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들어온 이오덕. 이주영 엮음. 280쪽
이오덕 선생님은 현재이면서 미래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오래전에 이오덕 선생님이 내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 삶이 바탕이 된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과거가 아니다.
교육은 삶을 가꾸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교육에는 아이들 삶도 빠져 있고, 삶을 가꾸기는커녕 교육을 받을수록 아이들 삶이 점점 더 메말라 가고 있다.
학교를 ‘혁신’하겠다?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핀란드 교육이나 어느 일본 교육학자가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핀판드는 핀란드고, 일본은 일본일 뿐이다. 우리 나라 교육이 갈 길을 다른 나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오래전에 이오덕 선생님이 내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 삶이 바탕이 된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나는 교육하는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이나, 글쓰기 지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누구라도 선생님이 쓴 모든 책을 깊이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속에 올바른 교육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올바른 문학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올바른 삶으로 가는 길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풀은 우리 친구
벌레도 우리 친구
한 포기 풀을 뽑을 때도
그 까닭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온 날을 가만히 되돌아보았을 때 참 다행이지 싶은 일이다. 도시가 아닌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일이 그렇고, 착한 남편을 만난 것도 그렇다. 어머니 아버지가 날마다 논밭에 엎드려 힘든 농사 일하는 걸 보고 자란 일과, 풀꽃이 피어나는 들길을 걸어 학교에 다닌 일도 그렇다. 그렇지 않았으면 노란 꽃이 피는 꽹이밥의 시큼한 맛과 입안에 백태가 끼는 땡감의 떫은 맛을 몰랐을 것이다. 밥그릇 속에 녹아 있을 피와 땀도 알 수 없었겠지.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을 만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교육자가 장사꾼과 다른 것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희생을 즐겨 견디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비판 정신은 교육자에게 철학을 주고, 이 철학이 바탕이 되어 온갖 괴로움을 웃음으로 이겨 내도록 하는 믿음을 줄 것이다. 철학이 없이는 아무리 입신 영달을 하더라도 장사꾼 노릇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상황이다. 『삶과 믿음의 교실』(이오덕,한길사,1978)
참교육이란 것이 관료적 통제의 방식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며, 다만 아이들을 믿고 이해하는 교사의 희생정신에 의한 관료 근성과의 대결에서만이 비로소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삶과 믿음의 교실』(이오덕, 한길사, 1978)
선생님이 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은 지금도 훌륭한 글쓰기 교육 지침서이자 삶의 지침서이다.
올바른 기준이 없을 때 뒤틀린 사회에서 뒤틀림을도와주는 또하나의 뒤틀린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을 고민할 때 ‘일을 해야 사람이 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을 으뜸으로 여기면서, 일하기가 중심이 되는 교육과정을 짜려고 노력하였다.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어려운 말이나 글로 넘쳐나고 있다. 또 아이들 삶을 중심에 두지 않고 형식에 그친 내용들이 많다. 그런 까닭에 한 해가 가도록 몇 번 보지 않은 내용이 참 많았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짤 때 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아이들 삶이 중심에 놓일 수 있도록 애썼다.
이오덕 선생님는 일하기만큼 사람답게 살기 위한 소중한 인간 교육이 없다고 보았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 말씀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이오덕 선생님이 쓴 『일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시정신과 유희정신』 『삶과 믿음의 교실』들은 우리한테 교과서였다.
나는 비록 학교 밖에서 지낸 세월이 훨씬 길지만 늘 이 땅의 교사라 생각하며, 감히 이오덕 선생님을 내 스승이라 말하며 살 수 있는 것이 나한테는 큰 행운이요, 자랑이다.
