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그만두다. 하라카와 가쓰미. p228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삶과 노동, 소비를 일치시키는 순환사회로!”
지금 가진 무언가를 내려놓으면 가까운 곳에 숨어있는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상인이 돼라』
경제성장률도 거의 제로. 그런데도 회사라는 집단은 희한하게 성장만이 유일한 목적인 양 죽어라 매출을 좇는다.
“수치가 떨어지면 안 되지.”
세상이 그렇다. 실적이 상향곡선만 그릴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론하기도 귀찮고 회사의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제 월급도 오르지 않으니 “예, 그럼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라며 숫자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업을 해보면 매출은 좀처럼 그 숫자대로 올라주지 않는다.
당연지사다. 나라 전체의 경제가 꽉 막혀 있는데 어떻게 매출 실적이 좋을 수 있겠는가. 잘나가는 회사가 있다면 상품력이 뛰어났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자연스러운 생각은 제쳐놓고 ‘회사는 무조건 성장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상인이 지닌 힘의 비밀? 한마디로 그것은 ‘정상(定常, stationary state) 경제’를 실천하는 회사들이라는 점이었다.
소상인은 회사의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 지향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매출 확대라는 ‘주주의 요구’에 쫓기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 삶 자체와 동일한 의미의 노동 방식을 추구하는 회사 경영을 말하는 것이다.
‘이름 없는 소비자’, ‘익명의 소비자’ 시대가 왔다.
서로가 익명의 판매자, 익명의 구매자로서 상품을 교환한다. 나는 이 익숙한 풍경에서 현대판 침묵교역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며 충격에 빠졌다.
두 공동체의 접점은 계산대이며 유일한 공통언어는 돈이다.
돌이켜보면 매일 지출했고, 매일 낭비했으며, 매일 폐기하는 생활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여유를 부리면서 일어나도 되고, 동료들과 차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걸어다닐 수 있는 집 근처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어깨에 수건 한 장을 걸치고 동네 목욕탕에 들른다. 집에 오면 소박한 음식을 먹고, 책을 읽고, 그리고 잠자리에 든다. 목욕비는 450엔은 들지만 집에서 쓰는 수돗물 대신이라 여길 만하다.
요즘은 돈이 안 나간다.
정확히 말해 돈을 쓰기는 하지만 소비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상품 진열대를 탐색하다 소유욕이 일어 일단 사고 보는 일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진열대에 눈길을 안 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장보기가 귀찮아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매한 탓에 식품을 썩혀버리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되었다.
일터와 주거지가 가까워져 불필요한 쇼핑을 줄인 만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늘었다. 일상의 리듬은 일정해졌고 정상 경제적 삶이 가능해지자 이 변함없는 나날이 신기하리만치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 소비자 제1세대
#전쟁을 겪은 세대, 그들은 모두 생산자였다
내 아버지 세대까지는 정말 돈을 쓰지 않았다. 쉼 없이 달리느라 돈을 쓸 여유도 없었으니 아버지 세대는 소비자가 될 수 없었다. 그 세대 사람들은 모두 생산자였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다. 아버지 세대는 개미같이 일했고, 수중에 남은 돈은 공장을 키우는 데 쓰거나 저축을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최초의 낭비가, 베이비붐 세대
게다가 일만 하는 사람에게는 갖고 싶은 물건도 없는 법이다
베이비붐 세대에는 TV가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철이 들 무렵에는 미국TV 드라마가 끊임없이 전파를 타고 방영되었다.
사람은 무언가 물건을 보고 그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소비를 하게 된다. 무슨 물건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면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법이다.
#악덕에서 미덕으로 탈바꿈한 ‘소비’
먹고사는 데 돈을 쓰는 행위를 ‘소비’라 불러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
이 책에서 다루는 ‘소비’는 살아가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고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서 쓰는 행위를 가리킨다.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 미·일 무역마찰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엔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상할 것을 요구. 그때 미국의 의향에 부응하기 위해 총리는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돈을 더 많이 쓰라’고 주문했다.
요컨대 그들은 ‘소비’를 더 늘림으로써 GDP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노동에서 소비로 변질된 시대
예전에는 부자라 하면 어딘지 부도덕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점차 부자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확대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이 생산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가 소비중심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가치관의 극적인 변화, 어느새 가난한 사람이 멸시 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오랫동안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라주? 안 쓰는 물건을 활용해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드는 기술.
