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이라고 누가 그래요? 이영문.p292
나는 자연을 스승으로 흙과 함께 살아가는 농부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흙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아가는 자연인이다.
요즘 세상에 바로서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마는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농업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비단 농업전문가나 농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농사는 삶의 근본이며 생명을 존속시키는 지구 생태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농업이 본래의 자리를 찾고 시대에 맞게 거듭나야 한다.
식물은 씨앗을 남기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우리 땅에 자생하던 그 많던 종자는 다 어디로 갔기에 ‘원산지 한국’이란 말을 들어보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자연스럽게 산다면 갈수록 식물 종은 다양화되고 번성해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로 사라지는 종이 부지기수다.
건강한 사람에게 약이나 병원 처방은 필요 없듯이, 건강한 종자는 인위적인 약제나 사람의 간섭이 필요 없다.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사람의 몸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먹을거리가 자연에서 멀어지면 우리 몸은 병원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건강한 식생활은 행복의 기본이다. 행복에 한 발 가까이 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자연의 너른 품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첨단과학 운운해봐야 자연생태계의 존속 없이 인류의 미래는 물거품이다.
태평농은 공생의 원리를 바탕에 둔 생태지속농업이다.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본래 갖고 있는 자생력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본래의 우리를 찾아가는 길에 이 책이 작은 등불이나마 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이겠다.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농부는 겸허한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자연이 키운 먹을거리를 취한 후 그 나머지는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빼앗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농사가 아니라 ‘약탈’일 뿐이다.
#농사는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는 일
내게 농사는 그냥 농사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도리를 심고 다듬고 가꾸는 일이다. 그 사람살이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사람들이 애써 갈아주지 않아도, 물을 주지 않아도 그저 저 좋을 대로 두기만 하면, 저절로 보드랍고 숨 쉬는 찰진 흙을 가슴에 품어내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생명력이다.
땅이나 물이 오염되건 말건 독한 제초제 뿌리고, 땅속에 토착 미생물들을 죽이는 비료를 뿌려대면서 뿌리는 약하고 모가지만 길어지는 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자연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농사를 짓는 것은 가장 평화롭게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다.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자연농법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면서 우리의 옛 농법을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과제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논가에 미루나무를 심고 길가에는 무궁화를 심어야 한다.
둘째, 화학 농약 살포를 최대한 억제하지 않으면 이제 우리 산천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는 위험한 지졍에 이르렀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도 건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가 지켜져야 우리 농업과 농촌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씨앗주머니가 있는 풍경
“저는 씨앗이나 묘목을 처음 사서 농사지으면 다음부터는 제가 수확한 종자로 농사를 짓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요?”
“저도 처음엔 그런 줄만 알았지 뭐예요.”
“씨 걱정만 안 해도 농사 절반은 지은 거죠.”
“일회용품은 말 그대로 일회용이죠? 쓰지 말아야죠? 그런데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씨앗들이 모두 일회용이라는 겁니다.”
씨앗 값도 문제지만 이런 씨앗은 본래의 기능을 거세하고 사람이 만든 기억만을 심어 놓은, 말그대로 ‘기형 종자’다. 인위적으로 주입해 놓은 프로그램대로 재배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도 않는다.
이 기형 종자는 비료와 농약은 필수품이고, 피복용 비닐이 없으면 자생초와의 경합에서도 지고 만다. 더욱 무서운 것 이 작물을 먹는 사람에게도 화학적이고 기형적인 유전 인자를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 많던 우리 씨앗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자연 생태를 제대로 헤아리고 종자의 특성을 정확히 안다면 우리 종자의 자생력과 영양학적 가치가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인위적으로 육종된 종자를 구입하면 비료와 농약도 필수 구매품이 된다. 의식을 갖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보면 제일 걸림돌이 종자다. 단 몇알이라도 손에 들어와야 키워보고 씨를 받을 텐데 시작부터 막막해진다.
집집마다 씨앗주머니가 매달린 풍경을 그려본다…주머니에 담긴 씨앗이 흙과 만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날이 우리 농업이 꿋꿋하게 사는 길이다.
