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16년 7-8월 통권 제149호
#민주주의의가 유일한 대안이다_김종철
기본소득이라는 해법
거부절미하고 말한다면, 나는 기본소득은 비단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온갖 사회적, 실존적 측면에서 우리가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려 할 때 가장 쓸모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확실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물론 수급자의 자격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하는 일반적인 복지프로그램과 달리 아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사회 구성원 전원에게 일정액의 생계비 내지 생활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아이디어는 기존의 상식으로는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노동윤리’의 허구성
이른바 ‘노동윤리’라는 게 과연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는 데 가장 좋은 길잡이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쓴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기념비적인 에세이이다. 러셀은 이 글에서 ‘노동윤리’라는 게 원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고대 이래 전통적으로 사회의 지배계급 혹은 귀족 계층이 누려온 ‘여가’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억압적인 지배하에 있었던 하층민의 노동이 만들어내 산물이었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은폐하고자 지배세력이 꾸며낸 허구적인 아이디어가 ‘노동의 신성함’ 혹은 ‘노동의 존엄성’이었고, 그것을 기초로 ‘노동윤리’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긴 노동시간, 더 힘든 노동조건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나누면 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사고의 전환’만 이루어진다면, 이 절망적인 상황은 금세 종식될 수 있다.
즉,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을 통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생산노동을 분담하면서 보다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기본소득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우리의 삶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의 도입은 경제를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으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생산력이 매우 낮았던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과학기술 덕분에 오히려 생산력의 지나친 증대를 우려해야 할 시대이다…이런 시대에 인간이 더는 괴로운 노역에 시달리고 있어야 할 이유도, 수많은 민중이 ‘풍요 속의 가난’을 견뎌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관건은, 우리사회가 고르게 나눌 의사가 있느냐, 그리고 고르게 나눈다는 생각에 대해서 우리가 정치적인 합의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치’라는 결론을 여기서 다시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어리석은 탐욕에 맞서고, 기후변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다수 민중의 삶을 보호하고, 자연세계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합리적인 정치’이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합리적인 정치란 온전한 의미의 민주정치뿐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유일한 대안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_미즈노 가즈오
근대의 ‘사망 선고’
“극단적인 격차는 문명의 조건이라고 해도 된다”(피케티)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격차는 서구 역사, 근대사의 특징이다…21세기가 상속과 증여의 황금시대가 된다면, 근대는 1980년에 이미 끝났나고 할 수 있다. 본인의 노력이나 재능과는 거의 관계없는 증여나 상속의 있고 없음에 따라 부의 격차가 결정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자본을 효율적으로 자기증식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보다 합리적(과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기업은 이 원리에 따라 행동하면 이윤 극대화를 달성할 수 있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 에너지는 이들 3개의 행동원리에 모두 관계한다. ‘보다 빨리, 보다 멀리’를 실현시키려면,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고 또 대량으로 소비하더라도 가격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필수이다_야니스 바루파키스
윤리적인 투쟁입니다…기본소득은 생명·삶과 자본에 대해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을 전복하는 아이디어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_강양구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은 미세먼지와도 닮았다. 먼지는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먼지를 적당히 거르는 장치를 몸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지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는 미세먼지는 이런 보통 먼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동차나 공장에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먼지는 대부분의 보통 먼지와는 다르게 우리 몸속의 거름 장치를 무시하고 단번에 폐 깊숙이 박힐 수가 있다. 그렇게 폐에 박힌 먼지는 폐뿐만 아니라 혈관, 심장 심지어 뇌까지 공격한다.
#유전자조작 쌀, 상용화되는가_허정균
‘내가 농사지은 것은 GMO 아니다’ 이렇게 표시하면 (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GMO를 안 먹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것은 GMO가 아닙니다’하고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위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게 이 정권입니다.
식량을 통한 세계지배
GM작물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전세계 종자 시장 1위 다국적 기업 ‘몬산토’와 다국적 곡물유통회사인 ‘카길’이다. 이들은 GM작물을 통해 인류와 지구환경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몬산토는 인도에서 병해충, 잡초에 강하다는 유전자조작 면화를 심도록 한 다음 엄청나게 가격을 올렸다. 인도의 농민들은 인도 면화 종자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 몬산토 종자와 그 종자 이외의 풀만 죽이도록 만든 제초제를 사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지만, 부작용으로 수확량은 감소했고 그 면화 줄기를 먹은 양들이 이름 모를 질병으로 숨져갔다. 결국 15년 동안 인도 농민 20만 명이 자살했다.
#후천개벽과 생명의 법도_츠치다 다카시
“물질은 개벽되었다, 정신을 개벽하자”
인류의 비극적인 멸망을 회피하는 길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의 개벽’에 의한 것일 것이다.
정신이 바르게 변혁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보라”고 고다마 붓다는 가르치고 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번뇌와 탐진치이다.
#현장에서 ‘정치’를 생각한다_권영국, 이계삼, 하승수
저는 밀양 송전탑 투쟁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선거에 나올 일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제가 송전탑 싸움을 하진 이제 5년째가 되는데, 정말 하루도 정치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기사부터 확인했어요. 별다른 일이 없나 하고 ‘밀양’, ‘송전탑’, ‘국회산업통상위’ 등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어요.
#농사꾼 작가가 묻는 ‘좋은 삶’의 가능성
우리 삶을 끌어가는 힘
소망한 대로 그렇게 작은 영농규모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삶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소비생활에 대한 혁명적인 각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업적인 농사를 면치 못하게 하는 큰 요소는 국가가 주도하고 공급하는 공교육 서비스와 ‘현대적인’ 의료체계이다.
특히나 자가용 승용차를 굴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업적 농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호미-황규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풀을 매고 흙덩이를 쪼개고 뿌리에
바람의 길을 내주는 호미다
어머니의 무릎이 점점 닳아갈수록
뽀족한 삼각형은 동그라미가 되어가지만
호미는 곳간에 쌓아둘 무거운 가마니들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한 끼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몸을 부린다
“물질적 ‘번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생의 논리와는 양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