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p86
INDIGNEZ-VOUS!
1994년 3월 15일,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 개혁안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오늘날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 이러한 원칙과 가치들이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사회일 수 있도록 그 원칙과 가치들을 다 같이 지켜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사르트르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복잡해진 세상, 상호의존적 세계, 강력한 상호연결성,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보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미래는 비폭력의 시대,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는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한다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평화적 봉기를 위하여
서양인들의 ‘생산 위주의 사고방식’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으며, 그 위기로부터 탈출하려면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94세 고령의 강건함과 용기의 비결? 나의 비결, 그것은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잘 되어가는 사회란? 모든 시민에게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 세 단어로 ‘자유,평등,박애’!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이 가치들이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을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구축작업입니다.
‘창조적 저항의식’이 실천방법? 참여! 정당 지지, 투표, 참여 민주주의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_조국
공적인 분노, 세상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시민이 세상일에 관심을 끊거나 냉소르르보내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때 세상의 불의는 승승장구하며 확대 재생되기 마련이다.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한창 피가 끓는 젊은이의 외침이 아니다.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목소리다. 보편적인 권리, 기본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부디 분노하라고. 감정적인 외침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결기 어린 외침이다!
레지스탕스 정신은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
…사랑은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분노하라 | doing being”에 대한 3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