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라 서쪽으로. 문명의 달빛을 따라

이병한
“새 길을 내고 싶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공간적 장벽을 허물고,
전통과 근대 사이의 시간적 단층을 돌파해내고 싶었다.
유라시아의 길을 걷고 싶었다.”
129 모름지기 바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서두르면 자빠진다. 안달하면 오판한다. ‘전략적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195 그러나 관건은 제국의 건설이 아니라 제국의 유지다. 말 위에서 제국을 만들 수는 있지만, 제국을 경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즉 제국은 생산력이나 군사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사상’이 필요하다. 인간을 다 스리는 기술, 인간의 마음을 사는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복수의 공동체=국가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 한마디로 ‘덕’을 실현해야 했다. 안정과 평화라는 공공재를 제공하고, 시장 확대와 물질문명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그러면 문화도 융성해진다.
중화제국의 남다름이 여기에 있다. 덕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상대국이었다. 난상토론 끝에 제자백가가 도달한 제국의 경영술은 일치했다. ‘무위’이다. ‘무위’란, ‘(인)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위’는 힘에 의한 강제이다. 당시로서는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주술에 의한 강제, 즉 씨족사회의 전통이다. 다른 하나는 무력에 의한 강제이다. 씨족사회를 붕괴시키는 군사력, 즉 폐도였다. 작은 공동체는 종교가, 큰 공동체는 완력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는 양자를 모두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위’란 도가뿐만 아니라 유가에게도, 법가에게도 공통된 지향이었다. 주술과 무력에 의거하지 않기, ‘사상’의 힘으로 제국을 다스리기, 철학왕국, 인문국가
199 국가의 목표로서는 ‘부강, 민주, 문명, 화해(조화)’가, 사회의 목표로서는 ‘자유, 평등, 공정, 법치’가, 개인의 목표로서는 ‘애국, 경업, 성신, 우선’이 꼽힌다.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전송했더니, 한 후배가 “자본주의 국가와 차이가 없네요”라고 답한다. 농이었지만 진을 담았다. 아니, 정답이었다. 좌/우의 시대는 일찌감치 지났다. 중국은 더 이상 좌고우면,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백 년의 급진’을 뒤로 하고, ‘중국의 길’을 걷는다. 20세기 도쿄와 21세기 베이징 사이의 결정적 차이다.
200 ‘발전’과 ‘진보’는 난세를 가리(키)는 20세기의 최신 용어였기 때문이다.
213 분단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을 일정한 교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남북 간의 대결, 이념과 체제의 대결, 혹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라는 시각은 피상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되,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 70년의 시간만큼이나 관성적이고 타성적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다시금 요청된다.
나는 갈수록 분단의 심층으로서 전통과의 단절을 뼈아프게 새기고 있다. 한반도의 허리가 끊어짐으로써 남과 북 공히 역사로부터 골절, 탈골되었다. 뿌리를 상실하고, 중심(=중도)을 잃어버렸다. 전통의 근대화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우왕좌왕 맹목적인 근대화로 치달았다. 무릇 난세에는 극단이 승한다. 좌와 우가 끝내 분열하고 만 기저이기도 할 것이다…전통과의 재접속, 전통의 혁신, 전통의 근대화가 긴요하다. 남과 북이 합류하고 협동할 수 있는 첩경이기도 하다…자기부정과 자기상실로 점철된 근대화의 상처 또한 치유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독립국가 만들기에 좌우 합작이 필요했다면, 21세기 통일국가.문명국가 만들기에는 ‘고금 합작’이 간절하다.
나는 거듭하여 1894년 동학운동을 돌아본다…동학은 서학을 배타하지 않았다. 서학을 되감하 치는 회심의 발군이었다. 전통을 내다버리지도 않았다. 유학의 민중화를 꾀했다. 사대부의 교양과 일상을 전 인민에게 널리 보급하는 동방형 민주화 기획이었다. 국학으로 함몰되지도 않았다. 신세계와 신세기로 열려 있었다. 고금 합작의 원조이고 원형이었던 것이다. 서학과 국학의 분단체제를 허물고, 구학과 신학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동아시아학이 지향해야 할 덕목을 상당 부분 내장하고 있었다. 반추할수록 굉장하고 신통하다.
217 역시나 제도보다는 ‘사람이 먼저’이다…인권은 단지 천부적인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평생 학습이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 탐진치를 떨쳐내지 못한 범부들의 무책임한 투표가 동시대는 물론 미래까지 갉아먹기 때문이다.
20세기 근대문명의 파탄과 민주주의를 별개인 듯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깊이 결부되어 있다. 직시하고 직면해야 한다. 제발 태초부터 자유롭다는 ‘근대인’ 흉낼랑 그만 거두고, 오래된 경세와 경륜의 지혜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다. 심학의 수양과 실학의 수련 없이 아무나, 함부로, 진정한 주권자가 될 수 없다. 모두가 군자가 되는 대동사회, 만인이 보살이 되는 극각세계야말로 동방형 민주국가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역전시대’가 아니라 ‘반전시대’ 또한 열릴 것이다.
