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선물. 존 세이무어. p255
1961년 영국 출간된 책? 반세기도 더 지난 이야기? 오히려 이 책은 ‘지금, 여기’에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응용하여 실천할 일을 더 많이 던진다.
#정착하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집은 보이지 않았다. 어려움은 또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는 것.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자급하겠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품은 적이 전혀 없었다. 직접 채소를 길러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는 자급자족하게 되었다.
내 수입은 내가 맡아서 하는 일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인터뷰, 글 쓰기…하루를 다 쓸 수 있다면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룸에서는 그런 일이 덜 중요해 보였다. 땅을 더 갈기 시작했다. 덤불과 잡초를 없애고 땅을 갈았다. 정원 가꾸기 책에 적힌 대로 식물을 심었다. 아주 좋았지만, 수입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을로 가서 30실링어치 고기를 사는 데에도 두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기도 직접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땅과 밭에 모두 이름을 붙였으며 늘 그 이름을 썼다. 브룸에 있는 다른 구역에도 각각 적절한 이름을 찾느라 애썼다. 제대로 모른 채 잘못 이름을 붙였다가 나중에 바꾸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거위를 팔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판 적은 없다.
한번 작물을 팔기 시작하면, 도둑과 사기꾼과 상것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세계에서는 숨을 쉬기도 힘들다. 농부가 0.25페니에 판 양상추가 상점에서는 오래되고 시들고 볼품없는 채로 10펜스에 팔린다. 우리는 제발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목적에 치우치지 않은 가축이 좋다…지나치게 생산적이지 않는 가축.
우리는 날짐승을 집에서 잘 기르는 법을 이미 터득한 터였다. 그 방법이란, 그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우리는 병 걱정 없이 산다. 병에 걸리지 않는다.
동물을 직접 잡기는 싫고 다른 사람이 잡은 동물은 먹는 것은 이중적인 행동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처럼 작은 땅에서 가축 없이 자급자족하며 사는 실험을 해 보고 싶다. 나도 인간이 채식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젖소를 들이다
집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꽤 쉽다.
나는 땅을 갈고 또 갈았다…돼지는 우리보다 훨씬 땅을 잘 판다. 게다가 거름도 주고, 잡초도 먹어 없애고, 그러면서 저절로 큰다.
이런 요령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직접 깨쳐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깨쳤다…그러나 당시에는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다. 일거리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지만 아무 결실도 못 보았을 때가 아주 많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시골에 살면서 과일을 사서 먹어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돈벌이가 우선순위에서 맨 뒤였다…당시에는 우리도 몰랐지만, 우리 생활은 산업 경제에서 농업 경제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가 외딴곳에 살아서 어쩔 수 없이 농업 경제로 들어간 것이다.
아내는 못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만큼 잘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 바, 어려운 일에 진정한 스승은 딱 한 사람뿐이다. 바로, 절실함이다. 내가 브라우니의 젖을 짤 수 있었던 것은 ‘젖을 짜야 했기’ 때문이다. 소젖 짜는 법을 배우는 데 다른 길은 없다…젖을 짜는 사람과 젖소, 둘만 있을 뿐이다.
직접 우유를 짜서 먹는 것의 경제성은 아주 모호하다. 나는 세상 모든 회계사에게 한 번 계산해보라고 부추기고 싶다. 우선, 회계사는 노동력이 가장 크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즐기며 하는 일을 그만 두고 그 노동의 임금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바로 거기서 회계 법칙이 다 무너져 폭삭 주저앉는다…내가 광고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면, 나는 시간당 10실링이나 1파운드가 아니라 1,000,000파운드를 받고 싶을 것이다. 1,000,000파운드도 최소 금액이다. 나는 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게 유한한 삶 가운데 한 시간은 그만큼 값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브라우니의 젖을 짜고 있을 때 나는 내 삶의 10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 10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간의 가치를 무엇으로도 측정하고 싶지 않다.
요즘 농촌신문에서는 자급자족을 하지 마라는 기사를 끝없이 내보내고 있다. 농부를 그저 단순히 돈을 버는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헛되이 버리는 게 없어야 궁하지 않다.
형편없는 거래? ‘영리의 바다에서 헤엄치려 하지 마라’
저 똥을 다 어쩌지? 정원과 밭을 넓혀야 했다. 브라우니 때문에 우리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먼 길을 가게 되었다. 자급자족과 농사로 향하는 길.
#채소왕국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이유는 ‘유별나고’ 싶어서가 아니다…그저 단순히, 우리가 작은 땅이나마 거기서 농사를 짓는 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 우리 먹을 것을 키우기 위해서다…우리가 여기서 살기 시작할 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다. 화학비료가 아닌 천연비료로 키운 음식이 훨씬 맛있다는 사실이다.
