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유시민. p320
History of Writing History
#서문_역사란 무엇인가?
어떤 대상이든 발생사를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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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은 학술 연구 활동이지만, 역사 서술은 문학적 창작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reportage,르포)’로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만날 역사가의 이름과 역사서의 재목을 미리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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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단순히 문자로 쓴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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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은 학문이고, ‘역사 서술’은 예술이다
나는 역사가 문학이거나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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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 것은 저자들이 문장 갈피갈피에 담아 둔 감정이었다.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 분노, 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도덕적 감정이었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역사』-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키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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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이야기꾼, 헤로도토스
‘역사 서술의 창시자’
키케로는 ‘이야기’를 중시했는데 헤로도토스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랑케는 ‘사실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투키디데스는 사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솜씨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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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모았다.
36 사실과 이야기(상상력)의 차이?
39 공정성(객관성?)
그들은 직접 체험한 사건을 기록하고 서술했을 뿐, 세상을 보는 관점과 철학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전쟁을 다룬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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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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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석하고 평가했다….내란을 합법화, 일상화, 제도화한 것이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된 권력욕이었고,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광신 행위를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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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모두 한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려운 책? 독해가 어려운 것은 낯선 정보가 너무 많아서다. 모르는 정보가 많으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텍스트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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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를 해명해 준다. 국제적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과학혁명을 가속화한 21세기 인류는 지구적인 문제를 만들어 냈다. 지구 온난화, 바다 오염과 해수면 상승, 대규모 멸종, 대기권 오존층 파괴, 인구 폭발과 자원의 고갈, 지구 생태계를 수십 번 파과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 이런 문제는 모두 국민국가 시대의 산물이지만 국민국가 체제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피엔스는 여전히 ‘부족 본능’에 끌려 살아간다.
사마천이 그린 인간과 권력과 시대의 풍경화
『사기』-사마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하나의 전쟁을 다루었지만, 사마천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 다양한 사회 제도의 특징과 변화, 자기만의 색깔로 살다 죽은 개인들의 생애, 전설과 신화의 시대에서 한 왕조에 이르는 수천 년 중국 사회의 역사 전체를 입체로 구성했다. 『사기』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밑그림 삼아 시대와 문명을 그려낸 거대한 풍경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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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을 가졌지만 욕망과 감정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사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언제 어디서나 모순과 부조리가 넘쳐 나며, 개인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행운과 불운에 흔들린다.
기전체? 『본기』와 『열전』이 사기의 중심이라는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명칭
이븐 할둔, 최초의 인류사를 쓰다
『역사서설』-이븐 할둔, 『무깟디마』- 이븐 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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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역사의 첫 만남.
그가 쓴 『역사서설』은 인류사의 원형으로 역사의 역사에서 합당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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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해 문명이 쇠퇴한다고 본 토인비의 역사 이론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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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당국자들은 『코란』과 『하디스』에서 여성은 자동차를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을 ‘유추’해 냈다. 이것은 신의 말씀이나 예언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지금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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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
『근세가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강대 세력들·정치 대담·자서전』-레오폴트 폰 랑케
타고난 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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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는 유럽 군주정의 권력자들에게 그들이 지배한 시대가 신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다가올 시대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신학적·역사학적 축복’을 내렸다. 이 복음은 과학 기술과 물질의 힘은 진보하지만 인간 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특유의 역사철학을 담도 있는데 역사가로서 랑케가 범한 중대한 오류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역사를 비껴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
『공산당 선언』-카를 마르크스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조선상고사/한국통사』-신채호·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박은식, 『조선사회경제사』-백남운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주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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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을 홀로 보존하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이것이 『통사』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반드시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H. 카의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
『역사란 무엇인가』-에드워드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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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힘을 지니지 못한 책은 어느 장르든 오래가지 못한다
역사학자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들이 연구하고 발견한 사실과 이론을 활용해 감동적인 서사를 만들 수 있다. 망각의 철칙이 지배하는 시간의 왕국에서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쪽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였다.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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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역사가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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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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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232
읽기와 쓰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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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첫 번째 임무는 ‘서사를 충실하게 기술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베커는 “역사적 사실이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사건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역사학회를 들끓게 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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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를 만나지 못하면 사실은 생명도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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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연구하려면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그 역사가가 살았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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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대한 믿음은 자동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을 믿는 게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믿는 것이다.