#금전만능 사회와 소비라는 병
핵심은 돈이 가장 중요해졌다는 것, 사회에서 돈의 만능성이 극대화되었다는 것이다.
상점가는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들러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상품교환은 사실 이차적인 행위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샀으며, 장보기 품목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같은 물건을 매일 사러 오니 상점가의 소매점 주인들도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쇼핑몰에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다. 쇼핑몰에 가면 정말이지 없는 것이 없다. 상품 더미를 보고 있으면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자극을 받아 고개를 쳐든다. 이것저것 죄다 갖고 싶어진다. 하지마 진짜 필요한 것은 거기에 없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바로 그곳에서 필요도 없는 물건까지 사도록 부추김을 당한다. 현대의 소비자의 소비는 공허한 욕망을 물건을 채우려 하는 것. 소비는 채워지지 않는 생활을 반영하며 한편으론 정상적인 허기를 채우기 위한 보상행위로 변질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 소비병에서 탈출해야 한다.
#도시화는 자연스런 발전과정
#인간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존재
소비화한 사회, 화폐만능 사회, 고립화한 도시사회는 인간이 개인으로서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다. 그렇게 다양성을 좇고 자유로워지려했지만, 오히려 다양해지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소비행동 바꾸기
어떤 의미에서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대단히 어렵겠지만 소비사화에 일격을 가하고, 거기서 탈피하기 위해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혁명이나 전쟁 같은 방법을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구매행위 없이는 살 수 없다. 구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스펜드 시프트(spend shift)’다.
선택하는 물건을 바꾸고, 사는 장소를 바꾸며, 사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스펜드 시프트’다(세상을 바꾸는 윤리적소비)
예를 들어 바지가 낡았을 때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바지를 사는 것이 소비인데, 그 행동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새로운 바지 대신 덧깁기 위한 천을 사거나 바지를 버리고 잠방이나 그것을 대신할 만한 다른 옷을 입는 것도 하나의 ‘스펜드 시프트’다.(키플, 아이옷 교환하기)
‘익명의 소비자’라는 지위는 반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반은 기업, 주식회사가 만들어놓은 것인데, 소비 행동을 바꿈으로써 소비사회에 절어 있던 상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다. 반은 기업 또는 시장의 조정을 받는 지위. 거기서 탈출해야 한다. 거창한 결심까지는 필요 없다. 생각을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쟁이 끝난 뒤 찾아온 소비화의 물결
#경제사의 변화
제2차 세계대전 후 70년 간은 그야말로 소비화의 역사였다. 생산에 뿌리를 내린 사고방식도 소비가 바탕이 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근본적으로 180도 전환이 일어난 시대였다.(생산사회에서 소비사회로)
‘고도 경제성장기’? 답은 간단하고 자명하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 전년 대비 성장률, 모수(母數)가 작으니 뭐라도 조금만 늘어나면 성장률은 금방 늘었다(똑같은 성장 다른 성장률. 100에서 110(10%), 1000에서 1010(1%))
#주5일제의 충격
예전에는 돈을 쓸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돈을 쓸 시간을 획득한 것이다. 따라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것 때문에 일을 한다는 방식으로 일에 대한 방식도 180도 변했다. 돈 쓰는 일이 악덕에서 미덕으로 변하기 시작. 악이 정의로 변하는 것을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다. 바로 거기서부터 ‘소비화’의 물결이 단숨에 밀려든 것이다.
#자유로운 고용형태는 부자유를 낳고
프리터.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은 고립되어 자유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커다란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에게는 얼굴이 없다
온국민의 소비자화. 예전에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얼굴 없는 소비자로 변모한 것이다. 소비자로서의 측면만 부각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인간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졌다.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대접받고,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접받지 못하는 현상이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에게는 얼굴이 없다. 돈은 실체가 없는 단순한 기호다. 돈이 중심이 되면서 소비자는 신체와 이름을 잃고 익명의 존재가 되었다. 모든 국민이 하나같이 이름 없는 익명의 소비자로 변한 것이다.
