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사르트르.
그것은 허상의 실상화였다!(”영화를 만들고 있는 거야“)
154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기쁨이 넘쳐흘러서 금방 펜을 놓았다. 속임수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말이 사물의 진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써 놓은 꼬불꼬불한 작은 글자가 도깨비불과 같은 빛을 잃고 차츰 차츰 탁하고 단단한 물질처럼 굳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나를 흥분시켰다. 그것은 허상의 실상화였다. 내가 호명만 하면 사자도 제2 제정 시대의 대장도 또 사막 지대의 베두인도 어김없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글자와 한 몸이 되어 영원히 사로잡혀 있게 될 운명이었다. 나는 펜촉으로 긁적댐으로써 내 꿈을 이 세상에 단단히 붙잡아 매놓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책과 보랏빛 잉크 한 병을 얻어 가지고 공책 겉장에 ‘소설 노트’라고 적어 넣었다. 최초로 완결한 소설에 나는 ‘나비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270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도다.“
이것이 내 습성이요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속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온다. 오직 이 비판적 거울만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아무리 닳고 지워지고 모욕당하고 따돌림당하고 묵살당한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온갖 특징은 50대 인간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