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과 놀다. 나태주. p210
사람은 어린 시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또 누구와 살았느냐, 무엇을 좋아하며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꽃 이야기를 하자#
풀꽃. 사람들이 제멋대로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무리 흔한 풀꽃이라고 제각기 이름이 있다. 오랜 세월 인간들 곁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덕으로 얻어 낸 이름이다. 풀꽃 이름 속에는 인간의 삶과 꿈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조그만 소리로 한번 풀꽃 이름을 외워 보라. 우리 자신이 풀꽃이 되고 풀꽃 마음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풀꽃 세상
자기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고 조그마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종이와 연필을 준비해서 서투른 솜씨로라도 좋으니 풀꽃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편안한 마음이 돌아올 것이다. 자기도 제법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길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도 점점 커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오 낙오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초라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풀꽃들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한없이 겸허한 사람이 된다. 충분히 낮아지고 부드러워지는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 꽤나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풀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화평을 준다. 이 얼마나 고맙고 고귀한 존재인가.
#풀꽃 그림
처음 아이들은 어떻게 풀꽃을 그리느냐고 힘들어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나는 우선 여러 개의 풀꽃 가운데 자기 마음에 드는 풀꽃 하나를 고르라고 일러 준다. 그리고는 그 풀꽃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라고 일러 준다. 이건 사실 하나의 명상의 방법이기도 하고 자기 응시 내지는 침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공부를 통해 깊어지는 마음과 사려 깊은 인간미를 가질 수도 있는 일이겠다.
그렇게 풀꽃 그림을 여러 차례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심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 풀밭에 이렇게도 많은 풀꽃이 피어 있는 줄 몰랐어요. 풀꽃이 아주 예뻐요. 풀꽃을 밟을까 봐 풀밭을 함부로 밟기가 어려워요.
첫째는 사물의 발견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심미성이고, 셋째는 생명 존중에 대한 생각이라 하겠다.
#풀꽃한테 물어 보아라
풀꽃 그림을 그리면서 새롭게 생각한 것들이 많다. 그것은 ‘풀꽃의 모양은 풀꽃한테 물어라’ 하는 것이다. 처음 풀꽃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풀꽃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도대체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마음먹은 대로 연필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실은 이건 내 마음속에 풀꽃의 형태에 대한 개념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 분명이 이를 부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풀꽃의 진짜 모습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풀꽃의 형상을 버려야 한다.
가능한 대로 송두리째 버려야 한다. 그러고 난 뒤 풀꽃한테 항복을 해야만 한다…그러면 풀꽃의 형상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풀꽃이 조금씩 도와주기 시작한다.
모든 풀꽃은 완전히 유일하고 별개인 개체로만 존재한다. 그 어떤 것도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비슷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이런 데서도 우리는 하나의 생명에 대한 교훈을 만나게 된다.
#마이크로 세상
마이크로 세상은 언제 열리나? 먼 하늘 너머 저쪽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어 자기의 발밑을 바라볼 때 열린다. 오만 가지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졸업한 마음일 때 가능해진다…말하자면 인생의 고락을 맛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비밀한 세계인 것이다.
오늘날 누구나 살아가는 세상은 뜬구름의 세상이다. 그 뜬구름의 세상에서 돌아와 비로소 자기 발아래 눈길을 주었을 때 그곳에 정말로 소중한 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야말로 그것은 이미 자기에게 있었던 것에 대한 확인인 동시에 새로운 관점과 발견과 감사의 세계이다.
그것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사소한 것, 초라한 것, 낡은 것, 옛것, 가까운 것, 잊혀진 것들을 함부로 하지 않는 마음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것은 순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마이크로 세상이 열리면 갑자기 작은 것들이 크게 보이고 무의미한 것들이 소중한 의미를 갖고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일종의 개안開眼인 셈이다.
#미루지 말라
조금이라도 미루었다가 다시 와 보았을 때 당신은 그 풀꽃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풀꽃은 필경 사라진 뒤기 십상이다. 정말로 풀꽃은 우리에게 시간의 소중성所重性을 가르쳐 주는 좋은 선생님이다.
#풀꽃 이름
풀꽃도 이름을 알고 나면 가깝게 느껴지고 친하게 느껴진다. 머릿속에 분명하게 각인이 된다. 기억에 남는다. 다른 풀꽃들과 구별이 된다.
풀꽃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풀꽃과 가까워지는 지름길이고 친해지는 지름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이 세상 생명체 가운데 안 이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어떤 것이라 해도 자세히 보기만 하면 이쁜 구석이 한 군데는 꼭 있게 마련….한 세상 살면서 무엇이든 자세히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마음의 능력 하나를 더 선물 받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민들레
풀꽃과의 관계..직장 생활을 제외하고는 두문불출의 선언. 삶의 형식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멀리 보던 눈길을 거두고 가까운 곳을 보기로 했다. 다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나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고자 했다. 외명한 사람이기보다는 내명內明한 사람이기를 소망했다.
#팬지
팬지는 서양 제비꽃. 유난히 꽃송이가 트고 화려한 꽃이다
#봄맞이꽃
운동장이나 화단이나 담장 아래 웅크리고 피어 있는 꽃이나 풀들한테 관심이 갔다. 그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건 나로서는 대단한 변화였다. 말하자면 발상의 전환이요, 시각의 변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또 쪼그맣고 조용한 발견의 과정이기도 했다.
#씀바귀
그렇다. 풀꽃의 세계는 자기 발밑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의 비밀 세계이다. 지금까지 먼 하늘을 보았고 뜬구름을 보았다면 그로부터 발밑을 바라보는 새로운 생애가 나에게 열렸다.
#쇠별꽃
‘쇠’자가 붙으면 왜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쇠기러기, 쇠물닭,…쇠별꽃은 아주 모양이 작은데 새하얀 빛깔이다.
#붓꽃
오월 난초. 예전의 시골 사람들이 붓꽃을 난초꽃이라고 불러온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화투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오래 두고 본다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너무나 성의 없이 대충대충 보고 넘김으로 얼마나 많은 귀중한 것들을 우리는 놓쳐 버리는가? 오래 묵은 술이 향기롭듯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 더욱 정답고 사랑스럽다. 젊은 시절엔 차마 알지 못했던 일. 그것도 하나의 지혜라면 지혜고 인생의 보물이라면 보물이겠다.
#며느리밥풀꽃.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불쌍한 배고픈 며느리 이야기. 이때 죽은 며느리 입가에 허연 보리밥알이 물려 있었다 한다.
과연 며느리밥풀꽃을 들여다보면 수줍고 갸날프게 얼굴을 숙인 꽃송이 안에 길쭉한 모양의 꽃술이 두 개씩 나왔는데, 마치 그 모양이 사람이 밥풀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박꽃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꽃 이름과 실지로의 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흔히 혼동하는 꽃 이름 가운데 하나가 함박꽃과 모란꽃이다. 함박꽃을 한자로 쓰면 작약芍藥이고 모란꽃을 또 한자로 쓰면 목단牧丹이다.
#너도 그렇다#
#구절초
꽃대의 마디가 아홉 마디쯤 자랐을 때 그 위에 꽃이 핀다 해서 구절초이기도 하다
#꽃향유
시골에 살면서 이전부터 자주 보아 왔던 풀꽃인데, 마음에 뜻(관심)이 없어 그냥 모르는 꽃으로 나와 무관한 꽃으로 치부되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