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p 341
소망이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지리산 행복학교로 간다
어느 날 지리산으로 떠나버린 우리들의 친구들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행복학교를 짓는다. 도심 속에서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기는 꽁지 작가는 서울을 떠날 수 없지만 그들이 만든 요절복통, 명랑한 행복학교 엿보기에 빠져드는데…
누구나 도시에 지치지만 아무나 도시를 떠날 수는 없다
“형, 나 글이고 뭐고. 그냥 여기서 이렇게 소주 마시고 바다나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왜 시를 못 쓰는 줄 아니? 내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여기 지리산으로 온 이후로 그게 자꾸 없어져. 그래서 시가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은 말하지. 그럼 기쁜 이야기를 써라. 행복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기쁘고 행복한데 어떤 놈이 시를 쓰겠냐고.”
무감각을 넘어 통증을 느끼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굳이 그들이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으시면 더 좋겠다. 다만 거기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느긋하게 그러나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서울에 사는 나 같은 이들이 도시의 자욱한 치졸과 무례와 혐오에 그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려고 하는 그때, 형제봉 주막집에 누군가 써놓은 시구절처럼,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도시의 삶이 역겨워질 때, 든든한 어깨로 선 지리산과 버선코처럼 고운 섬진강 물줄기를 떠올렸으면 싶다.
그들이 거기서 어떻게 돈 없이도 잘, 그것도 아주 잘, 살고 노는지 저와 함께 지켜보시기를. 어쩌면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의 행복이야기!)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하는 “너무도 쉬운 깨달음”을 얻고 산골로 들어왔다는 버들치 시인
관 값 2백만원! 통장의 잔고가 2백이 넘어가면 그는 느긋해지고 잔고가 그 이하로 내려가면 그는 안절부절 못한다.
“돈이 너무 없어서 거시기 하지요…여기 이거 카드인데 비밀번호 알려줄 테니 가서 다 꺼내요. 그게 내 관 값이긴 한데…”
얼굴도 마음도 키도 피부도 모두 다른 우리를 똑같은 인간으로 찍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도시에서 그 누구도 아니고 오로지 내 자신이 되고자 하는 싸움은 사실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힘겨운 전쟁이다.
“우리의 욕망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좋은 학벌, 많은 돈, 넓은 집. 우리는 이제 다양하게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술과 꽃의 향기가 버무려진, 이루 말할 수 없는 그윽한 향의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처지를 잊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낙장불입 시인
“생각해보면 길을 잃었다고 뭐가 그리 대수일까, 잃어버렸다고 헤매는 그 길도 길인 것을.”
운명이 멈춰선 곳, 나를 안아준 지리산
혼자가 아닌 세상, 다시 세상과 소통하다
그때 나는 배웠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되돌려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만 치유된다는 것을 말이다.
중독이라는 말은 인간이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 집착하는 일을 일컫는 것, 그것이 게임이든 약물이든 술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혹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든 말이다.
이것이 10년째인 올해 끝나기는 할까. 이럴 때 우리가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40년 산사람 함태식 옹, 노고단 산장 현관의 호롱불!-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된다. 장명등,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내비도의 교주, 최도사!
“낮에 해 긴데 놀면 뭐해? 살살 삽질하면 금방 연못 하나 만들고 화단도 만들어. 꽃이 참 예쁘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기에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한다.
“돈 없이 살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었는데 요즘 1년에 돈 1백이라도 생기니 왜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몰라. 언제 다시 다 버리고 빈손으로 벽소령을 넘어야 하는데! 꼭 넘어야 하는데.”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난 사리야! 그냥 내비도!”(천원짜리 메뉴!)
이렇게 당연한 말을 듣는데도 사람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최도사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들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나 보다.
“그저 내비두십시오” 앗, 내비도다!
“보수가 뭔 줄 아니? 잘못된 거 수리하는 게 보수야. 진보는 뭔 줄 아니?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야.”
“최도사, 어쩌면 좋으까이?”
“할머니 그냥 내비두세요.”
“참 용해. 사람 이야기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우편함에 매달린 인감도장! “인감까지?” “내 등 쳐봐야 나올 게 뭐 있겠어?” 결국 소유와 자유는 철저하게 반비례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깨닫곤 했다.
*시인과 친구들은 강가에서 찬 맥주를 마시며 벚꽃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새한테는 한 달만 정성 들이면 평생 내 말 잘들어. 그런데 마누라는 1년 내내 잘해줘봤자 버릇만 나빠지지.”
“..그런다고 지리산이 떠내려가냐 섬진강이 증발하냐? 다 기다리면 오는 법이야. 그렇게 살려면 서울서 열심히 돈 벌지 여기 뭐하러 와 있겠냐?”
아침8시부터 논에 풀뽑기! “아유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도 허네 그려”?
“참 신기허네. 요즘 배운 사람들은 벼를 선 채로 말리네 그려.”
“부지런히 일해서 악착같이 모으려면 서울서 살지 뭐 하러 여기 오냐고. 놀멘 놀멘…그런 사람들이 여기 귀농에 성공하는 거여.”
스발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우리가 진보는 진본가 보네.”
빌딩에서 점심시간이면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고만고만한 도시인
실내에서 하는 운동과 달리 산행이 몸에 좋은 까닭은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근육을 쓸 수 밖에 없는 자연의 불규칙성에 있다
내면의 매력이 밖으로 드러나 자리잡은 40대, 오로지 타고난 것으로만 승부하는 30대
“낭구라 카는 거는 10년 멀리 내다보는 기 아이라, 20년 30년을 내다보는 기라.”
선승이 선방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 그것은 필시 난세이다.
그런데 엄마가 보기엔 너처럼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도 없다. 돈이 있어야 걱정이 생기지.
소풍! “이곳에 온 지 10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시간, 시간이었어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이게 제일 큰 변화더라고요…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팥빙수를 팔고 싶으면 팔고 가게를 닫고 몇 개월씩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나죠. 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누구와도 어울려요. 조선백자처럼요…”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갤러리 길섶 http://www.gilsup.com
소망이 두려움보다 커지는 그날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기차를 탔다.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이 모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악양,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섬지사 동네밴드
생태를 고민하고 환경을 고민하고 귀농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했다
‘내년이면 마흔, 사진기자 생활 16년 동안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단 말인가.’
‘이곳에 와서 참 재미있게 잘 먹고 살았다. 그런데 너무 나 하나만을 위해 산 것은 아닐까?’ -> ‘지리산 학교’ 태동!
사람이라는 존재는 정말 신비롭다. 이런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일어나 해일처럼 덮치며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바람도 아닌 것에 뒤척이기 싫어서 나는 도시를 떠났다’-형제봉 주막집 낙서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