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정부를 말하다. 유창복. p317
진취적이지만 은은하게
그의 지속가능한 영향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정직한 헌신이다. (자기희생!)
나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게에서 자유롭지 않다…다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필요가 만든 마을이 생겨나다(성미산마을)
돌이켜보면 마을 일이라는 것이 매사 그랬다. 처음부터 누군가의 거대한 밑그림과 기획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간절한 필요가 있었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합의가 있으면 ‘어떻게’를 향한 지루한 좌충우돌의 과정으로 넘어갔다. 그중 어떤 것은 성과로 남았고 어떤 것은 좌절되기도 했다. 그런데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 ‘과정’ 자체가 모여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고, 나중에서야 우린 우리의 무수한 좌충우돌이 만든 게 ‘마을’이라는 걸 깨달았다.
성미산마을 짱가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마을이 내게 가르친 것은 함께하는 즐거움과 동시에 함께하기 위한 인내였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항상 지지고 볶는다. 매일, 언제나 그렇다. 한 20년 지지고 볶다 보니, 지지고 볶는 것도 이제 요령이 생겼다.
마을은 우주와도 같이 무궁하다. 매일매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곳이다. 그곳에선 나와 다름을 ‘견뎌야’ 한다. 매사 건건이 의견이 다르다. 같은 줄 알았는데 조금 더 따져보면, 착각했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는 걸 알고 놀란다. 사실 당연하다. 다름을 알게 되면 그래도 길이 생긴다.
‘그 말이었어? 진작 말하지!’ 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생긴다…그러다 보면 결국 이해가 된다. 아니, 다름 그 자체를 수용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성사되었던 거다? 인디언 부족의 기우제가 백발백중 신통한 이유가 비가 올 때까지 제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마을은 무엇보다 절실한 필요를 가진 당사자들이 움직여야 만들어진다는 게 내가 배운 교훈이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어렵겠다 싶었다.
우선 마을 정책의 내용을 제한하지 않고 열어두며, 참여자들의 범위를 훨씬 넓게 만들고, 덩어리가 큰 사업을 잘게 쪼개어 나누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야 더 많은 주민이 필요를 발견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이른바 ‘3인 조례‘였다. 주민 ‘최소 3인’ 이상만 모이면 함께 공동명의로 마을사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조례에 명시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면서 확장되고 깊어지는 주민모임들은 ‘마을씨앗‘이 되어 서울 전역에서 마을로 성장해가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의 관계망 형성을 도울 방안.
마을의 조건은 주민들 스스로의 관계망 형성이었다.
주민참여심사제도와 네트워크 파티
나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의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다.
청년실업의 원인?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 소비가 줄어들게 되고, 그러면 기업은 수익률이 떨어져 인력 구조조정. 이것이 다시 일자리 감소의 결과.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초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시가 시민들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 서울에서 ‘마을’의 실체는 뭘까?
네이버후드(Neighbourhood)? ‘아이들이 위험한 도로를 건너지 않고 학교에 등교할 수 있는 범위’
대형 상점 입점 반대? 독일 주민들의 노력은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생활권 방어행위인 셈이다.
대형 상점의 입점? 교통량 증가로 불편, 이웃 관계에 변화 경험할 수도… 어쨌든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환경 변화인 셈이다.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로 확인되는 순간, 나의 필요가 해결되고, 나아가 동네의 필요로 좀 더 널리 공유되면서 가로막는 걸림돌이 치워지고 문제해결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을공공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필요로 시작하지만 동네의 과제로 해결되는 것이 마을이고, 마을공공성이 실현되는 방식이다.
지금은 공공성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발굴이 필요한 시기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헌정체제의 가장 큰 원칙이자 규범이라면, 그 구체적인 존재 양태와 미시적 기초가 주민자치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선거의 결과로 누군가는 당성이 되고 누군가는 낙선이 되지만, 나는 그 결과 이전에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시도는 초기의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렵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절실한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유창복은 마을에서 동네 배우로 활동할 만큼 유쾌한 성격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논다‘라는 그 특유의 신명남으로 서울시 전역에 마을공동체의 즐거운 상상을 전파했다.
더 잘사는 지역 만들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잘 살게 하겠다’던 사람들은 기존 주민을 내몰고 더 잘 사는 주민으로 교체해 버렸다. 이렇게 쉬운 행정에 적어도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살던 사람이 서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들이 필요한 것에 행정을 사용하고, 재개발과 같은 관성경제정책의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는 지방정부가 있었으면 한다.
평소 누구나 생각하던 모습, 하지만 도시의 빠른 변화의 속도로 인해 버려야 했던 소박한 꿈을 이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아빠이기 때문이다.
『우린 마을에서 논다』(2010),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
절문근사(切問近思)하는 혁신가.
절실하게 질문하지만 가까운 일부터 실천하는 길이 바로 혁신의 길이기도 합니다.
통념을 뛰어넘은 새로운 시각을 갖고 시민의 형편과 요구를 중심으로 다시 묻고 근본부터 생각하는 사람. 근본을 찾지만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하는 점에서 혁신가의 전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