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심용환. p356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
지금의 역사 논쟁은 권력의 개입으로 인해 시작되었으며, 이 부분을 명확히 드러내야 역사 논쟁의 흐름과 대안들이 비교적 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 각국은 학계와 시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면선 새로운 역사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적 처단, 법적 처단이 충분히 진행되었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공민권 박탈과 사면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과거의 문제가 현재의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한국도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정기 맥아더 포고령(1945)으로 친일파가 직위를 보존하고, 중간파가 주도한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1947)이 무산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반민특위(1948) 활동도 최종적으로 실패하면서 친일파 처단은 물거품이 되었다. 여운형이 암살되었고(1947) 좌익 계열이 몰락했다. 김구 역시 암살되고(1949) 6·25전쟁(1950) 때는 양심적 민족주의 세력이 몰락을 거듭했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을 통한 국가 정체성의 확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유럽의 역사 청산과 다른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 논쟁은 세대 문제와 연결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역사적 상흔을 겪지 않은 세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과거의 역사를 상대화할 수 있고, 훨씬 자율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역사의 재해석으로 이어진다.
성숙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기억과의 투쟁을 가져온다.(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다-밀란 쿤테라)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차이? 관점과 관심 자체가 참으로 다르다.
역사학이 ‘시간’을 기준으로 사회 변동을 다루며 ‘총체성’을 지향하는 학문이라면 사회과학은 역사의 특정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치권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벌이는 짓인데 그것이 무엇을 미화하고 왜곡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본질은 권력의지다. 권력이 역사학, 역사교육, 역사교과서를 그들의 의도대로 재구성하고 싶은 것. 그것이 본질이다.
파괴된 역사 서술, 허울뿐인 역사. 실력도 수준도 안 되는 교수들을 불러 모아 교학사 교과서라는 엉터리 교과서를 만든다.
역사학이 정치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민족주의 역사학의 시작.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정신사’라고 규정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아’는 우리 민족, ‘비아’는 다른 민족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아’는 주관적 위치의 존재, ‘비아’는 객관적 위치의 존재를 의미한다.
민중 사관의 논란. 민중 사관은 김일성주의가 아니다.
역사의 대중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 역사학은 사회 변혁에 기여하는 실천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역사 연구의 관점과 서술 목표는 민중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인민, 민중, 시민, 서민, 계급, 계층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적으로 보면 인민이라는 단어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 용어를 북한에서 워낙 일반화시켰던 탓에..
뉴라이트 학자들은 끊임없이 민중 사관을 김일성주의로 몰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역사 단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기존의 역사 용어를 대체할 수준이 못 되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역사학, 왜 문제인가? 학문이 아닌 권력을 지향하다
건국절 논란, 이승만과 박정희를 둘러싼 갖가지 이슈, 교학사 교과서 논쟁…단언컨데 이 논쟁은 모조리 부차적이다. 역사적 사실 자체가 쟁점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모든 것은 감정의 잣대로 판단.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과 끝이 없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무한정 반복할 수 있다.
정서(감정)만이 본질일 뿐, 다른 모든 것은 외피에 불과하다.
이 무의미하고 퇴행적인 논란, 기껏해야 어르신들의 향수 수준의 논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1) 시민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2) 광범위한 근현대사 시민교육이 있어야 한다.
3) 우리 스스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며 하찮은 수준을 극복할 수 있는 논의들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모든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인 동시에 한국 사회의 수준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책이다.
친일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우리 역사,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숙고하며 체화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얼마나 모르기에, 얼마나 암기 교육이라는 것이 무의미했기에 이런 천박한 공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력하기만 하단 말인가. 쟁정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이지 그들이 아니다.
지식만이 교묘한 말 놀림을 혁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책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역사공부가 필요한 이유?!)
문제는 교과서가 너무 두꺼워지고 내용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현재의 교과서는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그런데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 시험을 위한 암기 과목으로 끝난다.
뉴라이트 역사 인식,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한국사 교과서 논쟁 최후의 지점은 ‘지식 논쟁’이다.
결국 전투는 각론에서 이루어진다. 그간 배웠던 지식과는 다른 주장, 그간 경험했던 통념과는 다른 주장이 충격적으로 난무하는 것이 이곳이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장은 결국 박정희로 귀결된다. 결국 이승만이라는 기초를 박정희가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 즉 ‘남한이 북한보다 잘살고 있다’라는 증명으로 귀결된다…
생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사고를 보다 다양하게 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넒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힘’이다. 뉴라이트 진영은 근본적으로 그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