마을마다, 유적마다, 한글에 가려진 한문 이름을 들추어 곰곰히 따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오래된 명명 속에는 여전히 옛사람들이 꿈꾸었던 문명과 이상과 가치가 녹아들어 있다.(우리말 옛이름의 뜻도 살펴볼 줄 알아야)
253 싱가포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저는 크게 셋을 꼽습니다. 실력주의Meritocracy, 실용주의Progrmatism, 그리고 청렴Honesty입니다. 싱가포르는 건국 이래 이 세 가지 원리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254 싱가포르의 관료들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부정부패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인재를 최상으로 대우함으로써 민간 시장이 아니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싱가포르가 단기간 내에 제1세계로 진입한 첩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55 학자-관료 Mandarin 아닌가요?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아닙니다. 한때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는 실험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현학적이고, 또 자기중심적입니다.
일을 중심에 두고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적 정합성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죠. 그래서는 국가를 경영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1965년 이후 격동의 세계사 속에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논문을 쓰듯이 수미일관적 정합성을 추구하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싱가포르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신봉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인과 관료들의 책무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실용적이어야 합 니다.
275 욕망의 전환. 가치의 전환. 지금 당장은 허황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싱가포르인들이 자동차 소유의 꿈을 접는다고? 당신이 도달한 부와 지위와 권력을 알려주는 가장 쉬운 방편이 자동차인데도?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선진국을 가난한 사람도 자동차를 소유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부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이 진짜 선진국입니다…도시문명, 근대문명에서 도피하고 탈출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해법이 아닙니다. 싱가포르는 어디로 갈 수 있나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도시문명을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도시 생태를 재생시키는 것입니다. 혁신적인 친환경적 공공교통망을 제공함으로써, 사적인 이동수단의 필요를 제거해가야 합니다.
278 즉 대안적인 공공교통망을 제시함으로써 싱가포르를 자동차 소유가 없는 세계 최초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20세 기를 지배한 마이카 문화와는 다른 욕망과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러면 싱가포르는 21 세기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그 외적 성장에 비하여 내적인 만족감, 행복지수에서 성취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차 없는 사회는 행복에 한층 가까운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아스팔트를 땅과 숲 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녹지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행복감도 높아집니다. 잠시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는 낮아집니다. 그럴수록 싱가포르는 더 건강하고 더 생태적인 도시가 됩니다.
천식 환자는 줄어들 것이고, 암 발병도 감소할 것입니다. 더 조용하고 더 평화로운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세계에서 가장 유능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에게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살아보고 싶다, 일해보고 싶다, 라는 욕망을 자극할 것입니다.
524 ‘민의’가 유일한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관점에서 보면 국익이라는 것도 사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국익을 견제할 천하의 공익을 대의하는 제도적 장치가 민주정치에는 애당초 미비한 것이지요.
생태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생태란 본디 신성한 합법성, 즉 천도의 영역입니다. 천도와 인욕이 충돌할 때 유가의 방법은 인욕의 극복에 있었습니다. 왕도정치의 전제로 ‘쿵푸학’을 강조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제도 아래서는 민의가 천도를 위반할 때, 즉 인욕이 생태와 충돌할 때 속수무책이지요.
제도적으로 천도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525 즉 서방의 민주정치가 비서구에서 작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비서구의 문화적 토양이 열악하고 의식수준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정치제도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동떨어진 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작금 인류의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를 더욱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의 표준을 새로이 세우는 것입니다.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정치를 지양하고, 다중적 합법성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새 정치'(신형 정치)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 과제입니다. 이 새 정치는 아마도 중국 유가들이 추구해왔던 왕도정치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533 북유럽 국가들은 루터교가 국교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러시아도 정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걸 인위적으로 분리하려던 것이 공산주의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백 년도 안 되어 자멸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동방정교와 이슬람이 다시 자라 났습니다. 인간은 결코 초월적 가치 없이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정교 분리’는 서방 국가에서도 통용될 수가 없는 사이비 이론입니다.
544 요는 선거제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맹신을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다양한 정치적 실험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습니다.
553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루소, 몽테스키외 등 많은 정치이론가들도 민주주의란 작은 공동체에 최적화된 제도라고 말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이 점이 간과되고 있어요. 정치 단위가 작을수록 유권자들도 후 보자들의 면면, 실력과 덕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습니다. 마을 학교를 개선해야 하는가, 병원을 더 지어야 하는가 등 생활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의 관심 또한 자연스레 높아지고요. 토론도 활성화되겠죠. 그리고 나의 선택이 곧바로 나의 가족과 이웃, 내 아이의 친구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알기에 공공심을 더욱 고양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테네는 아주 작은 도시였습니다.
서구중심의 역사관을 걷어내고, 아시아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며, 새로운 지구적 역사관과 미래에 대한 돋보이는 통찰이 담긴 빼어난 견문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