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일구는 젊은 농부의 “농사 이야기”. 조우상. p271
아는 것과 경험해 본 것은 다릅니다. ‘앎’은 ‘지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지식에 ‘경험’을 보태어 사고한다면 그것은 이내 ‘지혜’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농부’가 되는 길은 어렵지도, 거창하지도, 희생적이거나 숭고하지도 않고 무척 쉽고 간단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단지 조금의 흙에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 말이지요.
흙과 더불어 살고자 하니 그동안 모르고 있던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됐습니다.
필요한 것들 중 일부분만이라도 제 손으로 만들고자 하니 공구 다루는 법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나무를 구하러 산을 오가며 지게 짊어지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기에 앞서 종자에 대한 무지부터 씻어내야 했고, 종자에 대해 얼추 알아가니 그 다음엔 흙과 풀에 대한 무지가 앞을 가로막아 서기도 했습니다. 파종시기-기후-육묘법 등에서부터 솎아내기-수확-부산물 처리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알고 있던 것이 없고, 죄다 배워야할 것 투성이였습니다.
#지금의 우리
왠 뜬금없는 식량 위기, 식량전쟁 이야기? 지금 당장 마트에서 원하는 먹거리쯤은 쉽게 구입할 수 있다…지금 당장 곤란함이 없으니 나중에 찾아올지 모를 곤란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생각엔 이러한 문제가 우리 자신이나, 혹은 우리 후대들에게 찾아올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몇 가지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Food Security? 한국: 26위, 곡물자급률 25.3%. 1위 프랑스 329%, 주요 선진국들은 최소 100% 자급률 유지.
식량문제 해결? 무엇보다 발전해야 할 곳은 농촌임에도 불구, 평균 연령 51세를 넘어서는 농촌. 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될 것입니다. 바로 ‘종묘회사’ 문제 말입니다.
농사의 시작은 씨앗. IMF의 뼈아픈 상처들 중 가장 안타까운 것? 종묘회사 대부분이 해외의 다국적 종묘회사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앙종묘’의 청양고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청양고추를 몬산토에 돈을 내고 수입해 키우고 있는 실정. 채종지는 중국으로 옮겨진 상태. 고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작물들이 이와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씨앗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급으로 조절되는 가격’을 무기로 시장과 세계 식량시장을 주무르게 될 다국적 종묘회사들의 횡포에 아무 힘없이 당해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게 순진하고 멍청한 생각일까요?…돈 앞에선 장사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 않은가요? 그러니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각국의 종묘회사들을 인수해 몸집을 키우는 다국적 종묘회사들의 꿍꿍이가 선하고 순수한 것이라 생각하기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O 심으면 O 난다’는 옛말? 고추 수확해서 씨앗 받고 그 씨앗 심으니 고추가 나지 않거나, 잘 자라지 못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바로 그러한 씨앗들을 가리켜 통칭 ‘F1종자’라 부릅니다!
#씨앗 이야기
‘지속 가능한’ 환경농업에 대한 책들. 현대 농업의 근본적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이른바 ‘불임성 씨앗’이라는 별칭을 가진 ‘F1종자’에 대한 것. 책 속에서 선배 농부들은 열매가 씨앗을 얻지 못하는 농업, 그 농업이 스스로 지속될 리 만무하다고 한결같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토종 종자. 유전자가 고정되어 있는 ‘O 심으면 O 나는’ 그 당연한 이치가 통하는 씨앗.
토종종자가 생명력이 강하다. 매년 ‘F1종자’를 구입하는 농부들은 병충해에 약한 씨앗을 구입한 이유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세트로 구입해야 하지요.
씨앗이 농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 그 씨앗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농부들의 힘으로 키워낼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정말로 어두운 농업의 미래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장사꾼들은 다 똑같습니다…스스로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리’를 쫓아 만드는 방법마저 잊어버린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다국적 종묘회사…그들은 장사꾼이니까요. 문제는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스스로 깨어나 미래를 준비할 줄 하는 사람이 된다면, 장사꾼의 논리 같은 건 그네들끼리나 주고받는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열심히 농사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스스로 깨어나 미래를 준비’하는 농부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흙에 대해 배우며
뒤늦은 깨달음으로 이제는 책을 붙잡고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밭에서 보내며 지내고 있습니다.
농사짓겠다고 씨앗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이제 그 씨앗 뿌릴 우리 밭의 흙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토양유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속도의 8배나 빠른 속도로 흙은 사라지고 있는 것. 이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각종 개발을 이유로 벌거벗겨진 토양이 맨 살갗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어 토양유실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가는 중.
