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 p331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
말 그대로 독서일기란 매일 밥 먹듯 책을 읽는 사람이 쓰는 것…도를 닦는 스님처럼 책읽기에 몰두한다면 목표를 달설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만, 무릇 책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
위의 언명과 별대로 깨달음은 항상 버리는 일과 관련 있을 테고 먹고 사는 일에 포박된 나의 독서일기는, 오히려 방금 읽고 난 티끌 같은 문장과 단어가 흩어질세라 그러모이기 바쁘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될지, 애써 모아 먼지 구덩이라 될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읽기’의 방식이 ‘삶’의 방식이다
#내가 왜 이 책을 읽는지_장정일이 독서일기
자기 안에 동기가 마련되지 않은 독서는 다 읽고 나서도 남는 게 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왜 이 책을 읽는지’에 대한 세 개 이상의 이유를 먼저 떠올려보기를 권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사고의 땔감’을 주워 오고, 그것을 태워 열량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하는 독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20대의 독립을 위하여_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한국은 OECD 30여 회원국 기운데서 젊은 세대의 평균 결혼 연령이 가장 높은 나라군에 속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동거나 독립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 방도가 없기 때문이고, 새로운 시민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말고 아무거나_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례로 삼성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일자리 숫자보다, 삼성의 문어발식 경영과 하청 관행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가 더욱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다.
#인간적인 경제학_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존 러스킨
이상한 경제학? “근대 경제학은 인간이 뼈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뼈만으로 되어 있다고 가정하고서 인간의 영혼을 부정한 뒤, 그 토대 위에 진보의 골격 이론”을 세운다. 거기에 반해 자신의 경제학은 리카도와 밀로 대표되는 근대 고전주의 경제학이 말살시킨 영혼, 애정, 도덕을 도입하고자 한다.
집안에 빵이 한 조각밖에 없는데 어머니와 아이들이 모두 굶주려 있다면, 그들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다…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 사이에 ‘적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빵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힘이 센 어머니가 빵을 차지해서 먹어버리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적개심을 품고 서로 바라보며, 이익을 얻기 위해 폭력이나 교활한 책략을 쓴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이상한 경제학’에서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바람직한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본다…다시 말해 경제학의 법칙은 늑대(타인)와 늑대 간의 먹이다툼이 아닌, 애정에 바탕한 ‘가족 간의 비즈니스’로 새로 정의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탐욕과 이기심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용주가 고용인들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아들을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용인이 되었을 경우 그 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생각해 보고, 지금 고용인들을 그렇게 다루고 있는지 엄숙하게 자문해 보는 것이다…그때 공장주는 부하 노동자들에게도 자기 아들을 다루듯이 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경제학이 이 논점에 줄 수 있는 효과적이고도 진정한 그리고 실제적인 단 하나의 철학인 것이다.
경제학은 “모든 물건을 모든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물건을 적당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
러스킨의 ‘이상한 경제학’은 “보통의 상업적 경제학자가 말하는 부자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여러분의 이웃을 계속해서 가난 속에 방치하는 기술”을 뜻하며 “자기만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불평등을 확립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오늘날까지 상업이라고 불러온 것은 사실상은 상업이 아니고 사기”였으며, 거기에 봉사해 온 근대 경제학은 “암흑의 학문이요, 가짜 학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정의를 내려야 할 마지막 용어는 ‘생산물’이다…가장 양질의 노동도 목적에서는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농업처럼 건설적일 수도 있고, 보석세공처럼 무효적일 수도 있고, 전쟁처럼 파괴적일 수도 있다.
자본은 생명에 유용한 어떤 물건을 공급하느냐, 생명을 보호하는 어떤 구조물을 짓느냐?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자본 자체의 증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 자본은 아예 없느니만 못하다.
마태복은 20장의 포도밭 주인 이야기.
작년부터 한 기독교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 사태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뜻’이라는 포도밭 주인의 지혜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뒤늦게 온 일꾼에게도 같은 임금을 보장해 주는 포도밭 주인의 원칙에 비추어 본다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서도 차별을 받아야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는 불합리한 처사다.
