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한국사. 최성락. p247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의 불편한 진실
#바탄, 죽음의 행진과 한국 역사 이야기
일본군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
7만명 포로 중 목적지에 도착한 포로들을 불과 5만 4천 명. 바탄에서 시작된 죽음의 행진으로 인해 당시 일본군을 지휘하던 혼마 장군을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사형을 당했다.
일본인이 쓴 『태평양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도와주는 아름다움 광경들이 많았다’
일단 사실 그 자체로서의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비극적인 역사였는데, 이를 긍정적인 역사로 뒤집어서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아픈 과거를 끝까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개인의 과거는 몇 명만 입을 다물고 무덤까지 가져가면 된다. 한 조직의 과거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처럼 희석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역사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서 증언이나 회고 등의 방식으로 숨겨진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다. 한 국가 내부에서 아무리 사건을 미화하고 축소시키려 해도, 다른 나라에서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숨기는 게 무의미한 시대다.
이는 단순히 먼저 알고 나중에 알고 차이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좋은 이야기만 듣다가 뒷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후일에 다른 경로로 알게 되면 앞서 들은 이야기에 대한 신뢰감까지 떨어진다.
자신이 배운 역사가 전부가 아니며 숨겨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존에 배운 역사에 대한 신뢰감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배울 때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알아야 하고, 편향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또다른 편향을 택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진정한 자부심을 가지려면 때로는 금기시되는 관점일지라도 말하지 않는 것까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역사에도 분명 ‘뒤틀린 부분’들이 있다. 국사 교과서나 교양 역사서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우리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역사에 모순되고 뒤틀린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각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필자 역시 이 책에서 다른 상당수의 내용들을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다. 익히 알려진 사실과 다르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 있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는 한국의 역사,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근대 이전의 한국사_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한국의 영토가 만주까지 넓어졌을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는데 고구려는 왜 당나라 땅이 되었을까?
백제, 고구려 멸망의 과정은 정말로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이었던 것일까? 혹시 당나라의 고구려 멸망 과정은 아니었을까? 당나라의 고구려 멸망 과정이라고 이해를 해야 신라가 대부분의 고구려 땅을 잃게 된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고구려를 다스렸던 이유는?
충선왕은 고려 왕이 되는 것보다 당시 세계 제국인 원나라의 고위직을 선택했다. 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려로서는 상당히 모욕적인 일이다…충선왕의 선택은 외국에 점령당한 것보다 한국에 더 수치스러운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기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기존의 역사서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왔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런데 정말로 일본이 조선을 기습한 것일까?
일본은 오랜 시간 전쟁을 준비, 모두가 아는 사실. ‘일본 내에서는 이미 조선에 쳐들어간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이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이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조선 정부는 이런 정보들을 모두 헛소리로 치부하고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중국도 알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모두 알고 있었던 셈…그래서 당시 중국은 조선을 의심했다.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조선은 이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가는 이유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서였다.
당시 조선 정부가 무능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국제 정세에 대해 깜깜이었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임진왜란을 기습공격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조선 정부의 무능함을 숨기려는 변명일 뿐이다.
#조선이 통신사를 보내 일본을 가르쳤다?
일본은 별 관심이 없는데 조선이 스스로 통신사를 일본에 보낸 것이라면? 일본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온 통신사가 조선의 항복 사절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것은 대마도. 대마도는 조선과 통상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일본의 섬인 대마도주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마도주는 편법을 사용. 대마도 가신들을 일본국 사신인 것처럼 위장. 대마도는 국서도 위조한다. 도장도 위조해서…통역할 수 있는 사람은 대마도 사람들뿐. 중간에 제대로 하지 않고 말들을 전부 바꾸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 시대에 이루어진 일본과의 교섭이 대부분 대마도와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이다…한국이 가르친 것은 대마도이지 일본이 아니다…게다가 끝까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조선의 외교력과 정보력에 정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병자호란의 시작, 청나라 황제의 즉위식 때 벌어진 일은?
조선에서 온 사신 두명은 절을 하지 않았다. 명나라 황제만 인정하고 청나라 황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정 절을 하기 싫으면 차라리 즉위식에 참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청 태종은 절말로 화가 나서 조선을 비난하는 글을 보내고, 두 왕자를 볼모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조선은 청 태종의 요구를 가볍게 무시한다. 청나라를 달래려고도 하지 않고, 협상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무시해버리고 만 것. 이 정도가 되면 청 태종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진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병자호란.
조선은 단지 말로만 청나라와 싸우자고 했을 뿐, 실질적인 준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 달 만에 항복.
청나라가 애꿎은 조선을 괜히 침략한 것이 아니다. 조선의 꽉 막힌 외교적 대응이 병자호란의 진짜 원인이다.
