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사람 농부.김성희.p303
한살림생산자 16명의 이야기
#너와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게 했던 그들
열악한 상황, 속임수지, 빨갱이,… 비아냥 거림….
하지만 우리 생산자들은 이거다 싶으면 행했다. 재고를 걱정하거나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다. 누구라도 나서서 움직이고 거침이 없었다.
땅에서 묵묵히 일하는 생산자는 스승이었다.
그들에게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우선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그들이 오로지 발을 땅에 딛고 씨앗을 뿌리고 생명을 살려내는 것만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따랐다. 우리가 두려운 건 하늘과 나 자신뿐이었다. 서로 마주하니 돈과 시장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싹트더라. 겁나는 일이 없었다. 산지에서 열무가 남는다 하면 아파트 입구에 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팔고 유정란이 남았다고 하면 아는 단체로, 성당으로 뛰어다녔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한살림의 지향대로 착실하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면 뭐, 남는 게 있느냐”고. 처음엔 “생기는 거 하나도 없다”고 했으나 곧 알게 되었다. 돈은 안 생기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걸.
어느 새 나도 생산자들의 뜻 깊은 욕심을 따라하기 이르렀다. 무를 집을 땐, ‘내가 작은 것 고르면 누군가는 큰 걸 먹겠지’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내 아이만 잘 키우겠다는 욕심에서 벗어나 ‘내 아이, 네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키우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점차 ‘세상 어떤 생명체 하나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인가 손 닿는 대로 먹어도 오래도록 탈이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한살림다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일희일비하지 않아 여유로운 인생이 되었다. 말하자면 도시에서 농사를 지었다. 자연히 따르는 사람도 생기더라.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받는 것/….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에머슨의 ‘인생의 성공이란’
이 책에는 그간 생산자들에 대해 알고 미루어 짐작하고 보아왔던 것들이 소상히 쓰여 있다. 이 세상, 절로 되는 일은 없더라. 각고의 노력과 인내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 힘들 때, 뭐든 무의미하다 여길 때, 책을 곁에 두고 들여다보면 한살림 하는 자부심이 생겨 좋겠다
#그래도 세상에 희망은 있다
돈과 시장의 논리를 넘어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길을 열어온 한살림
2014년 9월 현재 한살림 조합원 47만 세대, 대단한 숫자이긴 해도 전국 전체 세대의 2%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한살림이 감당하고 있는 생명 농지의 면적도 전국 농지의 0.22%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껏 쓰고 버리는 문화로 점점 더 난폭하게 파괴되는 생태계,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행각하면 한살림이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게다가 마지막 교정지를 검토하는 시점에 정부는 쌀에 관세를 매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일관되게 농업을 무시하는 정책을 추구해왔다. 마치 안 먹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쌀을 거의 자급해온 덕에 식량자급률 23%, 쌀을 빼면 겨우 3.7%밖에 먹을거리를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제 쌀농사마저 무너진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보통 걱정이 아니다.
1970~80년대, 남들처럼 농약을 쳐보았더니 자기 몸이 아팠고 그 아픔을 남들에게 고스란히 미칠 수 있겠다 싶어 차마 계속 할 수 없었다는 이들이다. 나는 생명 있는 것들을 가여워하는 그 마음을 잠시 엿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서울의 현실은 날로 각박해지고 우리 농업과 농촌을 둘러싼 현실도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지만, 그래고 세상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과수원을 쓸고 가 애써 가꾼 배들이 절반 이상 떨어졌는데고 “이만큼도 감사하다”던 조치원의 농부, 한평생 비탈밭을 일궈 제주도 유기농 귤의 시원을 연 일흔 살 농부가, 나무 아래 난 풀들은 손으로 쓸어 보고는 하을 향해 팔베개하고 누우며 난생 서음인 듯 “아 좋다, 참 좋아.” 하던 표정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아 참 좋구나, 가을이 깊어.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정작 이런 풍경을 즐기기 어렵단 말이야. 그게 안타깝지.”
여전히 제초제를 뿌리는 관행농사에 비해 유기농사가 힘겹다. 그래도 사회적인 인식이 확산되었고, 농자재나 기술도 많이 보급되었다. 누군가 씨를 뿌리고 남들이 자지 않은 길을 간 덕에 조금씩 바뀐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대개 한살림 초창기부터 생명농업을 일궈온 분들이다…말 못하는 가축도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살림의 깐깐한 축산 원칙을 마련해 온 분들은 “이렇게들 고기를 많이 먹으면 우리 땅이 견뎌낼 재간이 없다”고 걱정했다. 하나같이 시장의 셈법과는 다른 마음 씀씀이다.
