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백승우·유병덕·안병덕·안철환·유정길. p222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
#추천의 글_임경락, 시골교회 목사
유기농산물이 특별히 비쌀 이유가 없다? ‘먹을 자격이 없으면 유기농산물 먹지 마세요’
나는 일찍부터 농사일을 기록해야 한다고 말해 왔고, 나 스스로도 그리 해 오기는 했으나, 백승우처럼 세세히 기록하고 관찰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포장, 유통, 경매 과정까지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놓은 걸 보고 농사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소비자뿐 아니라 요즘 생산자들도 농산물 유통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농사짓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옛 농사꾼들은 글을 몰라 기록할 수도 없었다. 글을 안다고 해도 바쁜 철에 먹 갈고 붓 챙길 겨를도 없었거니와 종이도 없었다…그러니 모두 외워야 했다. 300여 가지에 이르는 씨앗을 어느 때 심고 모종하고 가꾸도 거둬야 하는지, 그 많은 내용을 몸으로 익히며 외워야만 했다.
농사꾼 백승우는 예전에 몸으로만 농사짓던 농부만큼 농사는 못 지어도, 글을 안다는 농부치고는 관찰력이 투철한 편이다…무엇보다도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자기 경험과 소신을 잘 읽히게끔 쓰고 기록했다. 읽고 나서 모두들 중동에서 싣고 오는 기름 좀 때지 않으며, 먹고 짓고 살았으면 한다.
이 책을 통해 유기농 생산자들이 헤쳐 나가야 할 난관 가운데 조금이라도 소비자들이 알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유기농산물, 웬만하면 먹지 마시라!_백승우
나는 우리 농산물 소비자가 고맙다..덕분에 계속 농사 짓고 살 수 있으니 늘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애,쓴,다? 애를 쓴다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 아니라는 거다. 무슨 이유 때문에 ‘고마운’ 마음을 돋우기 위해 애써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따져 보니 왕 노릇 하려는 소비자의 마음을 만날 때마다 속이 불편했던 탓이었다. 그 불편함이 고마운 마음을 삼켰던 것이다.
왕 노릇하고 싶은 사람은 유기농산물 근처에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왕이 나라를 망치듯이 어리석은 소비자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을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왕은 참을성도 없고 제 고집만 내세울 뿐, 신하나 졸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들이 애초에는 왕이었다. 그들은 뼛골 빠진다는 고단한 농사일을 감내하는 농업 노동자이면서 열정에 불타는 사회운동가였고 생태적 각성을 촉구하는 새로운 문명을 예지하는 선각자이고 스승이었다…그런데 점차 운동성은 퇴색되고 사업처럼 유통처럼 변하고 있다. 이런 젠장, 시나브로 또 졸이 되었다.(귀하신 유기농산물에서 흔한 친환경으로)
유기농업이 필요한 이유? (소비자의 건강보다 중요한) 우리 농사꾼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서.
농사꾼이 건강해야 우리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로서는 소비자의 건강보다 농사꾼들의 건강이 우선이다. 소비자 백 명 느는 것은 물론 환영할 일이지만 그보다 농사꾼 하나 느는 게 더 절실하다.
식량자급률 20%?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느끼지 못한다. 수입 농산물을 늘 입에 달고 살면서도 수입 농산물을 먹고 있다고 자각하지도 못한다? 수입해 들여오는 것들이 몸을 살짝 바꿔서 소비자의 눈을 피하기 때문이다. 수입 쌀은 막걸리나 떡, 김밥이나 공깃밥으로 둔갑하고, 수입 밀이나 옥수수는 라면이나 빵으로 과자, 사탕, 짜장면, 피자, 식용유, (수입 곡물사료를 먹고 자란) 쇠고기, 돼지고기, 우유, 달걀, 치즈 등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보인다.
수입 농산물을 수입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수입 농산물을 음식 재료나 식품, 사료 들로 가공하는 대기업. 중소기업이 하면 벌받는 일도 대기업이 하면 괜찮다.