#조선의 당쟁이 목숨을 건 다툼이 된 이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적이 된다. 남인을 괴롭힌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원수. 이때는 단순히 의견 차이에 의한 당파가 아니다. 조상 대대로 싸워온 원수들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권을 잡느냐 못 잡느냐 하는 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정권을 잡고 있어야 한다.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정견이 무엇이고, 국가를 운영하는 철학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어느 당파에 속하는가는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고 평생 동안 속박되는 신분제 같은 것이었다.
4색 당패 간의 당쟁은 정말로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주요 원인이 맞다.
#조선 시대에는 왜 그렇게 탐관오리들이 많았을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한양이었다. 조선의 재정을 운영하는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국가 재정이 아니라 왕실의 재정을 위한 시스템)
수많은 민란들도 근본적 원인은 바로 왕실 때문이었다.
#외국인이 조선의 백성들을 보고 한탄한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살기 힘든 나라가 된 것이다. 조선의 문제는 소수의 탐관오리나 몇몇 아전들의 횡포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보수 시스템 자체의 문제였다.(신동엽의 금강)
##근대의 한국사_일제강점기의 한국 발전을 논하는 것은 금기다?
#근대화가 늦어 뒤쳐진 것일 뿐, 한국은 원래 잘살았다?
한마디로 손꼽히는 후진국. 먹고살기 힘든 기후조건. 남쪽에 있는 국가들보다 잘살 수는 없었다.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에는 보릿고개가 없었다.
#조선 말기, 근대화를 막은 결정적인 요인은?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이 이유 중 하나? 전문 분야 종사자들.
판서들의 평균 임기는 2개월! 새로운 자리를 맡아 해당 업무를 파악하는 데만 해도 몇 개월은 걸린다.
조선 말기로 갈수록 임기는 더 짧아졌다. 한 번 판서로 임명되면 평생 판서로 불릴 수 있다. 평균 임기가 2개월.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국가가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조선은 무언가를 추진해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조선의 근대화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 운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조선이 일본의 국서를 거부한 까닭은?
‘네가 무슨 천황이냐’라면서 국서를 받지도 않고 사절단을 쫓아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천황을 모욕한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것이 정한론의 시작이다.
미숙한 외교력도 정한론이 일어나는 데 어느 정도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한국을 괴롭힌 나라가 일본뿐일까?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
대원군 납치. 청나라가 조선을 괴롭힌 역사는 일본 못지 않다.
원세개는 거의 막장 스타일이었다. 대놓고 고종과 대신들에게 협박을 하고 위협을 했다. 새파랗게 어렸다. 청나라로 돌아간 1984년, 원세개의 나이는 35세였다.
청나라는 일본보다 더 심하게 한국을 대했다. 중국은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한국을 덜 괴롭혔던 것은 아니다.
#조선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어처구니없는 이유는?
동학혁명. 동학혁명군 진압 요청.
이들은 국가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정권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청나라 군대가 오면 청나라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선의 정권을 계속 우리들이 잡을 수 있다. 동학군에 의해 정권을 잃는 것보다는 청나라의 속국이 되더라도 계속 정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발상일 때 민영준의 파병 요청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청나라 군대의 조선 파병은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주는 세레모니였다.
##현대의 한국_한국의 바닷길이 끊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늘에서는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략했다?
실제 역사가 어떻든 간에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이 경험한 전쟁의 선후 관계는 미군의 북한 폭격이 먼저이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전쟁 양상이 보인다…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전..한국전쟁은 인천 상륙 작전 이전에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전쟁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사망자 수가 압도적이었던 까닭은?
민간인이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이었다. 동네 사람 중 누가 어떤 짓을 했는지…모두 다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참혹한 것은 민간인들이 민간인들을 서로 공격하고 학살한 전쟁이었기 때문. 게다가 민간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 한동네에 살면서 서로를 잘 알았다는 점에서 비극이었다…가장 큰 비극은 한동네 주민들이 이념으로 나뉘어서 서로를 죽였다는 점이 아닐까.
#미군의 흥남 철수 작적이 유명한 까닭은?
미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 미군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 흥남으로 주민들이 몰려든 것. 민간인들이 미군 편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점. 남한 편인지 북학 편인지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위험에도 불구, 모두 다 배에 태우기로 결정. 이때 미군의 결정과 행위는 인도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세계 전사에 유명한 흥남 철수가 한국에서는 아무런 논의도 평가도 되지 않는다…한국 역사에서 흥남 철수는 단지 한 줄로만 이야기될 뿐이다.
#1950년,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임진왜란 때 이렇게 당했으면서도 조선에는 계속 군대가 없었다. 병자호란이 났을 때도 전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조선은 그냥 남한산성에서 농성만 벌이다가 항복했다.
