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1 .이진경. p
천의 고원을 넘나드는 유쾌한 철학적 유목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이탁오
이 책은 들뢰즈·가타리와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한 책이다
…실제로 나는 들뢰즈도, 가타리도 만난 적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우정을 기념한다는 말은 결코 거짓도, 농담도 아니다. 아니, 좀 더 강하게 말해서 이 책은 그들과 나의 ‘우정의 기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책은 멀리서 찾아온 벗입니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도, 동일한 시간대에 살았던 적도 없으면서 많은 것을 주거나 받는 사람들을 본다. 아마도 들뢰즈에게는 에피쿠로스가 그랬을 것이고, 스피노자가 그랬을 것이며, 니체가 그랬을 것이고, 베르그송이 그랬을 것이다…이런 점에서 들뢰즈가 그들 각각에 대해 쓴 책은 들뢰즈와 그들 간의 우정을 전하는 우정의 기록들이다.
이 책은 『천의 고원』이나 들뢰즈의 철학을 좀더 쉽게 해명하려는 안내서
들뢰즈는 목적론적 방식으로 씌어지는 ‘철학사’는 억압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경우 이전의 철학사를 뒤적이면서 헤겔처럼 자신이 설정한 목적/종말에 부합하는, 그것을 준비한 어떤 요소만을 보게 되거나, 하이데거처럼 동일한 울타리에 갇힌 사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인 게 됩니다. 그 결과, 이런 식의 철학사 서술에서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만들어냈던 다양한 사고의 선들, 새로운 창조적 사유의 선들이 어떤 하나의 틀 속으로 수렴되거나 갇혀버리게 되고, 결국 그들 각각이 만들어냈던 다양한 창조와 변이의 선들은 망실되고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겠지요. 철학사가 그들에 대해, 혹은 철학사를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억압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철학사란, 이러한 억압적 역사, 억압적 사유 방식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맑스주의자로서 가타리는 “이미 이론적으로 제도화되어 멈추고 굳어버린 혁명적 사유, 공산당이라는 제도적 영토에 정착하고 고착되어버린 맑스주의적 운동을,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실천적 사유, 혁명적 실천으로 변환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사유하고 실천한 좌파 ‘공산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지요.
더욱 불행한 것은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이 태평양의 그 넓은 바다를 건너면서는 그마나 다 썩어버려 탱자에 있던 ‘향기’마저 썩은 냄새로 둔감하고, 볼 것이라곤 껍데기마저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욕망과 혁명의 결합, 그게 바로 그들의 ‘화두’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타리 역시…’집단요법’ 실험을 통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프로세스, 가족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프로세스로 무의식과 욕망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바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정신병이란, 욕망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무의식이란 애초부터 사회적인 것이지, 본성상 성적이고 가족적인 것이 승화된 것이 아니란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스탈린주의나 기존 좌파들이 잘 보여주듯이, 혁명조차 금욕적인 실천으로 정의하는 그런 종류의 맑스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더욱더 멀리 밀고갑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 혁명은 욕망의 억압을 통해 정의되게 되는데, 이는 결코 혁명적인 정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그는 혁명은 욕망에 기초해야 하고 욕망의 힘을 통해 추동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안티 오이디푸스』 : ‘정신분석학 비판을 위하여’
고전경제학에 의해 ‘가치’라는 개념에 갇혀버린 생산적 능력을 포착하려 했던 맑스처럼, 그들은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에 의해 다시 ‘신성한 가족’의 틀에 갇혀버린 무의식과 욕망의 생산적 능력을 포착하려 했던 겁니다…’욕망’에 기초하여 ‘혁명’을 다시 정의하고 다시 사유하는 것이 『안티 오이디푸스』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혁명과 욕망, 그것은 이처험 억압에 대한 욕망, 혹은 억압에 길든 욕망을 혁명적 욕망으로 변형시키는 것, 그런 억압적 욕망을 만들어내는 삶의 방식을 변혁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욕에 기초하지 않은 혁명, 반대로 욕망에 기초한 혁명은 불가능한가?”