소비자를 잃는 논은 밭으로 바뀐다. 밭에는 채소와 과일을 심는다. 언제나 과잉 생산 상태에 있는 채소와 과일이기에 그 가격의 폭락 역시 예삿일이다. 기후 조전이 좋은 시기에는 무조건 폭락한다. 견디지 못하는 농사꾼부터 차례차례 농사를 접는다. 우리 농업은 이렇게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 가고 있다. 구조조정 당하고 있다.
원리원칙대로 적용해 보자면 유기농산물은 관행 농산물에 비해서 원가가 낮아야 한다.씨앗 값도 안들고 비싼 화학비료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쓰고 제초제도 안 쓰니…
말하자면 유기농업의 기본 원리는 이런 것들일 텐데,
우리는 참 너무나 멀리 있다. 시장 속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밖으로만 향하던 원망의 눈길을 안으로 돌린다. 이게 다 유기농사꾼 때문이다!
길을 잃으며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차근차근 되짚어 가며 미래를 그려야 한다. 이 책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농약을 치든 비료를 뿌리든 우리에겐 농사꾼이 더 소중하다. 관행 농업과 유기농업을 대립적인 관점에서 보는 데에도 반대한다…우리나라 농업이 하루라도 빨리 모조리 유기농업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똑같다. 이 바뀜은 농사꾼이 아니라 소비자의 손에 달렸다고 본다.(윤리적 소비)
#소비자는 어떻게 유기농을 망치는가_백승우
강원도 화천군 산골짝 농사꾼
여느 농사꾼들처럼 애호박 농사를 짓고 나서야 동네 농사꾼 형들과 진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우리 농업의 주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주류이고 변방 중에서도 최고 변방입니다. 그러니 제가 내는 목소리는 농사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 가장 작은 자의 목소리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변화의 시작,변방은 창조의 공간!)
애호박 수확은 큰 이변이 없는 한(그러나 이변은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천 개를 땄으면 오늘도 천 개, 내일도 천 개…날마다 따지 않으면 애호박이 너무 커 버려서 팔 수 없게 됩니다!
태풍에 창고 지붕이 날아가도 일단 애호박부터 따고 나서 창고 지붕을 손보는 식입니다.(노동·시간집약적)
좋은 값을 받으려면 애호박 스무 개(한 상자)가 거의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길이라야 합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녀석들치고 똑같은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농산물이라는 게 식물 아닙니까? 생물이지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본질적인 속성은 다양성입니다….하지만 시장은 늘 반듯하고 적당히 통통하고 적당한 길이를 가진 녀석만 원합니다.
시장이 하라면 해야지 별수 없어요. 그러니 따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시간이 오히려 더 많이 걸립니다.(팔기 위해 중요한 선별작업)
밤 11시, (경동시장) 경매시작
열두 시간 뒤, 마을회관 집하장
김 아무개 ’특’ 38상자 3500원, ‘상’ 5상자 1천 원, 합 13만8천 원.
이 아무개 ’특’ 72상자 4천 원, ‘상’ 13상자 1500원, 합 30만7500 원.
이런 가격은 가상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생산비는 아예 빼고 유통비만 계산해 보면 얼추 비슷합니다…실제 호박 값은 한 푼도 없는 셈입니다.
경매. 다 좋은데, 딱 하나 너무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요. 보통 시장에 내놓는 모든 물건 가격은 파는 사람이 값을 정하는 것인데, 이 구조에서는 농사꾼은 값을 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 데 대한 대가가 너무나 큽니다.(시장원리에 위배?)
애호박 가격, 그 아찔한 널뛰기
최고 기록은 한 상장 20만원, 최저 기록은 500원.
20만 원? 소비자 가격도 아니고 생산자 가격이 그렇다니! 누가 먹어? 그런데 말이 됩니다. 볼까요? 휘황찬란한 백화점의 하찮은 채소? 그런데 이게 문제. 애호박이 판매대에 진열돼 있지 않으면 큰일. ‘애호박도 없는 형편없는 백화점’이 돼버리는 거예요. 하찮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죠…애호박 ‘결품’이 생기면 ‘밴더’라는 납품업자는 바로 잘립니다.
