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p332
눈부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가난하게 사는 지혜를 이야기하고, 꼴찌를 기르는 교육을 생각하는 이오덕의 수필집
지금까지 나는 아름다운 자연보다 괴로운 인간의 얘기를 더 많이 쓴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사실은 노을의 얘기며 감나무나 새들의 얘기였는지 모르지만, 내 양심은 그런 것보다도 눈앞에 전개되는 삶의 아픈 얘기들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자연을 말하더라도 괴로운 자연의 진실을 얘기하도록 했다.
그래 이제야 수필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내게 수필은 삶의 인식이요, 삶의 탐구였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쓰고 싶은 것을, 쓸 가치가 있는 것을 정직하게 쓰라고 늘 힘들여 말했듯이, 나도 그런 마음으로 수필을 써왔고 앞으로도 쓸 것임을 다짐한다. 1983.3
##하늘과 비둘기
#흙 ·1975.봄
배가 침몰하여 백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수장, 비행기가 추락해서 수백 명이 몰살, 버스를 타는 신작로에서 그 자리에서 차가 서로 들이받아 세 사람이 즉사….오늘날 인간사회의 모든 비극은 인간이 제 본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제 본분을 지키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흙을 떠나 만들어지고 있는 기계문명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사랑하고 키워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있으며, 그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생명을 살생하는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다.
땅을 파서 곡식을 가꾸는 농사꾼들의 얼굴은 흙빛이다. 그러나 그들도 요즘은 흙을 배반하고 흙을 약탈하기만 한다…흙에서 나는 생명을 가꾼다는 정신은 간 곳 없고, 주판질로써 그때그때의 이익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내 언제 조밥꽃 이밥꽃 봄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고향 산기슭에 돌아가 흙으로 집을 짓고 풀잎으로 지붕을 이어, 상추를 가꾸고 옥수수를 까먹으며 한 포기 풀같이 한 그루 나무같이 살아갈 것인가!
#산
산-그것은 자연이 낳은 예술품 중에서 가장 자연다운 것,그리하여 가장 위대한 걸작이어야 한다. 바위를 이고 기이하게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 파도 같은 곡선을 겹겹이 그려 놓은 산, 먼 들판 저편 하늘 끝에 점점이 그리운 마음처럼 이어간 산, 주욱죽 뻗어내린 골짜기가 마치 질주하는 운동선수의 건강한 육체같이 아름다운 산,…
우리는 촌에서 마로 사노? /도시에 가서 살지./ 라디오에서 노래하는 것 들으면/ 참 슬프다…
이들은 자연 속에서 살다보니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기보다 그런 것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피상적 문화에 정신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하늘·1973
책상에 엎드려 무엇을 하다가 문든 바깥을 바라보고 놀란다.
아, 하늘!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
이런 하늘을 도시의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농촌의 아이들도 커감에 따라 하늘을 잃어버린다. 주판질만 하면서 살아가게 되고, 혹은 쳐다볼 하늘도 없는 구렁 속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늘-그것은 모든 인간의 고향이다. 모든 생명을 안아주는 어머니다. 기댈 곳 없고 설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영토다. 조국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면-그것은 곧 노예의 삶이요,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꽃 ·1973.7
참꽃? 진달래꽃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이 세상 산과 들에 언제나 피고 지고 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산과 들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꽃밭이요, 정원이다.
#올챙이와 인간 · 1975.2
“안 됩니다, 안 돼요. 개구리 때문에 벼농사 망치는 걸 모릅니까? 안 돼요.”
“위기를 모두 느끼고 있으니 인간은 그것을 극복하여 할 것이고, 꼭 그 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올챙이의 구원은 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지만 인간의 구원은 그 자신의 탈피에서만 가능하다. 올챙이의 비극은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인간의 멸망은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교육·1965.7
“왜 쓰기도 불편한데 하필 한자로 써 넣어요?”
