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 충남발전연구원+홍동마을 사람들. p327
새로운 교육+농업+정치를 일구다
#자치와 생태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 홍동
충청남도에 있는 작은 농촌 마을 홍동(행정구역으로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의 이야기.
홍동마을의 겉모습은 우리나라 여느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놀랍고 대단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농촌 마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서 협동조합, 유기농업, 귀농·귀촌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경제와 녹색정치 운동을 적극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여러 새로운 실험들이 이곳에서 시도되었고, 지금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홍동마을이 이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역이 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곳에 있는 풀무학교입니다. 풀무학교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홍동마을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저자의 다양한 내용과 소재로 이루어진 이 책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 단어는 바로 ‘마을’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아무리 작더라도 마을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마을공화국을 꿈꿀 수 있을까
적어도 홍동마을에서 마을은 세계이고 우주다.
마을은 학교 도서관, 빵집, 목공소, 출판사, 공방, 협동조합, 연구소, 농장, 카페와 같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서 생산하고 길러 마을에서 먹을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가르치고 마을에서 배운다. 마을에서 연구하고 마을에서 정치를 꿈꾼다.
마을의 자립, 자조, 자치. 홍동마을에서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정치는 자원을 배분하는 행위라고 보았을 때 마을의 자립과 자조를 위해서는 오히려 중요한 것이 자치가 아닌지, 이제 새로운 정치를 꿈꾸어야 한다고 말을 건넨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홍동사람들은 마을공화국을 꿈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마을에서 가르치고 마을에서 배우다
#쌀 파는 이야기_쌀, FTA, 인문학 그리고 풀무학교_강국주
“모든 마을에 대학이 있어야 지역이 진정 자치가 된다”_비노바 바베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는 초등학교, 큰 마을에는 고등학교, 그리고 큰 도시에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계획을 세우셨다면 작은 마을에는 열 살 미만, 큰 마을에는 열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삶과 죽음의 모든 일들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데 왜 학습만은 마을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가? 나는 교육의 모든 과정은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은 조각이 아니요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주민대학’, 지역과 사회 구현을 위해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으로 발전하려 한다. 지역 속에 숨쉬는 생명과 평화교육은 21세기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쌀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유기농쌀마저 대형화·상업화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유기농쌀을 대형화·상업화한다”는 것을 이미 그 말 자체가 모순이다.
유기농쌀은 결코 대형화될 수 없다. 상업화될 수도 없다. 유기농쌀은 전적으로 작은 농가 단위에서, 순환가능한 농가의 유기부산물로 생산되는 것이다. 수만 평이나 되는 대규모 농지에, 수입 유기질 비료를 투입해 생산된 쌀은, 말만 유기농쌀일 뿐이지 실제로는 수입 유기질 비료를 통해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처럼 기계적으로 ‘제작된 쌀’일 뿐이다. 때문에 유기농쌀보다 한 단계 아래인 저농약재배쌀이나 무농약재배쌀이라 하면 대형화·상업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기농쌀은 원칙적으로 대형화·상업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도시 소비자들은 이를 잘 모른다. 그러 ‘친환경쌀’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유기농쌀인가 보다 여긴다. 이 ‘친환경쌀’에 포함되는 게 바로 저농약쌀·무농약쌀·유기농쌀인데, 이 중 유기농쌀이 가장 놓은 단계의 쌀이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이 친환경쌀 시장이 돈벌이가 된다고 여겼던지 여기에 뛰어들어 기존의 유기농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이 점 역시 현재 유기농쌀이 적체되는 원인 중 하나다.
