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박석무 편역. p296
호한한 저서를 남긴 대학자 다산의 글이 어느 것인들 값지지 않으리오만,
오래 전부터 가서家書 가계家誡 증서들이야말로 다산의 인품과 철학사상 및 문학사상을 제대로 나타내준 글들이라는 정평이 있던 터였다. 인간 다산의 면모를 살필 수 있고 그의 세상과 학문에 대한 관심사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는 데는 그 이상 좋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배생활이라는 극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전혀 좌절의 분위기는 나타내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을 저술해야 하는지 등, 그의 탁월한 학자적 모습이 옴소롬히 담겨 있는 내용이 다름아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인 것이다. 그의 삶 전체를 엿보는 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역자는 이 책에 대한 애착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산이야말로 칠흙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 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 동안 치열하게 살다가 사라져간 역사적 인물이다.
가난에 찌들어 굶어죽어가는 이웃의 아품을 견디다 못해, 토지는 모두 국유로 하여 농민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공동경작에 의해 공정 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해보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탐관오리의 와중에서 착취만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라는 책도 저술해보고, 하다못해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보자고 비판의식과 고발정신이 투철한 많은 시를 지어서 읊어보기도 했던 다산.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부패관료들의 드센 반발에 의해 벼슬을 박탈당하고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히고 그 감옥에서 손위 형님은 사별하고, 둘째형님과는 겨우 목숨을 부지해 함께 먼 바닷가로 유배를 당해 18년간을 중죄인으로 지내게 된다. 패가망신이자 끝없는 절망과 참혹한 고통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번역한 사람은 여기서 긴 탄식을 하며, 다산의 비참한 일생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갖고픈 충동을 받았다. 이러한 충동으로, 다산이 18년간 유배지에 있으며 피를 나눈 자기 아들들과 형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 다산이 자기의 분신인 두 아들과 혈육의 형과 지인들에게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많은 민중이 좌절하기 쉬운 요즘, 번역을 마치고 난 역자는 다산이야말로 좌절할 줄 모르던 진짜 민중이었다는 느낌을 가졌다.
“우리는 폐족이다.”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못 되겠느냐?”
“정치의 잘못을 일깨워주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인의예지는 행동과 일에서 실천된 뒤에야 그 본뜻을 찾는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오직 독서만이 살아나갈 길이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데다 중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네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도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알면서도 과거 때문에 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한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 일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보거라.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어라
마음이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되어질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나보고 너무 실현성 없는 이야기만 한다고하지 말거라.
어버이에게 호도하는 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방이 찬가 따뜻한가 항상 점검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차면 항상 따뜻하게 몸소 불을 때드리되 이런 일은 종들을 시키지 않도록 해라. 그 수고로움도 잠깐 연기 쏘이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네 어머니는 무엇보다 더 기분이 좋을 것인데, 너희들도 이런 일을 즐거이 하지 않느냐?
학연에게 부치노라
너는 내 가르침을 받아라.
만약 그 사정이 전혀 희망이 없으면 명년 봄이 화창해진 뒤 온갖 일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내려와서 같이 공부하자. 이는 단연코 결행하자 않으면 안된다…조그만 사정이야 돌아보거나 아까워해서는 안되리라.
과일 채소 약초를 재배하도록
시골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냄새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너희들은 이런 일을 하나라도 했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의 몇달 동안의 식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한낱 꽃구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생지황 끼무릇 도라지 천궁 같은 것이나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모두 마음을 기울여 잘 가꾸어보도록 하여라…또한 한여름 농사로는 참외만한 것도 없느니라.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부업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냄새밭 가꾸는 일이다.
폐족도 성인이나 문장가가 될 수 있다
폐족에서 재주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써야 할 세 가지 일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거가사본을 편찬하라
주자가 말하길 “화합하여 잘 지내는 것(화순)은 집안을 질서있게 하는 일(제가)의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치가) 근본이요,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기가) 근본이요, 이치를 따지는 것은 집안을 지켜나가는(보가) 근본이라” 했으니 이것은 이른바 네 가지 근본이다.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
폐족이면서 글도 못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집안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이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材)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친구를 사귈 때 가릴 일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벼슬살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벼슬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권력자에게 이리저리 붙는 사람 등을 임금은 존경하지 않는다.
임금의 잘못을 드러내라
미관말직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다해서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 언관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상이 알려지게 하여야 하고 더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은 물러나게 해야 한다.
