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넘어서. 이한. p232. 민들레
원제: 학교를 해체하라
“엄마 학교 가기 싫어요”
아이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아이를 설득하려하지만 학교를 바꾸려고 하진 않는 엄마들)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월트 켈리
스스로 기꺼이 모든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될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 바로 나 자신부터!
감옥 같은 학교, 아주 비인간적인 교사도 피해자. 교육이전에 인권의 문제!
‘교육=학교교육’이란 통념
지금은 교육의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한 시점?!
강수돌 교수의
“학교가 ‘진실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상황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시험과 통제!
*분노는 상황을 논리정연하게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지만, 냉정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계층의 재생산, 학교는 결코 ‘무상교육’을 할 수 없다(교육재정 분배 시스템의 문제)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억압받고 있다.
특정 집단에 유리한 교묘한 이념의 주입-‘공공적 성격’을 잃어버렸다!
학교를 넘어서? “터무니없는 짓이야!”
‘교육문제’만을 죽자 살자 고민하는 것은 ‘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문제’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교육을 맡고 있는 학교라는 국가기구’ 안에서 이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교육의 모순을 바로 학교체제 그 자체에서 찾는다
**학교의 진짜 역할은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다.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
궁극적으로 사회의 탈학교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넓히는 길이다
칠판에 적으면서 강의, 그것이 교육?!
정신이 학교화되어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사실상 아무런 관심이 없다, 사회제도의 톱니바퀴 생산
“이른바 교육자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이라도 가르치면 될 뿐, 그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가는 별문제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인간이라는 상품을 대량 생산해내는 공장 같은 학교
자율학습, 보충수업-기만적 쇼!!
대학준비만을 위한 학교의 활동
누가 대학을 들어가건 전체의 행복은 조금도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제로섬게임-꼭두각시 놀음, 조작된 욕망!
반 평균 성적 연대 책임-교사의 숨겨진 ‘이기심’, 연습장 숙제-약하고 어리석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짓일뿐.
누구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술교과서, 이 사회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기술교사에게 필요할 뿐이다!
교사는 마치 처벌만 기다리고 있는 죄인을 대하듯 아이들을 툭툭 치며 괴롭힌다
질문하고 때리고 질문하고 때리고 하는 과정 되풀이
교과서의 진짜 용도? 교과서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면 학교공부의 본질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어수업-언어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영어실력을 기를 수 없게 하며 학생들의 시간을 빼앗는다
수학-체벌이 가장 성행하는 수업
지성을 일깨우는 모범적인 책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의 사고력을 가로막고 통제하는 도구
결국 교과서는 학생들의 참된 학습을 방해하며 교사가 교실에서 수업할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곧 앵무새 짓을 태연하게 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진 책
지성을 일깨우는 모범적인 책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의 사고력을 가로막고 통제하는 도구!
바보 같은 시험에 대비하여 의미없는 정신노동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제도와 문화의 정신이상을!
***학교는 졸업장 수여 권한을 쥐고 있고 사회는 그것을 원한다!
하루는 정말 긴 시간이다. 그 수많은 하루하루를 학생들은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모든 행복의 가능성을 차단당한 채 폐쇄된 감옥 속에서 앵무새들의 쇼를 괴롭게 보고 있다
학교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1)부조리한 사회계층화기구 2)억압적인 통제기구
학교는 ‘쇼’를 벌이고 있을 뿐, 진실로 ‘교육이 아닌’ 많은 일들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계층화된 사회에 구성원들을 순응시키기 위한 억압적 통제기구 노릇
통제는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는 정도에까지 이루렀다
교사는 절대권력자
학교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통제하고 일정한 수준의 성적을 올리는 ‘상품’으로 학생들을 제조해낼’ 책임을 부과한다
흔히 제도학교의 옹호자들은 마치 음란물이나 노래방, 비디오방이 학교폭력과 관계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음란물과 폭력물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을 일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지 ‘모방’이 아니다.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학교 자신이다!
