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 참된 나 찾기. 박석무. p399
#권학편_쉼없이 배우고 깨우쳐라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누가’ 다음에는 ‘어떻게’가 중요합니다.어떻게 가르쳐주느냐, 어떤 교육방법을 통해서 교육되느냐의 문제…교재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다산의 주장은 오늘 들어도 온당하기만 합니다.
교과서를 직접 만든 다산.
『천자문』, 『사략』 등의 악서를 비판하고 진짜로 국민을 깨우칠 문자해독의 필독서인 『아학편』이라는 2천자로 된 새로운 책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교과서나 책들은 과연 다산의 주장대로 ‘문심혜두’를 열어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전통적 사고를 통한 창조.
시를 짓지 않으려면 모르려니와, 시를 짓는다면서 음풍영월, 담기설주에 불과한 시작詩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 인간의 삶, 세상의 흐름, 역사의 추이 등 많은 냄새와 흔적이 배제된 시는 절대로 훌륭한 시가 될 수 없으니, 시를 지을 때는 반드시 인간의 삶과 역사적 사실들을 인용하라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조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사례나 들먹이며 우리나라 문자는 한사코 배척하는데 정말로 볼품없는 짓이다.”
학문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렇습니다. 마을에서 촌장구실을 해야 할 사리에 밝고 예절과 행동반경을 가르쳐 줄 학자가 있어야만 그 마을 전체가 제대로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농사만 짓고, 모두가 장사만 하고 모두가 공장에서 일하느라 인생의 도를 밝혀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마을이 될까요. 농,상,공의 생업에도 열중해야 하지만 선비인 학자가 있어서 자녀들에게 글도 가르쳐주고 삶의 도리로 지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독과 학문.
보이는 것이라고는 구름 그림자와 하늘 빛, 들리는 것이라고는 벌레 울음과 대잎 스치는 소리, 그런 고독과 외로움이 ‘다산주역’을 탄생시켰고 그처럼 호한한 ‘다산학’을 이루게 했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에 절망하지 않는 의지와 정신력만이 위대한 학문을 이룩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산을 통해 알게 됩니다.
고난에서 환희로, 지적 작업의 결실.
고진감래. 오랜 고난의 세월동안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고달프게 일했던 저술작업, 끝내 그러한 평가를 받기에 이르었으니, 그야말로 고난에서 환희로 이어진 다산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정당한 학문의 업적은 반드시 대접을 받고 만다는 교훈을 그런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제유표에 담긴 의미.
경제야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되지만, 유표遺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본디 ‘표’란 문체의 이름으로 임금이나 나라에 제출하는 정책건의서를 말합니다.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글로는 제갈공명의 ‘출사표’가 바로’표’라는 글의 대표일 것입니다. 국법을 고치고 바꿀 제안서이지만 죄를 짓고 유배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정책건의서를 제출할 자격이 없는 다산은, 유언으로 남여 죽은 뒤에라도 국가정책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표’앞에’유’를 넣어 책의 이름으로 정했던 것입니다.
‘유언으로 올리는 나라를 건질 정책건의서’? 살아있는 동안에 건의할 길도 막혔고, 실행할 방법도 없다는 다산의 한이 서린 책의 이름임을 생각하면 다산의 눈물이 고여 있다고나 할까요.
다산과 주자.
수천년 동안의 주된 철학이 다산에 이르러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이루는 순간. 행동하지 않는 사상, 행동하지 않는 원리는 무효라는 다산의 뜻, 오늘날 모든 문제도 거기서 배태되고 거기서 풀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깊은 사유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묏자리를 보다니.
세상을 망치는, 반드시 없애야 할 학문 다섯 가지? 오학론. 성리학, 훈고학, 문장학, 과거학, 술수학. 그 중에서도 가장 못된 술수학, 풍수지리설로 인간을 현혹시키고 관상론으로 인간을 속이고, 점을 치고 사주를 따져 인간의 운명을 미리 판단하는 혹세무민의 설이야말로 사람을 망치고 세상과 나라를 파멸시키는 근원이라고 격노하기에 이릅니다.
지행겸진의 정신.
