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늘 잡초 위를 걷지만, 그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 구석구석, 어디서든 스스로 나고 자라는 생명들의 목소리를 작은 무대 위에 세웠습니다.
개망초, 질경이, 애기똥풀, 닭의장풀, 쑥
계란 노른자처럼 보이는 가운데 동그라미가 꽃의 암술과 수술이고, 흰자처럼 보이는 둘레의 동그라미가 꽃잎이라고 생각하셨겠죠? 놀라지 마십시오. 빽빽하게 모여 노란색 동그라미를 이루는 돌기 하나하나, 둘레를 두르고 있는 가느다란 흰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당당한 한 개의 꽃입니다. 큰 꽃 하나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정확하게는 수많은 꽃들의 모임입니다. 식물에게 꽃이란 자손을 남기기 위한 부분이라서 씨방, 암술, 수술 그리고 이 모두 를 감싸며 보호하는 꽃잎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제 꽃송이의 작디작은 노란색 돌기 하나하나, 흰 꽃잎 하나하나가 씨방, 암술, 수 술, 꽃잎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교한지 상상이 가시나요?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라는 표현이 있지요? 제 꽃이 바로 그 푸른색입니다. 짙고 맑은 선명한 파랑입니다. 전 제 파란색이 정말 좋습니다. 하늘이나 바다의 색은 파랗지만, 다른 자연물에서 파란색은 발견하기 어려운 귀한 색입니다. 그림 안에 기가 막히게 멋진 파란색 꽃을 그릴 수 있으니 옛 화공들도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저는 살아가는 데 햇빛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숲에 가면 원하는 만큼 충분한 햇빛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숲에는 키가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낮은 곳은 온통 응달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숲이 아닌 곳, 키 큰 식물들이 많지 않아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인가에서 살기로 했 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많고, 키는 작고…그렇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습니다. 잎맥을 질기고 단단하게 거듭 단련시켜 마침내 밟히거나 상처 입어도 끗 꿋이 저를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저희 집안이 본래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제 친척 중에 특히 널리 알려진 이가 바로 양귀비입니다. 매혹적인 붉은 꽃과 인간에게 치명적인 아편의 원료가 되는 점 때문에 역사 속 인물인 양귀비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양귀비가 꽃은 훨씬 커다랗지만, 꽃잎 수는 저와 같은 네 장입니다. 누가 친척 아니랄까 봐 저희는 생김새가 은근히 닮았습니다.
가느다란 꽃대 위에 둥근 꽃잎이 가볍게 올라가 있는 모습이죠. 다른 꽃과 비교해보면 어딘가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바로 저와 양귀비 둘 다 꽃받침이 없습니다! 본래는 꽃받침이 있었지만 꽃이 피면 곧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부신 색과 화려한 모양, 진한 향기 등 우리를 유혹하는 강렬한 아름다움도 많습니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빠른 변화와 성취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것들이 조용히 세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잡초의 생은 바로 그런 삶입니다. 빛나는 한때가 아니라, 꾸준히 살아내는 매일의 힘,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그러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존재, 잡초의 초록빛은 우리 곁에서 가장 가까이 숨쉬는 자연이자 삶 그 자체의 모습입니다.
‘이게 책이야?’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자그마한 책이지만, 책 속에 담긴 잡초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독백은 훨씬 크고 두툼한 식물도감들보다도 재미있고 알찬 식물인문학 강의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