#무선 전화기와 인터넷의 등장
#개인의 고립을 가져온 TV 1인 한 대 시대
소비화는 끝내 개인의 고립화를 초래했고 그 모습은 TV 보급의 역사에 잘 드러난다.
동네TV에서 개인TV로? 지극히 당연했던 정보의 공유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익명성을 원하는 소비자
전체가 한 덩어리일 때 경제는 발전하지 않는다. 개인으로 쪼개짐으로써 경제가 성장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개인은 얼굴도 이름도 없는 익명의 소비자로 변하게 된다.
#사람도 돈처럼 교환 가능한 시대
돈의 최대 특징은 교환가치만 있을 뿐 사용가치는 없다는 것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인재란 전 세계 어디로든 쉽게 갈 수 있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언어를 교환할 수 있는 천부적 유동성을 가진 인재이며, 화폐와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글로벌화는 돈을 만능시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개성이 아닌 돈으로 차별화를 추구하다
익명의 소비자들은 증여적인 관계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순수한 상품교환, 상품과 화폐의 교환만을 추구한다.
익명의 소비자에게는 돈이 많고 적음만이 차별의 지표가 된다.
소비화의 과정을 다른 말로 바꾸면 도시화의 과정이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는 이웃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모른다.
도시 자체는 익명을 전제로 이루어져 있다. 지연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공동체와의 연결고리를 잃을 때 모든 관계성에서 벗어나 얼굴과 이름까지 버리는 것이다. 그런 달걀귀신들이 모인 소비사회에서는 타인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유일한 지표가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금액의 크기가 될 수밖에 없다.(SNS에선 숫자가 중요하다)
#판매 중인 상품만 원해야 하는 사회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을 대부분 그렇지 않다. 부족한 키도, 미모도, 수명도, 우정도, 본질적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가격표가 붙은 것뿐이다.
##소비 비즈니스의 격랑 속에서
#왁자지껄 즐거웠던 일터
어번 트랜스레이션 창업. 우리를 달리게 만든 것은 돈이 아니었다.
돈을 벌자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의 사업은 성공했을 것이다.
#내 인생 ‘암흑의 10년’
2000년 비즈니스 카페 재팬 설립, 사장직 수락. 인터넷 벤처 거품의 최절정기
#불편하고 거북한 이름, 벤처계의 총아
“히라카와 씨는 대단해. 하지만 잘못하고 있어.”
“히라카와 씨는 아이디어는 정말 좋은데 돈에 관심이 없어.” 한마디로 ‘돈에 관심이 없으니 장사꾼으로는 불합격’이라는 얘기였다.
‘앙트러프너십이다 뭐다 하는데, 나는 사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결국은 꾸준히 제대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주 자본주의의 한가운데서
투자 주주의 요구 사항? ‘팍팍 투자하고 팍팍 불려라’
결국 회사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고, 대부분 성공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 투자회사는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대더라도 본질상 도박과 별반 다르지 않다. 5억 엔이라는 거금과 10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배운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타개책이 결국은 패착으로
#돈도 날리고 사람도 떠나고
MBA 출신 인재들은 회사의 돈줄이 막히자 앞다투어 짐을 쌌다. “힘들 때니까 극복해야지”라는 말로 붙잡았지만 “이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는 모진 말을 남기고 돌아선 이도 있었다.
#자기 부정을 통해 탄생한 반(反)전략적 컨설턴트
‘암흑의 10년’을 거치면서 내가 배운 것은 돈 때문에 모인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흩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전략 따위, 순 거짓말이다
컨설턴트, 하지만 어설픈 흉내였다. 스스로 체득한 사상은 없었고 ‘미국에서는 이렇게 한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다’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시장이 없는 곳에 어떻게 시장을 만드느냐, 즉 ‘시장창조’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TV를 계속 팔기 위해 지역과 가정을 잘게 쪼개서 ‘개인’을 만들었고, ‘개인’의 욕망을 환기해 ‘소비자’를 만들어냈다.
『반전략적 비즈니스』 출간
지난날의 시행착오를 통해 ‘소상업’, 그리고 ‘탈소비자’라는 방향성을 보게 된 것이다.