보통 농사꾼이 농사지으면서 겪는 어려움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산지 가격 하락/ 생산량 감소/ 생산비 상승/ 금리 변동으로 인한 금융비용 상승(모두 돈 문제!)
시장,생협 모두 반쪽짜리 시스템? 시장은 물건이 남아서 생기는 가격 폭락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고, 생협은 생산량이 적을 경우 농사꾼의 소득 보전 대책이 없습니다(제대로 된 시스템은?)
추석 채소. 고랭지배추 재배는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농사예요? 제초제나 화학비료, 농약의 도움 없이는 짓기 어렵습니다.
중간상인, 유통기한의 해결사. 도매상인들은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망)
‘인큐 애호박’? 처음엔 높은 값을 받았어요. 가격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다 따라합니다. 그렇게 해서 애호박은 거의 다 인큐 애호박이 됐습니다. 결과는? 값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농사꾼들은 일만 하나 늘었습니다…그런데 이제 이 일을 안 하면 값을 안 쳐 주니까 농사꾼들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합니다. 상황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빠집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보편화된 것도 이런 과정을 밟아서였겠지요.
수입 농산물. 유통기한이 짧은 농산물 장시간 운송을 위해 ‘수확 후 농약 살포’ 허용. 이제는 방사선을 쐰다고 합니다. 명줄을 완전히 끊어 놓습니다. 싹도 안 나고 벌레도 안 생기도 썩지도 않습니다.
유기농산물은 샛길로 간다
농사꾼은 소비자의 안전한 밥상을 책임지고 도시 소비자는 농사꾼의 살림을 책임진다. 서로의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강조하는 일종의 사회운동 성격을 띠었던 생협.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책임으로 시작한 생활협동 운동이, 시장 원리에 맞추어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하는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변모하면서 다시 농사꾼은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에게 이로운 소비를 하겠다고 몰려온 사람들, 농사나 농민이나 농업을 생각해 볼 마음은 조금도 없이 그저 내 생각만 하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농사물의 크기와 모양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크기와 모양이 고른 농산물만 골라서 내놓으려면, 영양 과다 상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단작화는, 여러 작물을 고루 심고, 섞어 심고, 돌려 심어 땅의 활용도을 높이고 병해충을 예방하고 땅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작부(作付)체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유기농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농산물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나친 요구는 그래서 부당하며 유기농을 망치는 일입니다.
농약에 대한 농사꾼의 단상. 가장 큰 피해자는 농사꾼. 직접 농약을 치기 때문입니다(떼약볕에 마스크.비옷 착용?)
‘지역 물건’ 유통의 어려움. “우린 지역 물건 취급 안 해요.”? 쉽게 얘기해서 농사꾼과 직거래 안 한다는 거예요. 생산량 들쑥날쑥. 품질도 들쑥날쑥. 입씨름. 피곤. 힘들더라도 그냥 가락시장 가서 떼다 파는 게 속 편함.
위험 관리가 전혀 안 되는 농가와 직접 맞상대 하는 것 장사를 망치는 지름길. 이런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단계의 중간상이 필요한 겁니다.
‘직거래!’를 외치며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농사꾼, 특히 유기농사꾼이 직접 유통에 뛰어들었다가 판판이 나동그라진 그 많은 사례는 이런 농산물 유통의 전문성과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뼈아픈 시행착오라 할 수 있겠지요(생산보다 힘이 센 유통?)
농사가 힘든 이유. 예상 소득?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유일하게 예측이 되는 소득은 논…사랑하는 아들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묶어 두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대물림되지 않으니 그 명줄이 다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해법은 고소득이 아니고 예측 가능한 소득입니다!
없을 때 안 먹어야 농사꾼이 산다? 소비자가 왕이 아니라 생산자의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면, 부족할 때는 안 먹어야 합니다. 농사는 자연의 일이라 사람 마음대로 안 됩니다…날 때 먹고 안 날 때 안 먹는 게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일입니다.
