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3. 이병한. 671쪽.
걸어라 서쪽으로 문명의 달빛을 따라-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현재합니다.



68 자연스레 계몽주의에도 거리를 두었다. 이성의 빛을 맹목하는 것 Enlightenment이야말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이라 했다.
마치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고 지상의 주권자인 양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코 그러하지 않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일 뿐이다. 결단 코 주권자가 될 수 없다. 그 커다란 착각으로부터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자연을 타자로 관찰하는 이성이 득세하고, 천인합일을 추구하던 영성은 축소되고 말았다. 고로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거스른다. 한쪽은 원자화된 개인으로 사회를 파 편화하고, 다른 한쪽은 균질한 계급으로 역사와 전통을 말소한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는 우울이 창궐하고, 자본주의 국가는 불안이 만연하다. 어느 쪽도 행복하지가 않다. 교회를 떠난 현대인이 도달한 곳은 결국 정신병원과 심리 치료이다.
74 …나라를 나라답게, 유럽을 유럽답게 만들자고 선언했다.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것,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뿌리로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자 개벽이기 때문이다.
99 중용의 사상가, 칸트? “고대 중국의 황제는 나라를 잘 통치해야 했기에 그에 앞서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리고자 했다. 가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자신의 몸을 잘 단련해야 했다. 자신을 몸을 잘 단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각부터 연구해야 했다. 감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태도 부터 갖추어야 했다. 올바른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지력부터 완성해야 했다.”
《중국 실천철학 강연》의 한 대목이다. 눈치 빠른 이들은 단박에 《대학》의 8조목을 차용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100 공자 말씀하시되, 순임금은 매우 지혜롭도다…그는 다른 사람들의 나쁜 점은 묻어주고, 좋은 점은 드러내주었다. 그리고 양극단을 파악하여 그 가운데를 취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데 사용했다. 이러한 점이 순임금다운 점이다.
집기양단 용기중(執其兩端 用其中)! 청년 칸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전통 논리학의 배중률을 돌파할 수 있는 새 길이 보이는 듯했다. 배중률은 참과 거짓 사이에 제3의 영역은 없다는 원칙이다. 시시비비를 명백하게 가리도록 시비를 거는 논리다. 따라서 완전한 참도, 완전한 그릇도 아닌 중간 영역이 부재다.
칸트의 평생 과제. 선악 논리,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정도 여부를 따지는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완성한 저술 이 바로 그 유명한 ‘비판’ 3부작이다. 《순수이성 비판》(1781), 《실천이성 비판》(1788), 《판단력 비판》(1790). 이 세 저작은 《중용》의 독일어 해설서이자 최신판 주석서이기도 했던 셈이다.
101 너의 일리(一理)와 나의 일리(一理) 사이의 합리(合理)를 찾는 것이다…그 중간 또한 항상 똑같은 것이 아니다. 역동적인 균형, 중용을 취해야 한다. 고로 중용은 기계적이고 평균적이지 않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다.
비판이 곧 중용이고, 중용이 곧 비판이다. 칸트의 필사적 노력은 《중용》의 근대화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102 산 자의 몫은 먼저 간 자를 올바르게 기리는 것,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서양사’(더 정확하게는 ‘서구사’) 자체가 가짜 역사다.
135 (계몽이란 무엇인가?) 푸코는 칸트가 정의했던 ‘계몽‘의 본질을 이란 혁명을 통해서 보았노라고 말했다. 칸트 가라사대, 인간이 자기 스스로 만든 철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다. 자기 속박, 자기 주박에서 깨어나는 것이 계몽이다. 칸트 시절에는 탈-신학이 곧 계몽이었다. 그래서 중국 고전에 감화 받아 신학 이후의 철학을 입안했다. 그러나 칸트의 후예들은 스스로 계몽주의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계몽을 또 하나의 교조로 삼는 계몽교가 들어선 것이다.
139 아무리 곰곰 생각을 굴려보아도 서구화=민주화는 도무지 정답이 아닌 것 같다.
178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선입견이 무섭다. 편견이 무겁다. 색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고약한 장애물이 된다. 낯선 것을 익숙한 틀로써 변형하여 재단하기 일쑤다. 20대의 세계관으로 반세기 여생을 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글줄이나 읽었다는 이들일수록 그러하기 십상이다. 단단하기보다는 딱딱하다.
그렇게 아재가 되고 꼰대가 되어간다. 살아가기에는 편할 것이다. 그 편리함을 신념이나 신조로 근사하게 포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선입견을 버리려고 애쓴다. 머리를 말랑말랑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천진한 눈으로 천 일 견문을 이어가려고 했다.
183 카메라를 든 순간 렌즈가 주인이 된다. 정작 나는 목줄 찬 안개견이 된 기분이다…하늘과 태양과 구름을 나침반 삼아 무작정 걷는 쪽이다. 카메라도 잘 챙기지 않는다.
447 (러시아 혁명 100주년입니다) 알렉산드르 두긴: 아닙니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을 도둑맞았죠. 볼셰비키들이 혁명을 낚아챘습니다. 또 다른 서구화가 시작되었거든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서유럽의 산물입니다. 유럽의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전제로 등장한 이념이에요.
