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錦江).신동엽.p245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歷史)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永遠)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 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새 가리워졌지만
꽃들은 해마다
강산(江山)을 채웠다.
…
짚신 신고
수운(水雲)은, 3천리
걸었다.
1824년
경상도 땅에서 나
열여섯 때 부모 여의고
떠난 고향.
수도(修道) 길.
터지는 입술
갈라지는 발바닥
헤어진 무릎.
20년을 걸으면서,
수운은 보았다.
팔도강산 딩군 굶주림
학대,
질병,
양반에게 소처럼 끌려 다니는 농노(農奴).
학정
뼈만 앙상한 이왕가(李王家)의 석양.
…
일찍이 수운은
두 권의 저서를 남겼다.
동경대전(東京大典),
용담유사(龍潭遺詞),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노비도 장사꾼도 천민도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우리는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계시니라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
모든 중생이여, 한울님 섬기듯 이웃 사람을 섬길지니라.
수운은
집에 있는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키어
하나는 며느리
하나는 양딸,
가지고 있던
금싸래기땅 열두 마지기
땅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을 알리라.
…
그러나
이제 오리라,
갈고 다듬은 우리들의
푸담한 슬기와 자비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 세상 쟁취해서
반도 하늘높이 나부낄 평화,
낙지발에 빼앗김 없이,
우리 사랑밭에
우리 두렛마을 심을, 아
찬란한 혁명의 날은
오리라,
겨울 속에서
봄이 싹트듯
우리 마음 속에서
연정이 잉태되듯
조국의 가슴마다에서,
혁명, 분수 뿜을 날은
오리라.
#서사시 『금강』을 새로 내며_백낙청
그가 죽고 6년여가 지나서 겨우 전집이 나왔을 때 즉시로 판매금지를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마침 ‘긴급조치 9호’가 나온 직후라…중앙정보부에 연행…담당 수사관이 정작 책의 어디가 어떻게 나쁘다는 말은 안하면서 무턱대고 이런 책은 다시 안 내겠다는 서약을 하라 하던 일…그때 중요하게 문제된 작품이 「금강」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문공부쪽에서(여전히 비공식적으로) 들었다.
그러고서 5년 뒤, 긴급조치도 해제된 ‘서울의 봄’…이번에는 계엄사령부 검열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도 공식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듬해 계엄이 해제된 뒤에고 마찬가지였다…그러다가 15주기를 지나고 난 그 다음해에 가서야 겨우 판매가 가능해졌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동학농민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 그것은 몸소 겪은 사람들이 “조심조심 이야기”하여 전해져 온 금기의 역사였고 실제로 「금강」이 씌어진 1960년대에도 여전히,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라는 일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