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백창우. p248
#나한테는 노래가 집이다
도시락을 제대로 싸지 못해 학교 소풍을 빼먹은 것도 이때였다. 된장 한 숟가락에 호박잎 몇 장만 뜯어 따라갔어도 되었을 것을 말이다. 어쨌든 그 때 나는 혼자서 노는 법과, 자연 속을 잘 찾아보면 곳곳에 먹을 것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배웠다. 날마다 말도 안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들개처럼 산과 들을 혼자 돌아다녔다.
…그 때는 읽을 만한 책도 별로 없고 텔레비젼도 오락실도 컴퓨터도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도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수많은 놀이와 노래가 있었다. 정말 ‘노는 것밖에는 남는 것이 없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굴렁쇠 1’, ‘굴렁쇠 2’, ‘꿈이 더 필요한 세상 2’…’감자꽃’, ‘꿈이 더 필요한 세상’,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은자동아 금자동아’,’땅’ 같은 창작 동요들이 다 그 때 만들어 아이들과 부르던 노래들이다. 교과서에서도 노래 책에서도 음반에도 없는 노래들이었다.
굴렁쇠아이들. 나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놀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만든 동요는 대개 이 아이들이 먼저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만든 노래를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노래는 너무 어려워요”, “이 노래는 좀 재미 없어요” 하는 말도 귀담아들으려고 애쓴다.
내게 동요 만드는 법을 가르친 선생님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다.
이사를 그렇게 많이 다니고,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게는 문패를 달 집이 없다. 어쩌면 노래가 내 집인지도 모른다.
#다 다른 노래, 다 다른 아이들
다 다르다. 세상에 노래가 많지만 다 다르다. 세상에 아이들이 많지만 다 다르다. 쇠별꽃이든 애기똥풀이든 쏘가리든 모래무지든 그 무엇이든지 살아 있는 것들은 누구나 다 다르다.
꽃은 참 예쁘다/풀꽃도 예쁘다/이 꽃 저 꽃/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전북 임실 마암 분교 6학년 이창희,’꽃’에서
노래 속에는 참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말과 생각과 마음, 얼(정신)과 빛깔(정서)과 삶,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그 속에 있습니다. 한 노래를 만나는 일은 한 세계를 만나는 일입니다. 한 노래를 마음 안에 갖는 일은 한 세계를 마음 안에 갖는 일입니다.
좋은 글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사람의 생각을 넓고 깊게 만들고 꿈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좋은 노래는 마음 안에 아름다운 울림을 남깁니다. 아름다운 결을 새깁니다.
한 가지 물음에 저마다 답이 다 다르던 아이들이, 점점 물음 하나에 답 하나뿐인 어른들을 닮아 갑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자판기의 깡통처럼 ‘닮은 꼴 아이들’로 바뀌어 갑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이 사회의 숲에서 바르게 자라는 데는 무슨 별난 교육을 야단스럽게 하지 않아도 오염된 환경만 막아주면 된다고 생각한다…-이호철, 『살아 있는 글쓰기』
좋은 선생님은 교과서 밖에 다른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아닐까요?
‘문제 하나에 답 하나’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문제 하나에 답 여럿’일 수 있는 아이들 세계를 인정할 줄 모릅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우린 드린 것도 없는데…”로 썼다가 ‘X’표. 답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였다!
삶에서 배우는 답과 학교에서 배우는 답이 이렇게 다르면 뭐 하러 학교에 다니나요.
아이들에게 학습지 몇 개, 학원 두세 개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교육이라는 것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른들. 아이들이 ‘노는 꼴’을 못 봐 쓸데없이 아이들을 바쁘게 만드는 어른들이 너무 많습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노래 씨앗을 많이 뿌려주어야 합니다. 하늘은 ‘하늘색’이라고 써 있는 크레용만으로 담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교과서 바깥에, 학교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 노래를 돌려주자
어른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정말 형편 없습니다. 틀려먹었습니다.
시시하고 재미없는 동요? 밥상을 제대로 차려 줘야 합니다.
어른들이 먼저 눈을 떠야합니다. 부모가, 선생님이 나서서 아이들에게 좋은 ‘문화 밥상’을 차려 줘야 합니다.
