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란 무엇인가. 승효상 외. p169
우리 시대 건축가 열한 명의 성찰과 사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직업? 건축!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거주한다는 것이며 이는 바로 건축 속에 거한다는 뜻
대개는 건축을 건물과 혼돈하여, 건축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가치에 대해 무지하거나 건축의 형이상학적 생산과정을 간과하고 단순한 시지각의 대상으로서 혹은 물리적이고 기능적 시설로서만 인식하고 있다
그 경우는 그대도 나은 편? 건축을 사고 파는 부동산적 가치로만 이해하는 일반화한 사실이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너무도 쉽게 집을 짓고 너무도 쉽게 허무는 이 땅은 온통 투기장이며 공사판이니, 언제 우리는 우리 존재의 안정과 지속을 보장받는 굳건한 건축을 가지게 될 터인가. 아마도 우리의 사회가 여전히 불안하고 갈등하는 것은 이 불안한 건축환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땅 이시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건축가는 대부분이 바른 직능을 도외시하고 과도한 물량 공급에 휩쓸려 타성적이 된 건축 생산에만 몰두하거나 스스로 격을 낮추어 건축주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것이 크다.
나는 여기에 저항하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내가 감당키 어렵지만, ‘빈자의 미학’ 같은 어휘를 내세우며 감히 내 건축의 지표로 삼고 나를 찾는 모든 건축주에게 이를 설명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려 해 왔던 것이다. 참담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성공하기도 했다. 비아냥을 받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놀랍고 감사한 것은, 그 후에 나의 생각을 환호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클라이언트로서 나에게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지적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나의 참 좋은 선생이어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모순되고 열악한 우리의 현실을 가슴으로 부등켜 안고 건축하는 그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담론은 항상 나에게 큰 자극제였으면 내가 돌아가야 할 지점이었다. 이들 가운데 몇 분이 이 책에 글을 올린 건축가들이다.
#영조(營造)_승효상
나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처칠
오히려 화려한 건축 속에서는 삶의 진실이 가려져서 허황되고 거짓스러운 삶이 만들어지기 쉬우며,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옭도은 심성이 길러지기가 쉽다
평면도는 보는 그림이 아니다. 읽는 그림이다…그 속에 적혀 있는 건축가의 사유를 읽어내야 그 평면도에 표기된 삶의 조직을 알 수 있다…다시 말하면 건축가의 그림은 그의 사유에 대한 기록이 되어야 하며, 그 그림이 전문적 언어로 나타난 것이 건축가의 도면이다. 따라서 건축가가 그림에 소질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진보된 기술의 건축 속에서 우리는 더욱 행복한가’ 하는 데에 이르면 심사는 복잡해진다.
기술은 건축과 다른 것이며, 다만 우리의 삶의 시스템을 때때로 편리하고 굳건하게 하는 가치를 지닌 하위의 개념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예술적’ 건물? 건축예술이란 애초에 없던 말이다!
건축을 일종의 조형예술로 착각. 이런 건축 속에 참다운 삶이 만들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굳이 건축을 다른 학문의 분류에 넣는다면 인문학에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 속에 작업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필수불가결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의 조건? 합목적성/ 시대성(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 장소성
건축은 집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은 하부구조이며 그 집 속에 담기는 우리들의 삶이 그 집과 더불어 건축이 된다.
#반복과 차이로서의 건축_정기용
건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하는 주체애 따라 다르고 주체가 소속된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누가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강조하려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오아시스 부근의 사막의 집? 최초의 방, 최초의 집,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문화를 사막 위에 만든다. 그래서 건축은 위대하다
건축과 건물의 차이는 마치 정신과 물질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매체가 된 건축? 건축이라는 단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문제의 핵심에는, 건축을 말할 때 모두가 완벽히 소통할 공통된 이미지의 약속이 깨졌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네에 살지 않으며 현대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 이름 속에 살고 있으며,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면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내는 사진으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신체 오감으로 체험되지 않은 건축은 이해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다시 거주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건축과 도시, 그 성찰의 시대_조성룡
풍토와 문화? 미국식 목재주택이나 유럽풍 휴양시설이 우리의 자연 속에 지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는, 바로 집 짓는 일이 문화적 작업임을 간과하고 건설과 부동산 가치만을 추구하며 맹목적으로 서구문명을 지향해 온 문화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토와 그 안에서 일구어지는 삶을 외면한 채 이 땅은 지금 망가져 가고 있다.