위대한 발상의 전환? “모든 농관련 기관 종사자들에게 임금의 50펀센트를 농산물로 지급한다”는 정책을 실시한다면? 우리나라 농업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나 몰라라 방관만 한 채 이토록 숨죽이고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왜 인문학의 위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농촌과 농업이 절멸 상태에 내몰려 있는데 어찌 인문학이 위기가 아니겠는가…인문학의 토양이 농촌과 농업이며, 그 토양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인문학은 농민의 미적 감수성을 고양시키는 동시에 농민에게 보다 높은 꿈을 갖게 하고 보다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농부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나아가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왜 요구되는지, 그 이유를 직접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서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좁게 말해 문학적 상상력이라 할 수도 있을 터인데, 문학적 상상력이란 달리 말해 땅에 뿌리박은 상상력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상호이해 및 해답을 찾는 것이며, 농사 역시 땅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 상호작용과 이해에 바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인문학을 하는 사람과 농사를 짓는 사람의 세계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평등안이자 너와 나를 동시에 고려하는 보살핌의 정신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문학적 상상력과 땅에 뿌리박은 농부의 상상력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때문에 ‘농적 가치’와 땅에 뿌리박은 농부의 세계관을 회복하는 일은 곧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회복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농사 혹은 농업과 인문학이 때려야 뗄 수 없는 상호공생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사실을 강조해온 셈인데, 바로 이 점에서 ‘인문학의 위기’의 본질을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 우리 농촌과 농업이 망해가는데 인문학이 어떻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문학도들이 우리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다. 우리 농촌과 농업이 죽으면 인문학도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을 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들에게 옥수수가 그러하듯, 지금 우리에게 쌀은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쌀은 땀이며, 쌀은 노동이며, 쌀은 눈물이다. 쌀은 슬픔이며, 쌀은 행복이며, 쌀은 시이며, 쌀은 노래다. 쌀은 우정이며, 쌀은 협동이며, 쌀은 자치이며, 쌀은 민주주의다. 쌀은 평화며, 쌀은 해방이며, 쌀은 혁명이다. 쌀은 우리 땅이며, 쌀은 우리 모두의 생명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쌀은 모든 학살과 억압과 원한과 분노에 저항하는 가장 강한 사랑이며 스러져가는 마지막 희망이자 절망이다.
##우리 농촌의 내일과 어제, 홍동에서 되묻다
#홍동 지역 유기농업운동 소묘_장길섭
유기농업은 단순한 농사방식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총체적인 생활의 방식, 삶의 방식으로서의 농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유기농업은 개별 농가 마다 자기 조건에 맞는 적정한 인간적 규모를 가져야 하고,…단위 농장 또는 일정 지역 내의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물질 순환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토착 농민들은 대부분 관행농업을 하거나 벼농사만 유기농업으로….우리 지역의 대다수 농민들은 총체적인 삶의 위기를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 주류의 성장 중심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낫 들고 모여주세요”_이환의(귀농 17년차 농부)
당시 동료들의 농사는 모두 비슷했는데, ‘소량 다품종 생산, 잉여농산물 판매’로 요약할 수 있다.
가생이가 아닌 가온을 찍자…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최적의 모델 찾기…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몸은 어려서부터 농사의 유전자가 DNA에 녹아든 지역민처럼 될 수 없습니다. 그분들도 힘에 부치는 농사가 유기농입니다. 고부가가치의 기술 농업이 아니면 처음부터 겸업농, 부업농으로 시작하는 것도 여러 대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 이야기
#마을화폐로 꿈꾸는 은행_이동근
과거 농촌 마을에서는 화폐시스템이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 않았다. 대신에 품앗이 등의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돈이 부족하더라도 비교적 자립적인 농촌경제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경제 속에서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도 어쩔 수 없이 화폐경제에 점차 의존적으로 변해갔다. 농민이 농산물을 돈을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홍동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악한 농촌경제의 현실에서 농민들의 화폐 의존도가 점점 증가하여 농가 부채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결국,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폐해가 일상의 농촌에 깊숙이 파고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지역화폐운동. 지역화폐는 일정한 지역 안에서 유통되는 이자 없는 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에 『녹색평론』에서 소개한 이후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화폐의 이점? 이자 없이 스스로 돈을 발행할 수 있고, 지역의 부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지역의 내부 거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 간의 관계성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점점 커지는 국제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이자 마을은행 설립, 현대 화폐금융시스템의 치명적인 결함이라 할 수 있는 ‘부채를 낳는 신용창출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은행 모델 설계하는 것
#촌스러운 의사 되기_이훈호(운월리 주민, 의사)
같은 생활권에 사는 ‘동네 의사’로서의 삶
“Listen to the Patients, they will tell you diagnosis”
저는 동네 의사를 시작하면서 “Live between the patients, they will tell you the reason”이란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 ‘동네 의사’의 또 다른 역할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나온다고 합니다. “아차, 이거 물어보려고 했는데”하는 경우.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벌써 다음 환자 차례라고 부르고 있으니…
의사들도 의학 면담법이라는 분야에서는 “진료를 끝내기 전에 혹시 다른 질문이 있는지 다시 확인하라”고 강조합니다.