텔레비전은 틀렸습니다. 아이들에게 남의 것이 아닌 진짜 아이들 것을 돌려 줄 수 있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들입니다. 선생님들입니다.
따뜻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랍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낸 아이는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으로 자랍니다. 신나게 놀아 본 아이는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른 아이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 자랍니다. 좋은 것은 이렇듯 몸과 마음에 아름다운 결을 하나씩 새깁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겠지요.
#노래 씨앗을 찾아서#
아이들은 아무 때나 시를 쏟아냅니다. 아이들은 정말 아무 때나 노래를 쏟아냅니다. 조금만 귀담아 들어보면 아이들 말 속에 생생한 시와 노래와 씨앗이 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아이들은 시인입니다.
#아이들 세상을 꿈꾸던 사람, 방정환
“아무나 하기 쉬운 동화극-노래 주머니”. “아무나 하기 쉬운”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만든 노래도 아무나 부르기 쉬워야 할 텐데. 좀더 만만해져야 할 텐데.
#이원수 시에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숨어 있습니다
이따금 어떤 시는 읽다가 그대로 노래가 되기도 하는데 ‘개나리꽃’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좋은 시는 노래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아이들 마음 안에는 늘 시와 노래가 출렁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즘에는 우리 아이들이 부를 만한 참다운 아이들 노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는 아름다운 마음을 꽃피울 작은 씨앗이고, 아름다운 마음은 아름다운 세상을 꽃피울 고운 씨앗이지요. 이원수 동요에는 이런 씨앗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노래가 가득한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겠지요
-백창우, ‘이원수 동요 콘서트-누렁아, 울지 말고 나랑 같이 놀자’ 안내장에서
언젠가 이원수 선생님이 쓴 글 한토막이 생각납니다.
“어른스러운 어린이가 되지 말고, 장래에도 어린이다운 어른이 되자.”
나도 어른이 되어 참 많이 망가졌지만, 이원수 동요를 품고 살다 보면 아이의 마음을 되찾게 될지도 모르지요. 좋은 세상이 어디 좋은 마음 없이 올라고요.
#깊은 노래 우물을 가진 사람, 윤석중
‘고추 먹고 맴맴’, ‘기찻길 옆’, ‘옥수수 하모니카’,’달맞이’,’고향 땅’,’우산’,…
#소리내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윤복진 동요
#내마음에 노래의 씨를 뿌려준 사람, 윤동주와 윤일주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한 시인, 권태응
노래를 만들다 보면 어떻게 내가 이런 노래를 만들었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무억을 만나게 될지, 어떤 가락과 장단 위에 내 몸이 놓이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지만 그 막막함과 설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좋은 시 속에는 노래의 길이 숨어 있습니다. 날마다 시의 숲에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해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창작 동요제. 자연 속에 사는 아이들을 노래한 시인 권태응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게 그거인 뻔하디 뻔한 동요, 고인 물처럼 한 군데만 머물러 있는 동요, 아이들의 삶도 마음도 생각도 느낄 수 없는 있으나마나한 동요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려졌습니다. 좋아진 것도 많지만 나빠진 것이 더 많습니다. 제대로 된 노래가 없는 세상이 어떻게 좋은 세상일 수 있습니까? 날마다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네모 반듯하게 각이지고 따로따로 시멘트 집에 갇혀 사는 세상, 권태응 동요가 더욱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아름답지 않아서입니다. 그만큼 아이들 삶이 찌그러져 있어서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지 않으면 이놈의 세상에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노래처럼 사는 고집쟁이, 이오덕
바보라도 좋아./바보라도 좋아./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노래처럼 나는 살고 싶어.-이오덕, ‘포플러 3’에서
#아주 조그만 것들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사람, 권정생
이슬에 멱감은 풀잎. 소는 그 풀을 먹고 배가 둥둥 부른다. 참으로 편하다. 소는 그래서 바보 같다.
소는 코가 꿰인 채 잠자코 끌려가 준다. 사람 대신 무거운 달구지에 짐을 실어다 준다.