“학이란 알도록 해주는 일이요, 습이란 행하는 일”이니 학이시습이란 앎과 행함을 함께 진행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주장을 폈습니다. 배워서 알게 되면 그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삶의 가치가 이룩된다는 다산의 생각이 바로 실학사상이 뿌리하는 터전이었습니다.
책의 향기와 먹의 맛.
“…책에는 향기가 있으니 그 향기를 맡고, 먹에는 맛이 있으니 그 맛을 즐겨보아라.”
의학자로서의 다산.
『마과회통』 근세 우리나라 최고의 한의학자 조헌영은 다산이야말로 조선적 한의학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실제의 일에서 토대하여 사물을 관찰하고 판단하였기에 조선의 환경과 사실에 부합하는 의학으로 정립됐다는 것입니다.
질병에 고통을 당하고 전염병에 수없이 죽어가는 백성들을 차마 볼 수 없어 『마괴회통』을 저작하고 『종두설』을 저술하여 질병퇴치를 통한 백성사람의 뜻을 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산과 위당.
다산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5백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가 모두 한문으로 저작된 탓으로 한문에 능통한 학자가 아니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1930년대의 어둡던 식민지 시대에, 조선학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민족의 얼과 정기를 발양하자고 외치며 다산학을 천착한 분이 위당 정인보 선생이었습니다.
학자가 지닐 몸과 마음의 자세.
얼굴빛을 바르게 하라는 정안색, 말하는 기세를 공손하게 하라는 공사기는 유자들의 기본임은 아는 일이나,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명존중 사상의 결실, 마과회통.
공직자라면 책을 읽으시오.
“독서야말로 인간이 해야 할 첫째의 깨끗한 일이다”
“고위공직자의 집무실에서 책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깨끗한 선비라고 말할 수 있다”
인仁에 대한 새 해석.
“인仁이란 두 사람이 함께 함이다. 어버이를 효로 섬기면 인을 함이니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다” 임금과 신하,부부와 붕우 모두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행동이 바로 인仁이라는 것입니다. 행동이 배제된 어떤 것도 유교의 본령이 아니라는 다산의 주장에 귀를기울여야 하는 일이 현대인들이 할 일이 아닐까요.
다산이 이룩한 다산학.
다산학는 말 그대로 학學이라는 호칭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학문입니다. 경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그렇고, 수기와 치인을 두 축으로 삼아 수기에 해당한다는 경학, 치인에 해당된다는 경세학의 호한함에 있어서도 다산학을 당할 학문이 많지 않습니다. 다산학의 모든 이론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다리를 놓아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정말 훌륭합니다.
500권이 넘는 그 방대한 저서, 그 속에 전개되는 독창적인 학설,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게 여길 학문이 바로 ‘다산학’이 아닐까요.
70세에도 책 읽던 다산.
이미 대부분의 저술은 유배지에서 마쳤고, 고향에 돌아론 57세에 70세까지도 못다 마친 책을 끝마쳤건만, 그래도 학문적 욕구를 그치지 못하고 늙은이가 책을 읽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늙어도 책과 가까이 지내던 다산을 배우고 닮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의 옛것을 알아야.
“모름지기 고전을 본받되 고치고 변화시킬 줄을 알아야 하며 새것을 창조하되 고전에 의거할 줄 알아야만 오늘의 글이 고전과 같이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주장한 법고창신, 즉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너무나 유명한 말입니다.
귀신을 쫓은 다산선생.
“귀신이란 오직 사람만이 불러들이는 바이다. 참으로 자기 마음에 귀신이 없다면 귀신이 어떻게 스스로 올 수 있겠는가”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네.
다산이 1836년 음력 2월 22일 세상을 뜨자 서울에 소식이 알려지자 홍길주가 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열수烈水(다산)가 죽었다니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도다”라고 탄식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평가입니다. 사람이 죽어서야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는 정확한 증거입니다…
인간 서고는 무너졌으나 책은 살아 있습니다. 제대로 번역하고 해석해서 오늘의 지혜로 삼아야 할 일은 우리 후인들의 몫이 아닐까요.
인간의 삶과 짐승의 삶.