#유기농업 유감
서리는 일종의 자연 제초제라 할 수 있다. 서리가 내리면 제아무리 팔팔하던 자생초도 하얗게 말라죽는다.
온갖 산업 쓰레기며 생활 쓰레기로 실효성도 없는 유기물을 만들어 농심을 우롱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나마 제대로 된 유기농업을 실천하지도 않고 때 되면 농약, 비료 다 쓰면서도 유기농산물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일부 생산자들.
우리 땅의 생리를 알고 식물의 특성을 안다면, 굳이 없는 돈 들여가며 유기물을 공급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그냥 논밭의 순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굳이 따로 거름을 넣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공생의 법칙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을 맞이한 들판은 외관상으로는 텅 빈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움직임도 생명력도 없어 그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차디차게 얼어붙은 땅속에서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한여름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것이 자연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힘의 근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농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때에도 제 힘으로 땅을 갈고, 봄이 오면 새 생명을 움트게 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이 자연의 힘을 안다면 누군들 그 앞에서 경외감을 가지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연이 이미 짓고 있는 농사에 힘을 보태는 태평농법은 그 힘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없이는 힘든 것이다.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자연을 알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믿음이다.
“풀을 깔아주면 그 아래 잡초 싹이 말라버려. 그리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자연의 이치에 맡겨 농사를 지으려면 이런저런 농사 기술을 익히기 전에 우선 자연을 알아야 한다.
자연을 알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근원인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농작물은 자연의 모방품이다.
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입’만 염두에 두고 농사를 짓는 이기적인 농법을 추구하면서 자연을 망쳐온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모든 생성물들을 위협하고 그 존재를 무시했다. 우리 생태계 곳곳에서 그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흙에서 생명이 자라게 하자
흙은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사람처럼 건강하게 살기도 하고 병들어 죽을 수도 있는 생명이다.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할 우리 몸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런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사람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다.
흙을 살리는 제일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역시 농사를 짓는 것이다. 화학농법으로 죽어가는 흙을 가을에 시작하는 생태적 농업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쌀과 맥류(보리), 연이모적 무경운 재배. 이렇게만 해도 이듬해 봄이면 흙이 달라진다.
장마나 태풍이 불어 닥치면 경운한 논과 무경운 논을 적나라하게 비교할 수 있다
남들에게 얻은 정보와 자신의 화학재배 경험을 토대로 변형하다보면 삼 년 이상 걸려도 제자리걸음이지만 곧바로 따라하면 땅심을 살리는 길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 필요한 실험은 그동안 내가 충분히 해왔으니 쓸모없는 실험으로 시간과 품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흙에서 생명이 자라게 하자. 그 생명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 몸이 곧 흙이다.
#돌종들의 나라
어디서 생겨난 말인지 몰라도 우리 고유의 재래종을 이르는 말은 ‘토종’이 아나라 ‘돌시’라 해야 옳다. 사람에게 ‘돌머리’하면 기분 나쁜 말이 되지만, 식물 이름 앞에 붙는 ‘돌’자는 원래의 우리 재래종을 일컫는 말이다.
“선생님 같은 분만 계시면 사라질 직업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많은 종묘상이며, 비료, 농약, 비닐….어이구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네요.”
“그럼 농사지어서 그런 장사꾼들 먹여 살려야 되겠나?”
스스로 적응. 거름이나 화학 약제도 필요 없다. 본래의 성질이 그대로 살아 있고, 품종 고유의 맛이 살아난다. 그러니 상업 논리를 앞세운 장사꾼들의 욕심이 밉고, 맞장구치는 농업 정책이 야속하고, 묵묵히 따라가는 농민들이 답답하다는 거다…바르고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획일화된 교육은 무리를 하나로 통제하며 촘촘한 그물망으로 가두어 이탈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저 뭉뚱그려 쓸모없는 풀인 양 잡초네, 잡풀이네 한다. 몹쓸 짓이다.