일반 시장은 물론, 이 생협과 저 생협을 비교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만 골라 하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제대로 책임 생산하지 않으면 우리도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생협 실무자들이 농사꾼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농업의 소중함, 특히 유기농업의 가치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 농업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왜 결품이 나는지, 왜 농산물 상태가 안 좋은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늘 불만을 쏟아 낼 테고, 그 불만 때문에 어디선가는 농사꾼들의 협동이 깨지고 또 어디선가는 농사꾼이 망하겠지요(식물,자연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들 요구가 도매상인들에게 더 큰 것,더 예쁜 것, 더 탱탱한 것을 가져오라고 하고, 도매상인들은 가격을 높게 주고 낮게 주는 방식으로 농사꾼에게, 소비자한테서 받은 뜻을 보냅니다. 그 뜻이란게 매우 단순합니다. 바로 이거지요.
“비료 팍팍 주고, 농약 팍팍 쳐! 잘 골라서 보내.”
발신인 소비자, 전달인 중간상인, 수신인 농사꾼으로 되어 있는 이 단순명료한 체계가 이제는 유기농에도 그대로 옯겨 왔습니다.
“사계절 아무 때나 푸른 채소를 먹겠다”
“내가 주문한 건 무조건 다 가져와라. 변명 말고 결품 내지 마라.”
“크고 모양 좋고 번듯한 물건으로 잘 골라서 보내라.”
과잉으로 재배하라는 말이란 거 이제 아시죠? 농사꾼들 죽든 살든 그런 거 신경 안 쓰겠다는 얘깁니다.
수입원료 만드는 유기농 자재? 수입 자재로 키우는 유기농산물,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기농 혹은 친환경 채소 시장의 현주소가 이렇습니다. 농사꾼이나 소비자나 모두 채소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농산물을 살 때 뒤적뒤적해서 몸에는 가장 안 좋은 걸 가장 좋다고 여기고 골라 가는 거지요. 농사꾼은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리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요. 벌레 먹고 작고 못생긴 걸 드리면 싫어하니까. 꼭 소비자 책임이랄 수도 없고 생산자 책임이랄 수도 없지만 우리는 이런 모순된 유기농을 하고 있습니다.
못할 일은 없는 거지요. 안 할 뿐입니다…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부족한 건 우리의 상상력이지 현실적인 장애물이 아닙니다.(자동차 산업 성장의 선례? 국가적/국민적 지원 결과!)
농사꾼 돼도 안 죽는다
농사지으러 오세요. 결국은 사람입니다…사람이 답입니다. 사람만 충분히 있으면 농업 문제도 풀리고 농촌 문제고 풀리고 농민 문제도 풀리고 다 풀립니다…자연 속에서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거두는 신명 나는 삶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 봅시다.(모야모? 백과사전보다 빠르고 정확한 건 사람)
소득이 적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것뿐이지요. 그렇게 억울해할 일도 아닙니다(뼈골 빠지게 일한 몸을 채워주는 겨울)
제 힘으로 농사지어 먹고살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사람은 없다? “니 말이 맞다” 그럽니다.
유기농사꾼과 이웃이 되는 9계명. 농사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크기와 모양이 아니라 맛과 향으로 고른다/결품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값이 쌀 때 충분히 먹는다(제철 농산물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 싸다는 건 가장 안전하다는 의미)/비싸면 먹지 않는다(부자연스러운 방법이 동원됐다는 뜻)/집에서 먹는다
#유기농이 대체 뭐길래?_유병덕, 국제유기심사원
유기농은 가치에 붙이는 이름이다
“유기농업이란 ‘생물 다양성’, ‘생물학적 순환’, ‘흙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통해 농업 생태계의 건강을 증진·강화시키는 총제적 생산관리 체계이다.”-코덱스(Codex Alimentarius) 유기농 정의
유기농산물에서 농약성분검출? 친환경성은 실험실에서 분석해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환경성은 ‘개념적 속성’이다. 홍길동 씨의 생활 철학, 생활 과정 등을 찬찬히 살펴봐서야 비로소 이사람이 친환경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기농업은 유기성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며, 유기농산물은 눈에 보이지 않은 그 가치가 충분히 구현됐다고 인증된 먹을거리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결정적인 차이? 심사 방법론과 인증 방법론. 제품만 살펴보고서 유기식품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다. ‘실험실 만능주의’, ‘결과 중심주의’
다른 나라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판단한다. 그들은 실험실 분석을 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속의 도구로만 아주 드물게 쓰일 뿐. 심사원은 논, 밭, 목장을 찾아가 흙을 직접 만져 보고, 작물과 동물의 상태를 관찰한다.