#반(反)지성주의적 삶을 지성주의적으로 해명하다
실리콘밸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국식 공격적 인간상을 긍정하는 사람들이다. 비즈니스 목표는 성공해서 부를 손에 쥐는 것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사물을 비판적으로 보고 철저히 사고하려는 지성이 부족하다. 실리콘밸리에 충만한 미국적 기업가 정신에는 지성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실리콘밸리에서 지성이 사라지는 이유’에 관한 의문을 풀어준 책은 리처드 호프태스터의 『미국적 삶의 반(反)지성주의』라는 명저였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대단히 일방적이어서 모든 행동을 돈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돈을 최우선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비즈니스와 시 쓰기는 동일한 행위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쓸 거라면 차라리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스펜드 시프트’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세계를 뒤흔든 1990년의 충격
생산 중심의 가치관으로 돌아가던 사회가 소비 중심의 사회로 바뀌는 변화의 시기
#새롭게 판을 짠 세계 경제
#금융 빅뱅으로 글로벌리즘의 막이 오르다
일본 기업의 미국 자산 인수. 부동산뿐 아니라 미술품이다 뭐다 미국의 자산을 싹쓸이할 기세였다.
말로는 구입이었지만 밑천을 자기 자본이 아니었다. 일본은 거품으로 인해 땅값과 주가가 모두 급등하던 상황이었으니 은행이 융자를 펑펑 내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일본 은행의 융자력을 미국은 두려워했다.
#경제전쟁, 그리고 함정에 빠지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경제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금융빅뱅, 바젤 합의. BIS 규제)
대형 점포가 들어선 지역의 상점가에서는 동네 가게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격 면에서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점가가 사라지면 기존에 행인들의 왕래가 많던 거리가 활기를 잃는다. 그 대신 역 앞에 대형 점포에 가면 모든 용무를 해결할 수 있다.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사람들의 행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가족적 기업문화에 성과주의가 침투하다
성과주의라 하면 객관적이라는 이미지가 풍기지만 어디까지를 성과로 잡을지가 분명치 않아 결국 급여 산정자의 주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를 위한 회사’, ‘우리 회사’에서 갑자기 ‘회사는 주주의 것’이라는 주주 주권론이 등장하면서 온 나라가 당황했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주식회사의 목적.
하지만 회사는 온갖 이해가 얽힌 역사적인 공동체이며, 일정 부분 비합리적이더라도 실제 운용에 효과적인 구조가 존재한다.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의 비합리성은 회사에 반영된다. 회사가 무엇인지, 회사가 어떤 형태를 보이는지는 옳고 그름, 선악의 이원론만으로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구를 위한 글로벌리즘인가
가치관의 중심이 생산에서 소비로 180도 뒤집히고, 땅을 딛고 섰던 발을 땅에서 떼어낸 결과다. 그러나 그 또한 자연과정이고 문명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스스로 소비자라는 입장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란 등가교환의 원리가 만들어낸 존재이며, 돈이 유일, 투명하고 공평한 잣대가 되는 세계의 주인이다.
그 주인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기대하며 같은 값이면 반드시 더 싼 물건을 선호한다. 또 그런 기대와 선호에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라도 믿는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발전 단계가 다르고, 서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른바 글로벌 표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도 않거니와 합리적이지도 않다.
글로벌리즘은 영미식 기업다각화 전력과 놀랄 만큼 일치하는 내용이다. 영미식 기업은 오로지 자기 시장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나 깨나 시장 점유율을 키우고, 포지셔닝 경쟁에 힘을 쏟는 것이다.
그렇게 낯선 영미의 시스템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강점은 희석되었다. 강점을 잃은 일본인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이 시작한 경제전쟁에서 패배해 갔다. 패전의 그림자는 1988년부터 1993년 사이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경제전쟁 패배로 비틀거리는 기업들
닛산 자동차의 주주의 60%가 외국인. 더 이상 일본 회사가 아니다. 이 회사의 머리는 외국인이다.
#글로벌 기업에게 국가는 방해물 같은 존재?
국가이익과 기업이익의 상충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보통 국가’를 만들려는 정치가들? 보통 국가라는 말은 참 편리한 말이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다. 어느 국가나 똑같이 ‘보통이 아닌 국가’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 국가는 대부분 미국 같은 나라를 지칭한다. 한때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미국의 체제에 물들어 미국과 다른 일본을 ‘뒤처지고 왜곡된 나라’라고 보는 데서 기인하는 발상이다.
