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다산연구회 편역. p340
이 책은 다산연구회의 『역주 목민심서』를 대중적 교양서로 개편한 것이다.
다산학의 체계상에서 사회적 실천으로 위상이 잡힌 『목민심서』는 요즘 개념으로는 지방행정의 지침서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렇듯 다분히 실무적이고 기능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목민심서』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마음먹고 읽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요컨대 『목민심서』는 자기 시대의 현실에 대한 저자 자신의 뼈저린 고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의 해법을 진정으로 강구한 것이다. 민(民)을 중심에 둔 사고의 방향에서 정치제도의 개혁과 지방행정의 개선을 도모한다. 거기에는 다산의 고도로 독창적인 인간학이 개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는 대단히 풍부한 사실과 논리로 엮어졌고 또 갖가지 미덕을 간직한 책이다. 실사구시의 방법론으로 모범을 보인 저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시의 실상과 관행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병패의 원인을 찾고 치유책을 고안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분석적이며,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역주 목민심서』의 「개역판서」에서 “우리 전근대 사회의 참모습들을 가장 역사적으로, 사실적으로 제시해놓은 책이 아마도 『목민심서』가 아닌가 한다”고 언급한 것은 대개 이런 면을 지적한 것이다.
다산은 「자서自序」에서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고 끝을 맺었다. 그 자신이 정치현실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까닭에 붙인 말이다. 이 맺음말은 실로 비장하다. 오늘의 현실에서 다른 의미로 또 ‘심서’가 된 셈인데 그 참뜻이 살아나기를 고대한다. 이 책은 축약본이다. 교양적 차원을 넘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분들은 응당 『역주 목민심서』, 더 나아가 그 원전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목민심서』는 중환자에 대한 처방에 준하는. 막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려는 구민救民의 절실한 의도로 씌여진 것이다….뿐만 아니라 마치 종합검진을 하듯, ‘민’이 처한 현실, 정치·사회·경제적 환경과 그 역사적 배경, 봉건국가 통치의 하부말단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모순의 양상을 치밀하고 예리하게, 그리고 총체성의 시각을 잃지 않고 고찰 분석해내고 있다. 『목민심서』의 가장 빛나는 내용이다. 거기서 이조후기 사회 전체의 실상이 거울처럼 드러나서 그 시대를 폭넓게 통찰할 수 있고 나아가 오늘 우리가 착잡한 현실을 비추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호치민이 존경한 다산)
#자서自序
옛날에 순임금은 요임금의 뒤를 이르면서 12목牧을 물러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기르게 하였으며,….이로 미루어 보면 백성을 부양하는 일을 가리켜 목牧이라 한 것은 성현의 남긴 뜻이다.
나의 처지가 낮았기 때문에 듣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이것들 또한 종류별로 기록하였으며, 나의 얕은 견해를 덧붙였다.
이 모두 이른바 목민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이런 책들은 거의 전해오지 않고 오직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나의 이 책인들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랴? 그러나 『주역』에 이르기를 “앞사람의 말씀이나 지나간 행적들을많이 익혀서 자기의 덕을 쌓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내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어찌 꼭 목민에만 한정한 것이겠는가?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순조21년(1821) 늦봄에 열수 정약용은 쓴다.
#부임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
수령의 직분은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뜻이 있더라도 밝지 못하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는 백성이 그 해독을 입어 괴로움을 당하고 길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사람들이 비난하고 귀신이 책망하여 그 재앙이 후손들에게 미칠 것이니, 이런데도 어찌 수령의 자리를 구해서야 되겠는가?
새 수령 맞이에 필요한 말의 사용료를 이미 공적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백성에게 거두는 것은 왕의 은혜를 감추고 백성의 재물을 노략질하는 것이니, 그래서는 안된다.
위엄은 청렴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은 겁내어 엎드릴 것이고, 명령을 내리고 시행함에 백성들이 모두 순종할 것이다. 아, 300냥의 돈으로 이러한 환호성을 얻게 되니,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청렴함은 손해를 보니 행하기 어렵다고 하겠지만, 검소함은 비용도 들지 않는데 어찌 쉽게 행하지 못하겠는가? 근래에 해남현감이 된 한 무인이 비단주머니의 매듭장식을 길게 늘어뜨리니, 강진 아전들이 이를 보고 ‘그 주머니를 보니 분명 음탕하고 탐욕스러울 것이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이것이 사람을 보는 묘한 방법이니 오직 많이 배운 자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들도 모두 알 수 있다.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부임하는 길에는 오직 엄하고 온화하며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하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
여론을 수집하기는 쉬우나 개혁은 어려운 일이다. 고칠만한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오늘에 들떠서 날뛰지 말며 다음에 실망하지도 말 것이다.
#율기
바른 몸가짐
일상생활을 절도 있게 하고, 옷차림은 단정히 하며, 백성들을 대할 때에는 정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령의 도이다.
“위엄있는 차림새를 갖춘 자는 덕의 표현”이고, “공경하고 삼가는 차림새는 백성의 본보기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옛날의 도이다. 위엄있는 차림새를 잃으면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없으니, 무슨 일이 되겠는가?
요컨대 일이 번잡할수록 마음을 더욱 느긋하게 가져야 한다
많이 말하지도 말고, 갑자기 성내지도 말 것이다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면 순종치 않는 백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이 되어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를 차리는 데 공경하지 아니하면, 볼 것이 무엇 있겠는가”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고 하였다.