“교장선생님이 한자로 적었으니 따라 해야지요.”
한 사람의 명령으로만 인간을 기계화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생명의 성장을 방해하는 교육, 생명을 말살해버리는 교육이 된 것 아닌가…선생님들 자신은 아침마다 교실에서 하는 첫인사가 돈 가져오라는 말이다…허망한 학교 이름이나 내기 위해 각종 경기대회,,,무슨무슨 대회 등 행사로 어린이들을 선전도구로 이용하고…그리하여 타오르는 생명의 싹을 짓밟아 버리고, 가위로 싹싹 잘라 버리는 그런 맹랑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명을 생명으로 키우지 않고 스위치 하나로 이리 돌고 저리 돌아가는 기계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한 사람의 기분으로 좌우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가도 있지는 않은가?
##나의 집 나의 이웃
#집 · 1973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마음 편함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집 없이 살아가는 서러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근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어한 집은 나를 편하게 쉬게 할 집이었지만, 내가 가지게 된 현실의 집은 나를 쉬게 하기는커녕 끝없이 괴롭히기만 했다…집은 짐이요, 근심이었다. 내가 갖고 싶어한 집은 실상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있는 것은 걱정과 근심이요,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남의 것이다.
집이 없으면 이 세상이 다 내 집 아닌가? 흘러가는 구름은 머물머 쉴 집이 없다. 그러나 온 하늘과 우주가 구름의 집이다. 나는 나 자신을 조그만 집 속에 가두어 놓는 어리석음을 골라잡지 말아야 한다. 허망한 물질에 눌어붙는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여인숙이든 토담집이든 내가 들어 있는 곳은 다 내 집이요, 내 조국이다. 나는 죽어서 비로소 영원히 쉬는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집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이 어설픈 땅덩이 그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 한층 괴롭고 서글픈 일이다. 나는 괴로운 생활보다 슬픈 자유를 골라잡아야 한다. 허망한 소유보다 자연의 한 조각으로, 우주의 한 분신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취 · 1974.4
사람들은 모두 제 손으로 밥 지어 먹기를 싫어하고 있다. 그것은 군색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고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 알고 있다.
“자네 거기 가서 식사를 어떻게 하는가?” “자취하지” “자취라? 허허, 고생 많겠네.”
내가 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은 자랑거리도 부끄러움도 될 수 없다. 도적질이 아닌데 무엇이 부끄럽겠는가?…나는 차라리 너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죄스럽다. 다만 먹을 것을 건강한 내 손으로 지어 먹음으로써 살아가는 기쁨을 한층 더 느끼게 하여준 신에게 나는 감사를 드린다.
#변소 이야기 · 1972.12
변소란 일본인들이 쓰던 말이다. 본디는 뒷간이었다…요즘 도시에서는 화장실이란 말까지 쓰고 있는데, 이러다간 변소란 말도 차츰 쫓겨나게 되고 화장실이 판을 치게 될지 모른다. 뒷간이라 하니 어쩐지 흙담에 짚으로 지붕을 덮은 허술한 시골의 그것 같고, 변소라 하면 판자문이라도 제대로 달린 것으로 여기고, 화장실이라면 꽤 고급의 것으로 생각된다. 뒷간이란 말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이 쓰고, 변소란 말은 그래도 무식을 면한 사람이 쓰고, 화장실은 유한계급이 쓰는 말 같다. 이래서 사람들은 다투어 유식하고 고상하게 들리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말이 중간층을 대표하는 말에 쫓겨나고, 그것은 다시 도시의 상업자본층을 중심으로 한 말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말의 변천은 우리의 고유 문화가 일제의 식민지 문화로 전락하고, 다시 천박한 또 다른 외래의 껍데기 문화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편지에 대하여 · 1982.9
인간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은 것은 세상의 속된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잃고 세상일에 매여 있는 것은 좋지 않다. 편지를 못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다. 인생을 얘기하고 세상을 논하는 편지를 쓰지 못하게 된 나는 친구와 인생을 다 잃어버린 것이니 불행하다 아니할 수 없다.