#문학이 사회적 임무에서 자유로워진다면?_근대문학의 종언/가라타니 고진
결정적으로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거나 투신하여 스스로 제도가 됨으로써, 사회적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뗴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
하지만…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한 사람만이 그랬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
#지식: 발생과 진화의 계통수_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다치바나
우리나라 작가들은 공부나 독서를 멀리하면 할수록 ‘순수한 예술’이 내면으로부터 솟구쳐 나온다고 믿는 그롯된 경향이 있다…보다 중요한 것은, 시나 소설이 문필의 대도라고 맹신하고, 시인이나 소설가 말고는 저술을 상상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우리나라의 지식 풍토다.
#인쇄 문화와 책 문화_책은 죽었다/셔먼 영
‘기능적인 책’과 ‘안티 책’, ‘책’
안티 책은 인쇄 문화의 막장인 ‘찌라시’로, 그것은 책 문화에 들지 못한다.
‘책의 죽음’은 책 외부의 미디어 변화 때문에 벌어지기도 하지만, “책은 출판계가 사상이 아닌 물건을 파는 데 열을 올리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고 말하는 애서가의 내부 고발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읽기의 방식은 삶의 방식이다_천천히 읽기를 권함/야마무라 오사무
독자의 이해력과 책의 난해도가 빚어내는 상호조합이 독서의 속도이다. 그러니 이상적인 독서의 속도란 일반화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문명 세계를 향한 도전_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다니엘 에버렛
지은이는 피다한 언어는 습득했으나, 선교사 역엔 실패했다…뜻밖의 결말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을 ‘서프라이즈 엔딩’이라고 하는데, 상아탑의 인류학자와 언어학자에게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이 책이, 바로 그것을 준비했다. 아마존에서 30년 생활을 마친 뒤, 지은이는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됐다…그의 학문적 치열성이 단순화의 극치인 ‘유일신’ 내지 ‘기독교적 진리’와 결별하게 이끌었다. 진짜 장엄했다!
#자꾸 헌책방을 찾게 되는 까닭_사막의 꽃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온 값 주고 사라고 했다면 결코 사지 않았을 것이다…헌 책방에서는 일반 서점에서 보지 못하는 책을 보게 하고, 손에 쥐게 만든다. 자꾸 헌책방을 찾게 되는 까닭이다.
#소외된 자들의 슬픈 관음증?_움베르토 에코와 축구/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
만약 당시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름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똑같은 환자다. 그럼에도 각종 미디어와 스포츠 산업은 그것을 당연시 한다.
베이징 올림픽 3일째, 모 언론사는 “금,금,금,..모처럼 국민 웃었다”는 기사를 냈지만, 앞으로 한국 선수단이 획득하게 될 메달 수와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독도 영유권 논쟁,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고유가와 고물가에 따른 생활고 등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열정적인 스포츠 잡담가들에게 에코가 달라준 명예스러운 딱지는 “유아론의 최고 정점”, 다시 말해 아직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얼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민주주의는 선거가 아닌 추첨?_선거는 민주적인가/버나드 마넹/후마니타스/2007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시민들을 대표하는 평의회 의원에서 최상급의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일찌감치 대의제를 시행했던 아테네에서 실제로 행했던 것은 선거가 아니라 추첨이었다는 것. 그들은 선거를 민주주의의 덕목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했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_신화는 없다/이명박
자서전? 내가 유심히 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책을 읽었고, 둘은 학창 시절의 그에게 영향을 준 스승의 유무였다…”나는 틈이 나면 어디서나 책을 읽었고 사색에 잠겼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책을 읽고서, 이 자서전의 주인공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도통 알아 낼 수 없다.
학창시절에 영향을 주었거나 스승으로 여기고 따른 교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명박을 키운 고 정주영 회장의 인물평 “이 사람은 쓰려뜨려 목을 밟고 있어도 항복하지 않을 사람이오”란 말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혼자 해낸 그였으니, 어디 항복할 데도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화는 없다』를 가장 열심히 읽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자서전의 주인이다.
