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평전. 옌리에산&주지엔구오. 돌베개

나는 어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따라 하는 장단일 뿐이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쑥스럽게 웃을 수밖에…
이탁오의 동심설은 독서와 견문으로 물들지 않은 아동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며, 도가적인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마음이 존중되어야 하고, 인욕은 가식 없이 그대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76세 되던 해에 장문달의 탄핵을 받고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자살함으로써 그의 생을 마감했다. #동심설 #중국제일사상범
사실 이지는 공자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공자만 존중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결코 공자 본인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공자만 존중하면서 자신과 다르면 공자의 이름을 빌려 탄압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그가 반대한 실체는 ‘술이부작’하는 보수 학술이요, 인류에게는 오직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있어야 한다는 사상의 전제적 사유 방법이었다…이것이 바로 중국 사상계에서 2천 년 동안 제거되지 않은 고질이었다. #술이부작
중국이 15,16세기부터 세계 발전 조류에서 뒤지기 시작한 비극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다른 것은 모두 천박하고 저질이며, 오로지 책 읽는 것(실은 그렇게 해서 관리가 되는 것)만이 고귀하다는 사고방식일 것이다. #사농공상 #관존민비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오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뿐이다! 위에 있는 자도 후안무치하고, 밑에 있는 자도 수치를 버린다. #부끄러움을모르는정치인들
‘치국평천하’ 하려면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여 가려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군자만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인도 쓸 수 있다. 군자만 재능이 있고 소인은 재능이 없겠는가?…위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군자만 택하고 소인을 없애면 선악이 바르게 구현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무 분명하게 분별하고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여 적절하게 추어주거나 억누르지 못한다면, 군자에게 억울함을 심어주게 될 뿐 아니라 소인에게는 불평과 원함을 품게 하여 사람을 악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이는 더욱이 태평을 부르는 길이 아니다. #치국평천하 #장점경영 #지나친분별 #탕평책 #이탁오평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고향이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진실한 감정을 교류하고 풀어놓을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외진 고을의 작은 마을…무엇으로 즐거움을 삼으리오?
이지는 문을 닫아걸고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사귈 만한 훌륭한 인물이나 호걸이 책 속에 있고, 정을 기탁할 만한 인생의 모든 기쁨•슬픔•만남•이별 등이 책 속에 있었다. 책 속에는 무엇이든 있었다.
“그 의도는 오직 거짓으로 꾸미기만 한 글을 몰아내어 실용성을 추구하고,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보여주며, 허황된 이치를 버리고 참다운 인정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원중도 #이온릉전
“…또 오늘날 거침없고 자유분방함을 논하자면 <장자>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장자>를 읽었기 때문에 거침없고 자유분방해진 사람은 아직 없었으며,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사람은 반드시 <장자>를 읽어야 할 필요도 없다….그리고 재갈량처럼 순정한 사람도 자기의 의견을 일일이 직접 써서 후주에게 바쳤지만 일찍이 의견이 소소하고 잡다하다 하여 결국 모두 폐기된 적이 있었는가?”
77 인생은 한 번뿐,
“무릇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생사의 근본이 되는 원인을 깊이 연구해보고 자기의 생명이 갈 바를 탐구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관직을 버리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자기 몸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어 삼대나 말대의 경우 까치가 그 위에 둥지를 엮어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른다.”
83 “우린 모두 독서인 출신인데, 아직 모르는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그대들이 과거에 급제해서 관적에 이름까지 올랐으니, 어찌 책을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나? 다만 아직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으니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네!”
“<논어>와 <대학>을 그대들은 당연히 봤을 것이네만, <논어>를 펴자마자 ‘학’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대학>을 펴자마자 ‘대학’ 두 글자가 나오네. 나는 그대들이 아직 이 세 글자를 모른다고 감히 말하겠네…<논어> 중의 ‘학’ 자를 정말 이해했다면, (공부를) 기뻐하고 (학우와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을 수 있네…그대들은 아직 이런 것들을 못하는데 어떻게 ‘학’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나?”
409노인행
백발로 뒤덮였건만, 오직 마음만은 늙지 않았네…
낮에는 여전히 문을 닫고 혼자 앉아 독서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 느낀 바가 있으면 선뜻 적었다. 저녁에는 유동성과 학문을 얘기하고 도를 논하며, 동시에 유초전과 그의 친척 형제 유용건의 질문에 대답했다.
413왕가수가 “선생의 이후 행적은 어떠실까요?” 라고 묻자 이지는 곧장 말이 튀어나왔다. “감옥에서 영예롭게 죽을 수 있다면, 이 생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지요.”…“그때는 명성이 천하에 가득 찼을 터이니 통쾌한 일이지, 통쾌한 일이야!”
451 말이 내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말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아무 맛이 없다. 왜 꼭 견강부회하고 비교하고 추측하며 성인의 한 글자 한 구절과 합치되기를 추구해야 하는가?
사직. 사란 백성을 편안히 해주는 것이요, 직은 백성을 부양하는 것이다. 백성이 편안하고 부양된 연후라야 군주와 신하의 책임이 비로소 줄어든다…‘민본’ 사상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는 천하 백성과 만물은 군주의 사유재산이라고 보았던 봉건 사회에서, 더욱이 정주 이학을 빌려 절대 군주권을 세운 명대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선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표준은 한결같았으니, 백성에게 공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민본주의 사상가 이탁오)
“스승이 아닌 자 벗이 될 수 없고, 벗이 아닌 자 스승이 될 수 없다.”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일 뿐이다.”