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모색. 장회익,최장집,도정일,김우창.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세계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배려 없이 심화되고 있는 경쟁의 극대화, 발전과 성장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맹목적인 자기확장, 시장적 가치의 전면적 확산과 그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현상들은 우리가 목격하는 이 변화의 핵심적 특징들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응하고 그것을 더 큰 인간적 가치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공동체적 능력을 급격하게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온생명 사상? 개별적 생명은 결핍을 가진 존재이며 다른 생명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결이 안되는/ 만들어짐의 과정./ 꽃도/ 암꽃술과 수술로 되어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벌레나 바람이 찾아와/ 암꽃술과 수술을 연결하는 것./ 생명은/ 제 안의 결여를 안고/ 그것을 타자가 채워주는 것.”- [생명은], 요시노 히로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나는 민주화 이루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지난 20년간의 민주정부가 일반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대에 실패했다!
민주주의 정부가 정서적으로는 급진적이고 이상주의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대라는 면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경제민주화 실패,경제는 삶의 문제)
“결국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반복해왔는데, 그것은 사회적 이슈의 확대를 향한 요구들이 분출하는 한바탕 소동이 지나면 곧이어 보수정당체제 안에서 협소한 정치개임이 복원되는 악순환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우리가 온생명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생명은 느낌이 있어 소중하게 여기지만, 온생명은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솟아나기 어렵습니다. 머릿속에서는 그려지지만 마음에서 생겨나지 않으니까 실천으로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서 문학이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내용을 마음이 느껴지도록 연결시키는 작업이 문학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상대성이론, 상대성원리란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어떤 속도로 움직이면서 보든 자연법칙의 기본형태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현상은 달리 보이지만 적절한 좌표변환을 하고 보면 결국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대성이론이 주는 교훈은 내가 하는 좌표변환 때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의견이 다르고 수많은 분쟁이 발생하지만 서로 마주앉아 좌표변환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많은 부분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것이 어렵다는 점인데, 이 점에 대해 아인슈타인 이상의 지적 작업을 수행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동안 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또 이를 극복하려 애쓰다보니까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를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정년을 얼마 앞두고 조금 일찍 퇴직해서 지금 자유롭게 지냅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왜 그렇게 묶여 살았나 싶고, 지금부터 사는 게 진짜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떠나면 삶의 의미가 없어질까 두려워합니다. 할 일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걱정합니다. 그런데 내가 일을 위해, 직장을 위해 살았던 것은 아니지 않겠어요? 일이나 직장이 아닌 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보람되고 만족스런 것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조그만 집을 짓고, 주위 산에서 죽은 나무를 끌어와 구들방에 불 때고 새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방에 누워 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이렇게 자연스러운 활동을 하니까 건강도 좋아지고, 밥맛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도시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너무 많이 잃고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정부에 대해 이상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잡는 것보다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대중독재?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독재’다
최근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국민적 동의기반이 훨씬 더 강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정치는 정치의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이를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전문가 ‘보고서 정치’? 보고서의 내용을 보더라도 굉장히 무책임하고 좋은 이야기들, 우리 햔실로부터 괴리된 서구의 모델이나 사례들을 짜깁기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것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자’? 인터뷰 기자 명함 문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긴다는 것이 도대체 여기 사는 사람들의 삶에 질적으로 더 낫고 좀 더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거냐 라는 물음을 던질 때 박정희시대의 과거와 대면하고 박정희시대의 문제들을 청산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왜 얼마전 까지만 해도 치대강령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신자유주의라는 보수적 이념을 수용하고 일반민중의 생활이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눈을 감다시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저한테 상당한 수수께끼이고 뭔가 설명해야 할 대목입니다.
읽기의 역사! 무식의 발견’ 두고두고 무식을 발견하면서 산다는 건 보통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다
민주화나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 구호,이념이나 제도들이 구체적인 삶의 개선에 연결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까 돈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고, 보통 사람들이 돈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공동체는 사회질서 속에 도덕과 자유의 사회적 필요를 다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 문제삼을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