팔려고 채소를 재배하려면, 틀림없이 화학비료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을 것만 키우니까 기준을 높게 세운다.
우리는 채소 정원에 굳이 이런저런 일을 하지 않는다. 알아서 자라게 둔다. 해마다 풍작인 작물이 있는가 하면 흉작인 작물도 있다. 그래도 어느 작물이든 먹을 만큼은 늘 나오고 모두 맛볼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대로 농약을 뿌리면 큰 돈을 써야 할 테고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사실, 아주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이듬해 같은 자리에 똑같은 작물을 심지 않고, 다양한 동물의 똥으로 만든 거름을 충분히 준 덕분에 우리 작물이 병충해에 강한 것 같다.
손은 참 많이 간다. 먹을 채소 몇 가지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전부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가 키우지 않는 채소는 먹지 않는다. 그래서 밭도 넓어야 하고 땅도 많이 일궈야 한다.
잡초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마다 새로 나는 한해살이 잡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작물 사이에 잡초가 자라도 그저 내버려둔다. 그러다가 한순간 보기 싫어지면 괭이나 손으로 뽑는다. 뽑은 잡초는 그대로 땅에 두면 부엽토가 된다.
#집으로 돌아가자
이곳 브룸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나 배관공이 되어야 한다. 배관공뿐인가, 목수, 대장장이, 푸주한, 칠공, 쓰레기 운반인도 되어야 한다.
#돼지
우리는 설거지할 때 쓰던 세제를 끊었다. 세제는 돼지한테 해로울 테니까. 그러자 애당초 세제를 쓰지 않는 것이 여러 모로 훨씬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제를 쓰지 않아도 그릇은 깨끗이 씻겼다. 새로 산 에이 레인지에 늘 끓는 물이 있으니 뜨거운 물에 설거지하면 깨끗했다. 집안 하수가 모이는 구덩이에서 악취도 사라졌다.
이런 이유들로, 갖가지 작물과 가축을 한꺼번에 키우는 ‘혼합 농법’이 좋다. 어떤 동물에 기생하는 기생충은 다른 동물에 기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축의 자리를 바꾸면 된다…그런데 이것이 세상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 되었다. 영국 정부, 농축산에 쓰이는 기구와 비품회사들, 언론 등 모두가 농촌에 ‘특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가지 작물 혹은 한 가지 가축. 약해진 식물과 동물이 병충해와 싸우게 하려면 농약을 점점 더 써야 하고, 양분을 잃고 척박해진 땅에는 화학비료를 점점 더 써야 한다. 이것이 농업의 산업화, 혹은 과학화다. 자기 좁은 분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농법이다. 물론 당장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땅과 가축과 사람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아무도 모른다.
#땅
이제는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트랙터는 쓰지 않았어야 한다. 돼지를 풀어서 해마다 조금씩 땅을 갈았어야 한다.
#수확한 것 저장하기
상점에서 구입한다면 사시사철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서 먹으려면, 매일 아침 8시30분까지 출근하여 갑갑한 사무실에서 종일 일해야 한다.
8시30분까지 출근하기 싫으면, 직접 길러서 저장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 저장은 겨울에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돼지를 잡는 때부터.
#기구와 도구
우리 집에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에 필요한 도구가 다 있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단순한 삶을 살고자 정말 애쓰기 시작하면, 복잡한 삶으로 들어서게 된다! 아주 많은 도구와 기구가 없다면, 넓지 않은 땅에서 먹을 것을 직접 거두어 가공하고 저장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갈 수 없다. 농경사회에서는 이런 도구를 적어도 조금은 물려받기 마련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장비가 없이 살면서 자급자족했다…소로가 월든에서 산 기간은 두 해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소로에게는 다른 식구가 없었다. 거의 콩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을에 있는 학교에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만 다섯 살 딸에게 콩만 먹자고 타이르려 해보라. 그리고 브룸에서 우리 부부의 삶과 일은 무척 힘들다.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일해야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소로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는 일로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소로에게는 음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총각이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을 것이다. 나는 소로의 존재 양식이 더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각으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존재 양식을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을 총각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여하튼 이것은 아주 철학적인 문제다.
사회와 동떨어진 이곳 브룸에서 살다 보니 가치관이 크게 변했다. 사람들은 최신 기구와 제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만 우리 가족은 이제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 부부는 공산품을 살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만들었을까, 이것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요즘 사람들은 가령, 버밍엄의 공장 노동자가 프랑스 농부보다 ‘더 편하게’ 산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 가정이 과연 맞을까? 그리고 ‘더 편하게’ 사는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것이 더 나은 삶일까? 더 단순한 삶일까? 더 건강한 삶일까? 더 영적으로 충만한 삶일까?
