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장석주. 324쪽.
나이를 먹는 데도 꿈이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삶은 만드는 건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허나
진짜로
우리 마음을 끌고 가는 건
가보지 못한 그 많은 길들이 아니던가.
책읽기는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이해와 공감 없이는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책을 읽으려는 욕망과 글을 쓰려는 욕망은 하나이다. 그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길과 자신을 구원하는 길로 이끌어준다. 작가란 바로 그 욕망을 살아내면서 그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때 나는 알질 못했다. 책읽기가 내 뇌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는 사실을, 아울러 뇌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운명이 바뀐다는 사실을…
책을 읽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책을 발명해 낸 것은 길게 잡아도 3천 년 안팎의 일이다. 책이 인류의 지적 능력을 축적하는 수단이 된 것은 불과 6백 년 남짓이다.
25 책읽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고독 속에 칩거하며 저마다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 자들이다. 오직 자신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이 ‘기적의 도서관’에서 그들은 ‘타인의 삶’이라는 책을 열람한다.
고독과 칩거.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그것은 기꺼이 고독과 칩거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이다.
천재의 독창성은 본질적으로 ‘보는 방식’에 나타난다.
사물이건 경험이건 새롭게 보아야 새롭게 인지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낯선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라! 그럼,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순진’과 ‘사랑’을 담고 바라보면 모든 게 사랑할 만하다. 바라보는 대상이 더 소중해지고 그를 아끼게 된다.
작가와 고양이의 닮은 점들…계속 집중한다/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독립적이다/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굶주림은 몸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도의 자양분을 얻지 못한 채 영양실조에 이르게 하고 결국은 사람을 죽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위장을 채우지 못하면, 그 굶주림 역시 사람을 상징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음식과 인식은 동일한 것이며 음식과 말은 각각 들어오고 나가는 지점, 즉 이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공동의 신체기관이 입과 이 두 가지를 표현하고 뒤섞는 도구인 혀에서 만난다.”
49 영혼의 위장을 채우지 못하면, 그 굶주림 역시 사람을 상징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부엌이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면, 서재는 영혼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곳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손을 계속 움직여라/마음 닿은 대로 써라/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
“소심한 작가들은 ‘회의는 7세이 개최될 예정입니다’라고 쓴다… 당당히 선포하라! ‘회의시간은 7시입니다.’라고 써라! 자, 어떤가! 이제야 속이 후련하지 않은가?”
스티븐 킹은 수동태야말로 가장 나약하고 우회적인 수사법이니 그것을 피하라고 말한다.
문장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피하라! 접속사도 빼버려라! 그것들은 마음에 쓸데없는 근심과 허위의식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생략해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굳이 없어도 그만인 잉여이다…간결하게 표현하라. 그것이 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의 제1원칙이다.
128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펼쳐서 읽는 것이다. 책읽기란, ‘떠나지 않고 하는 여행’이다.
여행과 책읽기, 글쓰기 모두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같다.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여행은 모두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기 위한 여정이다. 그런 까닭에 이 모든 행위는 그 여정이 어떻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된다. 즉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여행은 모두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기 위한 여정이다.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
133 문체란 무엇인가 쓰다 보면 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부족한 것을 알면 그걸 채우면 된다. 그러니 써야 한다. 백 마디 말을 해봤자 쓰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백날을 생각만 해봤자 기록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쓴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쓰고 나면 기필코 보완해야 할 게 눈에 보인다.
글이란 아무런 꾸밈없이 평이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늘 평이한 어휘들로 쉽고 간결하게 쓰는 버릇을 들이라. 간결하고 담백하며 함축적일 때 문장은 힘차고 읽을 만한 것이 된다. 옛 책에서도 “평이하고 간단해야 천하의 이치를 얻을 수 있다.”(『역경』)라고 했다.

145 쓰는 자만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보고 듣고 느낀 바대로 담백하게…솔직하게 쓰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
184 문학은 “불행의 증거이며, 고독의 표상이고 저주의 외침”이다…결국 불행의 증거로, 고독의 표상으로, 저주의 외침으로 이미 있는 것들의 세계를 통째로 부정하고 전복함으로써 제 존재를 정당화한다.
198 문장이란 시간의 압축이고, 시간의 경과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의 메아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김훈 『칼의 노래』
사실성에 바탕을 둔 소설적 상상력. 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다. 이미 지나온 길을 시시콜콜하게 적는 것은 역사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지나간 길이 지나갈 길이 되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나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것을 다시 보기한 것이다.
남다른 상상력과 때 묻지 않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징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이런 것을이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껍질을 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