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p702
인간의 정열이란 수수께기 같은 것이고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정열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은 정열이 뭔지 설명할 수 없고,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
#위기에 처한 환상 세계
구원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걸 찾기 위해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을 수 있고 어떤 위험이나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한마디로 영웅이 필요하다는 거죠.
#늙고도늙은 모를라
그러나 여왕은 이름 없이는 살 수 없다. 새로운 이름만 얻게 되면 어린 여왕은 다시 건강해질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왕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야.
#위그라물, 많은 자들
#정적의 목소리
누가 어린 여왕에게 새 이름을 줄는지?
그대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요정도 악령도 아니라네.
우리 중 그 누구도 여왕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네.
….
우리는 한낱 책 속의 인물일 뿐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수행할 뿐
한낱 이야기 속 꿈과 모습들일 뿐,
그렇게 우리는 생긴 그대로 있어야 할 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우리는 할 수 없지.
어떤 현자도, 어떤 왕도, 어떤 아이도.
하지만 환상 세계 저 너머에는 어떤 왕국이 있지.
바깥 세상이라고 한다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산다네.
…
지상 세계의 주민들은/ 이브의 딸들, 인류라고 불리지,
실재하는 언어의 피로 맺어진 형제들은.
그들은 모두 처음부터/ 이름을 붙이는 재능을 타고 났지.
그들은 어린 여왕에게/ 언제나 생명을 주었지.
그들은 여왕에게 새롭게 멋진 이름을 선물했지.
하지만 벌써 오래전 일이라네,
사람들이 우리 환상 세계로 온 것은.
그들은 이제 길을 모른다네.
우리가 실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버렸지,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지.
아아, 만일 한 인간이 한 명이라도 온다면,
만사가 다 이루어질 텐데!
아아, 단 한 명이라도 믿을 용의가 있어서/ 이 외침을 들어 준다면 좋을 텐데!
그들에겐 가깝지만, 우리에겐 멀다네,
그들에게 가기엔 너무 멀다네.
환상 세계 저편은 그들의 세상이니,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네.
그대, 나의 어린 영웅이여, 기억하겠니,
우유랄라가 한 말을?
#어린 여왕
모든 거짓들은 한때 환상 세계의 피조물들이었지. 그들은 같은 물질로 되어 있어. 하지만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고 진짜 본질을 잃어버렸지. 그렇지만 그모르크가 네게 들려준 말은 반만 진실이란다. 반쪽 존재에세서 다른 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환상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는 대는 두 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옳은 길이고 하나는 잘못된 길이지. 만일 환상 세계의 존재가 그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경계를 넘어 버리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길이란다. 하지만 만일 사람들이 우리 세계로 온다면 그건 옳은 길이란다. 우리에게 왔던 사람들은 모두 오직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했고, 그 경험으로 그 사람들은 변화된 채 자기들 세계로 돌아갔지. 그들은 너희의 참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이제 그들 자신의 세계와 다른 사람들도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단다. 그 전에는 그저 일상적인 일로 여겼던 것에서 갑자기 기적과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우리를 찾아 환상 세계로 왔단다. 그리고 우리 세계가 풍요로워지고 번영하면 할수록 그들 세계에 거짓이 적어지고 그래서 더 완전해졌지. 우리 두 세계는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단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죠?
두 세계에 닥친 불행에도, 이중 원인이 있단다. 이제 모든 것이 반대로 되어 버렸지. 눈을 뜨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눈을 멀게 하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 파괴가 되어 버린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인간이다. 단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와서 나에게 새 이름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올 거야.
어째서 당신은 새 이름을 얻어야만 건강해질 수 있는 거죠?
올바른 이름만이 모든 존재와 사물들에 실재성을 준단다. 틀린 이름은 모든 것은 비현실적으로 만들지. 그것이 거짓이 하는 일이다.
#방랑산의 노인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구나.”
“내가 기록하는 모든 일은 일어난다.”
