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fr도올김용옥
로런스는 “장편소설이야말로 이제까지 성취된 인간의 표현형식 중 최상의 것”이라고
백낙청 50년 공부의 결정체
서양정신사의 극복에 도전한 D.H. 로런스를 이끌어, 한반도 개벽사상과 문명대전환의 새 길을 연다.
매사를 자기보존과 이를 위한 생산 위주로 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낭비’ 또는 ‘과잉’으로 볼 수 있는 양귀비의 꽃핌이야말로 가장 양귀비답게 있음이다..
과잉이야말로 그 사물 자체가 자기 존재의 최대치에 도달한 것이다. 만일 그것이 과잉에 못 미친 지점에 멈추었다면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이 과잉이 생략되었다면 대지를 암흑이 온통 뒤덮을 것이다. #자연의지혜 #과잉의지혜 #풀씨
장편소설론
나는 소설가다. 그리고 소설가인 까닭에 나는 성자, 과학자, 철학자, 시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는 살아있는 인간의 각기 다른 부분의 대가들이지만 그 전체를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장편소설은 둘도 없는 빛나는 생명의 책이다. 책이 삶 자체는 아니다. 책의 대기의 떨림일 뿐이다. 그러나 떨림으로서의 장편소설은 살아 있는 인간 전체를 떨리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시나 철학, 과학, 또는 책을 통한 다른 어떤 떨림도 못해내는 일이다.
“장편소설은 생명책이다. 이런 의미로 성서는 하나의 위대하고 혼란스러운 장편소설이다. 성서는 하나님 이야기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다…성서는-그러니까 성서 전체-와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이들은 오래된 최고의 장편소설들이다.”
책이란 노상강도거나 반란자거나 군중 속의 한 인간이라야 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바뀌어서 좀더 지각이 있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네.”
“무언가 중요한 일에 관한 한 나는 항상 혼자나 다름없었고 그 점이 아쉬웠소”
“우리가 겁에 질린 상태에 빠지고 내면의 무능력과 남에 대한 박해로 흐르면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나빠질 수 있다”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천도교의 인내천 교리로 정착. 이런 흐름이 소태산 박중빈에 이르러 불교와 융합되었을 때 “지상의 유일한 신들은 인간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들도 미리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한히 긴 세월의 노력을 통해 삶의 불길과 용광로 속에서 점진적으로 창조되고 진화한다…그리고 이제까지 나온 가장 훌륭한 신은 인간들인 것이다”라고 한 로런스의 생각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