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기행1-중부권. 김재일. p326
자연과 사람의 새로운 만남
생태기행이란 시민들이 자기 고장이나 다른 지방의 자연생태계를 탐방하는 작은 여행이다. 그러나 생태기행이 담고 있는 의미와 효과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생태기행은 생명활동이다. 생태기행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물질문명의 현대인들에게 생명체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준다. 생명현상에 대한 무지와 몰지각을 깨우쳐준다.
생태기행은 동맥경화에 걸린 학교교육을 보완해 주는 교실 밖의 환경교육이다. 환경교육에 수동적이기 쉬운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교육이다.
생태기행은 즐거운 환경운동이다. 생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평면적 환경운동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생태현장을 찾아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배운 것을 토대로 생태계를 보전해 가는 환경운동이다…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는 자율여행이다.
이 책의 글들은 그 동안 나 혼자 또는 여럿이서 다녀온 곳에 대한 ‘나의 자연유산 탐방기’이다
#신이 깃들인 마을숲_원주 서낭숲
당나무가 있는 마을과 없는 마을은 그 느낌이 크게 다르다
신의 나무, 서낭숲.나무는 이 지상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가장 수면이 길고 종자를 가장 많이 맺는 생명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따라서 하늘의 뜻이 나무를 통해 지상으로 강림아고 지상의 온갖 기원들이 나무를 통해 하늘로 올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늘과 지산을 연결해주는 영혼의 안테나요, 사다리다…우리 시조가 신단수(神壇樹) 아래서 나라를 열었듯이 당나무 역시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의 우주수(cosmo-tree)였다.
치악산국립공원 남쪽 끝에 있는 신림神林. 신들의 숲, 말그래도 신이 깃들이 숲마을이다.
옛날에는 호랑이를 산신이라고 했다. 산신을 받는는 서낭집. 그 서낭집을 감싸는 숲이 있었다.
서낭집은 망가지면서 봄이면 천렵꾼들이 몰려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운탕을 끓이고, 여름이면 행랑객들이 찾아와 니나노판을 벌이고, 가을이면 단풍객들이 쉴새없이 몰려들었다…예전에 울창했던 숲도 구멍가게와 남새밭이 차지했고, 숲이 있었던 터에는 여름이면 행랑객들이 야영텐트를 친다.
모든 생명체는 생물학적인 가치말고도 문화적인 가치라는 게 있다. 이 서낭숲이 그 한 예이다. 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전형적인 온대성 낙엽활엽수림’이란 이유였다. 그러나 이 숲은 그러한 나무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민족의 정서와 신앙이 깃들인 신림神林이다. 그리고 이 숲이 서낭숲이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 지켜졌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숲을 지켜온 문화적인 바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정신문화의 잣대로 대자연을 보는 좀더 깊은 안목이 필요하다.
#야생화 융단길_오대산의 가을꽃
흙살이 도타운 육산肉山의 열린 식물원
오대산은 가운데 중대를 중심으로 동대,서대,남대,북대가 오목원을 그리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섯 장의 연꽃잎과도 같은 배치이다.
오대산은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모든 식물을 볼 수 있는 열린 식물원
관대걸이 옆에 이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백두산과 개마고원에서나 볼 수 있는 북쪽 나무, 남한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다. 그러나 아무도 눈여겨봐 주지 않는다.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백두산 호랑이가 예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 놀랍고 반갑지 아니한가.
북대암. 고려말 나옹선사가 이 절에 있다가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왕사가 되었다. 그러나 속세로 내려가서 사는 게 쉽지 않았던 모앙인지 이런 시를 남겼다.
청산은 나르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가을 숲속의 오케스트라_계방산 가을곤충
#산 높고 골 깊은_내린천의 우리 물고기
생태맹?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무지無智를 일컫는다. 그러나 문맹이니 컴맹이니 하는 용어들의 의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생태맹은 자연생태계에 대한 단순히 지식결핍이 아니라 자연생태에 대한 감수성 결핍을 의미한다. 자연의 중요성과 신비함, 아름다움, 오묘함을 느끼지 못하는 감성의 결핍상태를 말한다. 이런 생태맹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태기행이다.