#상처 · 1979.10
요즘 아이들은 상처가 없이 고이 자라는 듯 보인다. 도시 아이들은 낫이고 호미고 도끼 같은 걸 쓰는 것은 물론이고 저들이 먹는 쌀이나 감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모르지만, 농촌 아이들조차 장작이 없으니 도끼를 잡을 줄 모르고, 보리 농사가 쇠퇴해지고 보니 보리 베는 일도 드물고, 보리 짚가리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콘크리트 안에 갇혀 시험 점수만 따기 위해 서로 악착같이 다투어야 하는 이 아이들은 손가락에도 발가락에고 상처 하나 없이 고이 자라나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고 커다란 상처가 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좀처럼 낫지 않을 것이며 평생을 병신으로 만드는 무서운 상처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도끼로 장작을 패고 낫으로 풀을 베며 자연 속에서 자라나던 내 어린 때가 한없이 귀한 시절로 그리워지는 것이다.
##가난하게 사는 지혜
#가난하게 사는 지혜 · 1979.10
하루 열 시간 노동에 한 달 수입이 기껏 몇만 원이라 해도 그래도 농사일보다 낫다고 공장을 찾아가는 국민학교·중학교 졸업생들. 그래서 농촌에는 일할 사람이 모자라 논밭이 묵는다. 퇴비를 안 쓰고 금비와 농약만 자꾸 뿌린다. 잡초도 뽑을 틈이 없어 제초약을 뿌린다. 농사도 이젠 거의 장사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돈이고 장사꾼 판이다.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고 돈 없으면 사람 노릇도 못한다.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상품이 되었다.
“뭣 때문에 사는가?”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것도 몰라? 이 병신아, 돈벌이하기 위해 살지!” 할 것 같은 세상이다. 황금과 편리한 생활에 미친 이 무리들이 갈 곳은 어딘가?
편리한 생활이란 환상이야말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가난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라야 정치를 할 수 있고, 교육도 학문도 할 수 있다. 목사도 가난해야 진리를 말할 수 있다. 예술가도 다 그렇다.
아이들을 가난하게 키워야 한다. 먹기 싫어하는 우유고 빵들을 억지로 먹이고 있는 부모들은 그 자식들에게 죄악을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결코 인간스러운 생각과 생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려 하지 말고 간소한 옷을 입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아이들은 본디 옷차림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에게 사치와 허영을 강요하고 물들게 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스러운 옷으로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흙바닥에서 뒹굴고 햇볕에 살갗을 그을리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을 아껴 쓰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은 소중하지만 돈을 모아 악착같이 저금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은 반성할 점이 많다. 돈에 미친 세상에서 아이들마저 돈벌레가 되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아이들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 일하지 않고 자라난 아이들은 결코 사람다운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사람다운 행동을 할 수 없다…물을 길어 나르고 쌀을 씻고 정성 들여 돌을 이는 그 생활에서 사람다운 느낌과 생각이 나올 수 있다.
가난만이 우리 인간의 참 살길이다. 물론 모두 같이 인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가난 말이다.(공생공락의 가난)
#거꾸로 사는 재미 · 1979.10
산골학교 숙직실엔 저녁마다 온 직원들이 모인다.
“일요일 오후 버스를 타고 이놈의 골짝을 들어오는 게 죽으러 오는 것 같이 싫어요”
“좀 달리 생각할 수 없는가요? 요즘 돈 많은 사람들, 산골에 별장 지어 놓고 도시에서 다니지요. 또 관광 다닌다고 돈 쓰며 여행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여행한다 생각하면 오히려 즐거울 수 있습니다.”
#속을 보는 눈 · 1978.5
사물을 내면에서 보는 눈은 그 사물의 생명을 붙잡는다.