소가 살이 찌면 사람들은 값을 얼마쯤 올려 매긴다. 그러나 소는 그림처럼 언제나 아름답다.
구정물 찌거기를 먹고 살아도 소는 하늘에 눈을 둔다. 소는 꿈속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마음으로만 얘기한다.
-권쟁생, ‘소’에서
언제가 알게 될 거야/ 내가 품은 씨앗 하나/ 샛노란 민들레로 피어나는 날/ 세상엔 무엇 하나/ 쓸모 없는 게 없다는 걸/ 나 같은 강아지 똥도/ 쓰일 데가 있다는 걸 – 백창우, ‘강아지똥’에서
#노래만이 참말이라던 이야기꾼, 이문구
누가 내 나이를 물어 보면 “몇 살로 오이나요? 그게 맞을 거예요.”하고 대답합니다.
나처럼 나이 먹는 것도 모르고 어지간한 일은 슬렁슬렁 넘어갈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소설가 이문구 아저씨지요. 글을 읽다 보면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글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좋은 노래는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노래가 진짜야. 노래 아닌 시는 시가 아니야.”
논둑에 사는/ 미루나무/ 이십 년 모은 재산/ 까치 둥지 하나./ 반짜이던 잎새/ 다 어디 가고/ 긴긴 겨울에/ 빈 하늘뿐.-이문구, ‘미루나무’
#아침 숲으로 함께 가고 싶은 사람, 임길택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스물두 해 동안 강원도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와 동화를 쓰던 착한 시인이었습니다.
별이 뜬다./ 별들이 뜬다.// 탄 바람에 하나도/ 날리지 않고// 탄 더미에 하나도/ 묻히지 않고// 저탄상 산마루에/ 폐석 더미 위에// 초저녁 별이 뜬다./ 꿈처럼 뜬다.-임길택,’초저녁’
#강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같은 시인, 김용택
김용택 시집을 읽다 보면 내 안에 온갖 풀과 꽃들이 피고 지고 소금쟁이, 물방개가 돌아다니고 콩새, 딱새가 날아다닙니다….김용책은 아주 짧막한 시 한 편이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쓰지 않습니다. 이 날 동네를 걸으면서 만난 풀, 꽃, 나무, 도랑, 길, 산, 강 모든 것이 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살아온 만큼 시를 씁니다. 김용택은 작지만 그이이 시는 산처럼 큽니다.
#별 하나 뚝 따 망태에 넣고
겨울 내내 전래 동요를 새로 다듬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녹음하면서 새삼 ‘우리말’이 참 넉넉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 토박이 말이 오만 몇천 낱말도 넘는다는데, 우리가 가진 우리말도 제대로 다 쓰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바깥에서 들어온 말’은 왜 그렇게 마구 쓰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무 때나 시를 쏟아내는 아이들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이 제멋대로 만든 세상입니다. 아주 어릴 때는 그림을 곧잘 그리던 아이가 미술학원에 가고 학교에 가면 금방 제 그림을 잃어버립니다. 학교에 길들고 텔레비전에 길들고 어른들에 길들면서 아이들 제 빛깔을 잃어버립니다. 그저 깡통처럼 모두 똑같은 ‘바보 같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합니다. 그냥 놔 두기만 해도 좋을 텐데.
#아이들 마음 안에 늘 노래가 들썩거리는데
‘서 있는 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의 글에 이런 말이 있지요.
“우리는 자연에서 멀러진 사람의 마음이 금방 딱딱해지고 만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 부족은 아이들이 늘 자연이 가까이 가도록 해서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마음을 갖도록 한다.”
또 ‘상처난 가슴’이라는 인디언은 이런 말을 했지요.
“우리는 이 자연 모두가 어머니 품이고 학교라고 믿는다.”
자연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지요.