실험실에서 현장으로. ‘예방주의’라 할 수 있다
유기농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않은지를 두고 말할 수 없다. 유기농이란 생물학적 순환, 생물 다양성,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높여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은 농산물이다. 이런 생산 과정은 절대 실험실에서 분석해 낼 수 없다.(과정주의)
유기심사원? ‘유기농에는 어떤 성분이 있어야 해’ 또는 ‘어떤 성분이 없어야 해’ 하는 식의 물질 중심의 사고를 벗어날 때 지속가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적 업종이다.
유기농에 들어 있는 진짜 좋은 것은?
아이을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세상을 유기적으로 만들어야 내 아이의 아토피를 낫게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이제는 부모가 유기적인 세상을 가꾸고 즐기려는 마음이 깊어졌다.
좋은 것? 그건 영양가가 더 높은 것도 아니고, 농약,항생제 따위의 성분이 안 들어 있다는 설명으로 대체될 수 없다.
유기농은 영양가를 높인 식품일까? 유기농에는 좋은 것만 들어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우리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유기농 산업에 동참하게 된 생산자와 소비자의 동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상이몽? 생산자는 주로 흙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는 주로 식단을 개선하려고 유기농을 선택했다는 것…다만,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개인적 건강과 식품의 안전성에만 치우쳐 있다면, 생산자가 시작한 공익적 동기는 점점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말하고 싶다. 아니 오히려 생산자의 공익적 의지마저 왜곡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이미..)
더 가치 있는 선택을 위한 인증 제도.
‘책임지는 소비’(윤리적 소비)? 소비자사 상품을 선택하는 전통적인 기준은 가격과 품질이었다..소비자가 가치 있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와 생태 환경을 만드는 일과 같다. 소비자가 더 가치 있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인증이 많이 있다…’MSC 인증’, ‘FSC 인증’ 등은 품질이 뛰어남을 증명하는 대신 공공의 가치를 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들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하는 유기식품 인증 심사는 잔류 농약 성분, 항생제 분석을 하지 않는다..그런데도 유기 인증을 받은 식품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신뢰할 만한 상품으로 꼽힌다…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무항생제 축산물이라는 표시 대신 동물복지를 배려한 윤리적인 사육 방식으로 생산됐다는 표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물질 중심의 사고, 생산 현장과 생산과정을 모로쇠하고 결과물에만 집착할 경우, 유기농업이 갖는 가치나 사회적 기여는 사라지고 단지 부유한 소비자의 특별한 소비 욕구를 만족하게 하는 값비싼 상품으로 전락라고 말 수도 있다.
매우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유기농 쌀을 예로 본 유기농산물 생산 기준
우리는 유기농산물을 소비하면서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관리. 자연 활용. 오염되지 않은 씨앗(자연에서는 튼실한 씨앗이 살아남고, 병충해에 약한 씨앗은 도태. 작물 스스로 종자를 개량해 험난한 생태계 환경에서 생존하는 힘을 키운다). 관행 농업에 사용한 농기구(관행농산물 찌꺼기가 장비에 남을 수밖에 없다). 준비된 토양(전환기간. 논 자체가 살아 있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유기농산물 농약 검출 뉴스에 실망? 하지만 유기농산물의 진가는 결과가 아니라 생산과정을 살펴볼 때에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유기농산물은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며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유기농산물의 가치를 한번 더 되새기면 좋을 것 같다.