『성산록』에 이르기를, “술을 좋아하는 것는 다 객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잘못 생각하는데, 술마시는 버릇이 오래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되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마시면 주정부리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 많은 자가 있으며, 마시면 잠자는 자도 있는데, 주정만 부리지 않으면 폐단이 없는 줄로 여긴다. 그러나 잔소리와 군소리는 아전이 괴로이 여길 것이요, 깊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지르고 어지러이 떠들며 넘치는 형벌과 지나친 곤장질만이 정사에 해가 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청렴은 수령의 본래 직무로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지혜가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욕심이 크므로 청렴한 관리가 되고, 지혜가 짧고 사려가 얕은 사람은 욕심이 작으므로 탐욕한 관리가 되는 것이니, 진실로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면 청렴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정선이 말하기를, “전에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상관이 탐욕스러우면 백성은 그래도 살길이 있으나, 청렴하면서 각박하면 곧 살길이 막힌다 하였다…”
아전과 군교들이 바치는 성찬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다.
몸을 다스린 후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부인의 소청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 비방이 그칠 것이다.” 그 관리가 크게 깨닫고 말대로 하자. 그 부인이 항상 김상헌을 욕하기를, “저 늙은이가 저만 청백리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왜 남까지 본받게 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는가”라고 하였다.
수령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워지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수령의 으뜸가는 임무이다.
#봉공
상관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전임자의 흠이 있으면 덮어주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또 죄가 있으면 도와주어 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적으로 보내는 문서는 아전들에게 맡기지 말고 꼼꼼히 생각해서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다
공문의 격식과 문구가 경사經史와 다르기 때문에 서생書生이 처음 부임하면 당황하는 일이 많다
#애민
노인을 공경하는 예가 폐지된 후에 백성들이 효도를 하지 않으니, 수령이 된 사람은 다시 노인을 공경하는 예를 거행해야 한다
섣달 그믐날 이틀 전에 노인들에게 음식물을 돌려라
생각해보라, 큰 고을이라 하더라도 80세 이상 된 노인은 불과 수십 명일 것이고 90세 이상 된 노인은 몇명에 불과할 것이며, 소용되는 쌀은 두어 섬에, 고기도 60근에 불과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쓰기 어려운 비용이겠는가? 기생을 끼고 광대를 불러서 하룻밤을 즐기는 데 거액을 가볍게 내던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천하에 낭비하고 헛되이 버리는 것이 이런 일이 아니겠는가?
합독(合獨)을 주선하는 일도 실행할 만한 것이다
#이전吏典
아전을 단속하는 일의 근본은 스스로 규율함에 있다.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이 행해질 것이고,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하더라도 일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예로 바로잡고 은혜로 대한 뒤에라야 법으로 단속할 수 있다. 만약 능멸하여 짓밟고 함부로 부리며 이랬다저랬다 속임수로 몰아가면 단속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윗사람으로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함은 성인이 경계한 바이니, 너그러우면서도 풀어지지 않고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는 바가 없을 것이다.
타이르고 감싸주며 가르치고 깨우치면 아전들 역시 사람의 성품을 타고난지라 바로잡아지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니, 먼저 위엄부터 베풀지 말아야 한다.
나라 다스리는 일은 사람 쓰기에 달렸으니, 군현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사람 쓰는 일은 다르지 않다.
좌수는 향청의 우두머리인데, 진실로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모든 일이 잘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아첨 잘하는 자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諫諍하기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살피면 실수하는 일이 적다.
비장을 두는 수령은 마땅히 신중하게 인재를 고르되, 충성되고 신실함을 첫째 기준으로 삼고 재주와 슬기를 다음으로 해야 한다.
#호전戶典
#예전
옛날의 학교는 예와 음악을 익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도 무너지고 음악도 무너져서 학교의 교육이 독서에 그칠 뿐이다
과거공부는 사람의 마음씨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지만,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공부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병전
#형전
송사를 심리하는 근본은 성의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홀로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삼가 참되게 하는 데 있다
옥에 갇힌 죄수의 죄를 판결하는 일의 요체는 밝게 살피고 신중히 생각하는 것뿐이다.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살핌에 달려 있으니 어찌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으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벌은 백성을 바로잡는 데 있어 말단의 방법이다. 수령이 스스로를 다스리고 법을 엄정하게 받들면 백성은 죄를 범하지 않게 되니 형벌은 없애도 좋을 것이다.
옥은 이승의 지옥이니, 수인의 고통은 어진 사람들이 마땅히 살펴야 한다.
옥중에서 토색질당하는 것은 해명할 수조차 없는 원통한 일이다. 이러한 원통함을 살펴야 현명한 수령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폐단을 금하고자 하면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을 가두지 않는 것뿐이다.
도적이 생기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위에서 위의를 바르게 가지지 아니하고, 중간에서 명령을 받들지 아니하며, 아래에서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아무리 도적을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공전
#진황
구황의 정사에는 예비만한 것이 없으니, 예비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구차할 따름이다.
#해관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가 있기 마련이다,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벼슬을 잃어도 연연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할 것이다
맑은 선비의 돌아갈 때의 행장은 모든 것을 벗어던진 듯 초졸하여 낡은 수레와 야윈 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훌륭한 수령은 떠난 후에도 사랑이 남는다.
죽은 뒤에 사모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면, 그 수령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