문명의 역사, 슈펭글러·토인비·헌팅턴
『역사의 연구 I·II』-아놀드 J. 토인비, 『서구의 몰락 1·2·3』-오스발트 A.G. 슈펭글러, 『문명의 충돌』-새뮤엘 헌팅턴
『서구의 몰락』은 ‘어마어마한 독서 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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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활의 여러 현상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역사의 기법. 둘째, 사실을 비교 연구해 일반 법칙을 설명하는 과학의 기법. 셋째, 사실을 예술적으로 재생산하는 창작의 기법이다. 이 세 가지는 질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역사는 창작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실의 선택, 배열, 표현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위대한 역사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견해는 옳다.
토인비의 이론에 따르면, 문명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성공적 응전의 산물이며 탄생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사회의 진보는 언제나 ‘개인’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개인은 모든 개인이 아니라 ‘소수의 창조적 천재’들이다.
헌팅턴은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문화적 귀속감이라고 주장했다. 세계화 시대에도 인간은 변함없이 ‘부족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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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상대적이지만 윤리는 절대적이다…인간 사회는 인간적이므로 보편적이며, 사회이므로 특수하다.
역사는 인간의 상충하는 본성이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역사와 과학을 통합하다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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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인간에서 사피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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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국민국가에서 벌어진 일이자만 지구 차원의 공동 행동과 사피엔스 전체의 상호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 사피엔스가 계속해서 부족 본능에 따라 행동할 경우 맞게 될 결과는 지구 환경의 극적인 변화와 인류의 절멸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은 확실한 데이터와 이론으로 논증한다.
인류사는 이처럼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이 인류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 시점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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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은 모든 것은 의심해 보라고, 우리 자신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가지라고 가르친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지구도 사피엔스도 우리들 각각도, 모두 먼지처럼 하잘것없는 존재일 뿐이다.
모든 창조 신화는 무지와 상상력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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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절정에 이른 현대 생물학은 전통적인 ‘인종’ 개념의 기초를 무너뜨렸다. ‘종(species)’과 달리 ‘인종(race)’은 생물학적 근거를 가진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외모와 피부색을 다르지만 모든 ‘인종’은 똑같은 지적·정서적·육체적 능력을 가진 사피엔스다.
생물학에서 종은 나누는 기준은 단순 명백하다. 서로 교미해서 번식 능력이 있는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면 같은 종이다.
부와 권력은 왜 지금처럼 나뉘었을까?…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그렇다면 모든 문명 발전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은 환경 외의 다른 게 있을 수 없다. 기술과 제도와 문화의 차이도 그 원인을 추적하면 결국 환경의 차이에 귀착된다….“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우연히!” 또는, “운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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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차이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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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혁명과 역사의 탄생
역사의 발전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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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배선이 달라지는 생물학적 돌연변이 덕분에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며 협동하는 능력을 얻었다…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신(神)’.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법인’,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인권’과 ‘국민주권’ 개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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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최대 사기’, 농업혁명
하라리이 이야기가 매력 있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서가 아니라 아래와 같이 그 사실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해묵은 고정관념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한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위험하고 가혹한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농부의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이 더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도 더 질이 나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을 역사의 최대 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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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생물 종의 진화적 성공이 그 종에 속한 개체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근대 이후 노동자의 삶은 중세 농부의 삶보다 행복한가?
진화의 관점은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과 소는 진화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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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하다(모든 사업 계획서의 ‘파이를 키워라’? 불공평한 분배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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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제국? 오늘날 국가들은 독립성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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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과학혁명 예찬이 농업혁명 예찬을 능가하는 사기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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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세지만 책임 의식은 없고,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하면서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에필로그_서서의 힘
역사를 읽는 이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 현재를 이해하고 싶어서 /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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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만드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힘, 사람이 개인이나 집잔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