다양성의 다른 의미? 기업의 다이버시티 전략이라 하면 엉뚱하게도, 상품 다각화 전략이나 지리적 다각화, 즉 글로벌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의미와는 정반대로 쓰이는 셈이다!
#기업의 존속을 위협하는 인구감소
우선 주식회사라는 것은 경제의 규모가 커져야만 존속할 수 있는 존재다. 주식회사는 시장 확대, 소비 증대를 전제로 성립한다. 그런데 현대에는 주식회사 입장에서 보면 예상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인구감소 현상이다. 인구란 기업에게는 시장 그 자체이며, 이익의 원천이다. 인구감소는 시장의 축소를 뜻한다. 시장이 축소되면 지속적 상향 곡선을 그릴 수 없다.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그 같은 사태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사회적 축소 현상은 주식회사 시스템의 존망 및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그래서 기업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곧 사라질까?
초조해진 기업들이 내세운 전략 중 하나가 국가라는 틀을 깨고 시장을 재구성하겠다는 발상이다. 인구감소만큼은 견디기 어렵다.
주식회사는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탄생, 그 역사는 고작 350년이다. 주식회사가 없던 시절, 인간은 정상 상태의 사회를 살았다.
인구감소의 위협. 다음 한 세기 동안 주식회사라는 존재는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 자금을 기업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은 기업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대기업이 국가를 점령하고 있는 꼴이다.
#기업이 국가를 지배하다
리먼 사태. ‘너무 커서 무너뜨릴 수 없는’ 기업이 국고 지출을 통해 구제되는 것을 보고 미국 사회의 병리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쿠시만 원전 사고? 엄청난 국부를 탕진하고도 당시 도쿄전력에서 누구 하나 체포된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살펴보니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진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도 마냥 반가운 일만을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갈 곳을 잃는다. 이름 없는 소비자로서 그저 기업을 살찌우기 위해, 새장 속의 통닭 같은 존재가 되어 돈을 쓰고 기업의 이익을 창출시킨다.
이런 구도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탈소비자’를 지향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동경하다
#사람을 무시한 넓디넓은 도로
실리콘밸리, 기후조건이 좋은 동네. 하지만 나는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인드 셋과 생활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각자가 고립된 소비자로서 경쟁사회에 내던져진, 극도로 소비화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들은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좋은 집과 좋은 정원, 좋은 부인을 얻는 것을 성공한 사람의 증표로 여긴다.
돈이 있으면 지극히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
훗날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그런 광경을 감안한다면 미국은 분명히 ‘실패한 나라’로 평가받을 것이다.
#계층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
실리콘밸리는 지역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네? 유심히 관찰하면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계급만 모인 폐쇄적인 사회가 존재할 뿐이다. 부자들은 부자끼리 모이고 외부인들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흔히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올라가 계층의 벽을 넘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만, 그런 대역전은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현실을 보고 미국 사회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애당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인화가 가져온 공허함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질 수밖에 없는 공허함? 역사적으로 불과 250년. 그 땅에 생활의 뿌리가 있지 않았던 그들에게 ‘성공’의 이미지는 황야를 자력으로 개척하고, 새로운 땅에 집을 짓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육신을 지키면서 이상적 가정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조국이라는 토대 없이 살 수는 없다
토대가 사라지면 불안해지고, 불안감을 해소하려 탐욕을 부리거나 금전 숭배자가 될 위험이 높다.
돈으로는 고향과 조국을 대체할 수 없다. 교환가치밖에 없는 돈은 그 본질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흐르고 움직이게 할 때 비로소 가치를 획득하는 돈이 인생을 떠받드는 토대가 될 수는 없다.
#가족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지혜의 산물
#글로벌 표준의 실체는?
성과주의와 주주 주권은 원래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강요당한 ‘글로벌 표준’은 글로벌이 아니라 그저 영미의 로컬 시스템이라고 보아야 한다.
#”못난이라도 괜찮아”
미국은 소비문화로 상징되는 문화다
소비문화의 핵심은 소비자 개개인이 익명의 존재라는 점이다.
