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p144
내가 쓴 글씨들이 대체로 ‘변방’에 있었다. 그래서 기획연재의 제목이 자연스럽게 ‘변방을 찾아서’가 되었다.
변방은 그런 것이다. 비록 변방에 있는 글씨를 찾아가는 한가한 취재였지만, 나로서는 취재를 마감하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변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해남 땅끝마을 서정분교의 ‘꿈을 담는 도서관’
#강릉의’허균.허난설현 기념관’, 강릉을 대표하는 오죽헌의 변방
#’박달재’는 찾는 사람도 없었다, 박달재 밑 터널
#장편 대하소설의 최고봉 임꺽정, ‘벽초 홍명희 문학비’, 벽초와 ‘임꺽정’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오래된 미래’이다. 좌우를 아울렀던 벽초의 유연한 사고와 진정성이 그렇고, 임꺽정과 그의 동무들이 보여 준 노마디즘(nomadism)의 삶이 그렇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는 분명 변방의 작은 공간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것은 탈냉전과 탈근대의 장이다. 평화와 공존의 철학을 앞서서 보여주고, 영토와 소유의 협소한 틀을 깨뜨리고 미련없이 흘러가는 ‘길 위의 삶’을 앞당겨 보여 준다. 한마디로 미래 담론의 창조 공간이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역시 현장의 역동성이었다. 내가 그동안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쌓여 있는 자료가 선입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선입견 때문에 결국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여행이란 자기가 살고 있는 성(城)을 벗어나는 해방감이 생명이다. 부딪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다면 자기 생각을 재확인하는 것이 된다.
변방은 특유의 조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라는 소유의 사회에서 무소유의 주장은 비현실 그 자체이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정보화 사회에서 결코 디지털화할 수 없는 ‘지혜’라는 이름의 고독한 깨달음이 설 자리는 없다. 무소유든 지혜든 그것의 결정적인 결함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상품이 못 되는 것은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는 물건은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무소유와 지혜는 팔리지 않으면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팔리지 않는다는 그 역설적 반시장 논리가 상품의 허상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그 대척점에 선다. 무소유는 소유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지혜는 반대물인 우직함으로 전화한다. 그것이 바로 변방의 지혜일 것이다.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오해이다.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 곳이 없고,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문명이 없다. 어쩌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변방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이다.
진보는 단순화(간디), 지혜는 인간 이해(공자)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거듭할수록 우연인 인연으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리라.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도 결코 우연한 조우가 아니라 인연의 끈을 따라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필연임을 깨닫는다.
역사는 변방이 중심부로 진입하는 과정
가장 좋은 정치란 임금이 있기는 있되 그가 누군지 백성들이 모르는 경우이다-도덕경
봉하마을, 변방의 의미가 증폭되어 안겨 오는 곳. 작은 시골 마을의 작은 비석이 놓여 있는 묘역에 해마다 100만이 넘는 참배객이 순례자가 되어 찾아오고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변방의 창조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묘역의 주인공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은 ‘스스로를 추방해 온 삶’이었기 떄문이다. 낮은 곳, 변방으로 자신의 삶을 추방하는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대통령’이라는 중심에 서게 되는 그야말로 변방의 창조성을 극적으로 보여 준 삶이다. 대통령에서 하야한 다음 다시 100척 부엉이바위 위에서 자신을 투척한다. 그리고 작은 돌 한 개로 남는다. 그러나 이 궁벽하고 작은 묘역에 매년100만의 순례자가 찾아오고 있다. 죽음의 자리가 생환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몯느 것이 끝난 곳에서 다시 통절한 각성과 당찬 시작이 이어지고 있음에 있어서랴.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줌싱이 되어 왔다. 역사에 남아 사표(師表)가 되는 사람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인류 문명은 그 중심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온 역사이다. 우리는 왜 문명이 변방으로 이동하는지, 변방이 왜 항상 다음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변방에 대한 즉물적 이해를 넘어 그것의 동학(動學)을 읽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동학은 운동이고 운동은 변화이다. 문명도 생물이어서 부단히 변화하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부단히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변방은 창조 공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 의식이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그야말로 ‘변방(邊方)에 지나지 않는다. 중심부에 대한 허망한 환상과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중심부보다 더욱 확고한 교조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그렇다. 소중화(小中華)라는 교조적 틀에 갇혀 결국 시대의 조류에서 낙후되었던 역사가 그렇다. 그러한 콤플렉스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반도는 그 지리적 특성에서 변방으로서의 창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아류(亞流)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콤플렉스 때문이다.
오늘 멀고 먼 봉하의 작은 비석에서 꺠닫는 것은 이 변방의 작은 묘역이 바야흐로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는 창조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 사는 세상’과 ‘좋은 정치’와 ‘좋은 대통령’을 공부하는 교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봉하를 떠나오면서 생각했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이 봉하에서 우리가 받는 위로이며, 세상의 모든 변방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희망이기도 하다.
“변방을 찾아서| 변방은 창조 공간입니다”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