자생초나 작물 같은 식물의 이름을 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식물의 생태, 특성, 품종, 쓰임이 저마다 다르니 제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데,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머리를 싸매도 딱 떨어지는 이름이 없으니 적잖이 품이 들어간다.
이 소중한 볍씨는 우리 재래종으로 시중에는 파는 곳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이름도 없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여러 식물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도 내게 필요치 않으면 ‘잡초’라 하는데 이는 큰 잘못이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지켜보면 될 것을 성급하게 잡초네 잡풀이네 단정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쓰임에 맞는 용도를 찾지 못해 잡초로 보이는 게지 쓸모없는 풀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참살이, 참살이 하는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진정한 참살이가 아닐까. 살아 숨쉬는 모든 흙, 풀, 벌레, 날짐승, 들짐승도 세상의 주인이요, 중심이다. 무심히 스쳐 지나간 키 작은 작은 풀들에게 먼저 ‘안녕’하고 인사해보라. 귓전에서 우주가 속삭이기 시작할 터이니.
#과학농법은 화학농법
당장은 일손을 덜어주고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앞 다투어 농기계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 자연의 순리를 뒤엎었고 자연계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대 과학농업은 말 그대로 ‘화학농법’이다. ‘살림의 농법’이 아니라 ‘죽임의 농법’인 것이다.
노마식도(老馬識道).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는 데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늙은 말의 경험이 나침판이 될지도 모른다.
#FTA로 보는 우리농업의 미래
총성 없는 전쟁. 농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그렇다.
우리는 당장 저투입 농사법을 지도해야 한다.
농부는 씨앗 하나 가진 것 없는, 무늬만 농부다. 제대로 된 종자 하나 없이 구걸하듯 농사를 짓는다. 씨앗이 사라진 농업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 미래를 가지고 올지 상상이나 해봤을까.
우리 농업의 살 길은 적기에 저투입하는 농사로 돌아와야 경쟁력이 살아난다.
바른 농업은 나라 경제를 살리고, 환경을 보호한다. 바른 먹을거리와 함께 건강한 주거문화를 형성한다.
#태평농법의 기지, 고방연구원
‘고방’은 귀한 것을 보관하는 방이라는 뜻. 고방연구원은 토착화된 종자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한다.
미국 싸우스다코다 주는 십 년 전부터 무경운 농법인 태평농법을 도입했다. 무경운 농법은 사람의 손이나 기계의 힘으로 땅을 갈지 않고, 땅 속 미생물과 지렁이 같은 토양생물이 자연적으로 땅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태평농업 이야기
나는 농사를 지을 때 기계로 땅을 갈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으며 농약도 뿌리지 않는다. 그래도 실한 알곡이 맺힌 벼를 풍성하게 수확한다. 미생물들이 열심히 써레질하고 거미, 무당벌레, 개구리 같은 자연의 농사꾼들과 더불어 농사 짓는 까닭이다.
#미생물이 써레질하는 땅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다시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는 농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 태평한 사람이구먼. 뭘 믿고 저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거야?”
“걱정 마이소. 내 논에는 내가 안 해도 일꾼들이 득실글득시글합니더.”
#흙은 지하수의 여과망
농사짓는 게 그저 씨 뿌리고 거두는 게 전부가 아니지예.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제대로 된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겁니더.
#건강한 벼는 쓰러지지 않는다
농부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다.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그 이치를 깨닫는다.
#건강한 논은 거미들의 천국
무엇이 깨끗한 들판인가. 자생초 한 포기 없이. 거미줄도 없는 그런 논이 깨끗한 들판인가…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건강한 들판’이다.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벼들이 자생초와 거미줄을 친구 삼아 건강하게 자라는 그런 들판을 만들어야 한다.
#절대로 논을 갈지 않는 농부
자연의 원리만 이해하면 노동력, 시간,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건만 아무 생각 없이 무게가 3톤 가까이 되는 트랙터를 동원하여 논을 짓뭉개고 있다…가히 써레질이 아니라 흙을 반죽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땅에는 그렇게 무거운 기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책상에 앉아 있는 농정 책임자는 전혀 모르고 있다.
