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p367
많은 일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그만 사내아이 하나가 모모에게 노래를 부르려하지 않는 카나리아 한 마리를 가져왔다. 이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일주일 내내 카나리아에게 귀를 기울였고, 드디어 카나리아는 즐겁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모모는 달랐다.모모는 배포가 대답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모모는 배포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고, 숨이 차지고 않아.”
“그게 중요한 거야.”
소리 없는 침략과 같았다. 그것은 하루하루 점점 더 진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다. 침략자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사람들은 그들을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교묘한 방식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그냥 스쳐 지나치거나, 보고도 금새 잊어 버렸다. 그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날마다 수가 불어나고 있었는데도, 그들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서 오고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이 진리를 회색 신사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고 한 시간, 1분, 아니, 단 1초의 가치를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그들의 말을 온몸으로 들어 주는 사람, 말하다 보면 저절로 분별이 생기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5분 안에 일을 끝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들이 그 사람을 찾아갈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5분 안에 끝나지 않으면 그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심지어 여가 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축제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적이 찾아들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요란하게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이 놀이터의 즐거운 소란이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듯한 이 불쾌한 소란은 나날이 볼륨을 높여 가며 대도시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모모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요즘 들어 재대로 갖고 놀 수도 없는 온갖 종류의 장남감을 들고 오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를테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할 수 있는 원격 조정 탱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것이었다…모모는 물론이고 모모의 친구들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아주 값비싼 장난감도 있었다. 그런 장난감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상자 몇 개, 찢어진 식탁보, 두더지가 쑤셔 놓은 흙더미, 조약돌 한 줌만 있으면 되는 옛 놀이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 놀이를 할 때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이렇게들 말하지. 너희들을 위해서 쓸 시간도 없다고 해. 뭔가가 있는 것 같지 않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이 없는지 정말 이상해!”
“언젠가, 널 다시 찾아가 모든 얘길 털어 놓아야 할 것 같구나. 그래, 그래야겠어. 내일 당장 얘기하자, 응? 아니면 모레가 나을까? 아니, 우선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사정을 봐야겠어. 하지만 가긴 꼭 갈 거야. 그럼, 약속한 거다?”
회색 방문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조금 전 인형의 말을 듣고 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소리와 단어는 들었지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해.”
“그 누구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아서는 안 돼..”
“어, 어떻게 된 거지? 내 마음을 읽었구나! 네가 날 병들게 했구나! 네가 날 병들게 했어. 네가!”
“아이들은 우리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 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의 가장 엄격한 법칙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아이들을 맨 마지막으로 공략하라.’ 피고, 이 법칙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말 그대로 귀신에 홀렸던 겁니다. 그 아이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제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제게서 모든 비밀을 빼낼 수 있었던 겁니다. 저 자신도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역시 좋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은 빈말에 불과해요! 우리가 실제로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두려움은 좋은 조언을 해 주지 않습니다.
카시오페이아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시계만 갖고는 아무 소용이 없어. 시계를 볼 줄도 알아야지.”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호라 박사님, 전 정말 몰랐어요. 모든 사람의 시간이 그렇게…”
“그렇게 위대하다는 걸요.”
“모모, 네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아니야. 너 자신의 시간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네가 막 다녀온 장소와 같은 곳이 있단다. 허나 그곳에는 내가 데리고 가는 사람만이 갈 수 있어. 게다가 보통 눈으로는 그곳을 볼 수 없지.”
“그럼 제가 갔던 곳은 어디에요?”
“네 마음 속이란다.”
“모모,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면 우선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기다리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아가,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그래도 하겠니?”
예전에는 그는 상상이 춤추며 인도하는 길을 아무 걱정 없이 따라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청중의 어릿광대이자 꼭두각시가 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아이들은 미래의 인적 자산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미래의 세상에 대비해 준비시키는 대신에, 여전히 쓸데없는 놀이를 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문명의 수치이며, 미래의 인류에 대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대도시의 모든 구역에는 이른바 “탁아소”가 세워졌다…놀이는 감독 요원이 지시했는데, 모두 뭔가 유용한 것을 배우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신나하고, 꿈을 꾸는 것과 같은 다른 일들을 서서히 잊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 갔다…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너랑 놀 때가 훨씬 재미있었어. 그 땐 우리한테도 멋진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는데. 하지만 거기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모는 문득 마음 속에서 묘한 변화가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과 무력감이 점점 자라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확 뒤집혀 정반대의 감정으로 돌변했던 것이다. 이제 어려움을 이겨 낸 것이었다. 모모는 용기와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하는 말을 들으렴. 이제 너는 완전히 혼자서 해야 해. 나도 널 도울 수가 없단다. 나뿐 아니라, 아무도 널 도울 수 없어.”
“내가 너랑 같이 갈게!”
#작가의 짧은 뒷이야기
“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듯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앞으로 일어날 일인 듯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그래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기 위해 이를 앙다물고 시간을 쪼개며 살다 보면 문득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고, 왜 이렇게 항상 시간이 모자랄까? 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걸까?
『모모』 를 번역하며 나는 언제난 가슴 한구석에 아리게 자리잡고 있던 이 문제와 마주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겼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건 아닐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모모외 친구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비밀을 알려 준다…시간 도둑 회색신사들…이 이야기는 동화의 형식을 빌어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아끼며 아등바등 살아 가는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나는 존재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 작가가 “짧은 뒷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어른은 물론 중-고등학생, 초등학생, 심지어는 유치원생까지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는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겠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네 삶은 꿈과 따뜻함을 잃고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의 과정을 즐기며 목표에 이르는 길은 어떤 것일까? 『모모』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