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조지 오웰. p442
전쟁은 평화 / 자유는 예속 / 무지는 힘
보도·연예·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풍요부.
이 이름들은 신어로 각각 ‘진부’ ,’평부’, ‘애부’, ‘풍부하고 한다. 애정부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곳이다. 그 건물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다.
윈스턴이 시작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일기 쓰기는 불법이 아니었다.(법이란 게 없으니 불법이란 것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발각될 경우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 노동 25년 형의 선도를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누구를 위해 이 일기를 쓰는가? 미래를 위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세를 위해? 문득 ‘이중사고’라는 신어가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어떻게 미래와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미래가 현재와 비슷하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다르다면 이 수난의 기록은 무의미한 것이 되리라.
‘이 분간 증오’가 끔찍한 것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거기에 휘말려들기 때문에 끔찍한 것이다.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
바보처럼 어리석은 데다 맹목적인 열성분자. 당의 안정성은 사상경찰보다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충성하는 이런 유의 인간들에 의해 유지되는 셈이다.
아이들의 잔인성. 부모를 사상경찰에 고발. 서른 살 이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윈스턴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사상죄는 죽음을 수반하는 게 아니다. 사상죄는 죽음 그 자체이다.
텔레스크린. 감시
오늘날에는 공포와 증오와 고통만이 있을 뿐, 감정의 존엄성이나 깊고 미묘한 슬픔 따위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50년대 전의 일들은 뇌리에서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무언가 증명할 만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윤곽마저 그 뚜렷한 모습을 잃고 말 것이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다는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현존하는 것 외에는 달리 그에 대한 기록이나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이 과거에까지 손을 뻗어 이런저런 사건을 가리키면서 ‘이런 것은 절대로 없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단순한 고문이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이리라…그래서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말살시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현실 제어’라 칭했는데,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이런 것들은 지극히 미묘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방금 행한 최면 행위에 대해서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격이다. 그래서 ‘이중사고’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조차 이중사고를 사용해야만 한다.
과거는 단순히 변경된 거이 아니라 사실상 파괴되어 버렸다.
자신의 기억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 가장 명백한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매일 매순간 과거는 현재의 것이 되곤 했다. 말하자면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양피지 위의 글씨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단 그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어떤 경우에도 거기에 허위가 섞여 있다고 주장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었다.
풍요부의 숫자 재조정. 사실상 위조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구두 생산량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조차 없다고 말해야 정확하리라.
놀라운 예측? 실은 현실 위조일 뿐! 그렇게 되면 그 거짓말은 그 순간부터 영원한 진실이 되어버린다.
“개념은 여섯 개의 낱말로 나누어지지만, 실제로는 단 한 낱말로 충분하다는 얘기지…”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세월이 흐를수록 낱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되는 거지…언어가 완성될 때 혁명도 완수될 것이네.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나?..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2050년까지는, 구어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걸세. 과거의 모든 문학도 없어질 거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같은 작가들은 신어로 번역된 상태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네…슬로건도 마찬가지고.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나?…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루트비히_비트겐슈타인)
꼭두각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목구멍이다!
어쩄든 열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정통성이란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초콜릭 배급량 20그램 인상 발표 직후, 일주일에 20그램으로 줄인다고? 그런데 겨우 하루 만에 그것을 잊어버렸나? 그렇다, 그들 모두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복잡한 이중사고로 인해 그것을 잊었다.
표정죄? 무의식적으로 짓는 불안한 표정,..무언가를 감추려는 행위로 간주되어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
그러나 무산계급이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힘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따로 음모를 꾸밀 필요도 없다.
꼭두각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남자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목구멍이다.
빅 브라더에게 감사하는 집회. 초콜릿 배급량을 20그램으로 올려준다고? 그런데 바로 어제 일주일에 20그램으로 줄인다고 방송하지 않았던가? 겨우 하루 만에 그것을 잊어버렸나? 그렇다. 그들 모두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터무니없는 통계 수치가 텔레스크린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다.
