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마을에서 논다. 유창복. p
#도심속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만들기의 역사를 담아낸 이야기 책.
성미산마을의 시작은 아이들이었다? 애들 함께 키우며 같이 밥해 먹고. 공동육아/교육으로 시작, 마을은 학교다!
마을식당이라
잘된다고 몇몇이 수익을 가져가 배불리고
안된다고 몇몇이 옴팍 뒤집어쓰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소유 마을의 선물 마을의 밥상이 되고자 하는 뜻을 품었나이다.
마을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샘물이 되고자 하나이다.
“잘된다고 몇몇이 수익을 가져가 배불리고, 안된다고 몇몇이 옴팍 뒤집어쓰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요 대목이 절묘하다. 바로 요것이 ‘마을기업‘ 정신의 요체가 아닌가?
대의제 말고, 순번제
고대 공동체 사회에서 지도자를 뽑을 때 사용한 ‘제비뽑기‘ 제도와 유사하다.
순번제는 잘하는 사람이 선출되어 ‘잘하기’가 기대되고 ‘잘하려는 의도’를 갖게 하는 것을 애초에 막아준다. 능력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대표직을 맡는다는 것은 누가 맡든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족하면 다른 이들이 보충하면 될 일이다.
순번제는 구성원 모두가 한 목표 아래 단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오히려 저 사람 뽑을 때 뭐가 힘들지 미리 알고 뽑는다.
이렇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할지를 알고 뽑는 대표, 이것이 마을에서 권력이 싹트는 것을 애초에 방지하는 방식이다.
‘수익성’의 허구와 ‘제로 손익’
사회적기업에서 수익성은 중요한 주제. 복지가 ‘밑 빠진 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그럴 것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취지와는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즉 본말이 뒤짚히는 경우.
수익성의 곤란이 충분히 예상되나 비시장적인 틀을 통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 수요자들을 지원히기 위한 제도가 바로 사회적기업의 당초 설립 의도가 아닌가 말이다.
성미산의 마을기업들은 거의 ‘제로 손익’이다. 잉여가 거의 없다. 사실살 ‘똔똔’도 벅차다. 아니 ‘똔똔’이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 수익이 나와도 마을의 다양한 공익 활동에 사용하다 보니 남을 틈이 없다…설령 잉여가 남는다 해도 꼭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개별 조합원이 관심 가질 정도로 남는다면 불필요한 갈등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비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를 공급한다. 마을에서 ‘내부자 거래‘가 복잡하게 서로 얽혀서 이루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기업의 성장 지표는 내부자 거래의 밀도라 할 수 있다. 마치 들풀들이 땅 위에서는 제각각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치 아래 땅속을 보면 그 뿌리들이 서로 구별이 안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들풀이 가지는 생명력의 비결인 거다. 마을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뛰어나서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마을기업들이 함께 들풀처럼 서로 얽히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역시 시장 논리를 비껴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수익성을 시장 논리와는 다른 틀로 읽어 보고 노동과 고용 역시 익명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지역과 관계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볼 때, 그 본래의 의미가 더 선명하게 배어 올라올 것이다.
이제는 마을이다.
애들 함께 키우며 같이 밥해 먹고 (성미산의 시작은 아이들? 공동육아,교육? 마을학교!)
동네밥상 개업한다고 출자금 한 구좌 보태고
성미산에 나무 심고 동네 사람들 서명 받고
마을축제 한다고 프로그램 맡아 며칠 밤새고
극장에서 연극한다고 애들 달고 공연 보러가고
엊그제 가입한 영상 동아리 연습하러 나서고
지지고 볶고
삐치고 위로하고
다투고 하소연하고
그저 우리는 살아가는 거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