흙은 양분을 고정하여 식물에게 먹을거리를 전해주는 역할을. 또한 흙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의 틈으로 물과 공기를 고정하여 식물의 뿌리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따라서 토양이 유실된다는 것은 흙 자체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다양하고 기름진 양분이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이유는 인간의 욕심. 무분별한 산림벌채와 대규모의 가축사육, 현대의 농경방식과 과도한 도시화가 주된 원인.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문제의 원인에서 해결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것이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글자 몇 개 바꾸려면 포기해야할 ‘편리함’이 너무 많아지고, 우리의 욕심은 언제나 ‘과도’하니까요. 욕심을 부리되 ‘과도하게’ 하지 말자는 말은 이미 욕심쟁이들의 귀와 마음에 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토양유실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나무를 심으면 된다’입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흙을 발가벗기지 말자’ 정도입니다.
의심없이 이어지고 있는 화학농법 때문에 심화되어가고 있는 토양유실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자생초의 뿌리가 흙을 꽉 붙잡아 그곳의 흙은 쉽게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생초가 우거지면 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니 적당한 방법을 통해 자생초를 과리해주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피복’과 ‘혼작-윤작’입니다.
‘흙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하지요. 그 어머니의 옷을 발가벗기기 위해 독한 농약 뿌려대며 어찌 진정한 마음으로 ‘어머니’라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 심정으로, 어머니께 비단 옷 입혀드리는 정성으로 밭을 피복해갈 생각입니다.
#흙을 지키는 것이 농사
“우리나라가 독립한 이래, 가장 위대한 애국자는 침식을 가장 많이 막아낸 사람이다.”-페트릭 헨리(미국, 1736~1799)
플렌테이션 농업-대규모 단일작물 재배방식의 농업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커피, 목화 등의 상품작물이 대규모로 경작되는 땅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먹을 것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중 하나에 불과합니다…우리네 시야가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쫓고 있으니 그것이 그리 문제될 것이 없게 느껴질 뿐이지요.
농사를 공부하다 보면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많은 농부들이 그 화학농업을 통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농업은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고 그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길이를 같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부터 화학농법이 관행이 되어버렸고, 어쩌다가 수 만년을 이어 온 농업이 순식간에 ‘대안농업’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흙의 침식을 가속화시키는 ‘개발’이란 범주 안에는 농법 또한 포함되오 있음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농업은, 농작물이 자리한 이랑 이외 땅은 전부 풀씨 하나 자라나지 못하도록 관리되어 벌거벗겨진 상태를 유지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량을 늘리는 화학농법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지 말고, 그것이 가져다줄 폐해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반성이 없는 과학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많은 곳에서 목격하며 지내왔습니다.
전통을 고수하자 주장하는 이들이 무조건 과학과 기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 안 되는 것처럼, 과학과 기술을 중요시하는 이들 역시 전통과 자연에서 배우자는 목소리에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지 말고 마음과 귀를 열어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흙의 침식은 어찌 보면 마음의 침식과도 같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한다면, 저 많은 들풀과 나무들이 흙을 붙잡아 침식을 막아주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역시 헐벗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늘싹이 나왔습니다
황희 정승과 누렁소의 부지런함을 귓속말로 이야기한 농부 이야기 교훈과 ‘박토’. 꼭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하더라도 초보농군의 근심엔 ‘박토’라는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름으로 불려진 제 밭의 흙은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한참이나 정성이 부족한 농부로서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눈의 시선이 밭에 닿아있던 순간에도 마음의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다른 이의 단점을 보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쉽지만, 자신의 단점을 바라보고 인정하기는 태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을 줄곧 입에 달고 지껄이며 지내왔었던 것 같습니다.
#잡초와 자생초
귀농을 결심했을 때의 마음,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누려보자’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지 그 기준을 세우고나면 힘든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금방 답이.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답을 찾아내는 분들이 있을 것. 그리고 그 답을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렸다와 다르다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시선의 변화’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어나 보다’, ‘경제적인 안정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좋을가 보지 뭘’처럼 그냥 ‘그런가 보네’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선의 변화’를 통해 이득을 얻는 건,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남들을 평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거든요. 이런한 이야기 늘어놓는 이유는…’시선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이지요.