근대 도시의 명암? 근대사회에 이르러 인간은 기계를 발명하고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꿈꾸며 유토피아를 동경한다. 교통기관의 발달은 공간의 개념을 압축하고, 새로운 풍경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적 생활은 도시공간을 바꾸어 놓았으며, 상품을 대량생상하는 산업체제는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고 도시가 팽창하는 원인이 되었다.
“더 이상 대중을 힘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배계급은 마음을 조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광고 홍보 산업이다. 이것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군대가 병사를 조직하듯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조정하고 배치한다. 대중의 마음을 공공의 일로부터 떼어내 피상적인 일, 끊임없이 소비에 묶어 놓는 일을 업무로 한다. 사실 이것이 현대 정치학의 핵심이다”-노암 촘스키
침묵과 정적은 건물의 본질, 적을수록 좋다…지금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일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 별질되지 않는 방법은 그 삶을 담아 갈 공간과 장소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건축의 본질_김인철
일상의 의미? 애써 특별한 건축이려 한다? 주어진 조건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함에도 습관의 반복으로 무뎌진 일상의 무의미로부터 의미를 찾고 새로움을 발견하려고 한다!
일상과 유리된 건축은 조형물일 뿐 건축일 수 없다
건축이 건축다우려면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상을 객관적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것이다. 건축은 일상의 해법이 아닌 ‘제안’이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움의 제안은 항상 일탈로 취급되어 고정된 가치관-고정관념의 거센 저항을 받는다. 기존의 가치와 다른 새로움은 타당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저 제안으로 끝나고 만다. 설득력은 변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것이 실현 가능한 건축의 제안이 만들어 졌을 때 갖추어진다. 건축이 건축이기 어려운 이유는, 제시하는 새로움이 일상의 동의를 획득하려면 제안의 출발점을 다시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의미? 건축의 명제는 더 이상 기능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다
건축의 목적은 공간? 기능의 해결이 아닌, 용도를 전제로 삼지 않는, 그리고 형태를 우선하지 않는 건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건축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공간은 건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이자 목적이다. 비어 있는 사이로 해석되는 ‘공간’은 정의하기에 따라 갖가지의 의미가 있을 만큼 보편적인 단어이다(그릇은 비움으로써 쓰임새가 만들어진다)
명품도자기? 그릇이 아닌 그릇
건축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설정하는 역을 한다. 관계란 ‘소통’을 의미한다.
포세이돈 신전, 그리스 아테네? 에게해의 뱃사람들은 건축이 그려낸느 실루엣만으로도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건축은 땅을 장소화하는 것이다. 장소성은 건축으로 비롯되지만 그 의미의 완성은 그곳에서 영위될 일상에 의해 완성된다…땅과 건축으로 빚어진 공간은 그 형상이 어떤가에 관계없이 그곳만의 성격을 갖는다. 지구상에 유일한 곳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란 일상의 집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그 시작이 건축으로 비롯된다면 건축은 문화를 생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건축은 일상을 의미있도록 하고 땅의 가치를 장소로 번역하며 공간으로 시간의 영속성을 담아내어 이 시대와 이 땅에 흔적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지역주의 미학의 건축_김영섭
블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한 과학문명의 혁신적인 발명과 발견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증폭시겼다!