생태환경을 알아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세심한 관심이 없으면 안 된다. 바로 이 같은 관심이 우리의 환경보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한준, 조선 정조 때 문장가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강_영월 동강
도보여행은 자연 비경에 대한 인간의 예의
생태관광, 과연 대안인가?
래프팅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환호성에 동강의 터줏대감들이 자꾸만 밀려난다. 여기서 우리는 생태관광의 허구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동강이 생태관광지로 개발되고 생태관광이 대량 관광으로 이어지면, 길을 닦아야 하고 주차장이며 숙박시설이며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그런 식의 동강 보전법이 얼마나 가겠는가. 생태관광은 영월댐보다 더 빨리 동강을 망가뜨리는 길이다.
#한반도 자연사의 비밀을 간직한_태백 통리협곡
미국의 그랜드캐년? 우리나라에도 고생대 백악기 협곡이 엄연히 존재한다. 강원도 태백에 있는 통리협곡이 바로 그것이다.
산맥? 일제의 잔제. 조선 중엽에 나온 『산경표(山經標)』 에는 ‘백두대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1대간 13정맥이 우리 땅의 기본뼈대.
#분단의 동토를 넘나드는_철새들의 피안 철원
#슬픔과 경이의 환상세계_삼척 석회암 동굴지대
#단풍은 내려가고 연어는 올라오고_연어의 고향 남대천
연어축제? 생명을 잉태하는 산란장에서 벌이는 살생의 잔치. 연어 맨손잡기와 연어구이
#들국화빛으로 물드는_주천강변의 가을
#속리산 뒷그늘의 아홉 돌기_화양구곡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미선나무. 세계적으로 딱 한 종밖에 없다. 그것도 우리나라에만, 괴산땅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이다. 그런데도 식물학자들 외에는 눈길을 주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서글픈 일은 미국인들이 이 미선나무를 몰래 훔쳐다가 자기네들끼리 사고팔고 한다는 사실이다.
풍광이 빼어난 화양구곡. 이황이 선유구곡이라 이름을 붙인 곳. ‘곡’은 유교의 이상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굳이 자연을 찾아 명상을 하고 학문을 했던 것은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쾌적하게 해준다는 뇌파 때문인 것이다.
지구의 생물계는 동물계·식물계·원생물계로 크게 나뉜다. 식물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제조하는 생산자라면, 동물계는 합성된 유기물을 섭취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소비자이다. 그리고 동·식물의 유기물을 무기물로 분해하여 식물에게 돌려주는 균류가 원생물계이다. 버섯이나 곰팡이 같은 균류는 생물계의 분해자이며 환원자인 것이다. 균류는 엽록체가 없어 대개 죽은 동·식물의 유기물로부터 양분을 얻어 살아가고 번식하는데, 특히 버섯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생태계의 청소부이자 환경운동가 몫을 톡톡히 해낸다.
버섯은 낙엽이나 썩은 나무 따위를 분해하여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중간자이며, 한편으로는 죽은 것들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얻어 또 다른 생명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래서 버섯을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의 꽃이라고도 한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름답고 기인한 일이다. 자라는 자라알만 낳고 고슴도치는 고슴도치 새끼만 낳는다. 옛적 천년만년 그래 왔고, 앞으로 천년만년 그럴 것이다. 자연의 가치는 바로 그 절대성에 있다. 만약 자라가 땅강아지도 낳고 새도 낳고 말미잘도 낳는다면, 우리는 굳이 자연 앞에 이렇게 목매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명을 가진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젠가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언젠가 인간으로 다시 윤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저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나 다른 종의 밥으로 살다가 단지 소모품으로만 끝나고 만다면 모든 생명이 너무 허망하고 무의미하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 굳이 환경을 보전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꽃보다 아름다운_월악산 단풍
“여기는 평당 얼마씩 가요?”