노래을 잃은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노래가 없이 자라나고 있다..그런데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 것은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노래가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 유행가로 어른이 되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온통 남의 말글 홍수 속에 떠밀려 가고 있는 판이 되었다? 어른들이 쓰는 글과 말이 잘못되었고, 지식인들이 쓰는 글이 외국말법에 물들어 있으며, 신문이 이를 앞장서 퍼뜨리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우리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중국글자말, 일본말, 서양말을 정말 모조리 우리 말로 바꿀 수 있는가? 꼭 그래야 하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제 그것을 모조리 없앨 수가 없고, 모조리 없앨 필요도 없다’고 한다! 맞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 하나만 말해 본다면, 한자말이 되었건 한글로 썼을 때나 입으로 말했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거나, 곧 알아차릴 수 없는 말은 골아내어 자연스러운 우리 입말로 고쳐야 한다.
3년 뒤에 이뤄질 것이 20년 뒤에 이뤄진다고 해서 그 민주와 통일의 바탕이 아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변질되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다. 또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로써 창조하고 우리 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홍 선생, 나도 홍동에서 살고 싶어요.”
“예? 오셔서 무얼 하시게요?”
“농민들에게 글을 쓰게 하고 싶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겪는 괴로운 일, 억울한 일이 좀 많겠어요? 농민들이 글을 써야 민주주의가 돼요.”
이오덕 선생은 우리 말, 우리 글을 잘 쓴 분이 함석헌 선생이라는 말씀도 했다. 우리 말, 우리 글을 연구하고 쓰는 일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큰일이라는 말씀도 했다….1989년에 『우리 글 바로 쓰기』가 출간되었다. 부모한테서 배운 말을 부끄럽게 여기고, 조국이 가르쳐 준 말을 잊어버리며 왜곡시키는 현실을 고쳐 나가고 바로 쓰게 하는 ‘운동’을 위해 이오덕 선생이 나선 것이었다.
인권 변호사 조용환 선생은 언젠가 “이오덕 선생이 쓴 『우리 글 바로 쓰기』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오덕 선생의 ‘삶을 가꾸는 모든 것’, 곧 이오덕 사상의 그루터기는 사람다움이다.
농사만 지은 농민들이 그 말을 할까 안 할까 생각해 보라. 농사꾼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니 쓰지 말고 그이들이 알아듣는 말이라면 마음 놓고 쓰라
지금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들이 우리 삶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것을 보여 주고 들려주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보고 듣는 재미에 깊이 빠져 깨어날 줄 을 모릅니다. 이러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이오덕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자연과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직업은 다 소중한 직업. 그 가운데서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직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농사를 지어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 주는 농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고된 일을 마치고 편히 쉴 수 있게 집을 지어 주는 사람이 그렇고,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옷과 신발과 온갖 물건들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지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신세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농부나 노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여태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쓴 시(글)을 읽고 배우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에 놀아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그들의 생각대로 어떻게 하면 일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까를 머릿속에 그리며 살고 있지요…”
세상이 이렇게 비틀어졌는데 여태까지 무사히 살아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니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책을 읽지 마세요. 몸을 움직여 일을 하세요.”? 좋은 책을 가려 읽는 일과 함께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언제나 몸을 움직여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지요. 일을 얕잡아 보고, 일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서야 어찌 사람다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규칙 3조에 삶을 가꾼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사람답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
1) 남을 해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2) 자연을 잘 알아서 자연을 도와주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간다
3) 일하고 공부하고 노는 것이 하나가 되는 삶을 즐긴다
4) 이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5) 어린이와 같은 거짓 없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6) 어린이를 사람답고 건강하게 키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겠지만, 아이들한테서 도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더구나 겨레말 교육에서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사시사철 아니, 평생 감자를 즐겨 드셨으니 그 삶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지 싶다. 물질과 자본과 지위와 명예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삶을 사셨던 선생님은 얼굴도 마음도 감자빛, 흙빛이 되셨다.
쉬운 말로 하고 쉬운 말로 글을 쓰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올바른 사회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 책 이야기』
자기가 온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삶을 얘기하는 것이 ‘신변잡기’가 되는 것일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오덕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