‘친환경유기농’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특별한 가치관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물품의 외양이나 ‘인증기준’을 충족시켰는지 여부만으로는 물품이 어떻게 길러졌는지, 그 물품에 담긴 내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서로 이해하고 기댄 채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 그대로, 먹을거리를 기르고 나누면서 우리 사회를 조금씩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꿔 온 이들의 간절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당신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땅을 살리다
#우리 땅 생명을 늘린 우렁이 농법_최재명
충북 음성 최성미마을
언뜻 보기에도 이제 마을에 논은 별로 없고 대부분 밭뙈기들이 오밀조밀 낮은 구릉들 위로 펼쳐져 있을 뿐이다. 나중에 들으니 마을 농사의 대부분은 외지인들이 와서 짓는 인삼, 마, 토란 같은 환금작물들이라고 한다.
양식을 하려다 우연히 발견한 우렁이 농법
노인들도 제초제 없이 농사짓게 한 우렁이? “충주에 귀농한 부부나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 남상도 목사 같은 이들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이전엔 풀 매느라 두 부부가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고생을 했는데, 이젠 삽 들고 물고나 봐주러 왔다 갔다 하면 된다면서 정말 세상 좋아졌다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그게 보람이죠.”
무소유공동체 실험과 좌절
당시만 해도 유기농을 실천하는 일은 단순히 소출을 감내하는 것만이 아니라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갖은 협박과 ㅚ유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농촌지도소에서 나와서 주인 허락도 안 받고 논에다 빨간색 삼각형에 ‘방제’라고 쓴 팻말을 박아 놓고 가요…”
“아, 남편을 말리고 싶었죠. 통일벼 안 하고 다른 볍씨 못자리 만든다고, 군에서 나온 사람이 남의 집 방안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못자리를 죄 뒤집어 버리지 뭐예요. 그래서 농사꾼이 어련히 자기 농사 알아서 할까봐 이런 짓을 하느냐고 막 항의를 했죠.”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세상이 변한 것 같다. 공무원들의 그런 행동을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렵고, 지자체들이 나서서 우렁이를 사주며 친환경농사를 권하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논에 사는 붕어, 마꾸라지, 새뱅이, 우렁이 같은 게 참 좋았아요. 새뱅이를 살려낸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닌데, 멸종위기라는데 누가 이어받을지…”
#나부터 살자고 유기농사 지었지_이병주
충남 세종시 고송공동체
“이만큼도 감사해요. 나보다 훤씬 더 심한 피해를 당한 사람도 많으니께. 농사짓다 보면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지 매년 아무 일 없을 수 있나요?”
농약을 못 견뎌 시작한 유기농?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다 싶었지”
투명한 직거래 위해 결성한 고송공동체? 중간이윤을 너무 많이 떼는 전의신협. “쌀 한 가마에 2만 원씩을 떼지 뭐유. 우리가 전부 3천 가마 냈는데, 중간에 떼는 돈만 얼마야. 그 돈으로 농민들 교육을 시켜 주든가 뭐 보람 있는 데 쓰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먹을거리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외국농산물 사다 먹고 싶아도 그럴 수 없는 날이 올 거예요…지도자들이 잘못하는 것 같아요. 우선은 곶감이 달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오래 지탱하지는 못해요. 싸게 싸다 먹을 궁리만 하지 식량자급에는 관심들이 없잖아요.”
#어디 농민이 땅을 놀린답디까?_경동호
충북 괴산 칠성유기농공동에
셈법 빠른 사람들처럼 이 농부들마저 좀 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좇았다면 이미 우리 잡곡은 멸절됐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 우리 잡곡의 영양과 가치가 새로 관심을 끌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돌이켜 생각해 볼 여지가 생겼다니 말이다.
##씨를 뿌리다
#누군가 이 농사 유지해야 나중에 더 많은 이들이 먹겠지?_최병수
경북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산골 농부를 행동하게 한 가톨릭농민회? 경찰이나 면직원이 농민들 위에 군림했던 그 시절에 가톨릭농민회는 농민들의 권리의식을 깨우치고 굽힘 없이 권력의 악행을 질타했다.
약 친 포도를 누구 먹으라고 내겠나? “엄마, 우리 포도밭 절반은 남들처럼 농약 쳐서 시장에 내고 반은 유기농 하면 생활비는 벌 수 있잖아요.” “그라모 약 친 포도를 누구보고 먹으라고 할끼고?”