겉을 보는 눈은 소비 생활을 즐기는 사람의 값싼 눈이고, 안을 들여다보는 눈은 생산의 괴로움을 겪거나 적어도 그 괴로움을 이해하는 귀한 눈이다.
정치와 학문과 예술이 인간에 유익한 것이 되려면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사물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모두가 껍데기인지 모른다.
#인간의 길 · 1982.3.24
우리가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하려면 자기의 전문분야에만 갇혀 있지 말고 전체를 내다봐야 한다. 인간사회의 참모습을 파악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외면할 때 결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철학이 없이 동시고 동화를 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전체를 보는 시점을 확보하고 전체를 통할하는 현명한 정신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 비인간화의 울안에 갇혀 버린다.
인간을 키워가고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일에 관여하는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웃사이더’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닌가.
#웅변에 대하여 · 1982.6.11
말을 팔아먹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정치가·목사·교육자 등등..말을 할 때는 그 말의 알맹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그런데 내용이 아무것도 아니거나 이상야릇한 것이면서 기술과 태도만을 크게 강조한다든지 교묘하게 꾸며 보이는 말이 있다. 요즘 성행하는 소위 웅변이 바로 이것이다.
#출판기념회 이래도 좋은가 · 1982.8.19
모든 사람들의 삶이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리하여 온갖 행동을 규제하는 말들이 귀를 아프게 하지만, 진정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는 말은 없다. 이런 때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어느새 저도 몰래 오염되어 혼탁한 무리들 속에 자신을 잃고 하루살이의 춤을 추게 된다. 정말 서로 타이르고 일깨워야 할 일 아닌가?
#말과 글의 어지러움 · 1982.8.9
실체가 없는 말, 감동이 따르지 않는 말, 삶에서 유린된 쭉정이 같은 말이 허공에 난무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말을 순화하기에 힘써야 하겠다. 말의 순화는 삶의 순화다
#교육자의 열등감 · 1979.6
아이들을 윗자리에 앉도록 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끝자리가 중요하다. 고급 관리나 사장보다 농사꾼이 더 중요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윗자리고 끝자리고 없는 것이다. 입신출세식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
##꼴찌를 기르는 교육
#우리는 왜 사랑을 잃었는가 · 1980.9
대학생 농총 봉사단. 가르치는 방법이 아주 서툴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느낀 것은 아이들이 평소와는 판이하게 열심히 배우고 선생을 잘 따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담임교사가 지도했더라면 20분도 그대로 계속하지 못하고 교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릴 것이고, 그래서 교사는 크게 고함을 지르거나 호령을 해서 억압적 통제방법을 썼을 것인데,…대체 아이들의 태도를 이렇게 바뀌 놓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학생들이 아이들과 같이 노래하고 운동장에서 뛰고 놀고 하는 것을 보고는 곧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대관절 저렇게 열심인데야 아이들이 안 따를 수 없겠구나 싶었다. 역시 교사가 될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바로 이 열성이었고, 교육이 이뤄지는 첫째 조건이 사랑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육자에게는 지식도 있어야 하고 그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도 갖춰야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키워보고 싶어하는 열성이다.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어떤 지식도 기능도 권위도 다 헛된 것이고, 오히려 아이들을 해칠 뿐이다.
어느 시대고 그러하지만 특히 오늘날의 교육자는 탁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운명을 안고 있다. 탁류를 몸으로 막아내는 역사의 둑 역할을 하지 않고는 교육자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꼴찌를 기르는 교육 · 1980.11
농사짓는 사람 얘기 들으니 이웃 논에 비료를 자꾸 뿌려 벼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보면 샘이 나서 자기 논에도 무턱대고 비료를 주게 되어 농사를 망치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한다.
만약 학교교육의 실질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앞으로 학교란 곳은 학생들에게 더 불행하고 비뚤어진 삶을 강요하는 곳이 될지 모른다.