시골 아이들 글이 도시 아이들 글보다 더 아름답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속에 자연에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빛깔과 창조력과 창의력이 무시되지 않는 교육, 꼴찌고 일등도 저 나름대로 꿈을 일구어 갈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와야 할 텐데요.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노래 때문에 사람들 마음이 조금 더 착해졌으면 좋겠다. 노래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음악은 즐겁고 재미있는 세계입니다
#모든 것들은 소리를 품고 있습니다
#들어야 들리고 보아야 보입니다
음악을 가려듣는 귀와 고르는 눈은 그냥 얻어지지 않습니다. 어른의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이지 않은다면 아이들의 음악 환경도 바뀔 수가 없습니다. 그러려면 여기저기 많이 뒤져 봐야 하고 많이 기웃거려 봐야 합니다. 어디에 어떤 음악이 숨어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소중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삶을 빛나게 할 무엇인가 좋은 노래 속에, 좋은 음악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꾸 들어야 불러봐야 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의 맛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그 음악의 진짜 주인입니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음악은 보이지 않은 춤이요, 춤은 소리 없는 음악이다-장 폴 리히터
나는 먼저 음악을 연주하고 나중에 그게 무엇인지 말해 줄 것이다.-마일즈 데이비스
뜻밖에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려’고 하는 선생님이 많습니다. 음악은 높은음자리표와 음표, 쉼표 따위를 아는 것도,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답을 외우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은 ‘느끼는 것’입니다...음악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로 음악과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교사는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의 기회를 주는 사람입니다. ‘느낌’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음악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것을 먼저 하게 된다면, 온갖 규칙과 기호들을 외우게 된다면, 아이들을 결국 음악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은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슬픈 노래도 좋아합니다
#노래 못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노래를 맛있게 부르려면
말을 배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노래를 배울 수 잇다. 문제는 아무도 어머니가 아이들을 말의 세계로 이끌 때 지니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음악의 세계로 이끌지 않는다는 데 있다.-윤구병, 『조그만 내꿈 하나』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
‘참다운 동요’를 찾아 아이들에게 돌려 줘야 합니다.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을 불행합니다.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어른들은 불행합니다.
#깡통 음악에 길드는 아이들
‘귀를 버린다’. 인스턴트 음악에 오래 길들다 보면 본디 가졌던 제 입맛을 잃어버리고 맛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는데,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오디,핑클, 코요테,엔알지,플라이 투 더 스카이, 컨츄리꼬꼬,에스이에스,업타운,와이투케이…이름이나 노래 제목에서 보듯 이들 가수의 이름이나 노래에서는 우리 나라만의 빛깔을 찾을 수 없습니다. 미국정서, 유럽 정서, 일놉 정서가 뒤범벅된 이름이고 노래입니다.
이들 노래들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이런 음악은 음식으로 말하자면 화학 조미료나 방부제가 잔뜩 들어간 음식과 같습니다. 아이들 처지에서 보면 ‘맞지 않는 옷’이기도 하고 ‘불량 식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음악에 길들면 우리 아이들 귀를 다 버리게 됩니다. 몸에 있는 귀나 마음에 있는 귀 모두 말입니다.
#창작 동요제, 슬쩍 들여다보기
그 많은 노래 가운데 몇 곡이나 살아남았을까요?
일찍이 교과서 동요가 답으로 만들어 놓은 몇 가지 ‘공식’에서 벗어난 노래는 쉽게 눈에 뜨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노래, 조그만 울림도 주지 않는 노래는 죽은 노래입니다.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따뜻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랍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낸 아이는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으로 자랍니다. 신나게 놀아 본 아이는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겠지요.
#좋은 시 속에는 노래가 숨어 있습니다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냉이는 참 신통한 풀이지요. 달이 기울고 차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들에 난 냉이의 잎은 초하룻날부터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돋아나고, 다시 그 다음 날부터 그믐날까지 하루에 한 잎씩 떨어져 나가 그물날이면 일이 다 없어지고 뿌리만 남는답니다…그래서 ‘음력풀’이라고도 하고 ‘달력풀’이라고도 하는 것이겠지요.
나비는 이름 그대로 ‘날아다니는 빛’이지요. 디들 나비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비처럼 가벼워서 교과서 밖으로, 교실 밖으로, 학교 밖으로, 울타리를 훌쩍 넘어 더 큰 세상도 보고, 봄 햇살과 만나 그만큼 아름다워지고 풀과 나무와 꽃들과 만나 그만큼 더 싱싱해지고 바람 소리 개울물 소리와 만나 그만큼 더 맑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와 아기를 위한 첫 음악
좋은 음악은 자연과 닮은 음악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꿈이 깃든 음악입니다.