#사람이 꽃 되고 꽃이 사람 되듯이_서순악
충북 영동 옥잠화공동체
‘꽃이 사람 되고 사람이 꽃 되는 차’, 그이가 만든 구절초 꽃차는 이런 이름을 달고 있었다.
#’하느님 95%, 내가 5%’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생명농업_임선준 임동영
제주 큰수풀공동체
유기농업은 ‘법’으로 하는 게 아닌데 선생이 너무 많아?
“유기농법, 미생물발효(EM)농법, 무슨 농법 이런 말들을 해요. 그런데 나는 이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역이나 토양, 작물마다 성질이 다른데, 하다못해 같은 밭에서도 위와 아래가 달라요. 그런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처럼 무슨 법이라고 하니까, 자꾸 선생이 많아져요.”
생명체인 작물과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살피고 스스로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 농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기에, 유기농사에 무슨 특별한 비방이나 요령이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이론’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자연농업)
“아빠한테는 건강과 행복 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해?”
농부 임선준 씨의 경우라면 어떨까? 건강은 조건이고 행복은 의지의 문제다. 사람의 의지를 어떤 고난이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으랴. 봄이 오는 제주에서 만난 유기농 농부 임선준. 그의 삶을 행복론의 교재로 채택해도 좋겠다 싶었다.
##밭을 갈다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식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_김종북
전남 진도
작물들과 대화하는 것이 농사
“그걸 일로 생각하면 그렇게 못하겠지. 경제적인 일하고는 무관하지만 그 자체에서 재미와 보람이 있으니까.”
농부는 하느님 섭리 실천하는 최고 직업
농사 ‘기술’이라니요?
“나는 농사 기술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적게 노력하고 많은 걸 얻겠다는 게 기술 아닐까요?”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처럼 적은 노력으로 많은 보상을 얻으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자연도 인간도 결국은 살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적어도 농사를 짓는 일만큼은 기교를 부릴 게 아니라 순리대로 식물을 이해하고 보살펴주면서 대화하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바른 농업이다.
달려가는 대신 조금 더 차분해졌으면
“내가 남에게 밥이 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데 온통 이기려고만 드는 게 자본의 논리고 돈의 힘이죠.”
“서로 나누고 섬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의 정신이고, 한살림의 정신도 거기 있을 텐데, 이제 한살림도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어요. 진정을 이해하는 소비자들이라면 당장의 몇 푼 이익이 아니라 멀리 보고 속 깊은 선택을 해야 할 텐데…”
#협동이 희망의 근거이다_김찬모
경남 고성 공룡나라공동체
농업이야말로 협동하는 삶
#’내용 있는 밥’ 나누어 먹고 함께 쉬는 그날 향해_이백연
전북 변산 산들바다공동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과 뭇 생명이 조화를 이루며 지속돼야 한다는 말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만남이 그를 ‘문제적 농민’으로 만들다
##북을 돋우다
#내가 살기는 좀 재미있게 살아_김정상
전북 의성 쌍호공동체
#작은 마을공동체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죠_김의열
충북 괴산 솔뫼공동체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솔뫼마을
이념 앞세운 조직보다 작은 농촌공동체
#호텔보다 더 편안한 삶, 흙에서 일군다_신만균
제주 한울공동체
돈 되는 작물만 선택하면 도박과 무엇이 다른가
#쉼 없이 공부하고 느낀만큼 행동해요_김상기
경기 파주 천지보은공동체
말과 글을 벗어나면 자각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스승을 찾아갈 때까지 다치지만 않게 돌보면서 지켜보자’
“부모는 고통을 마지못해 견디는 식으로 살면서 자식에게는 다른삶을 살라고 하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언어도단 입정치(言語道斷 入定處)’? 언어가 인간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는 도리어 언어에 짓눌려 생각이 닫히고 괴로움이 가중된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함께
#한 알의 밀알처럼 뿌린 씨앗_안상희
충북 괴산 한살림축산영농조합법인
#소금다운 소금을 먹게 한 이_유억근
전남 신안 마하탑
#시상에 부러울 게 읍써!_김형오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
“나는 넘 말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남 욕하고 욕심 내세우면 몸에 병이 오등만. 그래서 아들한테도 그라제. 무조건 져라. 그래야 편타.”
“살리는 사람 농부 | 한살림생산자 이야기”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