나는 이런 문제를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을 굳게 정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얻은 음식
우리는 명아주를 먹는다. 어리고 즙이 많을 때 따서 살짝 데치면 아주 맛있는 시금치 같다.
야생 과일은 무엇이든 한창일 때 수확한다. 이런 선물을 마다하면 불손한 사람이다.
#말
게다가 트랙터는 소음이 엄청났다. 나는 일하면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나한테는 새소리가 아주 중요하다.
풀은 트랙터에 들어가는 기름보다 값싸고 기름처럼 환율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그렇다 말은 풀을 먹고 움직인다. 오로지 풀만 먹고, 단 말에게 너무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 우선이다. 말을 타고 달릴 수고 있다. 술집에 갈 수도 있다. 술집에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말은 길을 안다.
우리가 자동차를 처분한 뒤로, 핀토는 밭일하는 말 이상의 역할을 아주 많이 맡고 있다.
#근황
사실, 시골에서 새 집을 짓는 사람에게 초가지붕은 엄청나게 장점이 많다.
초가지붕은 아주 값싸다. 다른 지붕의 서까래보다 훨씬 가벼워도 된다. 이것은 아주 큰 장점인데, 생나무를 깔아도 되고, 더 나아가서 톱질하지 않는 통나무를 깔아도 되기 때문이다. 숲으로 가서 곧은 나무를 베어서 다듬은 뒤 곧장 지붕 서까래로 올려도 된다. 초가지붕을 쓰면 난방비를 반으로 줄일 수도 있다. 또한 시골에 있는 초가지붕은 보기도 좋다. ‘우아한’ 초가지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초가지붕은 지나치게 과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조금만 배우면 직접 만들 수 있다.
콤바인과 짚을 묶는 기계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농장마다 좋은 밀짚이 많았다…그러나 이제는 농촌에서 최소 임금보다 아주 높아져서 ‘긴 밀짚’ 초가지붕은 경제적으로 난센스다.
사람들은 초가지붕이 경제적이고 훌륭한 지붕 재료임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앞에 굶주림은 없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끈질긴 잡초들과 수많은 힘든 일들이다.
#바깥세상과 거래하기
나는 아내에게 경제적인 관점을 가지도록 수차례 말해 보았다. 그러나 아내는 경제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다.
“이런저런 곳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면 20기니를 벌 수 있어. 20기니로 치즈를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데!”
“나는 치즈 만드는 게 좋아.”
그것으로 끝이다. 경제를 주제로 삼은 이야기는 더 진전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지루하게 사는 이유는 경제성을 따지는 대화에 늘 귀를 기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치즈 500그램을 4실링에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만든 치즈는 500그램을 4실링에 살 수 없다. 우리 집 치즈는 파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세상과 거래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데도 날마다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가능한 한 우리는 사람이 만든 물건만 산다…하지만 그런 물건도 가끔 사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지나치게 지배되지 않도록 유념하는 것이다. 현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차를 몰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말 좋은 목적에 필요하다면 자동차를 운전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발전’이라는 오류적 개념과는 전혀 상관없어야 한다.
우리가 바깥세상과 거래하는 돈의 대부분은 내가 글을 써서 번다. 여기에 또 다른 균형이 필요하다…자동차가 있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돈은? 산업 사회에서는 아무리 작은 거래를 하더라도 산업 경제에 한 발을 더 내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의 농업 경제에 맞추어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제 우리는 집에 조용히 머물러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점점 더 크게 확신하기 시작했다.
전기는 또 다른 타협이다.
자립하는 데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에이지에이레인지를 산 뒤로 우리는 석탄을 사는 데 얽매였다. 큰 벽난로를 두었다면 연료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나가서 나무를 해 올 기운만 있으면 땔나무는 여기 늘 충분하다.
스물 한 살의 제레미. 제레미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이제는 자신도 장인이 되었다…목수, 석수, 가구장이 등등 손으로 정교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수요는 과거에도 결코 아주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수요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것이다….그저 큰 돈을 버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훌륭하고 정직한 삶을 버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의 시간에 맞추어 살며 정직하게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농사를 지어서 일부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행복하다. 언제라도 자기가 벌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불안하지 않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되도록 우리와 비슷한 괴짜들한테서 사려고 애쓴다. 그 사람들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물물교환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그래도 생각해야 할 문제는 있다. 우리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왔다…농부로 살기 때문에 이런 일도 계획할 수 있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종일 일하면, 다른 일을 꿈꿀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괴짜’라 여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는 대단한 괴짜다. 그런데 괴짜로 사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정신병동 창 너머로 거리에서 이상하게 행동한느 사람들을 내다보는 정신병자처럼, 우리는 종종 말하고 싶다.