전통 태교? “자연과 음악을 가까이 하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지요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들을 똑같이 만들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 텐데. 똑같은 책상과 걸상에, 똑같은 교과서와 공책에, 똑같은 선생님한테 배워도 똑같은 사람은 없지요. 다 다르지요. 살아 있는 것 가운데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지요.
동강할미꽃,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쉬리도 어름치도 살지 않고 청둥오리도 황조롱이도 떠나고 초롱꽃도 패랭이꽃도 피지 않는 강과 숲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살아 있는 것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는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누구나 그 안에 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데.
모두 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 누가 이런 이름을 처음 붙여 주었을까요?
가랑비, 궂은비, 된비, 모종비, 보슬비, 부슬비, 소나기, 억수비, 여우비, 이슬비, 작달비, 장대비, 장마비, 찬비, 큰비, 흙비…가부새바람, 가바람, 갈마바람, 강쇠바람, 갯바람, 건들바람, 고추바람, 꽁무늬바람, 꽃샘바람, 구렁목바람, 높새바람, 늦바람, 덕석바람, 된바람, 도깨비바람, 도래바람, 돌개바람, 뒤울이바람, 뒷바람, 마파람, 맞바람, 먼지바람, 모래바람,모퉁이바람, 몽둥이바람, 방석바람, 북새바람, 산들바람, 살랑바람, 샛바람, 선들바람, 소소리바람, 실바람, 재넘이바람,피죽바람, 하뉘바람, 황소바람, 로루라기바람, 홍두깨바람, 회오리바람, 홀레바람….
비에게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도 이름 하나씩 붙여 준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요.
#공부 공부 공부, 시험 시험 시험
‘머리’를 위해 투자할 줄만 알았지. ‘가슴’을 위해 투자할 줄은 모르는 어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불행해집니다. 지식이야 커서도 채울 수 있지만 정서나 감수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소중한 것이 아닌데, 지금 곧 드러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먼 뒷날을 위해 아이들 마음 안에 심어야 할 씨앗이 있는 것인데.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어른이라도 한때는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험 따위로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골목 학교가 그립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놀이 속에서 많은 것을 저절로 배우고 저절로 깨우칩니다. 저절로 배운 것만큼 오래 가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끼리 꾸려 가는 ‘골목 학교’가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부른 전래 동요만 봐도 그 많은 곡이 거의 다 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많이 넘어져 보고 몸으로 겪어 봐야 튼튼히 설 수 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놓고 노는 꼴을 못 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경험하고 실패해 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아이들을 통제하고 챙기려 듭니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그만 놀고 공부해라”인 것을 어른들은 모릅니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마음껏 놀아라”인 것은 어른들은 생각조차 못 합니다…공자, 맹자 위에 ‘놀자’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 리 없지요. 골목학교가 그립습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즐겁고 신나는 학교, 골목학교가.
#느리게, 조금 느리게
#쏘가리는 쏘가리의 삶이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요 음악회
어른들은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아이 때는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아이 때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날마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작은 꿈 하나도 품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
그저 네모난 틀 속에 갇혀 그 바깥을 바라볼 생각조차 못하고 하루하루 그게 그거인 시들한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 남은 날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지 모릅니다.
아침이면 눈뜨는 나팔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눈뜨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좋은 시 하나, 좋은 노래 하나 제대로 품고 살지 못하는 어른은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백창우, ‘어른들을 위한 동요 콘서트-어른들은 불쌍하다’ 여는 글에서
단 한 번뿐이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순간들은-백창우, ‘한 순간’ 에서
그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만 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별들도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이었습니다.-정호승, ‘기차 이야기’에서
나는 시계 바늘에게 묻는다./ ‘정확해진다는 게 뭐지?’/ 시계 바늘이 나에게 대답한다./ ‘그건 갇힌다는 거야.’/ 시계 바늘이 말을 잇는다./ ‘나는 요즈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빠.’/ 내가 말한다./ ‘나도 그래.’-안도현, ‘사진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