난 오로지 일어났던 일을 뒤돌아볼 수만 있다. 그걸 쓰는 동안 읽을 수 있었지. 그리고 읽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또 일어났기 때문에 썼던 것이고, 그렇게 끝없는 이야기는 내 손을 통해서 스스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네.
하지만 오로지 껍질이 깨질 때만 그렇지.
새로운 시작을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다채로운 죽음 그라오그라만
주인님, 환상 세계는 이야기의 왕국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지만 옛날 옛적에 대해 들려줄 수 있습니다. 과거는 그 이야기와 함께 탄생하는 거지요.
주인님이 이름을 붙인 그 순간부터 그것은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지요, 주인님
내가 그것을 창조했다는 말이니?
여기에는 오직 삶과 죽음, 페렐린과 고압만 있고 이야기사 없습니다. 주인님은 주인님의 이야기를 경험해야 해요.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환상 세계에 있는 길들은 주인님의 소원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은 언제난 한 소원으로부터만 다른 소원으로 옮겨갈 수 있지요. 주인님이 원하지 않는 것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곳에서 ‘멀다’와 ‘가깝다’란 말이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장소를 떠나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다른 장소로 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주인님의 소원이 주인님을 이끌도록 해야 하는 거지요.
모든 문은, 환상 세계에 있는 모든 문은, 심지어 아주 평범한 가축 우리의 문이나 부엌문, 옷장문 할 것 없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 천 개 문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문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요. 그래서 누구도 같은 문으로 두 번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천 개의 문 중 어느 것도 들어왔던 그 자리로 돌려보내 주지 않지요. 되돌아간다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 건물에서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오직 진실한 소원만이 천 개 문의 미궁에서 주인님을 이끌어 줄 수 있으니까요. 진실한 소원이 없는 자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깨달을 때까지 그 안에서 헤매야만 합니다. 그건 때로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하지요.
그럼 어떻게 입구를 찾을 수 있지?
그걸 소원해야만 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이 말은 내가 기분이 내키는 것은 뭐든지 해도 된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니?
아닙니다. 그 말은 주인님이 주인님의 참뜻을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어려운 일은 없지요.
나의 참뜻?
그건 주인님도 모르는 주인님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이지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낼 수 있지?
한 소원에서 다른 소원으로, 그리고 마지막 소원까지 이어지는 소원을 길을 가면서 알게 될 겁니다. 그 길이 주인님을 주인님의 참뜻으로 이끌어 줄 겁니다.
그건 사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걸.
그건 모든 길 중에서 가장 위험한 길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최대한 진실함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쉽게 영원히 길을 잃는 길은 달리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은의 도시 아마르간트
그의 소원은 비록 바스티안을 미궁 안으로 이끌기에는 충분했지만, 보아하니 거기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바스티안은 누군가와 어울리게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기가 전혀 아무것도 정확하게 상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점은 유리로 된 문을 택해야 할지 아니면 골풀로 엮은 문을 택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많이 고민하지 않고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니 매번 다른 문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림들의 광산
저게 무슨 그림들이에요?
인간 세상에서 잊혀져 버린 꿈들이다.
꿈은 한 번 꾸고 나면 그냥 없어질 수 없단다. 하지만 그 꿈을 꾼 사람이 꿈을 잔직하고 있지 않는다면 꿈이 어디로 가겠니? 여기 환상 세계. 우리 곁으로 오지. 우리의 땅 밑 저 깊은 곳으로. 거기에 잊혀진 꿈들은 아주 섬세한 층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여 있단다. 아래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빽빽하게 쌓여 있지. 온 환상 세계가 잊혀진 꿈들로 이루어진 기반 위에 서 있는 거다.
#생명의 물
너희도 물이 말하는 걸 알아들 수 있니?
어떻게 가능하지 모르겠어. 하지만 난 아주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 아마 내가 행운의 용이라서 그런가 봐. 기쁨의 언어는 모두 서로 같은 종류거든.