일본 만담에는 ‘요타로’라는 전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얼간이 짓만 해대는 덜 떨어진 인물. 하지만 그는 인간관계에 윤기와 평화로움을 더해주는 인물이기에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만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점을 알기 때문에 요타로를 소중하게 여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글로벌화인가
#서양숭배와 서구혐오 둘 다 콤플렉스의 반증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서양숭배 감정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일본과 서구에는 각각의 장점이 있고, 차이가 있을지언정 가치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고가 바람직하지만,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기에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적인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길이다.
##월마트 효과는 상생이 아닌 파괴효과
#위화감을 주는 거대 소매점
#월마트가 동네를 집어삼킨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기적으로 지역경제가 파괴될 수도 있다
거대한 위장을 가진 공룡이 동네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광경과도 흡사하다
PB상품. 인정사정 보지 않고 매입한 물품을 PB상표를 붙여 매장에 내놓으면 일반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이끌려 그 물건을 구입. 이런 소비 행위는 지역의 산업과 경제를 파괴하는 데 가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역에서 ‘현명하게’ 구입하기
‘탈소비’는 ‘소비하지 않기’가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저 좋은 물건을 싸게 산다는 의미의 ‘현명함’이 아니라는 얘기다. 소비에는 더 싼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향이 없는 미국인
아메리카 대륙 개척 정신? 그들에게 ‘우리 고향’이라는 의식은 거의 없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달랐다.
땅은 약탈하거나 돈으로 사거나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기능적 자산이 아니다. 고향이 만들어주는 ‘관계성’이야말로 개인의 평온한 삶을 보장하는 부동의 자산이다.
#활기찬 상점가에는 있고, 셔터 내린 상점가에는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목욕탕, 당고(경단) 가게, 그리고 동네 찻집이었다
아파트 단지. 그들은 편의점을 선호한다. 그래서 한산한 상점가에는 반드시 편의점이 있다. 동네 가게가 셔터를 내린 지역의 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진 탓에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낼 수밖에 없다. 상점가의 당고 가게, 찻집은 동네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지점으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이다.
#편의점 대국과 저출산 국가의 연관성
지연관계가 살아 있는 동네에는 안정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편의점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편리함.
월마트 수익률 나쁘면 철수, 쇼핑이 힘들어지는 생활난민, 기업은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대기업과 대학, 대형 백화점을 유치하고 싶어 안달이다!
#사기를 닮은 비즈니스 수법
PB. 일반적으로 그 방식이 고약하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원래 물건을 대던 제조사의 방식을 포장까지 베껴서 같은 진열대에 늘어놓는다. 게다가 가격은 한참 싸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상품을 싸게 판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것이 PB의 수법이다! …하지만 힘없는 제조사에게 이른 흐름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위약금 제도에 정말이지 화가 난다. 무슨 일만 터지면 소비자에게 위약금을 물게 하는 그런 제도야말로 고도의 상술이다. 보험계약서, 깨알 같이 작은 글씨들…그 어느 것도 법률 위반은 아니지만 사기꾼 뺨치는 상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나 다름없는 이런 마케팅 수법을 대기업이 당당하게 써먹는 것이 요즘 일본 비즈니스의 현실이다.
합리적 사기극에 만만하게 속아주는 소비자가 많은 것. 거기서 벗어나려면 소비자가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무조건 싼 상품을 원하는 성향이 그런 터무니 없는 사기사회를 만든다. 따져보면 싸지도 않다. 싸게 보일 뿐이다.
상점가에 살아 숨 쉬던 정직하고 성실한 상술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를 도우려는 호혜정신은 사라지고, 사회 전체가 점점 사기꾼처럼 변하고 있다…소비자를 기만하려고 간교한 꾀를 짜내는 사람도 나쁘지만,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어쩌면 소비병에 걸린 소비자인지도 모른다.
#소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장 창조’
사기에 가까운 상술이 횡행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 없는 물건까지 억지로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시장 창조’다. 없어도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는 물건을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해서 사게 하는 것이 시장 창조인 셈이다. 그러니 사기에 가까운 요소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정직하게 판매 해서는 소비욕이 환기될 리 없기 때문이다.