학교폭려을 뿌리 뽑자? 이유 자체가 학교!
학교가 정한 가치체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못 박아 놓고 대부분의 학생들의 자존심을 하나하나 짓밟아 버린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정체성을 가지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다수를 이룬다.
이제 질문을 버꾸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게 만드는 학교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학생들은 집에 가서도 자기편을 만날 수 없다(어딜 가도 잔소리와 꾸중)
대부분 학부모들은 학교편(계층상승이란 학교화된 신화)
학교교육의 불평등성-엄청난 교육재원, 불필요한 일에, 불평등한 결과를!(엄청난 사회적 오류)
교육 ‘수혜환상’, 자신은 세금을 안 내는 것처럼 착각! 조세부담의 역진성!
***간접세의 특징-조세의 역진성!!!
작은 규모를 차지하는 ‘잘사는 사람’이 ‘세금의 보조’를 받아 높은 학력을 따는 비율은 ‘못사는 사람’에 비해 많고 높은 학력을 따면 고소득을 올리게 된다
불평등의 원인? 교육자금을 독식해서 불공정하게 배분하는 학교체제의 존재 자체!
***학교가 만드는 가장 큰 해악은 ‘교육과정을 졸업증서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배움의 내용과 형식이 삶으로부터 심각할 정도로 동떨어지게 만든다
왜곡된 사교육비의 핵심 원인?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에 있지 공교육의 ‘질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재정의 용도? 인건비가 90%(교사월급!) 소비자들에게 강제로 자금을 강탈해서 소비자가 원하지도 않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거저 돈을 넘겨주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학교가 지식을 배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화! 학교 밖에서 공부하여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
진정한 학습은 학교에서 정한 교육과정이 아니라 실제 생활속에서 이루어진다(일리치)
통제는 ‘형식적인 자격자들’이 질 나쁜 수업을 강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영어 가르치고, 암기만 해서 가르치는 사람들, 무자격자(!)들에게 교육을 방임한 결과 초래)
지식을 얻는 가장 주요한 방식인 ‘독서’를 할 수 있는 능력도 학교는 없애버린다
등급은 객관적인 능력지표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습동기도 되지 못한다
클로즈드북은 깊이 있는 탐구와 사려 깊은 독서를 방해한다(세상에서는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그때그때 찾아보라고 말한다)
지식은 유용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헛똑똑이)
막연한 ‘탈락의 공포’속에서 ‘실패자’로 만든다
폐허가 된 현대판 신전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학교라뇨? 학교가 뭐죠?”
-“학교는 사람들이 배우러 다니는 곳이잖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어디서건, 모든 곳에서 배우고 있어요.”
제도는 사람들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교육과 연애의 닮은 점-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제는 대학보다 평생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흐름이다(대학의 무용성, 지성이 아닌 취직을 위한 공부)
진정으로 지성을 갖추게 된 사람들은 대학 강의를 들어서가 아니라 폭넓은 독서와 경험으로 스스로 소양을 쌓은 것이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탈학교화에서 시작된다. 탈학교가 거부하는 것은 학교 건물이 아니라 모순된 사회체제다.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회운동 전략의 하나이다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융통성과 자유를 누리고 싶다…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 가정의 구조와 관련된 문제다.”
학교체제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정치 참여 능력을 무력화시켜 왔다
***청소년들은 ‘교실이데아’를 열심히 부르다가도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취직하면 교육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리고 앞에 닥친 새로운 문제만 생각하게 된다.
교육문제는 산업자본주의와 학교체제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참된 문제의식은 실천 속에서만 올바로 선다
‘지금 실천하고, 지금 시작하라!’-존 홀트의 편지,미국 탈학교화에 커다란 역할
자투리 시간 활용. ’30초를 천금같이 써라’, 버스보다 지하철!
“학교를 넘어서 | 학교를 해체하라”에 대한 6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