그것은 오직 학교 교육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 곧 아이들의 생할을 가꾸고 북돋워주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선한 마음을 가꾸고 바른 행동을 익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하겠는데, 지금까지는 이와 반대로 꾀부리고 수단 잘 쓰는 사람을 길러왔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일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참교육이다.
경쟁을 그만두면 모두가 꼴찌 상태로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필경은 일등도 꼴지도 없이 모두가 손잡고 함께 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손잡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런 때가 오기까지 우리들은 ‘꼴찌를 위한 교육’ ‘꼴찌를 기르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미워지는 까닭 · 1980.12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육자라 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대체 미움이란 사랑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미움도 생깁니다. 너무 욕심을 내지 마세요. 성급한 기대를 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책과 카드의 백퍼센트 회수를 바라지 마세요. 그런 것이 획일적으로 착착 철저하게 된다면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야말로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교사의 희생이 아이들의 행복을 가져옵니다.
#6만 대 1의 영광 · 1981.3
만약 우리 교육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면 훌륭한 인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지혜로운 젊은이를 부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자라나고 잇는 곳에서는 우리들이 할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민족이 불행한 상황에 놓여 있기에 6만 대 1의 영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진 사람 · 1981.4
학력고사 반 성적, 못나고 무능한 교사. 상을 못타게 되니 윗사람들도 노골적으로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때로는 불러다 꾸중까지…교사들이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획일적인 지시 명령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즐겨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함께 괴로워하면서 그들의 순수함을 지켜 나가는 벅찬 일을 희생적으로 하는 사람만이 참된 동심을 지닐 수 있습니다…교육이란 어린이를 비인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힘과 끊임없이 맞서서 어린이의 생명을 지켜주는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교직자는 동심에 빠져 꿈같이 살아가는 직업의 사람이 아니라 그 동심을 지키는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린이에 대하여 아무리 강요하도라도 어린이의 천성에 깃들어 있는 건전한 오성(悟性)이나 인간적인 의욕을 어떤 사악한 방향으로 복종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의 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기를 살리는 교육 ·1981.5
도시는 시골 사람의 기를 죽인다.
학교에 들기도 전에 수를 세게 하고, 못 세면 머리가 나쁜 아이로 낙인 찍는, 이런 사람 잡는 교육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예사로 토해 내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살하는 죄악을 범하는 사람이다. 교직은 그래서 실로 두렵고 또 두려운 직업인 것이다…기는 바로 생명인 것이다.
#몰입자와 국외자 · 1981.6
한 가지 일에 집착해서 거기서 전혀 빠져 나올 줄 모르는 몰입자들은 자기만이 그 방면에 절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정치인이고 문인이고 교육자뿐 아니다…언론인, 법관, 기업인들에게서 장사꾼과 농사꾼에 이르기까지 이런 딱한 모습을 얼마만큼씩은 보여주고 있다.
농사꾼들이야 그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어디 진정한 농사꾼이 있는가? 곡식에다 농약을 마구 뿌리는 농사꾼들의 손은 버스 문간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등을 밀어내는 안내양의 손과 다름없이 기계가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가 편리한 문명의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함일 텐데, 이와 같이 편리한 것만 다투어 찾으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덧 그 편리함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생산적이고 불건강한 상태로 타락되고 만 것이다. 산골마을에서 깨끗한 두레박으로 떠올리던 샘물을 메워 버리고 많은 돈을 들여서 상수도 시설을 해서 부엌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솥 안에 쏟아지도록 해 놓고는 TV를 보며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기서 뭇사람들의 비뚤어진(중독된)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현대 사회는 어쩌면 거대한 정신병자들이 우글거리는 수용소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가 갇혀 있는 그 보이지 않는 벽 속에서 나오는 일이다.