굉장히 창피한 이야기지….’농사로 돈 벌어 먹고 살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자’ 수입은 외부 수입원을 찾기로 결정(반농반X)
유기농, 자연농, 태평농, 생명농 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한결같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농업들…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알면 알수록 대단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렵지 않게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방법’보다도 그들이 말하는 ‘이유’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시선을, 관심은, 그리고 생활을 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먼 곳과 큰 곳에 두고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행위들이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자연과 농사를 생각하고 그 자연 속에서 농사를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싸워 왔던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호소는 정말이지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시선으로 다시 농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농사일을 배우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그동안 안 된다고 여겨왔던 그 많은 ‘불가능’들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며 만나게 된 맨 처음의 곤란함은 ‘풀’이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잡초’ 말이지요…환경농업 도서들은 ‘자생초를 죽이려 약을 쓰면 안 된다’하고, 관행농 관련 도서들은 ‘잡초를 잡아야 농사가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들 사이에서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잡초라 하고, 누구는 자생초라고 하는구나.’
잡초, 선택받지 못한 식물들에게 주어지는 낙인 같은 이름. 지구상엔 대략 35만여 종의 식물들이 존재. 작물은 3천여 종. 인간들은 99%가 넘는 식물들을 ‘잡초’라 부르며 미워합니다.
자생초.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식물.
그렇게 다른 시선으로 자생초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그 ‘애정 어린’ 시선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라진 시선으로 흙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달라진 시선을 통해 얻는 것은 바로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넘어진 토마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쉬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 그 이후로 저는 ‘꾸준하게 응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농업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선
농업은 삶을 영위해 가기 위해 필요한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그래서인지 얼핏 농업과는 관계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분야의 인물들이 농업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에 대해 세상과 소통했던 흔적들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접할 수 있어 조금은 놀랐습니다.
지렁이가 많으면 흙이 좋아진다. 지렁이는 식물이 자라는 데 유익한 떼알조직을 연간 1~1.5톤/ha이나 만들어준다. 이 떼알조직은 아주 질이 좋아서 지렁이가 먹기 전의 흙보다 빗물에 깨어지지 않는 강도가 13배나 강해진다. 지렁이 창자를 통과한 흙은 양분을 지니는 능력이 4배나 커지고,.. 질소,인산,칼리는 각각 3배, 칼슘은 4배 이상 높아진다…지렁이에게 천국을 만들어주면 뿌리에게도 천국이 되어 생산성은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 이완주,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진보는 그 어느 것이나 노동자를 약탈하는 기술상의 진보일 뿐만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기술상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비옥도를 높이는 진보는 그 어느 것이나 이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칼 마르크스
#”커밍아웃”을 하다
“저는 비료, 거름, 약 없이 농사짓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무경운 건답직파” “우리네 부모들이야 그리 농사짓기도 했지. 그게 지금껏 없었던 방법은 아니야.”
“저투입은 맞는데 고효율은 아니여. 한 마지기에 한 가마도 채 안 나오는데 뭘.”
태평농부 이영문 선생, 자연농법의 기무라 선생과 가와구치 선생들의 ‘고효율’의 소출도 함께 이야기했지요. 자리에 계시던 어르신들 모두가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그 짧고 강렬한 한 마디를 신호로 더 이상은 초보농군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열띤 토론이 어르신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세상은 보다 편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편리함’보다 ‘자연스러움’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읽어 본적도 없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그건 언제난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의 몫일 뿐이었지요.
기무라씨의 깨달음. 자연스러워야 할 그 자연의 공간이 전혀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사과나무를 주변 자연으로부터 격기시키려 했다. 사과나무의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았아도 농약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병이나 벌레 때문에 사과나무가 약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것만 없애면 사과나무가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벌레나 병은 오히려 결과였다.
기무라씨의 자연농법. 나무 주변의 풀들을 죽이지 말고 나무와 풀, 그리고 동물들과 벌레들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스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자연을 따르는 농사 태평농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농사꾼들이 선택한 길이며, 또한 행복한 게으름뱅이 농부들이 선택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영문 선생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태평농은 개발한 것이 아니라 복원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태평농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입니다.”
태평농의 원칙은 의외로 단순명료? 삼무원칙: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경운-흙 속의 자생초 씨앗들을 끄집어 올리는 일을 하지 말고, 비료를 주지 않아도 흙은 스스로가 작물을 키울 수 있을 만큼의 거름기를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고, 지렁이 등의 다양한 땅속 생물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농약을 사용하지 말라.
이영문 선생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농사는 가을에 시작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임을 주목하게 됩니다.
파종방법도 독특합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흙을 파낸 골에 씨앗을 놓고 흙을 덮어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열무와 감자를 심어보았는데, 새에 의한 피해나 바람에 의한 씨앗 유실 등의 문제는 별로 겪지 못했던 기억입니다. 아마도 파종 후 피복한 볏짚이나 왕겨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출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감자 파종법. 태평농에서는 자른 면이 위로 흙을 덮어줄 필요도 없다. 흙을 덮지 않으면 뿌리를 먼저 내려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때문에 비바람에 버틸 수 있는 강인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자연스럽고 손쉬운 농사가 바로 태평농입니다.