무수한 건축담론들과 도시에 관한 이론들이 근대화라는 저돌적으로 달리는 폭주 기관차에 편승하여 각 나라 지역 고유의 도시역사와 환경들을 파괴해 왔다.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시민들이 도시 유목민화하는 현상들로, 특히 아시아의 도시들은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오히려 전체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린 채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의 삶에 대한 방향감각을 상실케 하고 있다. 그것은 각 지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구어낸 그들 고유의 삶과 건축이 지혜로운 근대화, 즉 점진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건축가들의 모더니즘? 그것은 허구로서 신화이거나 이상주의에 몰입했던 도시건축가들의 자기기만이었음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도시와 건축의 위기는 인류가 근대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근원적 사회문제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중요한 하나로 존재하는 것, 즉 사물에 대한 인식의 위기를 들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 인간과 사물 사리에 진정성이 깃든 관계는 깨어져 버렸다.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한갓 대상이자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런 성향은 자연과 인간의 대상화(수단화?)라는 비극으로 확대되었다. 그로부터 발생한 분열과 소외를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순진하거나 지나친 낙관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버마스(J. Habermas)의 지적대로 ‘문화와 생산의 통합은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개발의 하수인, 환경파괴의 주역, 사히적 통제와 조종의 수단 등 이러한 수식어들은 부인할 수 없는 이 시대 건축의 양상이며, 건축이 걸어온 운명이 되었다
건축가 없는 건축? 소위 토건 건축으로 부류되는 농경사화의 촌부들이 지은 살림질들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지극히 겅강하고 윤리적인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상의 주거환경을 만들면서 민가들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낸 과거의 지혜와 비교해 보면, 지식과 정보로 넘쳐나는 오늘날의 산업사회는 아직도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자연과 주거 양쪽 모두를 해치고 있다.그것은…모더니즘이라는 인위적 형식 속에서 해결책만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건축과 도시는 무(無)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역풍토에서 지속되어 온 생활의 지혜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전혀 낯선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평소 문화라는 말을 그 시대가 가진 정보의 축척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본래 태어난 환경과 풍토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을 조상해 줌으로써 현대의 도시에서 유민민화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예언자처럼 외치고 있다.
나는 이제 아시아 건축은 자신의 풍토에서 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가 지향하는 바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마도 그ㅓㅅ은 궁극적으로 동서양 구분이 아닌 공생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될 것이다(목표가 틀렸다면 속도는 의미 없다-간디)
“국제화한 자본주의 세상이라는 것은 지식인들이 소속되고 싶어하는 대단히 배타적인 유형의 유토피아”-미국의 문화비평가 마시오 미요시
“세계화 경제라는 것은 최대의 배타성을 통해 세계의 자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리처드 바넷
어떤 의미에서도 정체성이 없는 국제화한 건축은 비극적 예술이고 비극적 산업이며 따라서 비극적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수밖에 없다). 국제양식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은 정체성에 대한 죄의식을 덮기 위해 미학적 이론적 지적으로 경탄할 논리를 전개하지만, 아무 곳엗 ㅗ소용없는 복제된 외양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국제화한 건축이 그 비극적 속성으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기 전에, 지역건축가로서 내개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의 과거와 유산을 현재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지역모더니티? 사람들로 하여금 잠자고 있던 이 땅의 옛 선인들의 지혜와 미학을 건축에 다시 일깨워 살아 있는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
#건축, 미학에서 윤리학으로_민현식
“히.로.시.마. 이게 바로 당신의 이름이야”? 정체성은 그들이 각각 거주하던 도시의 환경과 그 환경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형성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바로 그 도시의 이름과 다르지 않다!
공간혁명?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들은 공간 또는 환겨을 개조함으로써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차 있었고, 그들의 작업 상당부분이 이러한 공간혁명에 몰두했다
땅과 사람에 대한 건축 윤리, ‘덜 미학적인, 그래서 더 윤리적인Less Asethetics, More Ethics’(베이스 비엔날레 2000 테마)
건축과 건축, 건축과 주변환경의 관계에 주목하여 인간과 환경에 대한 건축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이 더 중요한 자리를 점한다(건축적 풍경?)