#’착한 정치’란 가능할까_강국주
땅을 일구는 것이든 씨앗을 뿌리는 것이든 수확을 하는 것이든, 농사일이란 어느 것 하나 단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시골살이도 농사일과 마찬가지인 법. 그런데 시골에서 ‘정치’를 하자니 처음부터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녹색당은 이랬으면 좋겠다?…어쨌든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최대한의 정치를 실현해보고 싶다…사실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정치’는 우리 동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동네(대개 서울, 그것도 여의도에 국한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선거 때가 되면 잠깐 우리 동네의 정치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의 녹생당은 그렇지 않기를 빈다.
‘녹색 생활 정치’? 한 사람의 지도가보다는 여러 사람의 평민이, 선출되기보다는 추첨되는 일꾼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작은 동네(마을)의 세상이, 어른보다는 아이가, 남자보다는 그래도 여자가, 더 소중한 가치라는 걸 확인하는 장이 되었으면 싶다. 그래서 내가 속한 이 마을의 녹색당은, 마을의 학교이자 일터이자 상호부조 하는 동무들의 모임방이자, 협동과 사랑과 우애와 연민을 집단적으로 실천하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그런 ‘당’들이 마을마다 하나 둘씩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내가 꿈꾸는 ‘마을공화국’ 역시 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던 간디의 말처럼,…
#지역은 유기체다_홍순명
갓골목공실 방인성 진진선 부부의 둘째 딸, 방단아의 여동생
단비가 태어났어요! 모두 축하해주세요!
어린이는 동네에서 키운다지만, 동네에 어린이가 없으면 마을은 얼마나 적막강산인가? 어린이는 내일의 지역 구성원이다.
바보 이반의 공화국. 지역의 풀무학교는 초기부터 마을과 학교가 같이 나아가야 한다는 사상이 강했다. 초창기 때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은 지역에 남고 제일 못하는 사람이 대학에 가라고 했다.
톨스토이 민화 바보 이반의 도깨비(악마)? 정말 큰 도깨비들은 말만 잘 하는 이론가들이다. 작은 도깨비, 큰 도깨비가 아무리 방해해도 바보 이반은 밭에서 자연의 법도대로 곡식을 가꾸고 묵묵히 일을 한다…FTA가 닥쳐도 그들의 바보 행진을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빵과 꽃과 책과 이웃과 음악과 차(커피)와 웃음이 아닐까? 갓골에는 우리밀 빵집과 유기농산물 가게 ‘자연의선물’과 원예조합 가꿈, 그물코 출판사, 느티나무헌책방이 있다. 학생, 어른, 홈스쿨링하는 어린이들이 드나들며 여러 강좌를 듣고, 협의와 창조걱 문화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과 희망의 홀씨를 날려 보내는 도서관과 어린이집, 전공부, 교육농장, 논배미 사무실이 있다.
농촌은 농사만 짓는 곳이 아니다.
농사 지을 농토와 집이 있어도 귀농자가 막상 지역에 살려면 유통·교육·금융·복지·의료·문화 모두가 걸린다. 지역은 산업으로서의 농사를 포함한 유기체라야 한다. 사람이 그러하듯, 지역도 몸과 정신과 영혼이 구비되어야 한다.
