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철학. 강판권. p338
내가 나무로부터 배운 것들
자존. 스스로 존중. 자신이 타고난 모든 것을 온전히 수용할 때만이 가능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서 살았다. 여기서 나의 창의성은 막혀버렸다. 세상에는 큰티나무만 아니라 작은키나무도 큰키나무만큼 가치 있고, 큰키나무와 작은키나무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숲이 된다. 나는 사람도 나무처럼 살아갈 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다_나이테의 철학
세상에는 ‘하지 않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두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먹는 일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에 해당한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기면 불행만 닥쳐올 뿐, 할 수 없는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나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지만 세월을 거부하지 않는다.
나무는 거부하는 법이 거의 없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눈이 오면 기꺼이 눈을 맞는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비바람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나무가 마지못해 비바람을 맞이한다면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세월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의 삶을 잘 살펴보면 인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으뜸’을 의미하는 ‘솔’이라 불렀다.
나무는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 철저하게 공존한다. 나무는 죽은 것으로 안쪽을 빈틈없이 채우면서 삶을 유지한다. 나무는 죽음을 끌어안고서야 살아갈 수 있다. 이에 반해 인간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이 먹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인간이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나무와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무의 나이는 수평이다. 나이바퀴를 의미하는 ‘연륜’을 이해하면 나무가 사는 법을 알 수 있다…바퀴는 둘글고, 둥근 것은 시작도 끝도 없다.
시간을 쌓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려 하는 태도는 매일매일 살았던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은 시간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나무는 자신이 살았던 시간을 간직하면서 나이테를 만들어간다. 나무의 나이테는 시간이 온전히 축적된 결과다. 그러므로 나이테를 많이 만들수록 삶의 지혜는 깊어진다.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촘촘한 나이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지혜롭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을 물들이고, 잎을 물들여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다_단풍의 철학
어느 극極에도 치우지지 않는 것이 바로 ‘중용’과 ‘중도’다. 그러나 극을 알고 극을 거쳐야만 진정 극에서 벗어나 중용과 중도를 실천할 수 있다. 따라서 극은 삶에서 중요하다.
#보태지도 덜지도 않는다_낙엽의 철학
괴산의 괴槐는 바로 느티나무를 의미한다.
나무는 잎을 축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축적에 익숙하다. 인류의 역사는 아마 축적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축적의 개념은 신석기 시대에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나무가 사람과 달리 한 해 동안 만든 잎을 미련 없이 떨어뜨리는 것은 천지의 도道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그동안 나무처럼 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석가, 예수, 공자…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나무를 닮았다는 것이다…무언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상대적이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재산 역시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소유하느냐의 여부다…그 이상을 넘어가면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불행을 낳는다…성인들 역시 나무처럼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하길 원했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린 뒤에야 자신을 본다.(나목의 아름다움) 잎을 만들때는 오직 만드는 데 골목한 나머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생명체가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낼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나무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떨어진 잎에 미련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기를 망설인다. 이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도 남는 무언가에 계속 미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거늘, 어찌 다시 그것에 관심을 두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는 자는 자신의 몫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를 챙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무가 새로운 잎을 만들기 위해 잎을 버리듯,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아주 많다. 버린 만큼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잎을 버린 나무는 이듬해에 그만큼의 잎을 얻는다.
나무가 잎과 열매를 아낌없이 내려놓는 자세는 대도大道의 실천이다. 이런 태도는 성인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다만…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 관건이다.
나무는 잎을 버린 뒤에야 여유를 찾는다. 잎을 달고 있을 때는 풍요롭지만 여유가 없다. 인간도 몸이 가벼워진 뒤라야 여유로울 수 있다. 여유는 비어 있는 여백과 같다…잎이 떨어진 나무는 절대 자유 그 자체다.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 찬 겨울나무의 모습은 인간이 가야할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이다.
#부드럽기에 강인하다_흔들림의 철학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변화무쌍한 현실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수없이 흔들리면서 지금의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사실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흔들리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지만 인간은 그 고통을 통해서만 성숙한다.
