의 농업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그런데 과학기술을 응용한 생산성의 추구는 영속성이라는 소중한 특질을 현대농업에서 추방해버렸다.
“과학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하고 물으면, 주저없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지만 첨단과학의 산물인 무기를 보면 그 답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생산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자연을 파괴하는 흉기로 변한 농업
식량 수입을 위한 공업 제품 수출?
한 나라의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고자 결의했을 때 취해야 할 정책은 분명하다? 인구 분산과 지역 활성화!
즐기면서 자급하는 농업, 겸업농가? 주5일근무, 정보화 사회의 이상적인 삶?!
농업은 인간에게 편안함을 준다. 거기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도 농학에 부과된 커다란 역할이라 생각한다.
#한 점을 응시하는 토착 소농민
전정가위와 할아버지의 패전 예측
“농사꾼이 사용하는 도구에 이런 정도의 좋은 강철을 사용하는 나라라면 무기도 일본 것과는 비교가 안될거야.”
2차대전 개전 당시에 어떠한 국제적인 정보도 접할 수 없었던 시골의 일개 늙은 농부가 어떻게 여론과 다르게 일본의 패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까? 토착 소농민은 주변의 사소한 것을 새삼스레 관찰하면서 스스로 생각해 나간다. 권력기구가 유포하는 정보의 허구성을 간파하고 몸을 지키는 지혜를 굴린다. 이것은 뿌리를 내리고 살기를 바라는 농민의 본능이다.
근대국가의지, 상공업 중심 산업국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가능성이 낮은 생업은 모두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어부는 자식이 중학교에 가면 어부의 감각을 키울 시기가 없어진다고 탄식한다. 마찬가지로 소농의 자식이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우수한 인재가 이농하는 것을 의미한다.(학교를 넘어서)
#대농을 지향하는 ‘국민적 농민’
국가가 목표로 하는 농업정책? ‘돈을 더 많이 번다'(가장 손쉬운 방법은 규모확대)
통계에 없는 ‘비국민적 소농’
규모확대의 주 공급원? 등 떠밀린 이농!
기업가적 능력? 기업적 감각은 철저한 합리주의에 입각해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생산성 향상? 규모확대와 단위수확량 증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규모의 확대 선택(이농으로 성립된 규모확대)
***수확량이 많다는 것은 태양에너지를 많이 고정시킨다는 것을 말한다(대부분 수분증산에 사용, 태양에너지 고정효율 상한선 3%,감자류)
본래 대형농기구 사용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미국식 vs 동양)
논에는 방대한 노력이 축적되어 있다. (선조에서 자손에 이르는 시계열 분포의 전체값, 경제개념과 범주와 크게 다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소농에게 농지는 조상의 무덤이면서, 동시에 향토에 토착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소농의 얼굴을 지워버린 농협
현재 농촌사회는 아주 혼란스럽다? 가치관 , 윤리관이 근본부터 허물어진 듯하다!
콩세알의 심성? 지금은 어떤가. ‘장애물’은 농약으로 모두 죽여버린다는 식이다.
붕어나 미꾸라지가 사라진 수로? 분명히 쓸데없는 살생이다
농약 듬뿍 살포한 채소 출하? 먹는 것은 무농약!
이미 농업은 ‘생산이 곧 선‘이라는 세계에서 ‘생산이 곧 악‘이라는 세계로 전락한 듯하다.
유통마진을 가로채는 농협? 안전식품의 거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하는 것은 A씨의 인격이 뒷받침하는 농산물이다.(얼굴있는 먹을거리)
***보조금이 인심을 타락시켰다
보조금에 으레 따라다니는 ‘술’을 얻어마시면서 ‘교제’하고 ‘표’를 움직이며, 보조금을 내세우면서 표를 모은다
‘국가의지’로서의 농업은 대농의 방향? 그것은 결국 소농을 죽이는 방향이다!
아름다운 바다 속 산호 풍경 이변? 사탕수수 재배 장려금이 원인? 사탕수수밭에 뿌린 제초제가 진범으로 판명되었다
제초제 추방하기 위한 지혜? 사이짓기와 손 제초!
농촌의 지도자상? ‘화폐를 초월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사람
#소농은 풍토를 살린다
풍토? “풍토는 그곳의 대지와 대기의 접점에서 빚어진 순자연산물이다. 따라서 가격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극히 가치가 높은 것이다.”
논과 농가의 인연을 끊는 것? 대규모 농가 육성 국제경쟁력 강화 정책!
소농을 망하게 하는 농업연구? “귀하의 농지는 무슨 성분이 몇퍼센트 부족하다”고 화학적으로 설명하면, 그 성분을 함유한 비료를 뿌리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이다. 지도한 쪽은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금도 확인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었다는 시험결과는 숨겨두고 효과가 있었다는 사례만을 전적으로 맹신할 뿐이다.
농가는 자신의 토지를 지키려면 이것을 거부해야 한다? 악덕의사가 약을 난용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자재를 찾아 농가에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태어난 곳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절실하게 원하는 농민의 감정을 자신의 마음으로 하지 않는 한 “나는 현장을 알고 있다”고 으스대서는 안된다.