더불어 사는 농업은 소농이 협력해서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가공과 유통에 진출해 소비자와 함께 지역생활권을 만드는 농업이다…그런 사회는, 세상을 상품화하고 그 가치로 보는 자본의 폭주 대신 영혼의 자유와 존엄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바탕이 되고 목적이 되는, 아래에서 시작되는 지속가능한 안정된 사회일 것이다.
#희망의 세 꼭짓점-덴마크, 기본 소득, 그리고 농업_이계삼
교육으로 꿈꾸었던 시절, 교육 불가능성만 남은 지난 11년.
이 시스템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학교가 아이들에게 지적·정서적 성장의 체험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지적이든 정서적이든 모든 면에서 오히려 퇴화하게 된다. 학교 교육 12년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쓸데없이 예민하고 지적으로 무기력한, 타인에 대한 경계와 공포로 무장했으나 제 힘으로 뭔가를 일구어낼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한 주체로 빚어지게 된다.
핀란드 교육 열풍, 경쟁을 심화시킬 뿐이다. 핀란드의 핵발전 문제. 핵발전은 민주주의와 상극일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에서는 최초로 핵발전소를 신설한 용맹스런 국가이며, 전체 전기 소비량의 40퍼센트를 핵발전으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뛰어왔다.
경쟁보다는 자유, 획일화보다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덴마크 교육
자유학교, 시민대학. 덴마크 교육은 자유롭기 때문에 다양하고 풍부하다. 공교육학교도 대안학교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아이의 지적 성장을 원하는 부모라면 실업학교로 보낼 수 있다. 예술과 영성 교육을 원하는 부모라면 발도르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한국의 큰 스승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그들이 이 강파른 조선의 근세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 또한 우리에게 그룬트비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룬트비는 성공했지만, 수운과 해월은 왜 실패했는가. 콜의 죽음 이후 그의 학교를 본보기로 삼은 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오산학교와 풀무학교를 잇는 학교는 왜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인가.
덴마크는 운이 좋았다. 근대 150년을 온통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독제 속에서 보내야 했던 우리와 달리, 그들은 2차대전 당시 5년 정도 독일에게 점령당한 때를 제외하면 이 시간을 온통 자신의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바칠 수 있었다. 그 경험의 차이가 확연하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별 의미가 없다. 흘러간 세월을 어찌하겠는가.
정부나 관청이 움직이지 않으면 덴마크 민중들은 곧바로 주도권을 행사했다…이 모든 변화에 근본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민중의 자기주도적 힘이다.
고르게 가난했으므로 나눔과 유대가 숨쉴 수 있었고, 아직 돈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던 것이 지난 시대의 ‘가난’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양극화 시대의 급격한 빈부격차와 이로 인해 박탈감과 부서진 가족관계로써 삶을 망가뜨리는 ‘빈곤’으로 자태변환했다.
‘흙’은 아이들에게 사물과의 진정한 교섭을 가능케 했던 가장 교육적인 조건이었다. 농업의 죽음으로 한국 사회는 재생의 근거지를 잃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오직 ‘안락한 삶’으로만 나 있는 시스템의 상자 속에 유폐되었고, 극악한 지위경쟁의 트랙을 끝없이 질주해야만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국인의 정신 세계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공포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의 비극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근본적인 좌절이었다.
허나 풀무학교 전공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망이 생겼다.
나의 희망. 그러므로 나의 희망은, ‘풀무학교 전공부’ 같은 학교를 내가 사는 곳에서 소박하게나마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작은 학교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뿌리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최소한의 물질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신용론에 바탕한 공공통화를 발행할 수 있도록 농업 부흥의 의제를 제기하고 실천하는 것이 또한 나의 꿈이다.
가까운 벗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한 갸웃거린다. 그러나 나는 이반 일리치가 말하듯, ‘기대’가 아니라 ‘희망’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직접 해보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 말고는 달리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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