바스티안은 갈증이 가실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기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찼다. 살아 있다는 기쁨, 그 자신이라는 기쁨이. 이제 바스티안은 다시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바스티안은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제일 멋진 점은 바스티안이 이제 원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설령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도 됐더라고 다른 걸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이제 바스티안은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형태의 기쁨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기쁨들은 단 하나의 기쁨, 즉 사랑할 줄 안다는 기쁨이라는 것을.
난 이제 다시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그러면 하얀 뱀이 너를 통과시키지 않을 거라고 하는 걸. 넌 환상 세계로 돌아가서 모든 이야기의 끝을 맺어 줘야 한대.
이것 봐라, 바스티안. 네가 원한다면 내가 대신 그 일을 해 주마.
아니에요. 이건 제 일이에요. 제 스스로 처리할래요. 그리고 당장 하는 게 좋겠어요.
환상 세계로 절대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리고 환상 세계로 갈 수 있지만 영원히 거기서 머무는 사람들이 있지. 또 환상 세계로 가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몇 있단다. 너처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두 세계를 건강하게 만들지.
진정한 이야기는 끝없는 이야기란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환상과 현실을 하나로 잇는 마법의 주문
좋은 경험이었고 건강한 시절이었습니다. 뭔가 쓰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극장이 아니라 건강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예를 들면 옷장은 어떻게 만들고 문을 어떻게 붙이는 게 좋은가 등을 가르쳐 주는 진짜 세계. 이런 곳이 좋은 문학 학교이지요.-미하엘 엔데, [모에를 인터뷰하다, 토시오 마무라와 함께 원고를 작성하다]
브레히트처럼 문학을 생각하면 작가는 독자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하고 독자를 가르쳐야 하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만큼 교양이 있으며 나만큼 계몽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그들을 이를테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합니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마음을 풍요롭게 할 것을 조금 경험한다면 좋겠지요. 어쩌면 행복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조셉 보위스와 미하엘 엔데, 『예술과 정치 대화 한마당』, 바엔 1989
팔레르모의 이야기꾼들….나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목표입니다. 백 년쯤 뒤에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팔레르모에 있는 이야기꾼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스』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하지 못하지만 뒤마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문학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스타일을 만든답시고 이리저리 꾸미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어둠의 고고학』
『기관차 대여행』 …이 책을 읽고 열광한 어린이들은 동화 속에 나오는 기관사 루카스에게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는 이야깃거리를 남깁니다. 이 동화는 죽는 날까지 엔데의 동화 원형, “어른과 아이가 함께 꿈과 환상 세계를 여행한다.”라는 모티프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란 과거의 아이였던 어떤 인간이며 아이란 어느 날 어른일 인간이라는 작가의 생각은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잇는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 냅니다.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소외받지 않는 어른들이 나오는 그의 동화는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사랑받게 된 것입니다.
작가 메모? 어떤 소년이 책을 읽다가 책 속에 있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진다.
이 책은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신화의 세계, 내면 세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세계가 어느 날 밤에 ‘무(無)’라는 위기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 소년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무’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 유럽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무’로 뛰어들어야만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창조적인 힘을 깨울 수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지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이기도 하고요.-미하엘 엔데
바스티안이라는 한 소년의 예를 통하여 제시된 환상의 세계로 가는 길은 길고도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세계에 살고 있고 사람 세계의 무의미함은 환상 세계마저 무의미함으로 뒤덮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바스티안은 어렵게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환상의 세계에서 바스티안은 더 큰 어려움이 빠집니다. ‘무’로 뒤덮인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허영에 빠져 환상의 세계에 계속 남기를 고집하는 바스티안은 마침내 ‘요르의 민루트’ 광산에서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잃어버린 꿈을 캐내면서 진실에 도달합니다. 엔데가 말하는 진실이란 바로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꿈의 광산에서 바스티안에게 속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바로 아버지(현실)로 되돌아가서 아버지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환상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를 연결하고 서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바스티안의 할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엔데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세계와 이 세계를 이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