451 아니, 프랑스 혁명이 문명의 파괴가 아니라 문명의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앵레 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근대 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 사회의 원리가 기저에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기사도 정신은 서유럽 에서 인간 경영과 사회 운영의 노하우가 집약된 가치거든요. 문명이 지속하는 방책을 담고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것을 처분해버리는 혁명은 결국 문명의 토대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았죠. 문명에 반하는 혁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 이념이었던 자유와 평등도 제어하려고 했습니다. 자유는 절제되어야 한다, 평등은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명이 지속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자유를 극단으로 추구하고 평등을 일방으로 추진하는 혁명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얄팍하고 편협한 혁명파가 결국은 반동적인 전제정치와 폭력정치를 산출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한 것이죠. 자코뱅의 테러와 나폴레옹의 독재를 예언했던 셈입니다.(온고지신, 법고창생)
456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현재합니다. 오늘날의 모든 것이,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 과거로부터 비롯합니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이 과거에 담겨 있습니다. 고로 과거는 영원합니다. 보수주의야말로 영원한 미래파입니다. 그러한 시간관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앞의 탁자 위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자랐다고 하여 줄기가 뿌리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열매가 꽃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합니다. 꽃은 시들고 열매는 떨어지지만, 뿌리는 생명이 있는 한 지속합니다. 즉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닙니 다. 과거/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보수주의란 최종적인 열매만 편 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 동시에 숙고하는 전체적이고 유기적이며 항상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속성 재배는 오래가지 못합니 다. 스탈린의 좌파 혁명도, 옐친의 우파 혁명도 금방 주저앉았습니 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64 동방정교 세계가 연방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말씀은 몹시 인상적입니다…
464 비잔티움제국의 소멸 이후 동로마제국의 전통과 정통을 계승한 국가가 러시아입니다. 그리스어 세계의 속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닙니다. 국가와 교회는 무관해야 한다는 서로마-서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러시아에 투영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로부터 국가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그 국가로부터 다시 시민사회가 자립해가는 라틴어 세계의 천 년사와, 국가와 종교와 민간이 공진화하는 그리스어 세계의 천 년사는 전 혀 상이했으니까요. 국가와 사회와 종교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성과 속을 조화롭게 운 영하는 고도의 기제를 세련되게 단련해온 것입니다. 흔히 심포니와 하모니로 비유하죠. 다채로운 음색의 악기들이 어우러지는 교향과 조화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정교 세계는 결코 개개의 종파와 민족적 특성을 소거하지도 않아요. 기독교를 넘어서서 이슬람 세계와 불교 세계와의 유기적 융화가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교향적 인격 주의’에 바탕한다고 하겠습니다.
515 천하:일어사문
사상은 물화되어야 한다. 이념은 제도화되어야 한다. 언행은 일치해야 한다. ‘일어삼문’체제가 흥미롭다.
유학 국가에서 동학 국가로
666 일백 년 전 가로되,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였다.
더 이상 이성만으로는 인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인공이 인간을 월등하게 앞지른다. 인간지능은 인공지능에 백전백패, 단 일승도 거두기 힘들어진다. 격차는 나날이 벌어질 것이다. 족탈불급, 비교불가하다. 이성과 이성의 네트워크, 집합지성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성적 인간은 백세 인생의 잉여로 전락할 것이다. 서둘러 사람의 근간을 재정립해야 한다. 논리와 합리보다 성리와 도리가 더 중요해진다. 무릇 천리를 배우고 익혀서 성리를 밝히고 도리를 다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었다. 사람은 나면서 이미 사람으로 존재하되, 돌아가는 순간까지 영원히 사람이 되어가야 할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사람 되기가 인류의 숙제가 된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넘어서는 존재, 참사람 되기가 영구혁명=천명이 된다.
새로운, 색다른 견해도 아니다. 150년전이르되 ‘인내천‘, 사람안의하늘을발굴하고한울을발현하는것이평생의학습이라했다. 공자는 일흔이 되어서야 천성을 닮은 인성,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는 범인들에게도 30년이나 더 긴 세월이 덤으로 주어진다. 미숙한 사람에서 완숙한 사람으로, 설익은 인간에서 무르익은 인간으로, 홍익인간에 육박해가야 한다. 인권을 앞세우기보다 인륜을 다해야 한다. 누리기보다는모시고섬겨야한다. 하늘 아래, 땅 위에, 공손하고 겸허해야 한다. 장차 지구의 운명은 오롯이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세상만사 사람 책임이다. 그러한 정신 개벽, 의식의 빅뱅이 수반되지 못하면 사피엔스는 정보사회의 숙주로 전락한다. 인포메이션과 데이터로 강등된다…깨우쳐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공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골방에서 골만 쓰는 과학은 거두어야 한다…기도와 수도야말로 사람됨의 기본이었다.(영성의 회복, 성과 속의 조화, 정치적 영성, 다시 개벽파로…오심즉여심, 시천주….新동학)
668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발상 또한 철 지난 격언이다. 아랫물과 윗물을 나눌 수가 없다. 모두가 맑아지고 전부가 밝아져야 한다. 고로 선천 시대, 지배층을 도덕적 으로 훈육시켰던 원리 또한 만인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만인이 성인이 되고, 만민이 천민이 되어야 한다. 만인이 갈고 닦지 않으면 후기 민주, 후천 개벽의 때가 오더라도 만개하지 못한다. 후천 세계의 촛불을 밝히고 기운만 지피다 스르르 사라져버린다. 후기 민주 시대가 오고 있음에도, 혹은 이미 왔음에도, 초기 민주에 길들여지고 선천 세계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후천 개벽의 사명을 받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문법도 달라져야 하겠다. 지리가 동/서로 나뉘지 않듯이, 천리 또한 성/속으로 가름할 수 없게 된다. 세속화에서 탈세속화로, 재영성화로, 성과 속이 하나로 융합된다. 이성과 영성이 합류한다. 혼/백과 영/육이 공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