책이 100만 부가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성과 정보 중 무엇을 추구한 결과일지 궁금해진다. 지성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한 권이 100만 부 팔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들이 1~2만 부씩 팔려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존재
또 다른 수법은 글로벌리즘이다. 발전의 여기가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시장을 넓히기 위해 진입장벽을 없애려 달려든다.
철학자 자크 라캉이 말했듯, 인간이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브랜드의 의미가 변했다
옛날에는 돈이 많고 적음은 그리 중요한 차별지표가 아니었다. 1950~60년대에 시장통에 살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이 차별지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이 있다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시선이 많았다.
#익명성에서 벗어나 얼굴 되찾기
돈은 그저 교환 수단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차별의 지표가 됨으로써 어느새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우리는 이제 본래 의미의 인간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얼굴 없는 소비자이기를 그만두기, 즉 ‘탈소비’라는 삶의 방식은 참고할 만하다. 탈소비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면 무자비한 짓을 할 수 없고, 사기 같은 상술이 판을 치지도 않을 것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돈만을 지표로 경쟁원리를 적용시키면 익명의 공급자를 줄 세워놓고 가격만으로 판단해서 더 싸게 납입할 수 있는 물건부터 사들이게 된다.
소비자의 행동에는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편해요’, ‘유행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저항이 쉽지 않겠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소비를 그만두어야만 얼굴과 이름을 회복할 수 있다.
월마트의 바잉 파워? 소비자도 구매하지 않는 방식의 바잉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소비자 마인드를 넘어서
#소상인을 덮친 소비세 인상
사실 예전에는 돈이 많이 않아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다…직접 찻집을 운영해본 경험에 따르면 요즘 동네 찻집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쇼규모 장사일수록 소비세를 가격에 전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목욕탕에 다니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서민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산업은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경제성장론자들은 부가가치도 뭣도 없는 동네 목욕탕과 찻집까지 살릴 수는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들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면 농업도 포기할 사람들이다.
소상인이 존속하는 데 위협을 받는다면 큰 문제다. 부가가치가 높은 업태만 남기다 보면 사회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불보듯 뻔한 일이다.(경제적,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기업문화가 필요)
#소비 마인드의 덫
문제의 근원은 개인의 마인드가 완전히 소비 중심으로 흐른다는 데 있다.
소비 마인드를 지니면 원하는 소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얼마나 필요할까 계산을 하게 된다…그래서는 끝까지 소비자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빚까지 지면서 소비 생활을 유지하려는 것이 카드사회다. 카드사회는 말이 좋아 편리한 사회일 뿐, 빚을 시스템화한 사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히라카와, 돈을 빌리지 말고 그냥 받아. 힘들 때 1만 엔쯤 주는 친구가 10명만 있으면 버틸 수 있어.”
일해서 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로지 그림만 그리는 화가 친구의 비결? 비결의 핵심은 빌리지 않는 데 있었다. 생각해보면 승려들의 탁발 같은 방식이다.
#소비형태를 바꾸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치관을 바꿈으로써 소비형태를 바꿀 수 있다. 관건은 생산자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느 시대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였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측면만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다…예전으 ‘소상업’ 형태야말로 생산자의 얼굴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 살아가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살기 위한 전략으로 ‘탈소비자’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동네가게! 우선은 그것이 첫걸음이다. 동네가게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생각이 싹트면 직접 그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소비행태를 조금씩 바꾸어보는 것이다. ‘스펜드 시프트’을 일으키자는 얘기다.
물건은 가급적 지역에서 얻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상품경제 속에 증여경제 끌어들이기
기모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는 게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라 했다. 구입할 경우 엄청난 돈이 드는 물건을 증여를 통해 교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품교환과 조합한 하이브리드 식 교환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생활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공유경제)
#돈의 부침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올림픽 개최한다고 낡은 시설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도 문제가 있다. 현재 있는 것을 쓰면 될 텐데, 돈을 회전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크랩 앤드 빌드’를 하려는 것이다. 득을 보는 것은 은행, 대기업, 부유층이다.
#적게 벌되 잘 순환시키기
핵심은 어쨌든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2013년 출간된 『시골빵집이 발견한 ‘부패하는 경제’』(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에는 소상공인의 이상형에 가까운 빵집 주인이 소개되어 있다.
