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에세이. p478
#언어의 타락과 오늘의 글쓰기_역자 후기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작가 오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까?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업으로든 아니든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오웰이 주목한 언어의 타락(「정치와 영어」)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에 비유되는 강을 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일을 강 ‘살리기’라 부르고 “녹색” 뉴딜이라 일컫는다. 오웰은 말한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이라고 하는 것은 『1984』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선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서점의 추억
하지만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적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 더 나쁜 건 언제나 책 먼지를 털고 책을 이리저리 옮겨야만 한다는 점이다. 내가 정말 책을 사랑한 것이 있긴 했다. 덧붙이자면 적어도 50년이 넘은 책의 모습과 냄새와 감촉을 사랑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하다
스페인내전은 아마도 1914~1918년의 대전 이후 그 어떤 사건보다 풍성한 거짓을 낳았을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한 모든 것은 스페인에서, 심지어는 프랑스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런데 영국에선 스페인내전에 대한 관심이 그토록 관심이 대단함에도 스페인 정부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갈등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너무 없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페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엄연히 고의적인 음모가 있기 때문이다. 양식 있게 행동해야 할 사람들이 스페인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파시스트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는 이유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스페인내전의 진상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면, 영국 대중은 진짜 파시즘이 무엇이며 그것에 어떻게 맞서 싸울지 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우선 언론 자유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언제나 일종의 사기였다.
마지막 순간에는 언제나 돈이 의견을 지배한다.
당장 내년도 아니고 어쩌면 10~20년 뒤도 아니겠지만 때가 다가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모든 작가가 완전히 침묵하는 쪽을 택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특권층이 요구하는 마약만 만들어낼 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은 내가 아주까리기름이나 고무 곤봉이나 강제수용소에 맞서 싸우는 것과 매한가지 일이다. 그리고 길게 볼 때 언론의 자유를 감히 허용할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밖에 없다. 파시즘이 승리한다면 나는 작가로서는 끝이다. 즉 내가 가진 유일하게 쓸 만한 능력이 끝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을 먼저 얘기했는데, 그런 사정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태의 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한 세대 뒤의 위험 같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되고, 언제나 활발한 적들의 술수에 놀아나도 안 된다.
#정치와 영어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현대의 영어에는, 특히 글로 표현되는 영어에는 나쁜 습관이 너무 많고 그것이 모방되어 퍼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마땅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 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쁜 영어에 대한 투쟁은 사소한 일이 아니며, 직업적인 문필가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비유는 상투적이고, 정확성은 떨어진다…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자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는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조립식 닭장의 부품처럼 이어붙이는 ‘어구’는 늘어나는 식으로 산문이 이루어진다.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로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로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간디에 대한 소견
동물성 식품을 먹지 말라. 아울러 술이나 담배도, 심지어 식물성일지라도 양념이나 조미료도 먹지 말라고 했다. 음식은 음식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섭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성인됨이라는 것 자체를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때문에 간디가 기본적으로 추구한 바를 반인간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맑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