풍토산업에 의한 지역진흥의 목적은 사람이 태어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풍토는 어디까지나 자연물로서 평등하며 좋은 풍토, 나쁜 풍토의 차별이나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다(자연과 인위의 조화 추구)
***자연순응을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또한 개선방안 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합리성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풍토품종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상품작물과 자급작물의 차이? 풍토에 맞지 않는 품종을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을 다량으로 뿌려야 되는 인과관계를 소비자들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내 고장의 농업’이 아니라 ‘이 논의 농업’을
‘일촌일품(一村一品)’이 아닌 ‘일촌백품(一村百品)’? ‘한 마을에 백가지 명품’ 운동!
농촌기술지도, 농협 등이 전부 얽혀서 ‘공업제품의 판매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간의 에너지를 축적함으로써 오늘의 농지가 구축된 것이다
선조들이 해온 그대로 땅에 에너지를 비축하여 그것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한다
‘경제성 추구’에 매진한 결과?
풍토무시-화학비료-병충해 저항력 저하와 연작-선충의 피해가 아주 심해졌다
“풍토활용은 향토에서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애니미즘? 생명과 영혼이 깃든 자연계의 모든 사물!
고유의 미의식인 청정미가 넘친다? 경영내용이 뛰어난 농가의 논밭은 작물의 생육상태는 물론 그 주변이 아름답다!
“농지는 인공의 자연이다”
자연계의 특징? 스스로 비료를 준다!
다양한 종의 공존은 결코 토양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생명의 윤회, 순환)
경제적 합리주의에 일관된 농경은 생산성 향상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략을 강요하고 있다
빼앗은 영양분의 대부분을 토지에 되돌려주지 않으면 지력은 점점 약해진다(생태순환의 연결고리? 똥)
자연자원의 파괴에 대한 책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빈곤을 만든 사회체제에 있다. 많은 저개발국에서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다량 사용으로 수확증대가 기대되므로 국가로부터 많은 보조금이 주어지고 있다!(허울뿐인 세계화)
농경의 역사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농지를 덮고 있는 표토에서 유기물을 잃을 때, 거기에서 살고 있던 사람도 자연과 함께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다. 표토의 유기물 함량을 유지해가면서 수백년이나 식량생산을 계속해온 집약소농의 활동이 실로 예기치 않게 지구환경을 지켜온 것이다.
‘농업근대화’는 소농이 농업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적 정체사회? 서구적 역사관!
“나는 도시의 발달이 인류와 세계에 대해서 불행한 악이라 생각한다…”
간디는 이미 오늘의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예언하였던 것이다
‘무정부 농경사회’의 이상향!(소국과민小國寡民)
새로운 시각? 농업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생업형태!
마을공동체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소농민에게 국가기구는 의심할 것 없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지겨운 존재였다(농민수탈과 소농의 생존기반 파괴)
노동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기술? 자급자족
반드시 화폐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농에 있음이 틀림없다
마을이 사라진다? 양심이 사라진다? “생산이 곧 악”인 죽임의 농업!
“제초는 완전하지만 웬지 나쁜 짓을 한 기분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일? 출구 없는 미로
농약사용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으로, 사바나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불필요한 살생)
수입농산물로부터 농업을 지키는 방법은 무농약 농산물을 생산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 농산물의 장거리 수송에 농약은 필수, 대규모 기계화 방식의 농업에 화학비료와 농약은 필수(공업화된 농업)
휴일에만 하는 일이지만, 아무튼 일년 정도 힘든 육체노동을 계속하는 사이에 10년 동안 괴롭혀온 요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움?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진짜 채소 맛!
가능한 한 자연에 거역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체험은 우리를 애니미즘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눈뜨게 해주었다
농지를 황폐하게 만드는 과학적 농법?
과학도 일종의 신앙이다? 오늘날의 과학적 진리는 내일의 미신일지도 모른다(사라진 과학의 탐구정신? 의구심에서 비롯된 호기심, “모든 것을 의심하라”)
전통 자급농업이 근대화의 파도에 휩쓸리며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에서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농업 본래의 자연권이 국가에 의해 박탈당했다(전복적 이성)
논 제초제로 미꾸라지가 사라진 논? 그것을 우려하는 농민을 만나본 적이 없다!
점자리나 니꾸라지를 다시 돌아오게 하자!
인위의 과학농법, 무위의 자연농법
무위자연의 활동은 대우주의 의지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표토와 토양유기물을 지키고 있는 지구 지킴이, 소농
수출을 위한 ‘환경농업’? 이미 환경농업이 아니다
생태적 지속가능한 농업의 실천방법은 가족형 소농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21세기 희망은 農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보화사회에서 소농의 바른 자리찾기를 모색하며 할 시기이다…대형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조개선책’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이 나라에 넘쳐나는 농업전문가(공무원 , 연구자, 교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들 중의 한사람인 약자도 너무나 부끄러운 심정이다.
농업중심의 순환사회가 아니고는 장기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소농의 존재를 되살리기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지속적인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이야기 교훈? 모든 국가는 본질적으로 군사국가이며, 국가기관이란 결국 민중을 착취하기 위한 정치라는 것을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으로 땅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국가와 국가기관의 선전과 수사에 쉽게 설득당하는 것은 이른바 계몽된, 교육받은 사람들이기 쉽다(일본은 신국이기 때문에 최후에는 신풍이 불어서 부정한 나라 미국을 반드시 패퇴시킨다고 가르친 선생과 ‘애국소년‘)
인류사회의 진보, ‘친환경 개발’? 자연을 죽이는 기득권자들의 상투적인 속임수
이러한 땅에 뿌리박은 자주적 지혜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진보라고 믿는 어리석은 미신에서 지금 우리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김종철,녹색평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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