책 한권 없이 뼈와 살이 썩어서 흙이 되면 짐승과 인간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문제는 과거 공부다.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학문이야말로 이단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것이다…”
“과거공부에만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도의는 가르치지 않으니 신의사회가 무너져버렸다.”
#수신편_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바로 하라
사촌이 남인 세상.
“…사촌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를 친형제처럼 여겨서 집에 손님으로 온 사람이 열흘이 넘게 묵어도 끝내 누가 누구의 아버지가 되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 되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여야만 겨우 집안의 기상을 떨칠 수 있다.”
젊음과 늙음.
계속해서 인격을 도야하고 경륜을 쌓아가느냐로 사람의 값을 논해야지, 연령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진다고 해서야 말이나 됩니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훌륭한 교육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불행한 처지에서 좌절을 극복하여 훌륭한 인품과 학식을 겸했기 때문에 그들은 좋은 집안으로 결혼하여 가문의 명성을 잇고 가통을 세워 명문의 집안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로 가는 첩경, 청렴.
75세로 세상을 마쳤던 다산의 꿈과 이상은 정말로 크고 원대했습니다. 그의 꿈과 이상을 네 글자로 압축하면 ‘희희호호’라는 요순시대을 실현함이었습니다.
식색의 욕심으로 가득 찬 인류 전체를 깨끗하고 청렴하게 하는 일에는 절망감이 앞설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또 압축한 계책은 바로 공무원들만 이라도 청렴한 행위를 하면 된다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요순세상의 실행을 위한 방법론이 다름 아닌 『목민심서』였습니다. 관리들의 청렴성을 회복이 이상세계로 가는 첩경이라고 여기고, 다산은 청렴의 방법론을 세세히 기술했습니다.
철학이 빈곤한 이유.
다산은 과격한 개혁사상가였습니다. 그렇지만 늘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여유와 안정이 있어야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어, 학문의 대작들이 나올 수 있음을 이런데서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여유와 안정을 찾지 못하는 까닭에 철학의 빈곤이 계속되는 것 아닐까요.
여유당與猶當이라는 호.
살던 집의 서재 이름이 여유당. ‘여유’의 뜻은 매우 어렵습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야 알겠지만 일반 독자들은 의미도 모르고 지내기 십상이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노자』 15장에 나오는 ‘머뭇거리기는 마치 겨울 내를 건너듯’, ‘두리번거리기는 마치 네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구절이 너무 자신의 처지와 흡사하여 ‘여유’를 당호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맨발로 추운 겨울에 시내를 건너기가 얼마나 꺼리는 일이며, 온갖 이웃들이 샅샅이 살피는 경우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렇다고 나라를 건지고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라는 다산의 뜨거운 마음, 아무리 하고 싶지 않고 아무리 두려운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임을 토로한 내용임에 분명합니다.
인과 덕에 대한 생각.
말로만, 생각으로만 아무리 주장해보아야 전혀 소용이 없고, 오직 옳고 바른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인간의 값이 실현된다는 그의 뜻이 높기만 합니다. 행하는 일, 실천하는 일, 그것만이 역사를 바꾸는 일임을 다산은 가르쳐주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삶.
인생!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온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두 가지의 큰 기준이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是非)의 기준이요, 둘째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도 이익을 얻는 삶이 가장 높은 단계의 삶…”
고독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런 정적의 생활을 오래도록 견디어내고 보니 정신이 모아져 옛 성인의 글에 전심치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고독의 극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끝내 견디고 이겨내는 극기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이기고 진리를 터득하는 아름다운 환경으로 고독을 활용했던 분이었습니다.
호연지기를 지녀야.
“사대부의 마음가짐이란 광풍제월과 같아 털끝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양심을 저버리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일. 자잘한 이익에 양심을 속이거나 이해타산에 마음이 가리우면 호연지기란 지닐 수 없다니 오늘의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 저서를 알아주기만 한다면.
‘몸이 곤둥해질수록 학문은 더욱 정통해졌던’ 다산을 제대로 알아준 위당 정인보의 이야기처럼 곤궁한 유배지에서 이룩된 학문의 진리가 세상 모두에게 밝혀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선비가 책을 저술해 세상에 전함은 오직 한 사람의 알아줌을 구하는 것이어서 온 세상 사람들의 꾸짖음이야 피하지 않는다. 만약 내 책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나이가 많으면 너희는 아버지로 섬기고 너희와 엇비슷한 나이라면 형제의 의를 맺어도 옳을 것이다.”
