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1. 빅토르 위고. p521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 1862년 1월1일. 오트빌 하우스에서
#올바른 사람
미리엘 씨
도시에는 말 많은 사람은 흔해도 생각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과오가 지나온 경로를 보자”
“인간은 스스로의 짐인 동시에 유혹인 육신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며 그것에 끌려다닌다. 인간은 그것을 감시하고 제어하고 억제하여야 하며, 마지막 극단에 이르러서가 아니면 굴복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굴복에 있어서도 역시 과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저질러진 과오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추락이기는 하지만, 무릎을 꿇는 추락에 불과라므로 기도로써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성자가 되는 것은 예외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통칙이다. 방황해라, 태만해라, 죄를 지어라,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되라…
“무식한 자들에게는 가급적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무상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죄다. 사회는 스스로 만들어 낸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음속에 그늘이 가득 차 있으면 거기에서 죄가 범해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
그는 잊음으로써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희망으로써 그것을 키우고 숭고하게 하려고 했다.
“예하, 제발 가지 마십시오! 생명이 위험합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요.”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돼. 그건 외부의 위험이고 작은 위험이야. 우리들 자신을 두려워하자. 편견이야말로 도둑이고,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들 내부에 있어. 우리들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영혼을 위협하는 것만을 생각하자.”
모든 노인과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조금 밖에 자지 않았다. 짧지만 숙면했다.
양심이란 우리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타고난 학문의 양(量)이오.
루이 16세로 말하자면, 난 반대했소. 나는 한 인간을 죽일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악을 절멸시킬 의무는 있다고 생각하오. 나는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소…오류와 편견의 붕괴를 도운 거요. 오류와 편견의 붕괴는 광명을 가져오지. 우리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렸소. 그러하여 비참의 도가니였던 낡은 세계는 인류 위에 나둥거러짐으로써 기쁨의 항아리가 된 거요.
하지만 나는 분노 섞인 타도는 경계하오.
권리에는 분노가 있는 것이오, 주교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요…누가 뭐라고 하든, 프랑스혁명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한 걸음이었소. 미완성이긴 했지. 그러나 숭고했소. 혁명은 모든 사회의 미지수를 끄집어냈소. 혁명은 인간의 정신을 온화하게 하고, 진정시키고, 위안하고, 밝게 하였소. 혁명은 지상에 문명의 물결을 흘려 보냈소. 훌륭한 것이었소. 프랑스혁명은 인류의 축성식이었소.
그렇소,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욕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
진보는 하느님을 믿어야 가능하오. 선(善)은 믿음 없는 하인을 가질 수 없소. 무신론자는 인류의 나쁜 지도자요.
신부에게 특히 주교에게 자비의 첫째 증거는 청빈이다.
#추락
법정의 규정은 명백했다. 우리들의 문명에는 무서운 시기가 있다. 형벌이 파멸을 선고하는 시기가 그렇다. 사회가 생각하는 인간을 회복할 길 없이 버리고 떠나갈 때, 그것은 얼마나 슬픈 순간인가! 장 발장은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제 장 발장이 아니었고 24601호였다.
장 발장은 흐느끼고 떨면서 감옥에 들어갔고, 무감정한 사람이 되어 거기서 나왔다. 그는 거기에 절망해서 들어갔고, 거기서 침울해져서 나왔다.
이 사람의 영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을까?
인간의 성질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완전히 변화할 수 있을까? 신에 의하여 착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사람에 의하여 악해질 수 있을까? 인간의 영혼이 운명에 의하여 완전히 개조되고, 운명이 나쁘기 때문에 영혼도 나빠질 수 있을까? 너무 낮은 천장 아래에서 등골뼈가 구부러지듯이, 사람의 마음도 고르지 못한 불행의 압박 아래에서 비틀어져 불치의 추악과 불구로 변화할 수 있을까?
신의 손가락이 모든 사람의 이마에 써 놓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그 사나이의 생에서 지워 버렸으리라…장 발장은 암흑 속에 있었다.
석방은 해방이 아니다. 사람은 형무소에서 나오지만 처형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1817년에
이상은 오늘날에는 잊혀 버렸지만 1817년이라는 해와 관련, 뒤죽박죽 떠오르는 일들이다. 역사는 이 모든 특수한 사실들을 거의 다 무시하고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한없이 많은 것이 역사에 밀려들 테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세세한 일들을 사람들은 사소한 일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데(인류에 사소한 일은 없고 식물에 사소한 잎은 없다), 그것들은 모두 유용하다. 시대의 모습은 연년의 표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위탁은 때로 버림이다
#하강
이 아주 작은 변화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이 아주 작은 변화는 실제로 원료값을 굉장히 감소시켰으니, 이로 인해 첫째로, 노임을 올려서 그 지방에 혜택을 주었고, 둘째로, 제조법을 개선하여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었고, 셋째로, 훨씬 싼 값으로 팔면서도 수익을 세 배나 올려서 제조자 측에도 이득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고안에서 세 가지 결과가 생겼다.
“국가 제일의 두 공무원은 젖먹여 키운 어머니와 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는 책을 사랑했다. 책은 냉정하고 안전한 벗이다.
사람들이 조금만 수고하면 쐐기풀은 아주 유용할 것인데, 내버려 두면 해롭게 되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죽여 버리지. 사람들은 얼마나 쐐기풀과 비슷한가!
여러분, 이걸 잘 기억해 두시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세상에는 자기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남의 행위를 엿보려고 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
공연히 그런다. 오직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들추고 싶은 일념에서. 순전히 지껄이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그리고 흔히 그러한 비밀이 알려지고, 그러한 기밀이 공표되고, 그러한 수수께끼가 백일하에 드러나면 파국이, 결투가, 파산이, 가정의 파탄이, 일생의 파멸이 야기되고, 그들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단순한 본능에서 ‘모든 것을 발견한’ 그들은 그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짖는다. 한심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직 지껄여야 할 필요에서 악인이 된다.
#자베르
그것은 조금도 인간들의 잘못이 아니오. 인간들은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오. 당신이 나온 그 지옥은 천국의 첫번째 형태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만 했던 것이오.
#샹마티외 사건
#반격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자연이 창조해 낸 작품.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20세기에 위고와 견줄 만한 작가는 없으며, 21세기에 그런 작가가 나올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