#쉘위댄스_이종호
건축과 건축이 속한 사회가 서로 공요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부들이 남아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특히 당신에게 말하려 애쓸 것이다
소통의 장애는 어디서 오는가? 건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정도와는 달리 아직도 건축을 이해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건축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건물을 짓는 데 동원되는 전문적인 공학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작은 살림집일지라도 온전한 집 한 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도 독특한 지식, 경험, 재능, 그리고 실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건축가가 세성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그리고 세상 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 그 자체가 심오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건축을 하는 목적’은 사회와 공유를 해야만 하지만 ‘건축하는 방법’은 사회와 공유할 필요는 없다
극단의 시대, 극단의 사회? 극단의 사회 속에는 누군가 메워야 할 커다란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역할은 각자의 영역에 각각 주어진다.
건축에서의 적은 내부에 있다? 통제되지 못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그 반대편으로 뻗는 개개인들의 욕망이 동시에 있다.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제도화의 힘과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무력함이 동시에 있다.
오늘 우리의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은 다름 아닌 지난 시간 우리가 겪어 온 과정의 모습 그대로이다. 역사의 단층이 있고 추스리지 못했던 급격한 팽창이 있다.
극단의 시대 속에 놓인 현대의 도시가 누군가에 의해 메워져야 할 커다란 공백을 가지고 있다면 아시아의 도시들은 또 다른 공백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과정 속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삶의 내용과 형식 사이의 공백이다. 시대의 변화가 불러낸 공간형식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삶의 내용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불일치이다…그들 도시에서의 공백의 핵심은 각각의 장소들이 가진 의미의 차이 또는 단절이다.
분석은 할 수 있으되 실천의 방법을 아직 나는 모른다. 다만 실천을 향해 나서야 하며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서 건축을 하는 새로운 목적이라는 당위만 남는다…바로 그 당위와 인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소통의 필요성과 함께 실천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연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반란적 건축가’? 오늘 우리 도시, 건축의 공간이 드러내는 ‘분열’의 틈새를 비집고 희망의 씨앗을 꾹꾹 눌러 심는, ‘편집’의 껍데기를 한껏 밀어붙여 깨뜨려 나가는, 성찰을 반복하는 문화생산자 바로 당신이다. 그것이 오늘 건축을 하는 중요한 목족이다. 당신이 필요하다. 당신 곁에 내가 있고 싶다.
쉘위댄스? 그 목적은 당신과 공유될 성질임을 알리고 싶었다!
#건축은 현실의 번역이다_김준성
몸으로 체험하는 건축
#보편적 삶을 담는 그릇_김종규
배경으로서의 건축
일상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구체적 적용
#한덩어리를 보면 자꾸 나누고 싶어진다_이일훈
건축의 서술보다 더 호소력있는 서술은 아마 문학일 것이다.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
장소에 대한 예의
불편하게 살기?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편리와 편안함은 활동하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며 생활의 질을 높이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끝간 데 없이 무조건 추구하는 편함이야말로 나태와 권태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오늘날 겪는 환경오염의 원인은 모두 다 편리한 생활의 후유증이다. 세제 남용, 매연과 폐수 배출, 토지 오염, 일회용 폐기물 증가 등은 ‘좀 더 편하게’를 열망한 인간의 게으름이 나은 졸작이다.
#그래도 남는 건축의 의문_김영준
퀄리티의 신화
고정된 절대의 기준
유형과 형식의 담장
마음속 노스탤지어? 통상 노스탤지어로 대변되는 건축 판단의 잣대는 아주 오래 된 견고한 틀이다. 그것은 전통의 이름으로, 때로는 컨텍스트의 얼굴로 건축의 주변부를 에워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임에 틀림없다
분양가 상한재 페지로 인하여 층간 소음차단 시공 화재발생시 계단실 차단되어 베란다 통한 피난기구 설치하여 안전 확보하고
개인 주차 지정재실시하여 퇴근이 늧어도 주차 확보하는 지정재시행으로 주거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