그게 제 땅이겠는가. 그 땅값에는 민들레 몫도 있고, 메뚜기 몫도 들어 있지 않은가. 심지어 살모사와 땅 속의 지렁이 몫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중장비를 끌고 와 깍고 밀어버린다…개울가에 자기들 마음대로 평상을 놓고 개울물을 막아 물을 가두고 고기를 굽고…온갖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다 한다.
억만금을 주고 그 땅을 사도 그건 무위자연법으로는 불법무단점용에 불과한 것이다.
#물이 빚어낸 신비의 동굴세계_온달동굴과 노동굴
동굴이 많기로는 단양이 으뜸이다. 온달동굴, 노동동굴,고수동굴,천동동굴과 같은 개방동굴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미개방동굴이 있다.
물론 박쥐는 도시에서도 관찰된다. 도시의 박쥐는 주로 오래된 집의 컴컴한 공간에서 살지만, 옛집들이 점차 사라지고 틈이 없는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이제 도시 박쥐도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틈이 없는 시멘트 문화는 생명체들을 원천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틈은 곧 생태계의 숨통이다. 박쥐가 깃들이고 거미가 숨어들고 굼벵이가 꿈틀거리는 생태도시가 더없이 절실한 것이다.
#우리소나무를 찾아서_안면도
생태기행은 문화유산이나 역사유적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기행과 다르다…생태기행은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시장철 언제나 기행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혹은 지나가던 등산객이 희귀종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무심코 노랑붓꽃을 꺽어버리면, 그것으로 그 희귀종 꽃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다시는 꽃 피워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생태기행을 맛을 즐기려면? 생태기행은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저것 보고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 빨리 걸으면 아름다운 새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삼동을 견뎌낸 봄풀꽃들도, 곤충들의 신비한 짝짓기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봄을 기다리는_계룡산의 겨울숲
낙엽은 나무의 밥이며 옷이다. 사색하며 걷기에는 오히려 겨울산이 제격이다. 잎을 떨군 겨울숲은 모든 욕망을 스스로 벗어버린 수행자와도 같아서 우리를 사색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앙상해지 나무만으로는 그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을 보고 이름을 알아낸다. 낙엽은 나무의 이름표이다.
낙엽은 나무의 옷. 겨울이면 발이 시려서 잎을 떨구어 자기 발등을 덮는다. 뿌리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또 비바람에 흙이 씻겨 내려가는 것도 막아준다. 땅이 마르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물도 저장해 준다.
낙엽은 포대기. 떨어진 씨앗들을 알맞게 덮어 얼거나 마르지 않게 감싸준다. 그런가하면 곤충들의 집도 되고, 적에게 쫓기는 곤충들을 숨겨주기도 한다. 톡토기, 응애, 지네, 노래기, 노린재, 귀뚜라미, 달팽이, 거미, 지렁이, 딱정벌레…이 모두가 낙엽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이다.
#노랫가락으로 더 익숙한_칠갑산
#생태기행이란 무엇인가
생태기행이란 시민들이 자연생태계 탐방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작은 규모의 교육여행이다.
생태기행은 대자연을 교실로 하는 열린 교육, 교실 밖의 교육이며 자연을 즐기는 쪽보다 배우고 보전하는 쪽에 초점을 맞츤 지적이며, 비판적인 환경운동의 한 방편이다. 동시에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자연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현장학습, 심신수련의 방편이다. 또 자연과 산업, 보전과 개발의 심각한 갈등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모색이다.
생태기행은 자연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대량관광을 배제한 작은 여행이자 생태보전이 잘된 지역뿐 아니라 오염되거나 훼손된 지역도 탐방하는 열린 여행이다. 상업적 휴양과 오락성 레저를 배제한 도덕적 여행이며, 적제 쓰고 짧게 다녀오는 절약형 여행이다. 지역문화유산과 연계성을 가진 향토여행이기도 한 생태기행은 도농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 도농일체 여행이다. 한마디로 자연풍광만 즐기는 자연관광이나 레저성이 강한 생태관광에 대한 대안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