유기농 우유를 예로 본 유기축산물 생산 기준
유기 사료. 가축 면역력 증강(쾌적한 활동 공간). 동물 복지(부자연스러운 마블링?). 방목(환경부에서 관할하는 법령은 가축이 야외에서 배설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배설물의 순환금지). 분뇨의 자원화(축산물 분뇨는 잘 쓰면 자원, 관리를 잘못하면 오염원이 된다. 유기축산을 실천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유기농업의 기본 원리와 모순된다)
안타깝게도 축산물은 보통 생산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맛으로 평가될 뿐이다…유기축산 기준에 따라 방목을 하고 동물의 자연스러운 활동을 보장하게 되면 근육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마블링이 생기기 어렵다! 소비자가 단순히 맛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상품 선택 기준에 농축산물의 친환경성과 유기성이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새로운 농축산물 생산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유기식품이라고 하여, 일반 식품에서 요구되는 맛과 영양과 안전성과 같은 품질을 더 만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유기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담아 낸 식품으로 더 건강한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유기농은 화학물질을 조금도 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유기농은 영양 성분이 더 뛰어나다는 표시가 아니다
#소비를 바꾸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_안병덕, 생협 활동가
먹을거리를 생각하다. 먹을거리 선택에 대한 가치관은 소비자와 생태계뿐만 아니라 먹을거리 생산자인 농부의 삶과도 연결돼 있다. 소비자의 권리, 합리적 선택…? 하지만 이런 선택은 농민과 농업, 농촌 문제를 낳을 수 있고 기후변화와 생태 부정의, 식량 안보 위기 같은 사회문제도 일으킨다.
세상이 변하면 밥상도 변한다. 반대로 밥상을 바꾸면 세상도 바꿀 수있다.
유기농은 맛있다? 혀끝 말초신경의 얄팍한 즐거움을 위해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니가 하는 생각까지고 했다
영양상 우위를 근거로 유기농을 선택해야 할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진한 향? 들깨의 향은 스스로 벌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수단. 상추가 하얀 즙을 내고 사람이 먹으면 졸릴 정도로 강한 성분인 락투카리움을 함유하는 것도 벌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
결국 농작물에 농약을 치면 작물 주변의 병균이나 벌레를 모두 죽여 위험 요소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 속에서 자란 농작물은 싸울 필요가 없어 그 특유의 맛과 향이 약해지게 된다.
입맛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은 맛이 좋은 것과 건강에 좋은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입맛이 변했기 때문. 현대인의 입맛은 과도한 단맛과 짠맛, 그리고 조미료 맛에 길들여 있다.
불교 음식에서는 원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을 쓰는 것조차 절제한다고 한다. 자연으 준 그대로의 맛을 유기농을 통해 살리고 그 본연의 맛을 찾을 때 우리의 건당도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다양성은 착각이다?
우리가 식량문제에서 벗어난 것을 불과 40여년. 많은 부분을 수입해서 오늘날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풍요 속의 빈곤. 먹을거리 종류는 옛날보다 무척 다양해졌지만, 정작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실태는 그렇지 않다…경제성 있는 작물로만 농사를 지으려 해 농사짓는 농작물이 편중되어 있다. 재배하는 농작물의 가짓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옥수수. 전 세계 곡물 생산의 1/3이상 차지하는 최대 생산 작물.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농부는 잡곡 농사를 꺼린다. 물량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생협에서도 친환경 농산물 인증 여부는 따지지도 않는다…하지만 소비자들은 품이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쌀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려 하지는 않는다. 농부들이 잡곡농사를 피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우리은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사 먹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먹을거리 선택도 은연중 이런 농업 구조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는 우리가 원해서 나온 농산물이 아니고 마기린도 우리가 먹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다…대량생산된 농산물 위주로 편식을 강요당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겉으론 다양해진 것 같은 먹을거리가 실제로는 같은 음식 재료의 다채로운 변신일 뿐인 게 많다…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편식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잘못된 선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5대 백색 악마? 흰 쌀, 흰 밀가루, 흰 설탕, 흰정제염과 투명한 식용유. 껍질에 있는 좋은 성분은 모두 버리고 칼로리만 높은 부드러운 음식들이다…이것은 소비자들의 잘못된 선택 기준에다 식품사업자들의 이윤 추구와 대량 생산 시스템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깨끗하게 하려면 대개 추가 작업을 해야하고 이는 원가를 올리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추가 작업을 포함한 생산 공정이 대량생산 체제로 시스템화되면, 이 시스템을 거치지 않는 제품보다 싸진다!