“여기로 들어와!”
#13년 뒤
내가 깨우친 바는, 이런 삶을 혼자 살아가려 시도한 것은 실수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 이런 생활이 ‘나한테는’ 맞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사는 것 같다. 건강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네 아이는 늘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나는 의사 이름도 모른다. 해마다 받는 치과 검진으로 식구들 모두가 한꺼번에 치과에 갔는데, 이가 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산업 사회의 잡동사니와 기계를 뿌리칠 권리가 있다. 사람들이 그런 잡동사니를 생산하는 큰 공장에서 일해야 하고 규격화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삶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도록 인간이 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오리도 비좁은 철조망 우리에서 사육되며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괴짜’로 살아온 18년 동안 우리는 자동차, 노동력, 건강에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정부와 소위 ‘경제학자’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단계적으로 없애려 애쓰고 있다.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업 비즈니스맨’에게 땅을 내놓고 도시로 가도록 떠밀리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정부는 길을 잘못 찾았고, 경제학자들은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경제학자들은 농부를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 왔다.
경제학자는 ‘새로운 현상’을 전혀 모른다. 그 현상이란,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기 위해 농사를 조금 지으면서도 농업이 아닌 직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이런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우리 부부는 책을 한 권 썼다. 자급자족을 직접 경험하며 보낸 18년 세월의 결실이다.
약간의 땅만 있다면, 온대지방에서 생산될 수 있는 음식이나 음료 가운데 자기 땅에서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것은 없다…그 방법을 설명하려고 쓴 책이 『자급자족』이다. 우리는 몇 가지만 제외하고 모두 직접 생산해 왔다.
#안으로 들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조언
도시에서 유용한 기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자기 땅을 직접 찾아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을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 쉽게 바뀌지 않을까. 자기 땅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지면, 정부에서도 그 수요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그 땅의 일부를 뱉어 낼 수밖에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예술가, 장인, 상인, 전문가 등등의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중에서 자신이 먹을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는 그런 생활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우리는 힘든 생활이 좋다. 냉난방이 되는 아파트나 따뜻한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그 지역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외딴 마을에 정착하여 이웃에게 겸손하게 다가가면, 이웃은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웃에게 물어보고 그 대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가족은 그런 질문을 수백 번 던졌고, 늘 현명하고 좋은 대답을 들었다.
농사를 짓든, 가축을 치든, 돼지를 잡든, 술을 담그든, 맥주를 만들든, 말을 다루든, 시골에서 살면서 언젠가 하게 될 일을 하고 싶을 때마다 이웃에게 물어보면 그 방법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즐겁게 알아낼 수 있다. 책을 읽어서 알아내려 하는 것보다 이웃에게 물어보는 게 훨씬 좋다.
나의 다음 조언은, 우리가 했던 것보다 조금 천천히 해 나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너무 빨리 하려 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일은 자연히 다음 일로 이어질 텐데, 우리에게는 그런 기다림이 때로 부담스러웠다.
자급자족하는 생활에서는 지나치게 깔끔히 사는 데에 쏟을 시간이 없다…청결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지식인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에 성공할 수 있다. 단, 스스로를 개조하는 데 지능을 쓸 수 있어야 하며, 시골의 ‘비지성인(그렇다고 해서 지적이지 않은 것은 아닌)’ 이웃과 벽을 허물 수 있어야 한다.
현대적 개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부닥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자신감 부족이다. 예를 들어 젖소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몇 달을 고민할 수도 있다. 젖소를 키우는 법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않다는 사리에 겁먹기 때문이다. 젖소를 키우고 싶을 때 해야 할 일은 나가서 젖소를 구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무지를 이리저리 재기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 그 무지는 젖소가 풀어줄 것이다. 대학교 축산학과에서 몇 년을 공부하며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직접 부닥쳐서 배우는 것이 낫다. 젖소가 어떤 책보다 좋은 스승이다.
그냥 젖소를 구하라.
우리가 깨우친 것을 하나 밝히자면, ‘해내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집 땅의 한구석에는 아직 잡초가 계속 자라는 황무지가 있다. 그래서? 그 잡초를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잡초가 나에게 득을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해를 끼치고 달아나지도 않는다.
우리가 배운 것을 딱 하나만 말하라면, 농부이자 장인이 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