쌀농사 짓는 방법은 더욱 독특합니다. ‘무경운 2모작 건답직파’에 모든 답은 표현되어 있습니다.
농부는 겸허한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자연이 키운 먹을 거리를 취한 후 그 나머지는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뺴앗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농사가 아니라 ‘약탈’일 뿐이다.-이영문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귀농을 준비하며 알게 된 단어가 있습니다.
‘전인全人.’ 온전하게 내 힘만으로 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 (자립인간)
지구에 모든 사람을 먹일 충분한 양의 식량이 있다. 물론 조건이 따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60배를 더 먹지 않는다는 조건 말입니다. 곧 낭비를 멈춘다는 조건입니다.-피에르 라비
#실천이 필요할 때
비로 깊이가 얕고 내용이 보잘 것 없어도…
욕심으로 점철된 우리의 시선이 문제입니다. 자생초와 공존할 수 있는 자연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양보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농법들에 대한 간략하게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턴 아주아주 즐거운 ‘생활 속 실천’을 행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힙니다.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당분간 우리가 우리 식량의 주권의 올바른 주인행사 하기는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해결책이 바로 ‘농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귀농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이죠. 농촌 사랑 실천과, 좋은 농산물을 대우해주는 분위기 역시 농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저는 예나 지금이나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직 그 개인 자신뿐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집단 역시 절대로 변화하지 못할 것입니다.(나부터 혁명)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고 계신 분은 이미 멋진 환경운동가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쉽고 당연한 곳에 있으니까요.
#나는 농부입니다
관련법에 정의된 농업인…1천제곱미터 이상 농사,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재미삼아 한번 저만의 농업인 기준항목을 상상해보았습니다…조그만 밭뙈기, 땅 한 평 가지고 있지 아니하더라도 노는 땅과 화분을 텃밭삼아 씨앗 뿌리고 물주며 식물을 키워본 적 있는 자,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행하는 것이 국가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도시-농촌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 믿는자,..
#모두를 위한 “적정 기술”
현재의 기술은 약자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부족해서가 아닌, 나누고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의 부재 때문입니다.
값비싼 정수기? 정작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부가기능이 아니라 깨끗한 물을 만들어주는 정수기 본래의 기능일 테니까요. 기술의 발전방향은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본래의 목적에 더욱 충실하게, 그리고 쉽고 간단하게.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하자.’
『혁명을 표절하라』
#착한 소비 “로컬 푸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석유를 먹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농산물은 산넘고 바다 건너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절대 ‘경제적’이지 못한 행위인데도 말입니다.
(산지직거래의 모순? 오히려 비싸다!)
#도시농부를 기다리며
농촌과 농업의 미래는, 역설적이게도 도시인들에게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혁명을 표절하라』 – 개인의 평범한 실천, ‘쉽고 재미있는 생활 속 실천’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아는 것과 경험해 본 것은 다릅니다. ‘앎’은 ‘지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지식에 ‘경험’을 보태어 사고한다면 그것은 이내 ‘지혜’가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국민이 우리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지 조금의 흙에 씨앗 뿌리는 것만으로 말이지요.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농부’가 되는 길은 어렵지도, 거창하지도, 희생적이거나 숭고하지도 않고 무척 쉽고 간단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단지 조금의 흙에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 말이지요.
딴지일보의 기사에 오른 ‘농사 이야기’
도움 되는 책들:
기적의 사과/ 자연재배/귀농 길잡이/ 내 손으로 받는 우리종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미래를 심는 사람/ 느린 것이 아름답다/ 신비한 밭에 서서/ 우리집 베란다愛 채소정원 가꾸기/조화로운 삶/조화로운 삶의 지속/ 스콧 니어링 자서전/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텃밭백과: 유기농 채소 기르기/ 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사람이 주인이라고 누가 그래요? / 풀들의 전략/ 혁명을 표절하라/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흙을 밟으며 살다/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링크 자료:
태평농 홈페이지 http://taepyeounf.co.kt
자립하는 삶을 만드는 적정기술 센터 http://cafe.naver.com/selfmadecenter
생협전국연합회 홈페이지 http://www.co-op.or.kr
토종종자 모임 씨드림 http://cafe.daum.net/seedream
Ruth Stout의 유튜브 동영상 자료.
미국의 자연농부 Ruth Stout의 농법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농사지을 수 있는 적절한 규모의 텃밭을 소유하고 낙엽, 자생초, 작물의 부산물 등을 이용해 충분한 두께로 피복하는 것이 자연농의 비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정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