#창업이 아닌 소상공업이 공생하는 길이다
경제효율만을 지표로 삼으로면 최소한의 자본과 노동으로 최대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 적은 노동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산업으로 특화해야 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소상공업’과 ‘창업’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창업이라는 말에는 미국적인 가치관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나도 한때는 앙트러프러너십이라 불리는 기업가 정신을 후원하던 입장이었지만 지금의 일본에 필요한 것은 미국적인 성공을 거두고 부를 손에 쥐기 위한 창업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일자리를 가능하게 하는 소상공업이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던 어번 트랜스레이션이란 회사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소상업이었다. 우리는 모두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살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이다.
#변함 없는 쾌적함을 경계하라
근대화란 오로지 쾌적함을 찾아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이었다. 쾌적함이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요로 다케시 교수는 말했다. 원래는 더워졌다 추워졌다 해야 정산인데 인간은 석유를 펑펑 태워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인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야생과 문명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문명화로 인해 잃은 것
『소상인이 돼라』
그날그날 연명하는 소상업인들이었지만 결코 많은 수입을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많이 벌어야만 하는 필연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소상업의 존속 자체가 예전에는 당연했다.
앞으로도 무언가가 점점 우리 눈앞 풍경에서 사라질 것이다. 당장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목욕탕과 동네 찻집이다. 지난 50년 동안 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장사를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비형태가 극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네라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사는 소비자들이 만든다. 소비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동네 가게를 지키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를 재설계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에 남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경제성장이라는 지표로 세상을 바라보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은 도태되어야만 한다.
“독일인 가정이 소유한 자동차 수만큼을 인도인 가정도 보유해야 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2012년 6월, 브라질 라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담에서 우루과이의 대통령 호세 무히카 연설 중,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급료 90%기부, 유일한 재산은 자동차 한 대!
글로벌리즘이란 말 그대로 국민국가 경제의 부정이며 국민국가의 틀보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편익을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인간성을 소모시키는 쇼핑중독
이제 슬슬 돈을 쓰지 않고 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돈 대신 무엇을 손에 쥘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는 욕심이 많은 존재이다. 주변에 욕망을 완전 긍정하는 소비문화가 있으면 평온한 삶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욕망을 내려 놓기 위해 주변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는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있는 것에 만족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자신의 신체와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산에서는 가난함이야말로 즐거움이다.
스위치 하나로 불빛과 온기를 얻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닌 산에서는 한정된 시간이기는 하지만 편리함을 잃음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일상 속에 확산시키면 충분히 행복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다.
실마리는 자기 주변에 있다. 지금 가진 무언가를 내려놓으면 틀림없이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공공의 장인 동네가 죽어가고 있다
동네 가게가 활기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역 사람들의 지연에 대한 인식,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필요 이상의 돈은 가질 이유가 없다
돈이 있어도 그것은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돈은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 필요 이상의 돈은 가질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주위에 도움을 줄 사람이 있으면 된다.(사회적 안전망)
#진보와 진화의 개념에서 자유러워져라
#얼룩무늬 세계에서 공존하기
세계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글로벌리즘은 돈이라는 단일 척도로 세계를 재단하고, 그 가치 기준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층을 만든다. 월마트와 같은 기업은 동네 가게를 철저히 파괴하고 단일한 라이프스타일로 소비자를 집어삼키려 한다. 개인의 생할과 지역의 생활이 공존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사라지는 풍경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무너진 가족제도를 대신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아무도 실천한 바 없다. 그런 새로운 공동체가 간단히 자리 잡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혜택을 지나치게 누렸고, 따라서 그것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에 대한 욕망은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한 생활 속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소비욕은 상품 더미 속을 오갈 때 커지고 불규칙한 생활, 스트레스로 가득 찬 업무, 그리도 삐거덕대는 인간관계를 매우려 할 때 더욱 자극을 받아 커진다. 현대인의 과잉 소비는 과잉 스트레스에서 오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대상행동이다.
동네 찻집이나 목욕탕에 생산적인 행위는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매일 내가 잘 아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이어붙이는 사이에 하나의 ‘장’이 탄생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쩌면 내가 사는 지역 속에 그런 형태로 가까운 미래를 밝게 만드는 유쾌한 공동체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머리로 썼다기보다는 몸이 시키는 대로 썼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이제는 슬슬 우리 자신의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