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이원규. p319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의 길•인•생 이야기
‘살아있는 박물관’ 101세 장영분 할머니
#아름다운 사람들
늦가을 단풍으로 따지자면 설악산도 좋고 지리산도 좋지만 단풍의 백미는 황금 들녘이다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
‘전설 속 청학동’을 꿈꾸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섬지사), 자치•생명•살림의 지역공동체 지향
볏짚 황금소, 소 할배 신남균 할아버지
이땅의 모든 농부들은 예술가였다. ‘감잎 나올 때 콩 심어라’하듯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생의 시간표를 온몸으로 아는 농사기술도 감동적이고,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멍석과 짚신을 삼았던 기술도 경이롭다. 그뿐인가. 지게, 쟁기, 물레방아를 만들고 초가지붕을 이거나 집을 지었다. 그 모두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작품들이었다.
웬만한 것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예술의 극치들이 바로 삶 그 자체였다
소를 대신해 농기계가 들어오면서부터 농부의 손은 오히려 퇴화했다.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등으로 조금 더 편해졌지만 그만큼 빚은 더 늘어나고 손은 퇴화하고 행복지수는 떨어졌다.
74세에 접어든 화가의 길, 81세에 독립을 선언하다(‘백발의 화가’ 한숙자 할머니)
국자 대신 붓을 든 한숙자 할머니
벌? 자연수정! 우리 인간들도 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금방 죽심니더.
남해독일인마을, “이 마을이 너무 관광지화 되는 바람에 날마다 공사중인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생활에 불편도 많지예…”
#지리산에서 다시 태어나다
철새는 집이 따로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집이기 때문이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이라는 해괴한 물건을 포기했다. 이 세상의 모든 집을 안식처가 아니라 과정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
줄잡아 3만리 걷고, 14대 바이크로 100만킬로미터 이상, 지구 20바퀴 이상 돈 셈!
마침내 국도와 지방도 어디든 안 가본 곳이 없는 인간 네비게이션 수준이 되었다
감각을 예리하게 벼르는 일은 사실 더욱 무디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소금에 맨밥을 먹듯이 단순 소박하게 먹으면 오히려 후각과 미각이 더욱 발달하고,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리고, 귀를 막으면 더 잘 보이는 것과 이치가 같다고나 할까. 이승에서의 나의 마지막 식탐은 산초기름 두어 방울,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누구나 그럴 듯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 것인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텃새처럼, 아니 이미 새가 아닌 닭처럼 철망 속의 둥지에 깃들어 살 것이냐, 철새처럼 풍찬노숙의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어차피 집을 이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의 마지막 집은 무덤이 아닌가.
지리산 입산? 비굴한 현실 안주보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백천간두진일보의 해방을 꿈꾸었다
‘돌아보지 말자, 더이상 돌아볼 가치도 없다. 서울이 대변하는 아수라지옥을 빨리 벗어나자’ 보름간 노숙자 생활의 극약처방
내 인생의 점프는 온몸을 던지는 번지점프였다. 삼백 가닥의 고무줄을 단칼에 끊어버리고 방외의 해방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헤엄을 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즐거운 추락이자 행복한 자유낙하였다.
전업시인, 피할 수 없는 ‘타발적 가난’의 길
죄가 있다면 좀 더 좋은 시를 쓰고 싶고, 좀 더 시인답게 살다가 끝끝내 시인답게 생을 마치고 싶은 아주 오래된 원죄가 있을 뿐!
교환가치가 별로 없는 시를 쓴다는 것이 곧바로 죄가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왠지 자꾸 무능력한 죄인이기를 강요당하는 듯한 시절에…
전업시인? 한마디로 무직이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낮잠을 자다 지겨우면/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독거>
현장과 지면의 경계? 쓰는 당사자가 우선 스스로 좋아야 하고, 또 읽어주는 사람들이 좋아해야 하는데 이것이 진정 난제는 난제다
지리산에서 돈없이 잘 놀기
피아산방.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우리들의 산방’, 누군가 훔쳐갈 것도 없으니 그동안 자물쇠가 필요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버려지고 퇴화된 빈집? 욕망에 달뜬 자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녹색성장?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전원생활의 꿈? 겉만 보면 참으로 멋진 집? 사람의 마을과는 단절된 사유재산적 공간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생태파괴에 동조한 셈이 되는 것이다.
애초 풍수지리의 반만 보았던 것, 지수화풍을 다 읽은 게 아니라 대개는 바람을 모르고 물을 모르고 오로지 경치만 보았던 것이다.
머리로는 느림의 미학을 꿈꾸었으나 그 모든 게 너무 빨라서 자초한 일이다
적응과정? 최소한 사계절을 살아본 뒤에 집을 지을 땅울 사더라도 절대 늦지 않다
지리산? 개발과 성장의 길이 아니라 성찰과 상생의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학교? 돈 없이 만들 것, 현실 생활에 활용되는 예술을 가르칠 것,…지리산 전체가 교실일 것,..
학생모집? 일단 강사들이 전시회를 하자!
누구나 선생이자 제자인 학교? 수직적 구조는 자연스레 무너지고 수평적 구조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교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앉은자리가 곧 학교’, ‘움직이는 학교’의 훈풍
룰루랄라 한바탕 잘 노는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고령군 오사마을 이발사, “손님이 없다고 32년 된 이용소 문 닫을 수야 없지예”
영동군 고당리 난계국악박물관
더 늦기 전에 사생결단의 때가 왔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늘 우유부단하다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경고로 천둥이 치고 하늘북 천고가 우는 것이다
보성군 공연예술촌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좋당께. 우린 연극에 미쳐부렀어!”