표정죄? 가령 승전 보도 소식이 보도될 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라고 윈스턴은 썼다)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우글거리는 피압박 대중만이 당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힘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따로 음모를 꾸밀 필요도 없다.
그들을 통제하기는 어렵지 않다.
몇 명의 사상경찰 정보원이 항상 그들 속에 섞여 활동하는 가운데 유언비어나 퍼뜨리면서 위험한 존재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들을 점찍어 두었다가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이 강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배급량을 줄이는 데 데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호응하도록 당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원시적인 애국심뿐이다.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다’ 라는 당의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의혹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모든 것이 안개 속처럼 희미했다. 과거는 지워졌고, 지워졌다는 사실마저 잊혀져서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게만 있다’라고 그가 전에 일기장에 썼던, 신비롭게 진실하면서 명백하게 보조리한 구절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복권은 삶의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 복권은 그들의 즐거움인 동시에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었고, 진통제이면서 지적인 자극제였다.
“모두 내부당원용 물건이에요. 그 돼지 같은 놈들은 없는 게 없어요.”
형제단, ‘그 책’
세계의 구조나 세계를 유지하는 과정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 전쟁의 기본적인 목적은 국민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공산품들을 완전히 소모하는 데 있다. 19세기 말 이후 잉여 소비재의 처리 문제가 산업사회에 내에서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무지는 힘
이들 세 집단의 목표는 그야말로 제각각.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고, 중간계급의 목표는 상층계급으로 오르는 것, 그리고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이들은 대부분 단조롭고 고된 일에 지친 나머지 일상생활 외의 다른 어떤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 본질적으로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일어났던 것은 바로 이처럼 저마다의 목표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이 세 계급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단 한 순간도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더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군중은 결코 자발적으로 봉기하지 않는다. 압제를 받아도 봉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비교할 기준이 없는 한, 자신들이 압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과거를 개조하는 두 가지 이유. 하나는 보조적인 것, 다시 말해 예방적인 것, 비교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용인한다는 것.
과거의 사건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그 자료와 기억이 한데 뭉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착각을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이 덜 건전하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전쟁에 대한 열망이 높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전쟁에 대해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분쟁 지역에 사는 예속민들이다. 이들에게 전쟁이란 거센 파도처럼 몸을 덮치는 끊임없는 재앙이다. 어느 편이 이기는가는 관심 밖의 일이다. 이들은 통치자가 바뀌어도 전과 똑같은 취급을 받으며 새 주인을 위해 전과 같을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은 또 중요 행정기관마저 뻔뻔스럽게 사실과 정반대인 뜻을 지닌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평화부는 전쟁을, 진리부는 거짓말을, 애정부는 고문을, 풍요부는 굶주림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만약 인간의 평등을 영원히 저지하려면-소위 상층계급이 자신들의 지위를 영원히 지키려면-정신을 광적인 상태로 몰아넣어야 한다.
만약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 윈스턴은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도 이 말이 골드스타인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래는 노동자들의 것이다.
“자네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세 단계를 밟아야 하네. 학습, 이해, 수용의 순서로 말일세. 이제 자네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네.”
(러시아 혁명과 파블로프의 실험, 심리조작, 세뇌)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과거는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과거는 절대로 바뀐 적이 없다.
#옮긴이의 말
과거나 날조.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각종 문서, 신문, 서적, 녹음, 영화 등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작하고 수정하는 것. 당은 또 기존의 언어를 줄이는 대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는데, 이는 당원들로 하여금 이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그런 사회에서의 개인이란 한없이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사회에서는 자유주의가 질식하고 인간성은 말살되며 정의와 평화 대신 허위와 조작과 테러가 횡행한다.
1984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1984』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84』는 결코 이십 년 전의 과거나 먼 미래의 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정보화 시대라고 일컫는 오늘날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