나의 저서를 후세에게 전하거라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양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을 읽어주고 내 책 한 부분이라도 베껴두는 알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책은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적대시하던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길
왜 그런가 하면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사용해버리는 것은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고 없어질 수밖에 없고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
호연지기를 갖도록
사대부의 마음가짐이란 마땅히 광풍제월과 같아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근검 두 글자를 유산으로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이란 무얼 뜻하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은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검이란 무엇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이쎄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채제공의 효행과 국량
번옹은 지위가 참판에 이르렀으나 어버이를 섬김이 있어서는 천한 일을 몸소 하였다. 도승지로 있을 때 조정에서 돌아오면 곧 조복을 벗고 땔감을 안고 가서 자사공의 방에 손수 불을 때셨는데 그렇게 손수 하지 않으면 구들장의 차고 더움이 알맞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국량의 근본은 용서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게 일을
무릇 5세 이상은 각자 할일을 나누어주어 한 시각이라도 놀지 않게 되면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로 차솟겠다는 기상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꺽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주가 하늘로 치솟아오를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비밀이 하는 일이 없기를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 것이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편지 쓸 때 명심할 점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뜨렸을 때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 봉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음풍명월을 삼가라
돈놀이를 하거나 여러 물건을 매매하거나 약장사를 하는 일은 모두 매우 악착스러운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손해보고 본업을 망치게 된다. 아무쪼록 그런 일은 생각을 내지 말거라.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중국 요순시대의 고적법
반드시 본인을 직접 임금 앞에 오게 하여 얼굴 맞대고 자기 입으로 사실을 말하게 하였기 때문에, 잘못된 짓을 했던 사람은 거짓으로 꾸며서 말할 수 없게 하였고, 잘한 일이 있는 사람이 겸손하고 사양하여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것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할말을 다 하고 나면 했던 말을 고찰하는 제도가 있었으니 고언이라는 것도 고적제도의 한 가지입니다.
주역에 대하여
옛날 성인은 모든 깊이있는 말과 오묘한 뜻에 대해 그 단서만 살짝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도 숨겨진 것이 없이 훤히 드러나 볼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다산의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사람과 짐승의 차이
그러나 독서 한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인 것이다.
윤종억에게 당부한다
선비가 농업을 경영하는 방법
태사공이 “늘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를 말하기 좋아한다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하였다.
근검과 절약
안씨가훈에 “일용에 필요한 온갖 물건인 채소 과일 닭고기 돼지고기 등은 모두 집안에서 자급할 수 있으나 집에 염전만 없을 뿐이다” 하였으니, 이 말이 아주 좋은 말이다. 손쉽게 상자 속의 돈을 꺼내어 저자로 달려가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집안을 일으킬 수 없다.
다산의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현실과 대결하면서 살아가라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
“염 염 염” “이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그리 앉게, 내가 자네에게 말하여주겠네. ‘염’은 밝음을 낳으니 사물이 정을 숨기지 못할 것이요, ‘염’은 위엄을 낳으니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이요, ‘염’은 곧 강직함이니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네. 이래도 백성을 다스리는 데 부족한가?”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는 것이 성인의 법이다
정수칠에게 당부한다
학문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아침이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니면 그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이 없어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러한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개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
윤종심에게 당부한다
가난을 걱정하지 말라
나는 지금 나이가 적지 않아 겪어본 일이 많다. 재산이 있어 자손으로 하여금 부를 누리게 한 자는 천이나 백 가운데 한두 사람뿐이다.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년의 양식을 계산해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잘 깨달았는가? 누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이미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 말라.
의순에게 당부한다
덧없는 일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이인영에게 당부한다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대저 문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물건인가 하면,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네. 이는 기름진 음식이 창자에 차면 광택이 피부에 드러나고 술이 배에 드러가면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과 같은데, 어찌 들어간다고 이룰 수 있겠는가. 중화한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의 행실로 성을 닦아 공경으로 그것을 지니고 성실로 일관하되 이를 변하지 않아야 하네. 이렇게 힘쓰고 힘써 도를 원하면서 사서로 나의 몸을 채우고 육경으로 나의 지식을 넓히고, 여러 가지 사서로 고금의 변천에 달통하여 예악향정의 도구와 전장법도의 전고를 가슴속 가득히 쌓아놓아야 하네. 그래서 사물과 서로 만나 시비와 이해가 부딪히개 되면 나의 마음속에 한결같이 가득 쌓아온 것이 파도가 넘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세상에 한번 내놓아 천하만세의 장관으로 남겨놓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네. 그리고 이것을 본 사람은 서로를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네. 이러한 것을 일러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네…”
원컨대 그대는 이뒤로부터는 문장학에 대한 뜻을 끊고 빨리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게. 그리하여 효우의 행실을 돈독히하고 밖으로는 경전의 공부를 부지런히 함으로써 성현의 격언이 항상 몸에 배어 어기지 않도록 하게…진실로 자네가 문장에 대한 집념을 고치지 않는다면, 마조 강패 협사의 놀이도 이것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