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백창화·김병록. p328
영국 국립도서관의 3대 보물? 마그나카르타(대헌장), 비틀즈 친필 악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저자 친필 초판본.
신에서 인간으로, 특권에서 평등으로 진화하는 도서관
“책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나요?”
나는 도서관에서 부모님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책에 관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세요.”
좋은 책을 읽은 것은 물로 중요하다. 그러나 추억도, 그리움도 없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읽은 책 백 권은 아이에게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도 창의력의 기반이 되는 감성을 키워주지 못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싫어하는 도서관? 책을 한 권만 빌려주는 도서관,…개관시간이 정확히 나의 근무시간과 일치해 직장인은 절대 이용할 수 없는 도서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하는 도서관, 화장실도 못가는 도서관.
영혼을 치료하는 요양소, 수도원도서관
방랑과 유혹의 공간, 서점에서 인생을 배우다
성벽 아래 모여 새로운 사상과 정보를 교환하던 최초의 책장수들
먹고 살 것이 없어 목숨을 내놓고 책을 팔러 다녔던 사람들, 가장 먼저 새 사상과 정보를 접하다보니 이들의 생각은 누구보다 혁신적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처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목숨과 신념 사이, 구습과 뉴웨이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삶의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동화를 사랑하고 작가를 추억하는 동화마을 사람들
“다정하게 말해요,
거친 말이 우리가 행하는 선을 해치지 못하도록.
어린이들에게는 다정하게 말해요,
틀림없이 사랑을 얻게 될 테니.
부드럽고 순한 어조로 가르쳐줘요,
아이들은 금방 자라는 법.”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판타지’로 상품화하다
“집을 떠난 아이는 행복할 수 없어”_ 콜로디 피노키오 국립공원
아름다운 알프스 소녀의 꿈_스위스 하이디 마을
개발에 반대하고 자연을 지켜낸 베아트릭스 포터_윈더미어 피터 래빗 뮤지엄과 포터 기념관
당시는 사람처럼 옷을 입은 동물들의 인기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포터가 그린 토끼는 오랫동안 동물을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역동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포터는 어려서부터 자연과 동물들의 세계에 깊이 교감했던 것이다.
포터는 자연의 목소리를 들었고 포터가 그린 그림책에서 작은 동물들은 생생히 살아있다.
‘내게 여행이란, 책이나 가이드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말처럼 생각지 않았던 만남은 열렬한 충족감을 준다.
책으로 되살려낸 농촌 마을 공동체의 희망과 이상, 유럽 책마을
“‘우리’를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을 때 인간은 아름답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항상 불가능에 대한 꿈을 꾸자.”-체 게바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피에르 쌍소,『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파주북시티(파주출판도시).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유럽 책마을과 파주출판도시는 ‘마을’과 ‘도시’라는 단어의 차이만큼이나 생긴 모습도, 활동 내용도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은 죽어가는 시골마을을 살리고 지역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책마을을 도입했다면, 한국은 도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웠던 한국출판산업 육성조치의 일환으로 정부가 싼 값에 토지를 불하해준 산업지원책이었던 것이다.
모두 파리, 리용 등 도시 출신으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가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프랑스 대도시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임대료가 비싸고 그만큼 책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중고서점의 경우 굳이 도시 한복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시골로 가서 책마을을 만들기로 합의를 하고 그때부터 정착할 곳을 찾았다고 한다.
처음 4명이 마을에 서점을 열겠다고 했을 때 동네 사람 반응은 ‘완전 어이없음’이었다고. 우리 마을엔 정육점이 없어서 불편하니 차라리 고깃간을 열라는 충고가 이어졌고 도대체 주민도 몇 명 되지 않는 이 마을에서 누가 책을 산다고 책방을 열겠다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2006년의 일이다.
그는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하지만 디스켓과 CD의 보관연한에는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수백 년을 살아남는 책은 결코 인류가 버릴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백 년 전, 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껴가며 과거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가는 재미를 디지털은 결코 전해주지 못한다.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에필로그
“20년이 지난 후에는 당신이 했던 것보다 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 밧줄을 벗어던져라.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벗어나라. 무역풍을 받으며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마크 트웨인
작은 도서관 설립과 휴관.
그러나 꿈이 수익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한, 돈을 벌어다주고 명성을 가져다줄 기대치에 부합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도서관 문을 닫으니 첫째 시간이 남았다…둘째, 돈이 남았다. 도서관 운영비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던 숙제가 사라지고 나니 남편의 월급이 고스란히 쌓였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그동안 우리는 그토록 힘들게 살았나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꿈을 꾼다는 것은 이토록 가혹한 댓가를 요구받는다는 것을, 도서관을 휴관하면서 절실히 깨달았던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지도 않고, 꾸었던 꿈을 이루지도 못하며 살아가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비록 평생을 살면서 우리들의 작은 꿈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꿈을 꾸는 일이, 그것이 죄가 될 수는 없으리라. 우리는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충청북도 괴산, 산과 강이 하나로 이어지는 숲속 마을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숲속 작은 책방)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 책마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