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석일지. 김흥호.
다석 류영모는 새벽이면 일어나 책상 앞에 끓어앉아 고전을 읽고 명상하면서 떠오른 바를 일지에 적었다. 처음에 작은 수첩에 적다가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노트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일지는 20년 간 지속되다가 1974년에 끝난다. 일지에서 연월일 다음에 씌어 있는 1만 단위의 수는 류영모의 산 날 수 있다. 다석 사후, 제자들이 일지를 모아 『다석일지多夕日誌』란 제목하에 영인본으로 발간하였다. 아쉬운 것은 노트 한 권을 누군가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아 오늘날 그 부분이 소실된 점이다.
다석 류영모는 생전에 따로 글을 써서 발표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일한 육필 원고는 이 일지뿐이다. 이 책은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바이블의 역할을 할 것이다.
구용.
족중 수공 두직목단 구지 성정 입덕 기숙 색장.
아홉 가지 몸짓.
걸음은 착실하게 무게 있게, 손은 겸손하고 공손하게, 머리는 언제는 바르고 곧게, 눈은 똑바로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은 언제나 꼬 다물고, 소리는 고분하고 명랑하게,정신은 깨어 일으켜 세우고, 기개는 용감하고 엄숙하게, 빛깔은 환하고 장엄하게.
구사.
시사명, 청사총, 색사온, 모사공, 언사충, 사사경, 의사문, 분사난, 견득사의.
볼 때는 밝게 보고, 들을 때에는 깨끗하게 듣고, 얼굴색은 부드럽게, 태도는 공손하게, 말은 진실하게, 일은 신중하게, 의심은 물어보고, 화를 품는 데는 재난을 생각하고, 이로울 때는 언제나 정의를 생각하라.
칠사.
칠사는 류영모 선생님의 생활태도다.
- 말없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 앉을 때에는 무릎을 굽히고 언제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는다. 일좌다.
- 숨은 싶이 쉬고, 잘 때는 코를 골면서 깊이 잔다.
- 잠잘 때는 나무판대기에 반듯하게 누워 편안히 잔다. 4시간만 자면 언제나 넉넉했다.
- 남녀 관계는 끊었다. 해혼식을 하여 아내를 누나처럼 대했다. 음욕을 품고 아내를 대하면 간음이라 생각했다. 생식을 위한, 자녀를 얻기 위한 남녀 관계는 자연이요, 본능이요, 진리다.
- 나가서 산책할 때는 더욱 하나님을 생각한다. 한가할 때 배나 아버지를 생각하고, 마음에 공허함을 느낄 때 더욱 사색을 깊이하고, 혼자 동산을 산책할 때 낙원을 이룩한다.
- 식사는 적게 한다. 일식이다. 내가 안 먹는 부분은 남이 먹는다. 그것이 사랑이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시각이 일일일식이다.
불끄면 곧 자고, 깨면 곧 일어나라. 남녀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다. 성욕에 틈을 주지 말라. 세월은 빠르다. 빨리 진리를 깨닫지 않으면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진리를 꺠닫고 자기를 알고 생명을 얻어 자기를 살아간다. 지행일치다. 지는 자각이요, 행은 내적행위다. 일식 일좌 같은 것이다.
사랑은 마음이지 거리와는 관계가 없다…마음에는 거리가 없다. 천리를 떨어져도 마음속에는 그 사람뿐이다…사랑하는 사람(인)이 멀리 있겠느냐. 내가 사랑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나와 같이 있다…내가 되려고만 하면 언제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질)은 불구부정이요, 심(마음)은 가구가정이다.
물은 하나이기에 깨끗하고 더럽고를 가릴 수가 없다. 물은 본래 깨끗하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다. 물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이 더럽다는 것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먼지가 더럽다는 것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돌아가면 전체다. 마음은 본래 없는 것이다. 먼지가 본개 없는 것이나 같다. 마음은 없이 하려면 더 있어진다.먼지를 털면 더 먼지가 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음은 가만두면 없어진다. 먼지도 가만두면 없어진다. 물도 가만 있으면 깨끗해진다. 가만두면 본래가 된다. 이것을 노자는 무위자연이라고 한다…가만 내버려 두면 자연히 깨끗해진다. 마음은 더럽지만 깨끗해질 수 있다. 이것이 수도다. 마음을 끊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일식 일좌, 밥을 끊어 버리고 남녀관계를 끊어 버리면 일체는 없어지고 만다. 무다. 번뇌무진 서원단. 끊는 것처럼 바른 길은 없다.
소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마음이 막혀서 그렇다.
공자고 말하기를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군자는 전체를 생각하고 소인은 자기만 생한다. 군자는 전체를 생각할 줄 아는 이치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군자는 전체의 내용을 정미한 것까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세밀하게 하는 사람이다. 의라는 것은 전체가 다 같이 잘사는 방법이다. 그곳에는 천리가 있고 천리를 따라가야 다 잘살 수가 있다.
소인은 욕심꾸러기다. 이(익)란 자기만 잘살겠다는 욕심이다. 자기만 알지 남은 모른다. 남을 아는 사람이 인이고 전체를 아는 사람이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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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 선생님께서 날마다 글로 남긴 생각의 기록들, 명상집. 물질의 풍요 탓에 정신의 가난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시대에 필요한 참스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귀한 책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