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유학과 작은학교 살리기가 만나야한다.
이 과제는 일차적으로는 교사들의 문제이지만 더 크고 깊은 문제는 작은학교가 몸담은 지역공동체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생태마을 만들기와 작은학교 살리기의 만남을 반긴다.
지역 공동체 학교 살리기. 산골의 작은 학교는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지역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작은학교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과정을 지역화하는 작은학교 운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_작은학교 살릴 수 있다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진 온종일 학교
#산촌마을의 꿈_이병철
마을에선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 다니고 마을 입구 한켠에 있는 작은 주차장 외엔 차들이 없다. 마을에 처음 찾아온 사람들은 조용하리라 싶었던 마을이 온통 소리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고는 한동안 낯설어한다. 새벽잠을 깨우는 새 소리에서부터 숲에서, 산속에서, 개울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들이 가득하다. 특히 여름철의 매미 소리와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는 시끄러울 지경이다. 밤 깊도록 들리는 소쩍새 등 밤새의 처량한 울음소리나 겨울밤 쌓인 눈의 무게를 못이겨 나무 가지가 ‘뚝’하고 뿌러지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있다. 마을 옆으론 사철 언제나 개울이 흐르는데 귀를 기울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을 뒤 숲에서 폭포로 이어져 있는 오솔길은 명상의 길이다. 그 길을 걸으면 절로 명상이 이루어진다. 사람은 식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명상의 길을 조금 비껴나 침엽수들이 더 울창한 숲 속은 삼림욕장이다. 처음엔 모두 옷을 입은 채로 삼림욕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대부분 벗은 몸으로 삼림욕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이제 삼림욕장에서 알몸의 가족이 그런 차림의 다른 가족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병통이 가리고 숨기는 데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수건 한 장 걸치지 않은 태어난 그대로의 알몸으로 숲의 기운을, 가슴 속 밑바닥까지 와닿는 숲 속의 향기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투명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 시멘트와 잿빛의 도시, 그 인공과 가식과 탐욕의 온갖 공해 독들을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다.
마을은 생기차고 활력이 있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고 손으로 만드는 기쁨과 자립적인 삶의 보람을 누린다. 숲을 가꾸고 돌보며 숲이 주는, 대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의지하여 산다. 약초를 캐고 버섯을 키우며 목공예와 숯 굽기와 도자기 빚기 등 모두 저마다의 일거리들을 즐긴다. 마을 고샅길과 주변에는 온통 들꽃과 향기로운 풀들과 약초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다.
마을에선 일 년에 몇 차례씩 마을잔치가 열린다. 이 마을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새로운 고향으로 삼아 찾아오는 도시 사람들과 철마다 들꽃축제, 반딧불이, 별 잔치, 눈 잔치를 여는 것이다. 마을축제 중에서는 아무래도 봄 산나물 뜯기 때와 가을 거두기 때가 가장 풍성하고 활기차다. 이때는 온 마을이 며칠 동안 떠들썩하다. 마을과 연대하고 있는 도시 가족들이 전부 참석하기 때문이다….
마을학교에는 지금 이 마을 어린이들 뿐 아니라 도시 가족의 아이들도 몇 명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자연과 철저히 차단된 채 하루에 한 번도 흙을 밟아 보지 못하고 갈수록 몸과 마음이 시들어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이 산촌 체험과 농업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느끼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래서 경쟁사회에서 남을 이기기 위한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속에서 서로 도우며, 날로 심화되고 있는 재난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이 학교에 온 것이다. 아이들은 마을학교에서 생태적인 가치와 자립적인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교사이고, 숲과 산과 개울이 모두 학교이며, 마을에서의 삶 자체가 무엇보다 좋은 교과서이다. 봄이면 산마물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나리네 할머니가 선생님이고, 가구 만들기와 집짓기 공부 시간에는 현배 아버지가 선생님이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손으로 만드는 일의 기쁨과 협동의 가치를 안다….
이 마을에는 쓰레기장이 없다. 버려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알뜰함과 아낌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이곳을 사는 삶의 바탕이다. 그래서 가능한 마을 자체의 물질 순환체계를 통해 오폐수 등 생활하수는 물론 우수 처리까지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보다 에너지 자금의 문제이다.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자급을 실현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자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빠졌다. 당신이 이 마을을 방문하고 싶거든 미리 알리고 찾아가는 것이 예의이지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 것은 간단한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 외는 가능한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도시에 물든 찌꺼기들은 마을 안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 곳에는 쓰레기장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며칠이라도 이 마을에서 빈손으로 지내는 즐거움을 맛볼 일이다. 스스로 비웠을 때 또 다른 풍요로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산촌마을을 만드는 것, 그런 곳에 사는 것이 어찌 나만의 꿈일까. 이 꿈은 지금 생명의 숲을 가꾸기 위해 땀 흘리는 모든 이들의 절실한 꿈일 수밖에 없다…(99.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