유행을 민감하게 따르고 세상 돌아감을 잽싸게 눈치 살펴서 한 때의 명성을 얻는다할지라도 진리가 아니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 떠드는 사람들, 제발 다산이 곤궁 속에서 밝힌 진리의 길을 되새겨 봅시다.
가득차면 반드시 망한다.
“가득차면 반드시 망하고 겸허하면 반드시 존경 받는다”
“스스로 높다고 여기면 남이 끌어내리고 스스로 낮다고 여기면 남들이 끌어올려 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장사꾼.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가서 병이 날거고…”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다. 진짜 욕심쟁이는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청렴하지 못한 사람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실인과 실어.
“말을 해야 할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을 해야하지 않을 사람에게 말을 하면 말만 잃게 된다.”
지혜보다는 우직함을.
어리석기야 쉽지만 지혜롭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는 지혜로움이야 따라갈 수 있으나 어리석음은 따라갈 수 없노라는 역설적인 말을 합니다.(우공이산)
사람을 끄는 인간의 향기.
지도자의 필수적 자격.
“하급관료들을 단속하는 근본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규율함에 있다. 자기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정이 제대로 되고, 자기 몸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제대로 행해지지 못할 것이다.”
청검과 지성.
지위가 높을수록 정치인은 청렴이 최고의 덕목이고, 검소한 생활태도가 만인의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너그러우면서 어질어야.
“아랫사람을 부리려면 너그럽게 해야 한다”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함은 성인도 경계했다. 그러나 너그러우면서도 풀어지지 않아야 하며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아야만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적개심으로 반대파를 억누르고 짓이김은 지도자로서는 하지 않을 일이라 여겨집니다.
일생동안 행하여도 닳지 않을 글자.
“글자 하나로 일생동안 행할 수 있는 글자가 있습니까?” “그것은 서恕라는 글자가 아니겠느냐”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니라”
#치가편_집을 다스리고 부모 형제에게 공손하라
자상한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이 스승과 제자가 된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느냐?”
다산의 부부사랑.
부부애. 남편과 아내의 사랑, 인간 삶의 본질이자 전부입니다…끈끈한 부부애, 그 짙은 사랑의 힘이 5백권을 넘는 저서로 학자의 대업을 이룩하게 했습니다. 부부 사랑이야말로 생민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입니다.
거가居家의 근본.
주자는 가정을 꾸리는 데 가지 근본. 제가齊家, 치가, 기가起家, 보가保家가 제대로 되는 근본으로 화순, 근검, 독서, 순리로 요약.
다산은 더 실천적 방법을 제시했으니, 화목한 가정이려면 부모, 형제, 부부가 제 역할을 다하고 친척끼리도 잘 지내야, 치가야 가정경제의 유지이니 농사와 길쌈은 물론 가축과 과수원도 가꾸도록 권장. 집안을 일으키는 기가에는 독서가 근본, 보가는 순리대로 살아야 음덕을 뿌리고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며 참고 견디며 하늘의 뜻을 즐기도 운명에 순응.
세상이 너무 요란합니다. 사회의 밑둥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혼률 급증, 자살자들이 속출. 가정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으니 세상이 조용하겠습니까. 가정으로 돌아가고 다산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습니다.
며느리와 효도.
“『예기』에 며느리가 시부모 섬기기는 친정부모 섬기는 것처럼 하면 된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며느리의 불효는 그 남편이 불효한다는 명확한 증거다. 무슨 말이 더 있겠는가.”
시부모와 며느리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남편뿐임을 다산은 가르쳐줍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고부간의 갈등, 해결의 열쇠는 남편이 쥐고 있습니다.
효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효란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함을 그 첫째로 여기고, 겸하여 부모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나 몸에 따뜻하고 고운 옷을 입도록함이라 하여 양지와 양구체를 말합니다.