“욕망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다”
“의무기에 혁명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혁명은 의무가 아니라 욕망이다.”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욕망”에 기초할 때 비로소 그 힘이 극대화될 수 있고 진정 혁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따라서 혁명은 욕망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유와 개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욕망의 미시정치학을 시도하려고 할 때, 그것은 이런 점에서 새로운 혁명의 정치학을 구성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의 고원』은 강한 의미에서 배치에 관한 책입니다. 그것은 배치를 기본개념으로 하여, 다양한 종류의 배치들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배치 속에서 탈영토화하는 벡터는 어떻게 그어지는지, 그러한 배치로 특징지어지는 지층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탈지층화되거나 재지층화되는지, 그런 것에서 벗어나는 탈주선들은 어떻게 그려지는지 등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욕망은 특정한 배치로서만 존재합니다.
어떤 것과 접속하여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이 되는 기계, 그래서 하나의 책이 때론 자본관계를 정당화하는 담론을 깨부수고 자본의 논리에 반하는 실제운동을 촉발하는 기계가 되기도 하고, 때론 정치경제학이라는 고전적 담론의 발전적 연장성을 그리면서 ‘정통성’의 족보를 그리는 기계가 되기도 하며,…
리좀의 몇 가지 특징들
접속의 원리. 리좀은 ‘접속(connection)’의 원리에 의해 정의되고 만들어집니다. 19세기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와(und)’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접속이란 말에 특정한 외연을 부가합니다.
이접과 통접. 그리고 리좀. 이접과 통접은 관련된 항들을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몰고갑니다. 반면 접속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귀결점도 없고, 호오의 선별도 없습니다.
접속이 리좀의 원리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지요. 줄기들의 모든 점이 열려 있어서 다른 줄기가 접속될 수 있는 것, 혹은 다른 줄기의 어디든 달라붙어 접속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접속한 줄기들이 어느 한 점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배타적 이항성도 작동시키지 않는 것. “리좀은 어떤 다름 점과도 접속될 수 있고 접속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이런 접속에는 접속되는 항이 달라지면, 혹은 접속의 지점이 달라지면 접속의 결과 만들어지는 것 전체가 달라집니다.
리좀의 두 번째 원리는 ‘이질성의 원리’.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세 번째 원리는 다양체(다양성)의 원리.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양체 혹은 다양성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 차이가 차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 동일자의 운동에 포섭되지 않는 것,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화폐가 지배하는 상풍세계에서는 기발하게 만들어진 어떤 새로운 상품이라도 ‘얼마짜리 상품’에 불과합니다.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단지 양적 차이만 갖는 상품으로 동질화되고 말지요. 수나 종류가 얼마가 되든, 그 새로운 상품이 추가되었다는 것이, 종류가 느는 정보의 차이말고는 전체 상품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을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에 알지 못했던 아주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도 통상 우리가 아는 문명은 이를 다양성의 확장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 안에 갖다놓음으로써 동질화하고 동일화하는 과정에 끌어들입니다. (인순고식구차미봉!) 가령 이른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나 아프리가 원주민들의 이질적인 삶의 방식을 발견했을 때, 유럽인들은 이를 자신을 지칭하는 ‘문명’에 미치지 못한 ‘미개’ 내지 ‘야만’이라고 개념화하고는 계몽과 개화를 통해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지요. 다시 말해 그것은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문명 안에 들어올 일종의 ‘과거’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명이란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동일화하여 지상에서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밖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이는 히브리인들의 삶이 그동안 유목적이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조차, 억약궤조차 유목적인 삶 속에 있었던 거지요. 사무엘 같은 선지자나 지도자는 있었지만 왕은 없었다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면 왕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성전을 짓는 것도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신의 불평이나 불만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 자신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의 응답은 사실 이런 백성들의 욕망을 승인하는 것입니다…성전을 세운다는 것은, 이동하는 ‘불안정한’ 삶이 중단되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곧 신의 계율을 의미하는 언약궤를 안정적인 장치로 체제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신의 계율이 의무와 처벌이 수반되는 국가적 규율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로써 정착민의 체제가 수립되고, 그것을 보장하는 국가장치가 확립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