자기의 세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의 세계를 가지되 항상 한 발자국쯤 나와 자기를 살피고 그리고 남들과 함께 전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목사는 교회 밖으로 나와보아야 하고, 교육자는 아동과 아동의 부모가 되어보아야 하고, 학자는 농민이나 노동자가 되어보고, 정치가는 평범한 시민이 되어보고, 문인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책을 사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보고…이웃과 세계를 보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여 탈피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가는 일, 이것이 빼앗긴 인간을 되찾아 가지는 길이다. 인간을 지키고 키워야 할 교육자가 그 누구보다도 앞서 자신의 인간적 삶을 회복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정직한 교육 · 1981.4
내가 보기에 교육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는 것이 잘못이다. 교육은 사회의 진상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정직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알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심성이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 침해되지 않도록,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 교육이다.
#교사와 수업 · 1981.7
교안은 장학사들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되었고,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교사들에게 수업은 2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물론 수업을 잘한다고 이름난 사람도 없다. 이름을 내려면 무슨 연구발표를 잘하거나 무슨 전시자료를 근사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크게 반성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교육자들은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소홀히 하여온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수업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기술임을 확인해야 한다.
교육계를 여러 해 근무하면서 남의 훌륭한 수업을 한 번도 못 봤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런 사람이 훌륭한 수업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수업의 비결 · 1981.8
점잖고 보기 좋고 근사하고 멋있는 수업을 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것을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구경꾼들을 위한 것이다…아이들의 눈을 가져라. 교안에 얽매이지 말라.
#제비집과 학교 · 1981.8
교육 연구 공개 행사, 학교 교장 선생님 “…몇 달 전부터 날마다 장대로 제비집을 뜯는 게 일입니다”
“깨뜻한 벽에 제비집 붙은 게 흉하고, 제비똥 떨어지는 것도 더러워요.”
“안 돼요. 내가 이 학교 안에 있는 한, 절대로 제비집은 그냥 안 둡니다!”
제비집은 과연 더러운 물건인가? 콘크리트 벽에 페인트칠을 한 것은 아름답고 제비집은 더럽다는 이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간이 자연을 배척하여 그것을 정복하고 멸살하고자 그 자리에 빌딩을 세워 놓고는 그것을 문명이라 자랑하는 일이다.
#어린이 마음 · 1982.4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는 산골 아이, 채마밭에서 뱀과 노는 아이 이야기.
어린이의 마음은 하늘과 땅에 닿는 것이며,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생명에 통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순박한 마음, 사심(邪心)없는 마음은 우리가 가장 흉악하다고 말하고 흉측스럽게 여기는 호랑이나 뱀들까지도 어린이가 되게 순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어린이의 그 어린이다운 마음, 곧 순박하고 사심이 없으며 남과 자기를 하나로 여기는 마음을 지녀가도록 지켜주고 키워가는 것이 참교육이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교육의 최고 최상의 목표다.
동심을 해치고 병 들게 하는 교육은 어떤 형태, 어떤 구실로서도 허용될 수 없다. 어린이가 어떤 목적에 이용되고 수단이 되는 교육은 사이비 교육이다.
#죄인의 말 ·1982.11
그 당시 교육계에서 모범 교사가 되는 조건이 세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돈’ 잘 걷어내는 일이고, 둘째는 ‘청소’ 깨끗이 하는 것, 셋째는 ‘환경 정리’ 잘 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에서 무사히 월급쟁이 노릇을 하여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과 교사들의 사이가 부리고 부려지는 관계로 성립되어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선생님들을 잘 부려먹는 교장이 수완이 있고 능력이 우수한 행정가로 인정받는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훈련시킨 교관이었고, 돈을 징수하는 세금쟁이였다. 나는 아이들이 그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재질과 개성을 뻗쳐줄 줄 모르고 획일화의 몽둥이를 휘둘러 그들을 똑같은 형태로 두들겨 맞추어 온 폭군이었다. 서로 남을 해치는 비참한 경쟁을 강요한 깡패였다. 선거운동을 하였던 위선자였다…앞으로 나는 이 죄를 얼마쯤이라도 씻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