아내와 재물이 부모님 모시는 일에 가장 큰 방해라고 설파. 예쁜 아내에게 눌려 부모를 섬기기 어렵고 재산을 모으느라 부모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 효도하려면.
“성인의 가르침이란 물정을 알게 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지 결코 동떨어지고 미묘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음을 알게 한다”
“어버이 섬김에는 뜻을 받드는 일이 가장 크게 여길 일인데, 부인들의 뜻은 의복,음식,거처 등에 있기 마련이니 어머니를 섬기는 사람을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효성스럽게 봉양하는 길이다.”
#이재편_재물과 이익 앞에서 덤벙대지 마라
살고 싶지 않았다.
『전간기사』. 큰 가뭄에 쿤 흉년 백성들이 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자니, 살아가고픈 생각이 없어지고, 어떤 계책을 세운들 위로 상달할 자격이 없고 길이 막혀, 마음 속으로 울먹이는 다산의 모습이 보이는 짧막한 시집의 서문.
나라를 건지고 세상을 구할 의욕이 가득 차 있던 다산, 자신의 뜻을 펼 길이 막혔으니 어찌할 것입니까.
뇌물은 들키기 마련.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오만은 한밤 중에 했던 바도 아침이면 벌써 드러나고 만다.”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 인생의 파멸까지 당하고 마는 그 뇌물, 반드시 발각될 수밖에 없는 뇌물, 차떼기도 들키고 어떤 경우도 들키는데 뇌물은 진정 사라지지 않으니 어찌하오리까.
절약하고 아껴서 돕자.
“절약만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진다. 기꺼이 베푸는 것은 덕을 심는 근본이다”
재산을 오래 보관하려면.
“세상의 옷이나 음식의 재료나 재화는 부질없는 것들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기 마련이고 음식을 먹으면 썩기 마련이며 재물이야 자손에게 전해주어도 끝내는 탕진되어 흩어지고 만다. 다만 한 가지 가난한 친척이나 벗에게 나누어 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재물은 더욱 단단히 붙잡을수록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매기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 ‘베풀기를 즐겨라’. 그것이 재물보관법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혜로운 다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여겨집니다.
청렴은 어려우나 검소하기는 쉽다.
“청렴하면 재산상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니 오히려 행하기 어렵다고 하겠지만, 검소하면 비용이 들지 않으니 왜 쉽게 행하지 못하겠는가?”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일생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인욕人慾과 천리天理에 대하여.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사욕입니다. 모든 일에 사私와 욕慾이 개재되면 제대로 될 일이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무한한 욕심을 법과 제도로밖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다산의 뜻은 오늘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도둑을 못 잡는 진짜 이유.
그 지위가 높을수록 도둑질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그 녹봉이 후할수록 도둑질의 욕심은 더 커진다….도둑을 잡아야 할 관리들이 더 큰 도둑질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둑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대목에 인류의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공자의 인과 다산의 청렴.
불교는 자비, 유교는 인, 기독교는 사랑. 모두 인간의 지혜가 절정에 이르러 응축된 종교이자 학문이었습니다.
다산의 시대에 이르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이었는지…공자는 논어에서 ‘어진이는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하여 인仁만 구현되면 세상은 요순시대가 온다고 여겼습니다…다산은 공자 말씀을 바꾸어, ‘청렴한 사람은 청렴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라는 새로운 논리를 『목민심서』에서 주장했습니다.
씀씀이의 절약.
『목민심서』는 고위 공직자가 청백한 공직 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책. 씀씀이를 절약한다, 절용의 중요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봅시다.
“목민관 노릇을 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롭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하고, 청렴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일은 목민관의 첫째가는 임무다.”
“절약한다는 것은 한계를 두어 절제한다는 것이다. 한계를 두어 절제하는 데에는 반드시 법식이 있어야 한다. 법식이란 절용의 근본이다.”
“의복과 음식은 검소한 것으로써 법식을 삼아야 한다. 조금만 법식을 넘어도 그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져버린다.”
공물公物을 사물처럼 아껴야.
국고의 낭비. 자신의 재산이 아니고 공공의 재산이라고 해서 함부로 낭비하고 절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직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절약해서 사용하는 것이 왜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