인생을 자유자재로 하려면 매일매일 흔들리자. 다만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흔들림이라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다가 넘어져도 또 일어나 죽지 않고 계속 흔들릴 수 있다.
#모난 데 없는 부드러움은 치밀함에서 나온다_원만의 철학
치밀은 고운 실처럼 촘촘한 것을 말한다. 회양목의 목질이 바로 그렇다. 삶이 조밀하면 당연히 더디다. 그래서 회양목은 그 어떤 나무보다도 더 더디게 성장한다.
#추위를 피하지 않아야 푸름을 유지한다_무심의 철학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이익을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익을 다투면 좋은 관계도 좋지 않게 바뀌기 마련이다.
나무는 자신의 문제를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이익을 다툴 일이 없다.
삶의 나침판 같은 소나무. 인간이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추위를 피하지 않아야 소나무의 푸른 잎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추우면 춥다고 불평하고, 더우면 덥다고 불평한다. 소나무는 추우면 추운대로 받아들이며 어떤 고난도 피하는 법이 없다. ‘기꺼이’ 추위를 받아들이는 소나무의 자세는 추위를 의식하지 않는 무심의 경지다.
#’자귀’라 쓰고, ‘자신은 가장 귀한 존재’라 읽는다_사랑의 철학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_독락獨樂의 철학
나는 나무를 만나면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았다…그 비밀은 간단한 데 있다. 즐거움은 바로 좋아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내가 나무를 택한 것도 나무가 늘 내곁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을 ‘근사 近思’라고 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말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꽃만 보지 않고 연두색의 잎에도 눈을 맞출 것이다.
상수리나무 잎의 앞뒷면 색깔이 같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왜 큰 즐거움일까. 상수리나무를 포함한 참나뭇과의 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잎이기 때문이다.
#’뿐’ 정신으로 살아가기_위기爲己의 철학
‘뿐’ 정신의 실천을 위해서는 모든 일이 나의 몫이라는 철학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이 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일일 뿐이다. 어떤 연유로 맡은 일이든 한번 맡게 된 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게 없다. 그런데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남의 일로 생각하면 무척이나 힘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손으로 꽃을 꺽지 마라_역지사지의 철학
내가 인근 산을 사계절 동안 관찰하려는 것은 산에서 살고 있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인생을 무척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기 때문. 식물을 관찰하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보통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사계절 산의 자연 생태를 관찰하면 늘 다니는 산길도 새롭다. 그러나 사계절 산길이 늘 새로우려면 다른 존재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에서 아무리 큰 변화가 생기더라도 소용이 없다.
정상에 오르는 일이 없는 이유? 정상까지 올라갈 시간이 없기 때문? 산에 오르면서 나무와 풀을 관찰하다 보면 시간이 늘 부족하다. 특히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습관 때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즐거움이 몸속에 쌓인다.
나무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나무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실체를 자신과 같이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는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꽃을 함부로 꺽지 않는다.
##단순하고 절박한
#사소한 것에 감동하기_행복의 철학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감정 변화가 점차 줄어든다. 감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감동에 익숙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느끼는 것을 즐기기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목적지향적 삶으로…대다수의 한국인은 주로 할 수 없는 일을 목표에 두고 여기에 매달려 살아간다. 하지만 목적지향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_존재의 철학
만남이 잦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를 비롯해 어떤 생명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큰 관심이 필요하다. 큰 관심은 자세히 보는 데서 출발한다.
나는 매일 나무를 보지만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본다.
노오란 개나리꽃? 그러나 개나리 열매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친 개나리? 식물은 미치지 않았다. 개나리는 기후 조건만 갖춰지면 1년에 몇 번이라도 꽃을 피우고자 시도할 것이다. 1년에 두 번 씩이나 꽃을 피우는 개나리를 보면 얼마나 힘이 들지를 생각한다면 개나리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질 것이다.
만약 나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주변에 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정해서 1년 동안 관찰해보자.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선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 관찰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자신에 대한 깨달음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꽃과 열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과정.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느티나무 꽃을 봤느냐고 묻는다. 십중팔구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다_일이관지의 철학
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이다…분명 성인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자다.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는 것이다.”