조선 말기도 마찬가지…군대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경제력이 되지 않았다. 군대를 유지할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한 나라였는데, 1950년대 이후 한국은 어떻게 군대를 유지하고 경제 발전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바닷길이 끊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석유는 전량 수입
식량 수입, 수출, 석유 수입, 이 세 가지가 현재 한국을 움직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항들이다…한국은 바닷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한국에게 석유, 식량을 수입할 바닷길은 정말 중요하지만, 바닷길에 대한 통제력은 없다. 이 바닷길이 바로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이 강대국이 될 수 없는 지정학적 숙명은?
강한 나라, 약한 나라는 상대적인 개념. 주변 강국들.
한국이 동남아에 있었다면 동남아권 강대국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 것이다.
#연합국이 한국에 독도를 돌려주지 않은 이유는?
‘대마도, 파랑도, 독도’ 전후 돌려받아야 할 땅이라고 주장!
연합국 측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대마도가 한국 땅이었다? 제주도 남쪽에 있다는 전설의 섬 파랑도?
증거만 제대로 제시하면 국제조약상 한국 땅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대처했다면, 지금까지 독도 문제가 이어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한국의 손을 들어줄까?
반드시 승소할 수 있다는 전제. 혹여나 한국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다.
민법 소멸시효 제도.
당연한 일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1900년에 조선은 독도를 포기했다. 그때 일본이 독도를 합병했으니 독도는 일본땅이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19세기에 독도를 누가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1900년대 독도의 상황이 중요.
한국에서는 독도에 대해 많은 교육을 하고 있지만, 독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정말로 어떤 점이 논점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_한국의 금속활자가 세계사에서 중시되지 않는 이유는?
#이순신을 상사로 모셨던 원균의 마음은 어땠을까?
임진왜란 1등 공신에 이순신, 권율, 그리고 원균?
10년 후배의 말을 순수히 따를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이순신과 원균은 분명히 사이가 나빴다. 하지만 정말 잘못한 것은 당시 조선 정부이다. 한국의 정서에서 후배를 직속상관으로…조직 관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거나, 아니면 선배를 조직에서 나가게 하려는 조치이다.
원균을 너무 혹독하게 대했던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때문에 원균은 1등 공신으로 추서한 것이 아니었을까?
#왜 조선을 하멜을 놓아주지 않았을까?
조선은 특별한 이유없이 조선에 표류해온 외국인들을 억류했다. 비인도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
#암살자 홍종우, 국민적 영웅이 되다?
세상에 암살자가 암살 이후 이렇게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경우는 조선의 홍종우가 유일하다…조선이라는 나라의 도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한 세 명의 외국인은?
청나라의 원세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미국의 하우스만
당시 25세로 조선에 감시자 역할로 파견. 안하무인 행동
하우스만은 1946년에 한국에 28세 대위, 한국의 실질적 권력자가 된다.
한국 역사책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자세히 다루지만 원세개, 하우스만에 대해서는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그나마 원세개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우스만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한다…원세개, 하우스만의 역할은 한국에 모욕적이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일 것이다.
#중국 음식점의 주인이 화교가 아닌 이유는?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땅도 살 수 없고 집도 살 수 없다. 한국은 철저하게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핍박했다…한국이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것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외국인 정책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중국과 일본을 떠돌가 온 세한도의 운명은?
한국인들은 근대에 들어와 서양인과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하기 전까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 국회의원 출마 위해 담보로…한국에서 문화는 권력, 지위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도둑맞은 문화재보다 내가 판 문화재가 더 많다?
대부분의 문화재들은 한국 사람이 외국에 싼 가격으로 갖다 판 것.
“한국인에게 도자기들의 가치를 알려준 사람은 바로 일본인이다.”
한국 문화재를 ‘약탈’했다는 점을 강조? 과거에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해 헐값으로 팔아버린 사실은 창피해서 말하기 부끄러운 것이다.
#한자 공부가 중국어 공부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개념과 단어들. 지금 사용되는 한자의 상당수가 사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
지금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아무리 공부한다고 해도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어를 배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극기와 무궁화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고 있을까?
『태극도설』의 태극과 『주역』의 8괘. 태극과 4괘는 분명 중국에서 기원한 것.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국기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무궁화는 어떻게 국화로 결정될 수 있었을까? 개나리, 진달래, 벚꽃…무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궁화 삼처리 화려강산’?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강산이 무궁화로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강산을 물들인다고 말할 수 있는 꽃은 진달래 아니면 철쭉이다.
무궁화는 미국 하와이의 꽃.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 생활. 그곳에 살았던 이승만은 한국의 국화 지정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을까? 북한의 국화는 목란? 김일성이 목란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태극기와 무궁화는 지금 우니나라 사람들한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국인들의 시각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고구려는 중국을 많이 침공하지 않았나?”
좋은 것만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의 반론이나 의견 제시에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사의 문제점들은 국내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들도 많다.
우리가 우니라나, 한국을 이해하고 아끼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측면 역시 알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