“모두 미쳤다고 했지요”
무엇인가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이다. 결과 이전에 과정이 더 소중한 법. 미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남원의 명품? 춘향, 옻칠 목기, 남원 식도
전국여농(여성농민회총연합)의 토종씨앗사업
“토종씨앗은 우리의 미래!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물려줘여죠”
토종벌의 멸종 위기!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안에 멸망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경고!
이보다 도 치밀하고 서서히 진행된 위기가 있다? 바로 토종씨앗들이 사라진 것이다(종의 다양성)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1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 홍일선 시집
“..씨앗은 수천 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문화 및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 있는 민족의 소중한 자원이에요”
식량주권의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적 접근? 농부가 씨앗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돈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 농업이 세계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 녹색혁명형 농업으로 재편된 결과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속에서 농업의 미래는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위협받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텃밭’? “농사짓는 사람도, 그리고 먹는 사람도 행복한 먹거리를 그야말로 전통방법으로 생산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언니네 텃발 http://we-tutbat.org
씨드림 http://cafe.daum.net/seedream
언니네 텃밭 제철꾸러미? 다품종 소량생산, 친환경 농사 여성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월10만원/월4회 제철 농산물 꾸러미)
서산천수만의 철새지킴이
사실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의 행복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구제역, “…살리기는 커녕 죽이고 또 죽이고, 개와 고양이의 귀를 자르고 불암시술을 하고,..난 못 하겠다라구유. 돈을 아무리 줘도 거세나 이런 건 이제 못해요. 절대 안 합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 천수만은 원래 도시들의 산란장, 바다의 자궁 같은 곳이었는데 그것을 도려냈지 뭡니까. ‘자궁’을 들어내고 매립해 인공적으로 쌀 나오는 ‘위’를 만든 것이지요.( 골프장 계획까지)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고귀한 생명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지요.
http://www.birddb.com(닉네임:시몬피터)
“소에게 사료만 주니 비타민, 광물질, 미네랄 등이 모자라지요.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오, 나의 대한민국
강마을의 다문화가족
“올갱이도 다 사라졌어요”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의 말무덤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내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구약성서 잠언
어렸을 때 부끄러웠던 고향 사투리가 요즘 들어 정겨워지고 자꾸 그쪽으로 귀가 쏠린다
말은 곧 행위다? 사람의 내면과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
‘말 많은 집안은 장맛도 쓰다’
구례군 위기의 섬진강 뚝길
자전거와 거짓말, 섬진강 시멘트도로
길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먼저 걸어가고 다시 가면 그 발자국들이 모여서 마침내 길이 된다. 길이 길을 부르는 것이다. 길을 파보면 그 속에 옛길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길이나 도나 마찬가지, 어쩌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도 그 또한 길이다…그리하여 길은 여전히 ‘발자국들의 살아 있는 화석’으로 존재한다.
순결성을 잃은 오늘의 길? 시멘트, 아스팔트 길
섬진강 풀밭 강둑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연 시멘트를 쏟아부어 놓고 자전거 도로라고 우기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세상에서 가장 삭막한 길로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잘 다녔는데 국민 혈세로 시멘트를 처바르고 이 무슨 짓이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섬진강 시멘트 자전거 도로는 4대강 사업의 ‘바로미터’가 아닐 수 없다
순천 중앙시장 구두수선공
“아따, 좋은 방수 부츠구먼. 이건 내 미싱으로 되겄는디. 다른 디서는 안 되지만 내 미싱은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여. 신식은 절대 안 되지라. 허허, 구관이 명관이라고 나는 된당께”
“겨울에 딱딱한 구두 밑창은 큰일 나부러…구두 밑창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러.”
구두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망가진 구두를 고치는 것은 예술이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여주군 남한강변의 홍일선 시인
“인간과 자연 모두가 불행한 시대야. 4대강 살리기라고?..”
“전국의 닭 잘 키우는 고수들을 다 찾아다녔지. 결론은 자연농법이었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과 사료를 주는 게 핵심이야…구제역, 조류독감 이런 것도 다 속도전과 대량 생산의 욕망 때문이야.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버무려진 사료를 먹이고 전깃불만 눈부신 지옥 같은 밀집사육이 문제야. 도대체 저항력이 생길 수가 없지. 악순환이야…”
발원지를 찾아서, 황지연못과 검룡소
‘첫마음으로 돌아가라’-채근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도덕경
봄이 오지 않는 낙동강?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의 강
버드나무와 억새 등 뿌리째 뽑힌 수변습지에는 꽃은커녕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2박3일 동안 강변에서 단 한 명의 농부도 만나지 못했다. 빈 배만 강변에 묶여있을 뿐 어부는 고사하고 낚시꾼 하나 만날 수 없었다.
#세상 도처가 눈물겨운 고향, 길이 곧 집이었다
발길 닿은 곳이 길이자 집이었고, 하룻밤 머무는 그곳이 어디나 이미 도착해야 할 집이었다…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모두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일이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비로소 살 만한 곳이 되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스승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살만하네. 돌이켜보면 적당히 가난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출가해서 조계종단이라는 더 큰 부잣집에서 더 잘 먹고 잘 살았지 뭐. 허허, 그러니 난 출가한 적도 없는 셈이야. 너도 지리산의 처음처럼 다 내려놔. 그 무거운 것들을 들고 있지 말고 이젠 다 내려놔. 돌아보다가 말고.”-환계한 수경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