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p256
Free School
“아무도 믿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레 배운다. 하나의 프리스쿨도 공동체가 된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이 자신의 전통적 역할을 기꺼이 버릴 때 우정과 새로운 성장이라는 기대하지 못한 장이 열린다.”
이 책은 아이들 스스로 찾아가는 배움의 길을 한 번만이라도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제도적으로 열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준다.-이반 일리치
점점 더 가슴을 잃어가는 학교..크리스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진정한 교육은 경영기술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을.-존 밀러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편견을 거두고 우리 기대의 투영물로서가 아니라 있나 그대로의 아이들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프리스쿨에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늘 배우는 학생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이끌며 앞서 나아가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우연하게 열려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온갖 아이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다양성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가치? 그 무엇도 실제 생활을 위해 쓸모가 없었고 바깥 세상의 삶을 위한 채비가 되어 주지 못했다(앎과 삶이 다른 학교교육)
분명한 것은 ‘교육받은’ 어른으로서 이 세상이라는 시장바닥으로 뛰어들 때 우리들 대부분은 그 모든 영역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살아가는 데 진실로 문제가 되는 것들? 이러한 일들은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러기에 가르칠 수도 없다. 단지 모범을 보여주거나, 어린 시절 속에 깔려 있는 자아발견을 위한 끝없는 ‘혼돈’ 속을 스스로 탐사해 갖도록 유도하는 길밖에는 없다.
#해 가면서 이루기
전혀 학교 같지 않은 학교 이야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발적이고 안정되어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줄 한다는 점입니다.
교육? 인간의 삶이 밖에서 계획되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에 의해 이끌리거나 방향을 갖는 것이라고 믿는다만 정말 그렇다.
“도대체 이 학교의 체제는 무엇입니까?” 단지 개속 바뀌어 가면서 학교를 꾸려 나가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머리보다 가슴을 요구하는 프리스쿨
아직도 공립이든 시립이든 우리의 전통적인 학교는 두려움과 통제로 아이들을 지배한다
일리치에 따르면 진짜 죄인은 학교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죄인은 그가 ‘탈학교 사회‘에서 ‘가치의 제도화’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우리의 비물질적인 욕구를 상품에 대한 욕구로 바꾸어 놓는 보이지 않는 과정)
의존형 인간의 대량생산, 가엾은 가재는 자신이 요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다
배움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유기농 원예? 최종 산물은 우리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 있다
자율? 아이들이 자신만의 필요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며, 또 자기 힘으로 내적 한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기 위해 썼다.
첫째 임무?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신화를 창조하는 일
나는 반아카데미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 세계는 자기들끼리만 살아가기 위해 짜 놓은 곳이며 자기 잇속이나 차리는 직업적 전문어로 요란한 세계다!
#2 문제아는 없다
‘무마사토 동인’
청조적 배출구와 파괴적 배출구
치료의 학교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바로 그 자체이다.”-루즈벨트
스스로 증식시키는 무서운 놈!
#7 자기를 창조하는 아이들
#8 텔레비전은 눈이 씹는 껌이다
‘진짜 세상’속에서 배우는 프리스쿨 아이들은 보통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어느 정도 닳아 있는 편이다!
#9 신은 우리의 종교를 묻지 않는다
바슬라프 하벨처럼 그리고 많은 점에서 우리에게 선구자가 되는 19세기의 초월주의자들처럼 프리스쿨은 오늘날을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나날의 삶 속에서 초월적 차원과 맞닥뜨리는 기회를 갖는 일이 절박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자연에 대한 경외감, 겸손)
#10 인종과 계급의 갈등을 넘어서
#11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위해
#12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허물기
진정한 교사란 완전히 전일적인 모델이지 단순한 감독자나 학급관리자가 아니라는 명제는 곧 교사가 학생들을 교사 스스로 도달한 지점보다 더 멀리 이끌어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13 공동체가 우리를 구원할까
스코트 펙에 따라면 공동체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상호간의 전적인 원조’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세계는 언제나 불공정과 모순과 혼란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또한 이 세계는 자비와 진리와 신념 그리고 용기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이 속에서) 인간성을 유지케 하는 것은 희망이라는 기적이다. 모든 아이들이 내부에는 언젠가는 경의와 충만함으로 피어날 하나의 씨앗이 아직은 딱딱한 껍질 속이지만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 씨앗을 키우고 보호하는 일에 결코 무관심해선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여기 프리스쿨에서 우리가 계속 ‘해 나서면서 이루어 가려‘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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