반듯한 오이는 드물다. 감자보다도 작물의 모양을 더 심하게 따지는 것 중 하나로 오이를 꼽을 수 있다. 오이는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모양이 달라진다. 그래서 반듯하고 길쭉한 오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여러 형태의 오이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농촌진흥청의 재배 관련 자료에서는 반듯한 오이는 정상과인 반면 그렇지 않은 오이들은 기형과로 부르고 있다! 구부러진 오리를 마치 잘못된 오이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튜브 형태의 플라스틱 성형기? 오이가 구부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튜브 속에서 곧게 자라게 한다고 오이의 내용물 자체가 변해 더 좋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먹을거리.
사막과 다름없는 드넓은 옥수수밭? 드넓은 밭에 인간이 키우고자 하는 작물만 외로이 서 있는 사막과 같다. 뭇 생명들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생명체를 생명으로 보지 않는 공장식 농사이다.
땅속을 망가뜨리는 화학비료. 땅속의 순환 체계를 망가뜨린다.
농약이 땅 위를 황량한 사막으로 만든다면 화학비료는 논밭의 땅속을 황폐화하는 셈이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데드존
축산분뇨는 논밭으로 되돌려야 할 자원이다
자동차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육식
1인단 푸드 마일리지가 프랑스의 100배? 식량의 70퍼센트 이상 수입. 마일리지 증가는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곡물 증가가 주요 요인.
유기농은 생태계를 살린다. 오늘날 생태계가 위기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오만,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의 만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안전성의 문제에 이르고 생태계를 위협하기에 이른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상업주의를 유지해 주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벌레가 먹어 흠이 있거나 생긴 모양이 말끔하지 못하면 외면한다…농부들은 그렇게 키우기 위해 화학비료를 쓰고 살충제로 벌레를 죽이고 살균제를 뿌려 병을 막는다. 외국에서 대량생산된 농산물과 이를 원료로 한 값싼 가공식품을 별 거부감 없이 소비한다. 이런 소비로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 소농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생태 부정의? 정작 파괴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엉뚱하게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화학비료 농산물로 농부나 나와 관계없는 상수원 이용자에게 피해를. 화학비료 사용으로 저 멀리 남반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로 나타난다)
‘묻지마 소비’? 불가에서는 모르고 짓는 죄의 엄중함을 말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악이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장보기와 여름철 우면산을 쓸어내릴 만큼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의 연관관계를 볼 수 있다면, 다소 비싸고 못생기고 벌레 먹은 우리 유기농산물과 유기식품으로 장바구니를 채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농사가 어떻게 지구를 망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시장을 통해 농사를 지배하는 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유기농으로 자급자족을!_안철환, 도시농부&유정길, 환경운동가
소비자가 경험하는 자급의 힘, 도시 텃밭
농사의 매력 중 하나가 ‘자급경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도시는 이미 자급경제가 다 사라졌다. 화폐경제, 시장경제 아니면 하루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原)의 먹을거리. 음식이란 기본적으로 약이어야 한다. 음식이 아니면 차라리 독이라 여긴다.
음식이 약이 되게 하려면? 일단 작물을 되도록 자연 상태에 가깝게 키워야 한다. 작물 스스로 적응력을 키워 ‘약성’을 많이 만든다.
어떻게 키웠기에 그렇게 향이 좋고 아삭아삭하죠? “풀 매 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주질 않았죠. 물도 주지 않고, 거름도 안 주고….”(무위자연, 자연농법)
속이 차지 않은 재래종 배추(개성배추)? 속이 차지 않는 배추는 당연히 크기가 작다. 그러니 상품성이 없다. 그런 배추를 누가 사먹겠는가? 소비자들은 뭘 몰라도 크게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약이 되는 배추를 키워 먹는 것은 전형적인 자급 농사만의 기쁨이다. 상품농사에서는 즐길 수 없는 기쁨이다.
옛날식으로 볏짚을 덮어 주는 마늘. 비닐보다 추울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마늘알도 작다. 그렇지만 그 뿌리가 대단하다. 다 자라도 비닐 덮은 마늘에 비해 반 정도 크기밖에 안 된다. 그런데 섬유질과 미네랄이 많아 아삭아삭하고, 마늘 특유의 알리신 향이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고 아린 맛이 없다. 장을 찍지 않고 생으로 먹어도 입맛을 돋운다.