#거짓말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다_거짓말하는 사회/볼프강 라인하르트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200번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디어 민주주의에서는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그래서 선거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잊혀질 수 있는 공약이 필요”한데, 그런 ‘거짓 공약’ 가운데 “실업 극복이라는 약속은 이제 모든 정치가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되었다.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즉 세계 자본주의하에서 실업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실업률을 제한적으로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가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한국형 정경유착의 원흉_박정희의 사상과 행동/최영
박정희와 그의 훈타들은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떡고물 주듯 시여할 ‘엿’이 필요하게 되었고, 거기에 필요한 ‘검은 돈’을 재벌이 조달했다. 이리하여 “상인과 기업인의 권력지향성이 한국인의 범 패러다임의 커다란 속성”이 되어버려 정경유착은 겉잡을 수 없게 됐다.
#국가 운동으로 잊혀진 진실_그들의 새마을운동/김영미
BBK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 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 부 이상 팔리고 그 사건이 시중의 화제가 되고 컬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가 필요해』 같은 소설이 100만 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도 있다.
청도 답사를 통해 자생적인 농촌 개발의 성공 사례를 알게 된 것이 “박정희 정부로서는 서광”이나 같았다. 이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에너지를 국가적으로 동원해 내 그 지점에 박정희의 영도력”이 있었던 건 맞지만, 국가가 새마을운동을 전유하면서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마을과 새마을을 만들어간 농촌운동가들이 존재”했던 사실은 잊혀졌다.
##나는 타인이며 타인은 동시에 나다
#한 번도 포착되지 않은 풍경_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나쁜 책’을 권해도 무방한 시절은 없다
#애국자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느니_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참여연대가 UN안보리에 보낸 ‘천안함 서한’으로 소란스럽니다. 청와대와 정운찬 총리는 물론이고, 보수언론과 자칭 우국(?)인사들은, 참여연대를 연일 성토하면서 ‘너는 누구편이냐’고 윽박지른다. 소로가 답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양심을 가지고 국가에 이바지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고 따라서 보통 국가로부터 적으로 취급받는다.
#저항만이 대안이다_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시장·대학·국가’라는 피라미드화된 억압의 3각동맹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다양한 욕구 중 하나인 ‘배움’의 가치와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고 말한다…김예슬의 고발은 ‘자퇴’라는 충격을 동반해서 ‘낯설게’ 들렸을 뿐, 실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처럼 뻔히 드러난 거였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내면화한 복종적인 신민(臣民), 즉 바보스러운 영혼 없는 인간을 길러냄으로써 영속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국가,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한 자본, 그리고 자기 자식이 땀 흘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 이 3자가 결탁하여 이 형편없는 교육체제가 성립되었다”
전면적인 불복종과 저항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아이들이 이 교육체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배움이란 부정과 저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미친 놀음’을 부정하고, 저항으로 분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마지 않는다.(이계삼)
다시 대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말하겠다.
저항이 대안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기에. 젊음은 저항이고 삶은 저항이기에…그리하여 나는 기꺼이 억압 받고, 상처 받고, 저항할 것이다. 그 저항의 길로 내가 먼저 걸어갈 것이다.(김예슬)
#사라지지 않을 ‘책 문화’를 위하여_‘나쁜 책’을 권해도 무방한 계절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80선’? 사서들이 잊지 말아야 할 매년 우리가 맞게 되는 여름은, 인생의 덤이 아니다. 여름에도 우리는 먹고, 사랑하고, 싸움 하고, 죽는다. 여름이라고 불량식품을 가리지 않고, 해프게 사랑하고, 건성으로 싸우고, 개죽음을 환영할 사람은 없다. 여름에도 생은 계속된다. 다시 말해 쓰레기 같은 책을 권해도 무방한 계절이란 없다.
읽은 책이 세상이며, ’읽기’의 방식이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