무조건 많이 배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많이 배워 많이 안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삶은 급급하다.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다 보면 삶을 통찰할 여력이 없다.
#공부는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다_살구나무와 공자의 교육 철학
입시 위주의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할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는 데 큰 결함이 있다.
창의적인 교육은 공부 대상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종이로 만든 책만 공부의 대상이고, 교실 안에서만 공부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창의적인 교육은 요원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부할 거리다.
#제 역할을 다한다는 것_묵묵한 소신의 철학
#등신처럼 살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_여락의 철학
사람들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만, 어떻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평등한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어려움? 사실은 자식이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은 겨울의 갈잎나무처럼_경청의 철학
통신 수단의 발달? 소통의 문제가 통신 수단이나 기술의 발달만으로는 원활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정작 소통의 목적을 방해하고 있다. 간접적인 대화는 쉬워졌지만 얼굴 맞대며 소통하는 직접적인 대화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천지도 모르는 놈’? 하늘과 땅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알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농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생활은 실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늘을 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하늘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땅의 기운을 밟지 못하고 자라게 되면 어른이 되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하면 인간은 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어둠과의 소통은 곧 우주와의 소통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볼 수 있다. 이제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쏟아지는 별을 보기 어렵다. 어둠이 있어야 빛도 있는 법이다. 어둠과 소통하지 못하면 결국 빛과도 소통할 수 없다. 소통은 어둠과 빛, 음과 양의 원활한 순환 속에서만 진정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흙이 숨을 쉬지 못하면 인간도 숨을 쉴 수 없다…진정한 소통은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워야만 한다…비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갈등이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대화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경청의 자세를 갖춘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관계의 조건_연리지의 철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하는 순간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 것을 알기 때문.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려면 무엇보다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 가치를 공유하려면 서로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모든 나무는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
틈은 여유. 관계 속에서 틈을 강조하는 것은 여유가 있어야만 상대를 바라볼 수 있기 떄문. 틈이 없는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가 아니라 억지이거나 집착이다.
#봄을 즐기는 법_매화의 철학
봄을 즐긴다는 것은 곧 생명의 근원을 본다는 말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치열한
#치열하기에 아름답다_아까시나무의 철학
#기다림에서 감동이 나온다_오동나무의 철학
만개한 배롱나무,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가까이 가면 오히려 배롱나무 꽃을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감동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다른 존재가 만든 감동 또한 느낄 수 없다. 내가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언제나 감동할 수 있는 것도 내 스스로 늘 감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생장형과 자유생장형_다름의 철학
#대쪽 같은 선비, 대나무의 삶_중도와 중용의 철학
#나만의 속도 찾는 법_대추나무의 철학
밥이 남는 경우를 일컫는 ‘여유’라는 단어는 농업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농업사회가 아닌 ‘유목사회’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유목사회가 인간의 여유를 가져가버렸다.
#볼품없는 나무에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_모과나무의 철학
#2000년 만에 피는 꽃_목련의 철학
#쟁기질, 마음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법_역易 같은 변화의 철학
부부 사이에 ‘권태기’는 위험 신호다…사실 상대방이 싫증나는 건 겉모습과는 무관하다. 겉모습이야 크게 달라질 수 없다. 그보다는 늘 같은 이야기, 같은 생각이기 때문에 즐겁지 않는 것이다. 나무는 만날 때마다 싫증나지 않는다…싫증나지 않는 것은 볼 때마다 변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창의성을 쟁기질하는 것은 곧 생태적 삶이다. 생태적인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하지만, 사람을 진정으로 살아 숨 쉬게 한다. 생태적인 삶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삶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생각이 바로 생태의식
#위기를 극복하는 나무의 지혜_뿌리의 철학
나무의 근본이나 사람의 근본은 같은 의미지만, 나무는 평생 근본을 잊지 않는 데 반해 인간은 위험에 놓였을 때만 근본을 생각한다는 사실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