옛날 맛 나는 자급농사의 맛
요즘 채소는 옛날 맛이 나질 않는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거름과 물로 키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한다. 거름도 옛날식 퇴비가 아니라 가축 똥이 대부분인 계분과 돈 분 등의 거름이다.
토종 오이의 맛을 보면 옛날 맛의 전형을 느낄 수 있다…작고 굽은 모양…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전혀 상품성이 없다…토종 오이야 말로 자급농사에 딱. 농사도 별로 어렵지 않고 병도 잘 걸리지 않으며 서리올 때까지 따 먹을 수 있으니 상품농사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자급농사에는 아주 제격이다. 게다가 힘들게 지주를 세우지 않아도 되고 망을 설치할 것도 없이 그냥 바닥에 키워도 풀과 함께 잘 자란다.
참 먹을거리는 땅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농사는 자연을 망가뜨리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을 지키는 인간의 실천이라 생각한다…순환 시스템이 잘 동작하는 밭. 우리는 연작을 해선 안 된다는 배추를 자그마치 같은 자리에서 일곱 번이나 연작하고 있다!
유기농의 이유, 자족의 철학
개발 공약만 앞세우는 정치인들? 환경보전을 주장하긴 하지만, 경제성장이 그래도 더 우선이라고 말하며, 그래야 표를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태적인 세계관은 ‘관계망적 사고’를 의미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상호 연관, 서로 의존되어 있으며 관계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드라의 그물망)
당신이 만약 시인이라면 당신은 분명 이 한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없고, 비가 없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당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다른 것들과 공존해야 합니다. 모든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종이 한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틱닛한의 평화로움』
죽임의 세계관은 주변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나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살림의 세계관은 스스로 손해 보고, 희생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생이 아니고 주변을 살리며 시스템 전체를 살리며 곧 자신을 살리는 것이다.
죽임의 문화에 포섭된 생산자는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비자 또한 생산자의 노고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값싼 것만 찾으면 그만이다. 쌀과 보리를 비롯한 온갖 채소가 바람과 비, 태양과 새와 벌레 등이 함께 만들어 낸 거룩한 우주적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도 느낀다.
대면적 거래 관계. 이럴 때 ‘따뜻한 거래’가 된다. 농업에서의 생명운동은 이렇게 지역에서 생산된 소비가 대면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운동이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순식간에 다량의 정보가 흐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어 욕구의 크기도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커졌다. 하지만 소유의 크기는 그 속도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성장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도=소유/욕구)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그 가난 덕분에 우리 현재의 소비적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진국들의 발전이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고 미래 세대의 것을 빼앗아 소비한 덕이며 실제 큰 죄업을 짓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농(農)적 문명과 자족하는 행복
도시는 돈을 위해 모인 곳이다. 도시를 기반으로 세워진 문명 때문에 환경 위기가 온 것이라면, 땅과 사람을 기반으로 한 농업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농(農)적인 삶을 기반으로 한 문명으로 바꾸는 것만이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길이다…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한 공동체 가치를 심어 주기 위해서도 이런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저상장 사회에 들어섰다…성장 사회에서는 돈과 자본, 생산이 중심에 있다. 저성장 사회에서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자신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둘로 나뉠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적 사회는 지금과 같은 거대 국민국가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 폐기가 지역에서 순환하는 풀뿌리 분권 사회를 지향한다. 그리고 농업이 기본이 되어야만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경쟁 법칙이 아니라 거래와 교환의 과정이 서로 호혜적인 경제체계를 지향한다…
그리고 주택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주거의 개념으로 생각하며, 아파트와 아파트를 이동하는 떠돌이의 삶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붙박이로 사는 삶을 추구한다.
그래야 이웃과 관계를 맺고, 지역의 자연을 책임지며, 환경과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다.
붙박이의 지역공동체 속에서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 복지, 생태 복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진실을 전하려고 애쓴 흔적이 감동을 주는군요. 소비자로서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