돈 들이지 않고, 기계 쓰지 않고 건강한 벼를 생산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나는 가을부터 농사를 시작한다
#자운영 피는 뜻은
#무궁화와 미루나무
#텃밭의 지혜
농업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분들한테 책상머리에서 이론으로만 우리 농업 경제력 운운하지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이 텃밭머리에 앉아서 작물들을 유심히 들여다볼 것을 권하고 싶다. 분명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농비 부담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기본비용이 예전보다 몇 배나 치솟으니, 당연히 그 논밭에서 나온 소출들을 비싼 값을 받으려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고투입 고품질 고가 판매 농정은 있을 수 없다.
포장지를 비롯한 자재업자는 살찌고 농자재로 인한 환경은 파괴되고 농민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백 마디 표어나 구호보다도 우선은 값을 내려한 한다. 쌀값을 내리려면 농사에 소요되는 비용, 즉 농비가 줄어들어야 한다.
모두가 한 평의 작은 텃밭이 지니는 경제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밭에는 육모자, 논에는 삼모작
#채소 궁합 맞추기
마늘은 상추와, 양파는 시금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감자 사이에 콩을, 고구마는 참깨가 제격. 농약 칠 필요도 없고, 비료를 줄 필요도 없고, 김맬 일도 없으니 그저 태평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고추만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관행농법이 자리 잡으면서 가장 약해진 품종이 바로 고추다.
#물엿은 친환경 벌레 퇴치제
소규모로 농사하는 텃밭이라 해도 벌레에 치이면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자연에서 배운 건강 원리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가며 농사를 짓다보니 어떤 것이 건강에 좋은지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농사짓는 양반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느냐고 묻지만 사람도 자연인 것을…
#병은 유전되지 않는다
암을 유발하는 환경이 유전? 그릇된 식습관이 대물림되는 탓이 크다.
올바른 식생활은 나를 바꾸고, 가족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습관이다.
#골다공증과 멸치와 우유
골다공증은 뼈의 문제라기보다는 뼈를 튼튼하게 받쳐줘야 할 근육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우리 몸속에는 입으로 먹은 칼슘을 뼈로 옮겨주는 장치가 없다. 그래서 칼슘이 함유된 식품이 아니라 몸속에 들어갔을 때 칼슘원이 되는 식품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각종 채소들이다.
#병 주고 약 권하는 사회
#숯가마 찜질방의 허구
자연에서 흘린 땀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땀이다
##자연과 기계가 함께 여는 미래
우리는 기계 문명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부터 설계하는 미래도 기계와 동행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기계와 자연이 함께 걷는 길을 모색하고 싶다. 자연에 가까운 농법을 개발 했듯이 자연과 친한 기계를 만들지 못하랴!
#농기계 개발에서 자연농으로
이제까지 우리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농사를 지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상식의 틀에 억지로 꿰맞춰 온 것이다. 더구나 땅을 갈지 않았으니 무경운 상태였고, 마른 종자를 뿌렸으니 굳이 모판을 만들어서 옮겨 심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내가 우리 옛 농사법에 맞는 써레 기계를 개발하겠다고 동분서주한 것도 다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써레질을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혀 써레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흙 속에서 살아 있는 온갖 미생물들이 먹고 배설하고 움직이며 끊임없이 써레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기계가 함께 여는 미래
2000년 하반기 특허 출원. 그 기계의 특징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견고한 기계라고.
모름지기 농사를 잘 지으려면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정확한 눈이 있어야 한다…자연의 순리를 따를 때 자연도 인간도 건강할 수 있다.
당장 한순간에 모든 생활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 남이 개선되길 바라기에 앞서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가 눈을 떠야 한다. 누군가 이끌어주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소비자는 농산물의 품질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생태와 자연농에 대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우리’가 되어 뜻을 모은다면 우리농업의 미래는 분명히 희망적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