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라. 스테판 에셀. p122
Engagez-vous!
스테판 에셀의 청년 시민운동가와의 대담
‘현명한 인간’이란 뜻의 호모 사이엔스를 버리고 공생인을 의미하는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합니다-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동참합시다. 그래서 개발주의가 아니라 생태주의가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서는 그런 세상을 만듭시다. 그러다보면 ㅓ지 않은 장래에 세계환경기구 또는 세계생태기구도 탄생하리라 믿습니다-최재천
이 시대에 인권이란 지구와 자연의 권리와 공생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쪽에서 땅과 강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권리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조효제
사고는 유연해지고 마음은 절로 정갈해지는 놀라운 경험? 이는 ‘참여하라’가 가리키고 있는 세상이 분명히 생명을 우선하는 공존의 세상이기 때문이지요. 머리를 높이 들고 두 눈으로는 멀리 내일을 바라보며 정신을 씻어내는 그 기분은 좋은 책을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박원순
에셀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로 생태문제를 꼽는다. 자연은 무궁무진한 지혜가 담신 신비한 능력의 온상이기에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들 역시 어떠한 덫에 빠진다 하더라도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볼썽사나운 세태와 추악한 일들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라고 주장하며, 이에 분연히 맞서기 위하여 레지스탕스 정신을 되살릴 것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왜 참여해야 하는가?
이윤과 금권의 독재를 거부하고, 극도의 빈곤과 오만한 부가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것에 분노하고, 경제적 봉건주의(재벌 중심의 경제)를 거부하고, 진정으로 독립적인 언론이 필요함을 확인하고, 모든 형태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는 것, 우리가 지난날 수호했던 이러한 가치와 성과 중 많은 것들이 이제는 지켜가기 힘들게 되었거나, 심지어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저항이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우리 주위에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하고 체념하는 것,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성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면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또한 현명한 정치인이 당선되기를 바라며 민주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요컨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지요.
저항은 단지 지성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실천이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면 그건 그만큼 참여하는 여러분의 뜻이 결연하다는 징표일 뿐이지요.
지금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지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외면하고, 그냥 되어가는 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세대가 생태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 옛날 레지스탕스 운동의 의미만큼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태주의’라는 말은 대단히 구체적인 문제들과 연결된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지요. 게다가 불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기도 하고요.
#지속가능한 발전이 간과하고 있는 것_지구의 수명과 생태농업을 주목하라
우리는 ‘발전’이라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산수단이나 자원개발 수단을 산업화된 서국국가들만큼 미처 갖추지 못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발전이라는 말을 우리와 동등한 수준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발전이란 GNP의 수치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제 발전보다는 우리 스스로 좀 더 나아졌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발전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되지요. 다시 말해 교육, 건강, 개인의 문화나 정체성 보호 면에서 나아졌음을 경험할 때만이 진정 행복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스스로 나아짐을 자축하하는 생일 잔치)
발전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발전의 토대는 천연자원입니다. 그런데 지구가 점점 훼손되고 있으니, 우리는 개발에 필요한 자원들을 더 이상 지구로부터 공급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구를 위기에 빠뜨릴 우려가 있는 자원의 생산을 대폭 줄이고, 인간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자원들은 더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수출 위주의 농업과 자급자족 농업의 차이입니다.
환경파괴, 선진국 산 농산물 수입 조장하여 지역 농민들을 경쟁자로 만들고 파산시키는 녹색혁명? 그래서 농업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생태주의적 인식의 첫걸음_인간과 자연의 동등한 권리를 깨닫다
제가 앞에서 세계인권선언문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놀라운 사실은, 그 선언문에 ‘지구’라는 단어가 한 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천연자원이 과도하게 착취당할 때 어떤 위험들이 따르는지 정말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생태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자연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생태주의자와 정치적 행동_세계환경기구 탄생은 왜 필요한가?
자기 정부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한 국가들과 ‘아젠다21’의 내용을 실천해야 하는 당위성 사이에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제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때는 사회적 불의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자극을 좀 받아야 합니다.
저는 중국, 인도, 일본 등은 원래 자연친화적인 철학을 구축한 나라이지만 이제는 자연을 파괴하는 경제를 이미 정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기구들이 주시하건 아니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지요.
세계화? 지구를 착취하는 경제를 장려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위기가 휩쓸고 간 뒤 우리가 사는 이곳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고달픈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협오스러운 세상입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정의로운 세상, 모든 이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정착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합니다.
#위기를 타파할 대안은 있는가?_연대하라! 행동의 생태주의를 이해하라!
미래의 세계를 좀 더 정의로운 곳으로 또 살만하고 현명한 세상으로 그릴 때는 글로벌한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실제 행동은 지역적일 수밖에 없지요(Think Global, Act Local)
단지 저항만 한다고 해서 레지스탕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항 그것은 창조요,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라고.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저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이든 단순화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한 사고입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요.
의식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략가가 되어야지요.
‘왜’ 그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편이 훨씬 쉬운 법이지요. 전략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상호의존적이고, 그만큼 변화 또한 모든 부문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대가 생겨난다는 뜻이지요.
#참여는 사람됨을 다하는 책임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참여할 때,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느낄 때 비로소 참된 사람이다”-샤르트르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을 위하여_세대간의 활발한 교류로 잠재된 위험을 타파하자
지금 진행되는 변화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도 일단 다행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그런 자각조차 없다면 “지금 당장 잘 사는 게 중요해.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라는 식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이 시점에 ‘윤리적 자각’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앞날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하고 참여하라_하승수
참 고단한 시대이고, 고단한 삶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고, 내 가족 챙기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스테판 에셀’이라는 95세 된 프랑스 노인은 ‘분노하고 참여하라’고 한다…과연 내가 참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냉소적인 것도 사실은 ‘감추어진 분노’ 때문이다. 정부가, 기업이, 나를 고용한 고용주가, 학교가, 권위적인 제도나 관습이 나를 괴롭히고 억누를 때, 내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뭘 어쩌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냉소하게 된다. 그러나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얘기한다…
과연 가능할까?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절망이다!
이런 절망이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좌절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절망하는 대신 분노하고 참여해야 한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삶과 행복과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 그것이 95세의 깨어 있는 한 노인이 지구 위에 사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사실 문제의 원인도, 그 문제를 풀어줄 해법도 모두 정치에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직 성장과 물질, 경쟁만 추구하는 정책들을 결정해온 결과 오늘의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정치뿐이다. 정책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한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녹색당과 같은 대안정당이 필요하다
“참여하라 | 분노하고 참여하라”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